홋카이도는 예로부터 불곰으로 인한 문제가 잦은 것으로 유명하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딱히 감이 오지 않겠지만, 홋카이도 사람들 사이에선 산을 다닐 땐 방울을 차고 다니는 게 필수다.
곰 스프레이 또한 필수품이다.
불곰은 왠지 북미나 러시아 같은 곳에나 살 것 같은 이미지지만, 사실 전 세계 어디에도 홋카이도만큼 불곰이 밀집해 있는 곳은 없다.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실제 자료로도 검증된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홋카이도에서 대학을 다니며 아웃도어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내가 친구에게 들은 것이다.
어느 여름, 토카치 산맥 종주에 도전한 등산 동호회가 있었다.
구성원은 A, B, C, D, E로 총 5명.
A가 회장이고, B가 부회장이었다.
그들 중 A, B, C, D는 산에 자주 다니던 중급자였고, E는 그 해 갓 산에 다니기 시작한 초급자였다.
동호회 중 거개는 일찌기 불곰과 산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큰 마찰 없이 지나갔었다.
여기부터는 A가 수첩에 적고 있던 일기를 정리한 것이다.
산에 들어온 첫날째다.
딱히 사고도 없고, 계획대로 가고 있다.
다들 경치를 즐기며 열심이다.
이틀째.
이미 능선 상의 루트를 나아가고 있지만, 어젯밤 일기 예보에서 오늘 날씨가 영 좋지 않다기에 일단 머무르기로 했다.
예보대로 비바람이 점차 강해져, 텐트 안에서 식사를 했다.
트럼프를 하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즐겁게 시간을 때운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내일 아침 비가 잦아들면 출발하기로 했다.
이틀째도 딱히 별 일 없이 끝났다.
사흘째.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난 C가 바깥 날씨를 확인하려 텐트에서 나갔다.
돌아온 C에게 어떤지 물었다.
[조금 안개가 심해. 이대로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텐트 입구를 열고 바깥을 보니, 주변은 안개가 짙어 새하얗다.
우선 출발을 늦추리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텐트 밖으로 나왔지만, 안개가 갤 기미는 전혀 없다.
다들 어제 하루 쉰 것도 있어 가능하면 출발하고 싶어하지만, 사고가 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신중한 게 낫다.
그렇게 의견을 나누고, 오늘도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낮이 되자 안개가 오히려 더 짙어진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걸어다니는 것은 위험하기에 텐트 밖으로 나가는 걸 금했다.
밤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E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식사를 하고 냄비를 텐트 바깥에 내버려뒀다.
밤이 되면 야행성 동물들이 돌아다니기에 음식 냄새를 풍기는 것은 위험하다.
냄비는 금새 들여놓았지만, 잠시 뒤 동물의 가벼운 발소리가 텐트 주변에서 탐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걷는 것이 들린다.
여우다.
텐트에서 나와 멀리 쫓아냈다.
방금 그 냄비 때문에 온 걸까.
이 주변에는 불곰이 나온다.
낮에 만난 적은 몇 번 있지만, 밤에는 훨씬 위험하다.
어쨌거나 셋째날도 이렇게 지나간다.
나흘째.
아침에 바깥 정황을 살폈지만, 2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심하다.
원래 일정은 이 날이 되도록 날씨가 풀리지 않으면 계획을 중지하고 다른 루트로 산을 내려올 작정이었지만, 안개가 너무 짙어서 걷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따로 의논할 것도 없이 이 날도 텐트에서 머물기로 했다.
오후에 조금이라도 안개가 걷히면 하산하려 했지만, 안개는 더욱 더 짙어질 뿐, 낮이 되어도 어슴푸레할 뿐이다.
트럼프 치는 것도 질리기 시작하고, 슬슬 이야깃거리도 떨어져 간다.
날이 저물자 빨리 불을 끄고 일찍 잠을 청했다.
텐트 안이 안개 때문에 축축해져, 텐트 안의 강한 습기 때문에 불쾌감만 높아진다.
잠자리에 누운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눈치 챈 B가 옆에서 자던 나를 깨웠다.
[아까 전부터 발소리가 들려. 여우가 아닌 거 같아...]
다들 깨어 있던 것인지, 다들 몸을 일으켜 귀를 기울인다.
무겁고 느릿느릿한 발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때때로 습기 찬 콧김 소리가 들려온다.
다들 숨을 죽인 채, 말 없이 바깥 모습을 상상만 하고 있다.
불곰인가...
텐트 주변을 따라 빙글빙글 발소리가 돈다.
아무래도 한 마리 뿐인 듯 하다.
심한 짐승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다들 누구부터랄 것 없이 텐트 가운데에 모여, 서로 몸을 붙인다.
그 사이 곰은 텐트에 코를 붙이고 열심히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냄새를 맡고는 텐트 주변을 돌고, 또 다시 냄새를 맡는다.
다들 공포에 질려 숨죽여 덜덜 떨면서, 서로 몸을 의지하고 옴짝달싹 않는다.
하지만 잠시 뒤, 전원이 몸을 크게 움직여야 했다.
곰이 쿵쿵 텐트에 온 몸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텐트 천이 안으로 크게 밀려들어오며, 곰의 형태를 만든다.
어떻게든 거기 닿지 않으려 몸을 움츠린다.
곰이 마음만 먹으면 텐트 따윈 종이조각만도 못하다.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어떻게든 참으며, 마구 흔들리는 텐트 안에서 견딘다.
곰은 5분 정도 계속 텐트에 부딪히더니, 또 한동안 텐트 주변을 빙글빙글 걷는다.
다시 부딪히고, 걷는다.
E는 이미 울고 있었다.
나도 울 것만 같았다.
새벽녘까지 그것이 반복되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다들 잠시 잠을 청했다.
닷새째.
새가 우는 소리에 눈을 떴지만, 아직 안개는 개이지 않았는데 어슴푸레하다.
불곰의 냄새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아니, 텐트 바로 옆에서 살펴보고 있는 걸까.
다들 잠자코 앉아 있을 뿐이다.
몇시간이고 침묵만 이어진다.
오후가 되자 다시 발소리가 들려온다.
한동안 걸어다니더니 다시 사라진다.
저녁 무렵, D가 용기를 내 텐트 문을 살짝 열어 바깥 모습을 살핀다.
[안개가 개기 시작했어.]
희미하게 햇볕이 들어, 안개가 갤 조짐이 보였다.
바로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의견과, 내일까지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나뉘었다.
하지만 아직 곰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데다, 지금부터 하산을 시작하면 걷는 사이 밤이 되어 버린다.
제대로 쉴 수도 없는, 등산로 중간에서 노숙을 해야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완전히 안개가 걷힌 것도 아니다.
악천후에 밤이라는 악조건까지 겹친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사고의 지름길일 뿐이다.
회장으로서 도저히 하산을 허가할 수 없었다.
물론 나조차 공포에 질려 있었으니, 냉정한 판단이었을지는...
여하튼, 그렇게 해가 졌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단순한 공포 때문만이 아니라, 아까 서로의 생각이 대립했던 것이 원인이겠지.
그날 밤도 곰은 텐트 주변을 빙빙 돌다가, 종종 몸을 던져 부딪혀 왔다.
아무도 잠을 자지 않는다.
엿새째.
어제 오후 잠깐 안개가 갰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 마냥, 안개가 짙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다들 아무 말이 없다.
혹여나 냄새 때문에 곰을 자극할까봐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주변이 무척 조용하다.
곰의 냄새도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몇시간 뒤, C가 [밖에 나갈래.] 라고 말했다.
다들 반대했지만, [바깥 상황을 확인만 할게. 곰도 지금은 주변에 없는 것 같잖아.] 라며 C는 끈질기게 허가를 요구했다.
금방 돌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나는 그것을 허락했다.
C가 안개 속으로 들어간 후, B는 나를 비난했지만,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발소리가 들린다.
C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텐트 문을 열려 했지만, 바로 손을 멈췄다.
짐승 냄새가 난다...
D가 가냘픈 목소리로 [C는?] 하고 묻는다.
곰의 콧김이 어제부터 훨씬 격하다.
곧바로 몸을 부딪혀 온다.
우리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서로 몸을 의지한다.
한동안 텐트 주변을 맴돌다, 곰이 주저 앉았는지 발소리는 사라졌지만 냄새는 변함 없이 지독하다.
그 날 내내 곰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C는 돌아오지 않는다.
습격당한걸까.
...여기서부터 조금씩, 일기의 필적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한자도 쉬운 것을 빼면 점차 히라가나의 비중이 커진다.
이레째.
오늘도 안개가 진하다.
배라도 채우러 간 건지, 곰의 낌새가 사라졌다.
한동안 다들 말이 없었지만, E가 [산에서 내려갈래.] 라고 말했다.
수면 부족 때문에 눈에는 핏발이 섰고, 목소리는 히스테리에 가득 차 있다.
설득을 해봤지만, 듣지도 않고, E는 [내려가면 구조를 요청할게.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하고 짐을 가지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다섯 명이서 출발했는데, 이젠 나와 B, D 셋 뿐이다.
곰이 나타나지 않는 사이 냄새가 나지 않는 칼로리 메이트로 배를 채운다.
대화는 없다.
시간이 흐른다.
오후가 되어 밖을 봤지만 안개는 그대로다.
저녁 무렵, 곰이 왔다.
중앙에 모여 앉아, 곰의 충돌을 어떻게든 견딘다.
습도가 높아 붙어있는 사이 땀이 엄청나게 흐르지만, 다들 벌벌 떨며 그저 소리를 내지 않으려만 했다.
E는 산을 내려갔을까.
여드레째.
안개는 그대로다.
아침이 되자 곰의 낌새가 사라져 있었다.
아무도 [하산하자.] 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간 밀려 있던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달랜다.
이 일기를 가지고 무사히 돌아가고 싶다.
오후 2시경, B가 미쳤다.
처음에는 웃기 시작하더니,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는 웃으며 빈 손으로 텐트를 뛰쳐나갔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그를 잡지 못한 채, 한동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금새 사라져간다.
D가 천천히 텐트 입구를 닫고, [가 버렸네.] 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D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밤도 곰이 왔다.
우리는 둘이서 몸을 맞대고,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흐레째.
오늘도, 안개가 짙다.
곰은 한동안 주변에 있는 것 같았지만 낮이 되자 어딘가로 가버렸다.
텐트 중앙에 붙어서, 잠시 눈을 붙인다.
몹시 조용하다.
저녁에 곰의 발소리 때문에 깼다.
곰이 부딪힐 때마다 울고 싶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집에 가고 싶다.
곰은 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걸까.
열흘째.
오늘도안개가짙다
오후에,D가일어나조용히밖으로나갔다
말리지않았다
안개가걷히지않는다
곰은 밤 늦게 왔다.
미쳐버릴것같다
열하루째.
오늘도
안개가
짙다
곰은
있다
열이틀째.
오늘도 안개가 진하다.
이들은 사전에 등산 계획을 경찰에 제출했었기에, 이상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은 곧 알려졌다.
하지만 보기 드문 악천후 때문에 경찰의 수색도 차일피일 미뤄질 뿐이었다.
안개가 걷히고 발견된 것은 아무도 없는 텐트와 마구 흐트러진 짐, 그리고 일기.
맨 처음 텐트에서 나왔던 C는, 텐트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목에 치명상을 입어서 즉사한 듯 했다.
그 다음으로 텐트를 나섰던 E는, 등산로 도중의 벼랑에서 실족해 떨어져 사체로 발견되었다.
B는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곰에서 잡아 먹힌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D는 등산 루트 도중에 있던 벼랑 밑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A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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