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알바’ 논란에 휩싸인 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허현준 선임행정관의 ‘집회 지시’ 의혹과 관련해 “위안부 합의안 체결 이후 허 행정관이 집회를 열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추 사무총장은 “시사저널의 보도<4월21일 ‘[단독] 어버이연합 “청와대가 보수 집회 지시했다”’>가 나가기 직전 허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 ‘시사저널이 기사를 내려고 한다. 총장님이 나서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보수단체의 물리력을 동원해 언론 탄압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어버이연합은 지난 4월21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시사저널사 앞에서 회원 120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저널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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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이 4월21일 시사저널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
어버이연합 핵심 인사는 4월18일 오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청와대가 어버이연합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공격을 하는 것 같다”며 “집회를 열어달라는 요구를 안 받아줘서 그러는 것이다”고 밝혔다. 한 예로 올해 초 한·일 위안부 합의안 체결과 관련해 청와대 측에서 집회를 요구했는데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의 집회 요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어버이연합은 심인섭 회장을 비롯해 고문, 부회장, 공동대표, 사무총장, 국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나 실질적인 운영은 추선희 사무총장이 도맡아 하고 있다.
“지시 떨어지면 단체들 사이에 경쟁”
이와 같은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4월21일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22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허 행정관이 민형사상 고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찰과 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지시를 내린 인물로 지목된 허 행정관은 21일 오후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하고 22일 법원에 출간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특히 허 행정관은 언론을 통해 “어버이연합은 지난 1월6일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환영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것만 봐도 시사저널의 보도는 오보라는 게 확인된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이 한·일 위안부 합의안 체결과 관련해 집회를 열었기 때문에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추 사무총장은 “허 행정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안 체결과 관련한 집회를 월요일(1월4일)에 열어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우리(어버이연합)는 월요일보다 위안부 수요집회가 있는 수요일(1월6일)에 집회를 갖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이를 따르지 않았다. 월요일에는 다른 단체가 집회를 가졌고 우리는 수요일에 했다”고 설명했다. 추 사무총장은 이어 “지시가 떨어지면 (단체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는다. 서로 먼저 집회에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집회 지시가 여러 보수단체에 수시로 내려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사저널 규탄 집회도 청와대가 요구했나
청와대가 어버이연합을 움직여 언론 탄압에 나섰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추 사무총장은 “4월20일 오후 시사저널의 ‘청와대 지시’ 기사가 나오기 전에 허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 ‘시사저널이 기사를 내려고 한다. 총장님이 나서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면서 “(오히려) 내가 기사가 없는데(나오지도 않았는데) 뭘 어떻게 나서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때는 기자가 허 행정관에게 관련 사실을 확인 요청한 직후였다. 당시 기자 신분을 밝히자 허 행정관은 “업무 중”이라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문자메시지를 통해 취재 목적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자메시지에는 ‘허 행정관님이 보수단체에 집회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듣고자 전화드렸습니다’라는 내용만 담겨 있었다. 어버이연합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허 행정관이 기자의 취재 요청 직후 추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보수 집회를 지시했다’는 문자만 보고 바로 어버이연합에 연락을 취한 셈이다.
허 행정관은 보수 성향의 탈북단체들을 사실상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허 행정관은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 ‘전향386’과 ‘시대정신’이라는 단체의 핵심 멤버였다. 대학 시절 좌파 운동가였으나 1990년대 후반 노선을 갈아타 보수 진영에 참여했다. 북한 인권 운동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들어와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탈북단체 대표 ㄱ씨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탈북단체가 주도한 집회가 있었는데, 이때 허 행정관을 처음 만났고 이후에도 수차례 만났다. 청와대로 직접 찾아가 만난 적도 있다”며 “허 행정관이 탈북단체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보수 집회 개최를 지시했다’는 시사저널 기사가 4월20일 나가자 후폭풍이 거셌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행동부대를 매수해 정부 입장을 지지하게 하고, 다수의 민주적 의사 표현을 방해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청와대 행정관의 집회 사주 의혹은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 위법행위가 확인될 경우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정치 개입”이라면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추선희 “지시는 아니다, 누구 지시도 안 받는다”
청와대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어버이연합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버이연합 측은 4월21일 시사저널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사저널의 보도가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흔드는 일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기자는 이날 저녁 7시쯤 시사저널사 인근 사무실에서 추 사무총장을 직접 만났다. 추 사무총장은 “허 행정관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맞지만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 어버이연합은 누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허 행정관과 나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추 사무총장은 “시사저널이 박근혜 대통령을 또 건드리면 우린 못 참는다. 우리는 또 (집회에)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탈북단체 대표 ㄴ씨는 “시민단체, 그것도 보수단체가 현 정부의 눈 밖에 나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당장 돈줄부터 끊길 것이다”면서 “청와대 행정관이 집회에 참석하라고 하면 일개 시민단체가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이 허 행정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청와대가 집회를 요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이를 청와대의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안부 집회’ 아베 맹비난, 박근혜 대통령은 지지
어버이연합은 박근혜 정부의 ‘홍위병’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어버이연합의 한·일 위안부 합의안 관련 집회를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어버이연합은 지난 1월6일 가진 집회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강력 규탄했다. 당시 어버이연합은 성명서에서 ‘위안부 문제 타결에 있어 돈을 앞세운 일본의 처세는 대한민국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진심 없는 사죄를 비판하면서도 합의안을 체결한 다른 한쪽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오히려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외교적 결실이며 미래지향적 국익을 위한 대통령의 용단’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추 사무총장은 기자에게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박근혜 정부를 때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집회는 한둘이 아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어버이연합 집회 회계 장부<4월19일자 ‘[단독] 어버이연합, ‘비박’ 김무성 규탄 집회에도 알바 동원’ 기사 참조>에 따르면, 어버이연합은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청 청사와 박원순 후보 캠프 등지에서 이른바 ‘농약 급식’과 관련한 ‘박원순 규탄 집회’를 가졌는데, 이 집회에 167명의 탈북자 알바가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시장은 4월21일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돈을 줘 이 분들을 거리로 내보내 어버이 이름을 욕되게 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상식 이하 행동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보도가 있었다”면서 “(서울시장) 취임 전 어버이연합이 아름다운재단에 와서 내가 여자인 줄 알고 데모를 한 적이 있다. 이들이 동원된 것은 확실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한편 시사저널은 4월22일 허 행정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연락이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실로 전화해 직원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연락을 달라는 메모를 남겼지만 역시 답변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