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그중 흥미로운 해석중 하나는
냉전의 기원이 소련의 방어주의적인 외교전략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소련은 1920년대 이후, 적어도 1945년이 되면 공산주의 세계혁명이라는 목표를 접게되었다.
-적어도 현실적인 외교목표수준에서는.
대신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경제로부터 분리된 그들만의 사회주의세계경제권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소련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동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사회주의경제권을 수립한 뒤, 이 사회주의적 청정구역에 자본주의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할 것을 우려해 이를 막을 장벽을 세웠다. 서방 국가들의 사회주의권에 대한 봉쇄는 공산 블록이 쌓은 장벽을 따라 서방권이 경비병들을 배치한 샘이며, 소련의 군사력강화도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의 억제"라 볼수 있다.
방어의도론자들은 소련붕괴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될 정도로 상호의존적으로 구성된 동구권 국가들간의 분업화되었던 경제구조를 이러한 주장의 주요한 근거중 하나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제3세계권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소련의 후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정통주의적 해석처럼 이것은 확장주의적인 소련제국주의를 증명해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이에 대해서 방어의도론자들은 이것이 완충지대구축전략이었다고 지적한다.
소련은 사회주의경제권에 대한 자본주의국가들의 군사, 경제, 사회적 공격을 완충시킬 목적으로, 혹은 눈을 돌리게 할 목적으로 제3세계에 우호적국가의 수립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런 완충국가전략의 시각에서보면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체의 적화라는 김일성의 팽창주의적 의도와 한반도전체의 완충국가 수립이라는 스탈린의 방어주의적 의도가 결합된 전쟁이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방어의도론자들은 사실 이런 자체고립적인 경제구조는 본래 지속가능성이 터무니 없이 낮다고 지적한다. 자원부족이 발생할 경우, 그 대체제를 마련하기가 극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공산권이라는 자체고립적인 블록이 50년 가까이 지속할수 있었던 것은
첫째, "그자체로 하나의 세계"라는 평가를 받는 러시아-소련-이 이 세력권의 극을 담당했고,
둘째, 소련의 지도층들이 필요에 따라 장벽의 뒷문을 여닫을 줄 알았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다고 본다.
어쩌면 오늘날 북한의 고립도 이러한 방어주의적 의도에 의한 결과로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오늘날 북한 정권의 지배자들의 의도는 "현체제의 유지"라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체제유지를 위협할수 있는 타국으로부터의 그 어떠한 유입도 반대하기에 스스로 고립을 택했고, 그 고립을 유지하기 위해 체제단속을 벌이는 한편, 외부로부터의 영향력을 완충시킬 목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선린관계를 유지하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를 진행해 온 것으로 해석할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련이 한세기 가깝게 고립경제를 운영할만큼 그 내부 경제규모수준이 비대했던것에 비해 북한의 경제규모는 비참할 지경이라 내부경제동력이 아닌 외부원조에 기댈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