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고백(19)
2편 어느날 사람들에게 날개가 생겼다.
3편 나는 미래에서 왔다.
4편 죽음이 사라진 세계
5편 평화 속의 종말
5.5편 1~5편 의도, 해설
14편 날 성폭행범으로 몰아가던 미친년을 죽였다
15편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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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기 무섭게 생긴 괴물이 있어.
어렸을 때 나쁜 괴물이 나오는 동화책을 보고 나면 난 엄마에게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내가 정말 그 괴물들은 본다는 것에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내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귀신들이 여기저기 존재하고, 운석은 늘상 떨어지며, 온갖 끔찍하게 생긴 괴물과 사체가 존재하는 세상이
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었다.
물론 나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여자의 나체를 상상했더니 그게 그대로 나온 적이 있었다.
문제는 목위의 부분을 상상하지 못해서 머리가 잘려진 채로 나왔지만.
대부분의 상상들이 그랬다. 내가 의도적으로 상상하려는 것은 거의 불완전했고,
완전한 것들은 나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그리고 내가 보길 원치 않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아까 말한 그런 세기말적인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란 적응에 굉장히 뛰어난 종족이라 난 그것에 잘 적응해나갔다.
다만 학교에서의 교우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직시하기 보단 다른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것이 나의 상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상상이 몇 있었고, 그런 이상한 반응은 내가 따돌림당하고 괴롭힘 당하기에 충분했다.
외롭지 않다거나 상처받지 않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난 상상이 그대로 보일 뿐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였으니까.
다만 그 외로움과 고통에 익숙해져버린탓에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그녀가 전학온 것은 그쯤이었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이 왕따가 되었다.
내 옆에 앉은 것이 문제이기도 했고(우린 짝을 지어 앉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반은 원래 홀수였다. 그래서 혼자 앉는 것은 당연히 내가 되었다.)
적당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들의 질투를 살만큼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며
결정적으로 무언가 그녀가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 왕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와 처음 말문을 튼 것은 교실에 남아 청소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우리반은 하루씩 돌아가며 옆에 앉은 짝과 함께 청소를 하는 제도였는데, 난 늘 혼자 앉았기에 원랜 늘 혼자 청소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전학온 후로부턴 청소도 외롭지 않게 하게 되었다.
먼저 입을 연건 그녀였다.
'가끔씩 움찔움찔 하던데 왜 그러는거야?'
악의가 섞인 물음처럼 보이진 않았다.
난 나의 비밀을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유일했던 친구에게 그것을 털어놓았다가 한동안 놀림 받은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아무튼 그냥 그 물음을 받았을 때는 왠지 이 아이라면 말해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의 비밀을 말해주었다.
'난 상상하는 것이 그대로 보여'
그녀가 답했다.
'그럼 내 나체를 상상하면 그것도 그대로 보여?'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그치만 그런 것보다 괴물이 보인다거나 운석이 떨어진다거나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하는 나쁜 상상이 보통 보여.
그리고 한번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난 벗어날 수 없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그건 더더욱 강한 상상이 되어 나타나니까'
그녀가 답했다.
'어떤 이에게 코끼리를 생각하게 하고 싶다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라.'
'그런거지.. 뭐.'
'그럼 이건 어때? 코끼리를 상상하지 않는게 아니야. 코끼리가 사라져버리는 상상을 하는거야.'
어?
그런 식의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난 괴물들이 나타나면 늘 상상을 자제하려 했다.
그러나 의식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강한 상상이 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사라져버리는 상상을 한다면?
적당히 블랙홀을 상상했다. 저건 괴물들만 먹어치우는 블랙홀이야.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내 앞에 보이던 괴물들은 모두 빨려들어갔다.
그녀는 나의 구원자였다.
그 뒤로도 괴물은 나타났지만 이젠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때 그때 블랙홀을 상상해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운석이 떨어지면 쉴드를 생각한다거나, 비행기 추락은 수퍼맨 영화에서 본것을 떠올려 수퍼맨이 구조하는 상상을 했다.
난 조금씩 나의 상상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그녀 덕분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와 그녀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왕따끼리 논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아이들의 눈을 피해 옥상에 자주 올라가 놀았다.
그녀는 상상이 보인다는 나를 부러워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좀더 똑똑했더라면 좀 더 나의 상상을 잘 활용했더라면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정말 나에게 구원이었다.
그녀가 풍기는 신비스런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이들은 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나 또한 건드리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이 이곳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니?'
그녀가 그렇게 물어본 순간 난 그녀가 뛰어내리는 상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산산조각나 부셔저버리고 말았다.
다음번엔 대처를 할 수 있었다. 바닥이 말랑말랑 하게 된다거나 그녀에게 낙하산을 달아준다거나 하는 식의 상상으로.
하지만 그 시체는. 그 부셔저버린 시체가 그냥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상상을 해서 지워버려도 계속해서 나타났다.
''왜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한거야?'
그녀가 답했다.
'그냥. 너는 궁금하지 않아? 그렇게 뛰어내리면 얼마나 아플까? 고통스러울까? 느낄 틈은 있는건가? 죽으면 어디로가지?'
'그런 끔찍한 상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나는 꿈이있어. 너와 함께 이곳에서 뛰어내리는 거야. 늘 혼자라서 두려웠지만 너와 함께라면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난 심정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녀로부터 내가 특별한 존재임을 인정받았다.
사실 그녈 만나기 전까지 자살생각을 수도 없이했었다. 나의 상상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부셔져버린 나의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나타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옥이라도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우리 뛰어내려볼래?'
그녀와 손을 맞잡았다.
심호흡을 했다. 난간 앞에 서자 학교는 생각보다 높은 건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지 말자.
'하나 둘 셋'
하는 신호와 함께 그녀와 뛰어내렸다.
어?
왜 그녀는 하늘에 떠있는걸까?
왜 그동안 아이들은, 그리고 선생님조차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거지?
아.
퍽.
그렇게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