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흑역사
돈이 음스므로 음슴체...
1살-4살,
얼굴도 기억안나는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음.
5살-6살,
첫번째 새어머니에게 한글을 배움.
7살-9살,
초등학교 입학 후 할머니와 살게 됨. 할머니를 도와 산나물 뜯고 빈병 팔고
생밤 까고 매주 만들고 똥과자를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함.
10살-11살,
친어머니가 다시 찾아옴. 1년간 같이 살다가 다시 집을 나감.
일년간의 기억은 두들겨 맞은 기억뿐.
할머니와 사이가 되게 안좋았던걸로 기억함.
맞은게 트라우마가 된것인지는 몰라도 역시 얼굴은 기억이 안남.
12살,
두번째 새어머니가 여동생을 데리고 옴.
이때는 나름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음.
13살,
할머니댁에 다시 옴. 초등학교를 졸업 함.
14살,
세번째 새어머니와 비로소 단란한 가정을 갖게 됨.
15살-16살,
할머니가 중풍으로 돌아가심. 처음으로 슬퍼서 울었던 것 같음.
17살-19살,
공부를 못해서 울산에서 경주까지 두시간 거리를 통학함.
20살-21살
당시 16년 지기와 차비와 한달치 방세만 들고 무작정 상경함.
청량리 근처 제기동에 보증금이 없는 단칸방을 구함.
첫번째 죽을 고비를 넘김.
돈이 떨어지자 주인집 김치와 고추장으로 허기를 때움.
퐁퐁이 들어간 라면을 버리기 아까워 그냥 다 먹음.
오뎅 하나를 사먹고 배채울려고 오뎅국물을 십여잔 먹다가 ;겨남.
새벽에 우유배달부 뒤를 미행함.
조폭들이 운영하는 불법대출 찌라시 돌리는 일을 하게 됨.
같이 일하던 여자애가 굶주린 나를 보더니 측은한 표정으로 빵을 사줌.
새벽부터 저녁늦게까지 강북일대를 걸어다니며 차에 찌라시를 꽂다가
도저히 걸을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느껴 집에 기다시피 들어감.
강남 롯데칠성 사이다 공장에서 재활용 빈병 갈려내는 일을 이주동안 하게 됨.
22살,
도저히 일자리를 못구하다가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무슨일이든 다 하
겠다며 무작정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애원함.
현실적 한계를 깨닫다가 우여곡절 끝에 교차로를 통해 연락된
광나루 마창수산 홀서빙으로 취직함.
숙식이 가능해서 당장 짐을 싸들고 횟집으로 감.
22살(후반)
전국매출 3위권 안에 들던 광나루 마창수산.
한시간 이상씩 줄을 서서 먹는 식당을 처음 봄.
하루 평균 500개 이상의 회와 탕을 나르고 상을 치우니
발이 부어 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을 느낌.
어린나이에 삶이 너무 힘들어 잘못된 결심을 하게 됨.
천호대교에서 뛰어 내림.
죽기는 싫었던지 헤엄쳐나옴.
23살,
같은 서빙일을 하던 이혼녀와 사랑에 빠짐. 아버지의 귀에 들어감.
사촌형에 의해 다시 울산으로 끌려내려감.
두 달 뒤 비오는날 저녁 다시 차비만 들고 몰래 그녀가 있는
인천으로 야반도주를 함.
인천 계산동 마창수산에 취직함.
나이가 열살은 많던 지배인의 친구와 새벽에 술을 먹다가 칼부림나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음.
한달 뒤 마창을 그만두고 그녀의 소개로 부천시청 앞에 있는
청해수산에 취직하게 됨.
23살(후반)
청해수산에서 숙식을 하며 주방일을 배움.
대형 식당 주방은 마치 금형품을 생산해내는 공장과도 같음.
당시 막내였던 나는 그곳 형들과 함께 음식을 찍어내는 기계나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음.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포커판에 휩쓸리게 됨.
힘든 주방일을 마치고 저녁엔 매일 같이 포커를 침.
밤새 포커를 치고 다음날 은행문이 열리면 딴돈을 바로 저금하고
아니면 홀 서빙하던 친구들에게 한턱 쏘고 했음.
낮에는 요리를 저녁엔 도박을,
아무튼 나름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시기였음.
그리고 군대 문제로 횟집을 그만두게 됨.
24살,
CCTV 전문업체인 병역특례업체에 취직함.
작은 방 하나에 3명씩 자는 기숙사 생활을 함.
선배가 여자친구를 데려 오는 날에는 막내와 나는 거실겸 주방인 곳에서 새우잠을 잠.
하루는 내친구들이 놀러를 왔는데 물건이 없어졌었음.
선배(당시 내 사수)가 내 친구를 의심하는 이유로 그 선배와 UFC를 찍음.
다음날 둘 다 눈탱이밤탱이가 되어서 출근함.
그 후 선배와 급 친해짐.
25살,
훈련소를 다녀옴.
천리행군때 밤하늘 빛나는 별들을 보며 철학적 사색에 빠짐.
저 별들 중 우리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신기해 하는 생명체들이
분명 존재하겠지? 라는...
그리고 인류, 더나아가 지구와 우주에 대한 존재의 이유,
여긴 어디이며 우린 누구이며 우린 어디로 가는가, 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정신을 빼앗김.
그 뒤 천문학과 지구과학, 철학 서적들에 대한 갈증이 점점 더 증폭되어
독서에 취미를 갖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됨.
내가 훈련소에서 얻은 유일한 것이었음.
이 이전까지 내가 읽은 책이라곤 무협지와 만화책 밖엔 없었음.
그리고 퇴소 후 책들을 모으기 시작함. 철학, 천문학, 종교, 각종 과학서
적들, SF 소설, 등 수백 권을 구입하여 읽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서적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내가
점차 유신론자로 바뀌게 됨.
다만 나의 유신론은 종교계의 유신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
굳이 언급하자면 아인슈타인의 자연신론, 이신론과 같은 부류였음.
이건 믿음이라기 보단 오히려 호기심에 가까운 것임.
내가 믿는 것은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인격신이 아닌
우주넘어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그 무엇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었음.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라는 것 정도의 믿음임.
아무튼 이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한 관점에서의 유신론을 믿고는 있음.
그 알 수 없는 존재를 신이라고 칭할 뿐임.
26살-28살,
두 번째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게 됨.
노래방 도우미였다는 것을 동거 후 알게 됨.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함.
그 애가 떠난 뒤 스트레스로 화농성 성인 여드름이 올라옴.
두번 째 죽을 고비를 넘김.
얼굴 전체를 덮은 화농성 여드름으로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로 고생함.
소주 한병을 원샷하고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함.
수면제 한주먹을 먹고 잤는데 다음날 멀쩡히 일어남.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짬뽕으로 해장함.
다시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박피 수술을 세차례 함.
한여름에 반년가까이 마스크를 끼며 회사생활을 함.
반년 동안 정말 없는 사람처럼 죽은듯이 지냄.
새로운 인생을 위해 여러차례 성형 수술을 하게 됨.
1년 간 수술비용을 갚기 위해 카드값만 죽어라고 매꿈.
그 뒤로도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여드름은 조금씩 올라오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정도는 감사히 여기고 웃어 넘김.
그걸 아는가. 여드름에 의해 생기는 스트레스 또한
또 다른 여드름을 불러오는 것.
아예 생각을 안하는 것 또한 치료로써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
물론 말처럼 쉽진 않지만 내가 느낀 것 중 하나가 무슨 일이든 마음을 비우면 편해진다는 것임.
29살,
대학이 가고 싶어짐.
전공은 철학과나 천문학과로 가고 싶었으나 회사를 다녀야 하기에
야간대로는 진학이 어려울 듯하여 가까운 부천대 전자과로 다니게 됨.
지금도 생각하는게 나중에 내가 나이가 더 들고
삶에 어느정도 여유를 찾게 되면 천문학과는 꼭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있음.
부천대 전자과 졸업작품으로
당시 읽었던 MIT공대생들의 카지노 죽이기라는 소설과
영화21를 모티프로 블랙잭 카드 카운팅 기계를 만듦.
도박에 IT를 적용하였음.
프로그램은 내 실력으론 어림 없었기에 회사 동료들에게 부탁하여 완성함.
초기 기획엔 RF ID 카드로 트럼프의 숫자들을
인식하게 하려 하였으나 RF ID 카드가 너무 두꺼운 관계로 좌절하게 됨.
52장의 뒷면에 다 부착하면 그 두께가 어마어마함.
좌절에 빠져 있던 어느날 새벽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 갔다가 아이디어를 얻게 됨.
편의점 알바가 스캐너에 바코드를 찍는 모습을 보고 유레카를 외침.
다음날 바로 용산에 있는 바코드 집과 스캐너 집을 다 뒤져
원하던 자재들을 다 모음.
그리고 po완성wer.
블랙잭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카드 카운팅은 카지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
내가 만든 기계는 그런 카드 카운팅을 알릴 수 있는 홍보용 기계였음.
상용화 시키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임.
아무튼 완성 후 졸업 작품 전시회때 나름 재미있게 즐겼음.
특히 호텔경영학과 애들과 비서과 애들이 거의 매일 죽치고 겜을 즐기다 갔음.
전시회 기간 중 하루는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중년 남성분이 겜을 하러 왔었음.
내가 딜러를 봤었는데 카운팅 기계를 안보고 게임을 하더니
한 시간만에 시작했던 칩의 스무배 가까이 따더니 재미있네요.
딱 한마디 하고 쿨하게 사라졌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재야에 있는 카운팅 고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듦.
30살,
무언가 쓰고 싶어졌음.
어느날 꾸었던 꿈을 기록해 두었다가 그것을 플롯으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함.
스케일을 너무 크게 잡은 탓에 자료 수집에만 6개월이 걸림.
각종 인터넷 종교 사이트와 종교, 신화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구입함.
인터넷 텍스트 파일만 수백개, 신화 서적만 수십 권을
구입하여 그것들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이어나감.
그리고 그 무렵 첫 번째 스승을 만나게 됨.
인터넷 종교, 신화 텍스트를 검색하던 도중 한 카페를 알게 됨.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그곳의 카페장이었는데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던 분으로 정치권 여러 인사들과 격동의 80년대에 같은 아픔을 겪어 온 분이셨음.
책을 낸 바 있는 작가이자 소설가 김영하씨의 선배,
소설가 마광수씨의 애제자,
kbs tv시리즈 무지개요정 통통의 시나리오 작가였음.
아무튼 그분이 운영하던 카페에 가입을 하여 1년 반동안 내 장편,
단편소설들을 연재하게 됨.
내 장편소설의 기본적인 베이스가 기독교 중심이기는 하나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매우 불편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그 카페에 있던 개신교 신도들과 매일 밤 댓글 싸움을 펼쳤음.
수백개에 달하는 장문의 댓글들로 매일 토론과 비방, 비판, 비평전을 펼쳤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나름 쌓였었음.
헌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콜로세움, 병림픽들이 내공을 쌓는데에
도움을 준 듯도 함.
그 어떤 병신같은 경험도 피가되고 살이 되는 것 같음.
31살,
두 번째 스승을 만남.
tv 특촬물 시리즈 백터맨을 제작하신 최성덕 감독님을 만나게 됨.
사실 그 카페 회원이셨음.
내가 올리던 소설들을 읽고 같이 3번째 작품의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오심.
두 번째 작품 맥스맨은 빛을 보지 못했기에...,
아무튼 감독님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했음.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 시나리오를 써서 잠들기 전에 감독님께 메일을 보내면
감독님이 밤새 피드백을 해서 다음날 아침에 내게 보내주는 방식으로 몇 달 간 작업을 함.
나름 괜찮은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었음.
헌데 제작비 관계로 무산이 됨. 당시에는 힘들었는 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얻은 것도 많았던 시기였음.
32살,
학자금 대출을 2년동안 다 갚음. 뿌듯했음.
세 번째 스승을 만남.
소설가 김진명 선생님을 만나 작품 관련하여 피드백을 받음.
개인적으로 만든 종이책 초판본을 선생님께 전달해 드림.
지금쯤 그분 서재 어딘가에 꽂혀서 먼지만 쌓여 가겠지만 그분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만족함.
네 번째 스승을 만남.
90년대 1집 가수 정순교씨를 만나 그분이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보컬 코치를 받음.
생일날 bar에서 술 먹고 계단에서 굴러 코뼈가 부러짐.
그 무렵 10년간 몸담았던 회사가 상장폐지 당함.
다행이 더 나은 조건으로 경쟁사에 입사하게 됨.
33살,
창업에 눈을 뜸.
회사를 그만두고 내 코뼈가 부러졌었던 그 bar를 인수하게 됨.
현재 인수 후 6개월째 영업중임.
돈은 둘째 치더라도 대표로써 겪게 되는 많은 일들과 인간관계들을 배우고 있음.
인간은 죽어서 글을 남긴다고 생각함.
죽기 전까지 나의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싶음.
마무리는 역시 오유인 답게 A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