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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비잔티움 제국사 (10) 나도 견장 한번 차보고 싶어!!
게시물ID : history_7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0
조회수 : 4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18 17:04:39

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음,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의 병력 확대 및 군제 개편에 대한 것입니다. 과거의 레기오나리들은 코메타텐세스라 칭해져서 천명 단위의 소부대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들은 거점 대도시에 주둔하면서 종심 방어 역할 및 국경 방어 부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카라칼라의 조치나 갈리에누스의 조치하고도 별로 달라진 내용은 없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조치는 이걸 완전히 체계화시켜서 세분화시킨 거죠. -

바바리언 확장팩 하다보면 나오는 그게 바로 이겁니다. 여담이지만 콤네누스 가문의 시조가 이탈리아 출신의 코메타텐세스였다는데 (아마도 북이탈리아였을 겁니다.) 이 양반이 그거를 그대로 자기 성으로 써서 콤네누스라 붙였고, 제국 동부 지역으로 이주해서 가문을 이어갔다.... 합니다. 물론 콤네누스 왕조는 그리스계로 보는 게 옳지만, 여하튼 선조가 이탈리아계였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일종의 네타같지만 아주 나중에 나올 테마와 타그마타는 코메타텐세스의 직계 후예들입니다.

반면 변경 주민변경 수비군은 리미타네이가 되었는데, 모 작가 분은 과거의 레기오나리들이 한심한 리미타네이가 되었네 어쩌네 하지만, 사실 레기오나리들이 된 건 코메타텐세스지 리미타네이가 아닙니다.

카라칼라 개혁으로 레기오나리와 옥질리아가 레기오나리 하나로 통합되었다가, 레기오나리들은 코메타텐세스라고 해서 과거의 레기오나리 역할을 국경 방어선 훨씬 뒤로 물러나서 수행하고, 리미타네이가 새로 생겨서 과거의 옥질리아 노릇을 한 거죠.

그리고, 이번에도 나올 모 작가 이야기.
물론 리미타네이 자체의 전투력은 그의 말대로 옥질리아보다 많이 허접했던 게 사실이지만....정말 모 작가 뉘앙스대로 적만 나타나면 도망가기 바쁜 아르바이트 병사였다면 로마 제국은 이미 4~5세기에 망해버렸을 겁니다. 그와는 달리 그들은 그냥 그 자체로 변경 방어의 일차를 담당했고, 그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까짓 것들 없었어도 되지 않냐고 하면 그건 상당히 미안한 얘기가 됩니다. 아주 나중 얘기지만 아랍의 대돌진 시기 이후에 그토록 오래간 동로마 제국이 아랍에게 쥐어터졌던 것은 저 리미타네이 병력이 순식간에 모든 국경에서 홀랑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고, 이후에도 아주 오래간 리미타네이 노릇을 할 병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GP, GOP가 실상은 그 리미타네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_- 여담이지만 한국 리미타네이들의 가격 대비 전투력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의 리미타네이는 물론이요 저 옥질리아보다도 훨씬 더 높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안다면 기절초풍해서 한국 리미타네이 제도를 창안한 자에게 절을 수십번 할거라 생각합니다.

피복값, 음식값 국가에서 다대준다고 할 분 계신 거 같은데, 그건 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됩니다. 한국 리미타네이들은 현물세라 칭해지는 공짜 노가다도 상시적으로 뛰고 있기 때문에 그런건 아예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로마 리미타네이들을 한국 리미타네이처럼 부려먹었으면 반란을 수십번 일으켜도 모자랐을 거라 생각됩니다. -_-)

요걸 콘스탄티누스가 한 번 더 손봐주고 그 아들 콘스탄티우스도 한 번 더 손봐주는 데 이건 나중에....하도록 합니다.

그리고..병력 수. 모 작가분이 로마군이 60만으로까지 팽창했다고 하시는데, 그렇진 않고 40~45만으로 추정됩니다.

(.....저도 이렇게까지인 줄은 몰랐는데, 로마인 이야기는 12권부터 줄줄 새는 구멍이 많더군요. 늘상 인용하는 “후기 로마사의 전문가들” 다 어디 갔는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_-)

그나마도 디오클레티아누스때 늘어난 부분은 생각보다 얼마 안 됩니다. 막시미아누스와 콘스탄티우스가 담당한 부분의 군대만 두배로 팽창하였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갈레리우스의 담당 구역은 프로부스-카루스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북아프리카에서의 군대 수요가 늘어나고 서부 국경 압박이 훨씬 심해서,
아프리카에 코메타텐세스를 박아두고 리미타네이들을 창설하고, 서부 3대 속주에 각기 리미타네이를 대폭 확충해서 그렇게 늘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둡니다.

그리고. 일명 콜로누스 제도.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중과세가 심해져서 농민들이 죄다 부호들 밑에 달려가서 콜로누스 제도가 완료되었다......어쩌구 하는 언급이 모처에서 곳곳이 보이는데, 말하자면 이런 현상이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완료된 것은 아닙니다.

이건 디오클레티아누스 때부터 테오도시우스 까지 무려 백년을 넘게 역사 발전 하면서 이뤄진 사항이고 그 중간에도 우여곡절이 많은데 이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한큐에 죄다 했어요, 라는 서술들은 관점이고 뭐고를 떠나, 틀렸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아라비아와 인도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보면 제국의 경제 활동이 군인 황제 때 바닥쳤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때에 와서 다시 슬슬 고개를 드는 것이 입증됩니다. 제국에서의 건축 활동이 3세기와 4세기에 다시 대단위로 이뤄지고 보수도 활발해진 것이 유럽 각지유적에서 발굴되는 데, 서구 학자들도 이걸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는 것을 (구태여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모 작가만 애써서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론.....분명 디오클레티아누스 때의 경제가 불황에다가 그놈의 계획 경제 삽질 때문에 서민 생활고가 극심했지만, 모 작가가 말하는 데로 차라리 그때 망해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하나 있습니다. 이런 반등은 붕괴 위기를 벗어난 제국이 철혈 정책 위주로 갈 경우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고, 이런 반등 뒤에 다가오는 파국을 막지 못하면 그땐 정말로 제국이 망한다는 것을. )

여하튼 다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재위 20년만에 퇴위했는데, 모 작가 분은 뭐 치밀한 계산 어쩌구.....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놈의 모 작가 얘기, 지겹도록 나옵니다. 저도 지겹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_- 이유야 뭐.....;;;)

그 즈음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나이도 많고 건강도 원래 안 좋은 탓도 있어서, 자주 쓰러지거나 병석에 앓아눕는 등의 사례가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의 선택은, 그동안 2인자만 해온 막시미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 세니오르, 선임 아우구스투스를 물려주는 건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부 카이사르 갈레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가 되고, 동부에서 새로운 카이사르가 하나 생기게 되는데, 이러면 갈레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인데 나이가 막시미아누스와 같은 콘스탄티우스만 여전히 카이사르가 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순식간에 콘스탄티우스가 갈레리우스보다 서열이 밑으로 가버리게 되는 건데 이러면 분란이 발생할 소지는 100%.
콘스탄티우스 자체는 상당히 인격이 너그럽고 후해서, 네 명의 황제들 중 가장 착한 사람이었다지만, 이렇게 된다면 과연..........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그래서, 결단을 내립니다. 선임 황제 자리는 그간 고생한 콘스탄티우스에게 주고, 실질적인 리더는 갈레리우스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막시미아누스가 필연적으로 공동 퇴위해야했습니다.

(군대에서도 분대장과 부분대장 중, 부분대장 짬이 분대장하고 1달 차이면 부분대장은 분대장을 못하고 그 다음 서열을 분대장 시킵니다. 4두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_- )

막시미아누스는 솔직히 디오클레티아누스 다음에 견장을 찰 생각이 있었지만 (.....나도 한번 선임 아우구스투스 해보고 싶어!!!) 사돈이자 (막시미아누스 아들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외손녀인 갈레리우스의 딸과 결혼했으니까) 오랜 친구기도 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간청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두 아우구스투스가 공동 퇴위하고,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가 아우구스투스로 공동 승진했으며 일단 선임 아우구스투스 자리는 콘스탄티우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대신 콘스탄티우스 자체가 야심이 별로 없는 호인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 주도권은 갈레리우스에게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비어있는 카이사르 자리인데.... 이 단계에서 말썽이 빚어졌으며, 막시미아누스는 여전히 끝내 해보지 못한 선임 아우구스투스 자리에 미련이 있었습니다.

한편.....오랫동안 S.P.Q.R.을 지켜온 보루, 마지막 레기오나리가 이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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