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지났지만,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서 뒤늦게나마 써봅니다.
일단, 저는 얼마 전 후보 때매 복장 터지는 수행원 이야기로 베오베갔던, 영등포(갑) 정의당 정재민 후보 선거운동원입니다.
엊그제 총선 때 저는 '참관인'이란 걸 했습니다.
제가 참관인을 한 곳은 당산2동 5투표소, 당산역 바로 옆 삼성래미안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오후 참관, 12~6시 참관을 했습니다.
이 참관인이란 걸 하면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돈이 나옵니다.
선거사무에 관련된 일을 하는거니, 그에 따른 수당이 나오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금액은 6시간에 4만원입니다.
식비도 나옵니다.
한 끼당 6,000원이 나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12시에 교대로 참관인 투입을 합니다.
13시가 좀 넘자 점심식사를 하자며 교대로 밥먹으러 갑니다.
식권을 준다고 하고 지정된 식당(여기의 경우 김밥천국)에서만 사용가능하며 6,000원 이내로만 가능하다 합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16시쯤 되니까 위에서 얘기한 수당 4만원을 주고 사인을 하라고 합니다.
사인을 하나 더 하랍니다.식대 수령 사인입니다.
12,000원이라고 적혀있고 거기다 사인을 하랩니다.
어? 난 6,000원짜리 식권 한 장만 받았는데?
각 후보당 오전, 오후 두 명이니까 합해서 내가 사인을 하나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사인을 했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현재 참관인은 새누리2, 더민주1, 정의당(나)1 총 4명인데, 식대수령 사인 명부는 분명 6~7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가 12,000원.
다른 참관인들에게 물어도 다들 오전오후팀 합해서 12,000원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다시 가서 물었습니다.
12,000원이 모두 내꺼가 맞고, 점심식사, 저녁식사 두 끼가 제공되는거라 합니다.
끝나고 저녁식사 '원하시면' 식권을 또 드리겠다고. 하지만 식권 대신 현금을 드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어려보이는 막내 동사무소 직원(나중에 들은바로 작년에 공채로 들어온 직원이라고 합니다)에게 따져물어봤자 권한도 책임도 없겠다 싶어 일단 물러섭니다.
상황을 좀 더 파악해봅니다.
정의당 영등포 당원들 단체 채팅창이 있습니다.
각 투표소에 나가있는 참관인들은 거의 전부가 당원들이니 이 단체창에서 현황파악이 시작됩니다.
몇 군데가 식권을 받았다고 하고, 대부분이 그냥 현금으로 52,000원을 받고 식당도 밥값도 지정없이 알아서 나가서 먹고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동사무소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물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저녁식사 식권...
먹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6,000원의 행방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어떻게건 이 6,000원을 받아내야 겠습니다.
참관인 4명. 당산2동 투표소 7개. 오전 오후 2팀. 6,000원X4X7X2=어림잡아 30만원이 넘는 돈, 선거 잘 치르라고 국가에서 각 동사무소로 내린 국민의 세금이 눈먼 돈이 되면 안되니까.
일단 옆에 있는 다른 당 참관인들을 선동합니다.
다른 투표소는 52,000원을 받았대더라. 우리는 저녁식사를 안하면 6,000원을 손해보는거다. 그랬더니
그냥 '아~ 그게 좋으네.. 동네마다 다른가보다~~'정도의 반응...
비싼 아파트 사는 분들이라 그런지 6,000원 정도에 큰 감흥이 없으신가 봅니다.
다시 당원 단체창에 선동 실패 보고를 하고 다른 투표소에서 먼저 선동을 해보라고 찔러봅니다.
아니나다를까. 식권을 받은 다른 한 투표소에서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당 참관인분들이 화가 많이 나셔서 막 따지고, 들고 일어났댑니다.
잠시 후 현금으로 6,000원을 받아냈다는 승전보(!)가 들려옵니다.
원래 이런 부정 적발하고 싸우고 하는 거 정의당이 전공입니다.
투표소에서도 이래도 되나... 하던 당원들이 성공사례를 보자 불을 토하기 시작합니다.
식권을 받았던 다른 투표소들에서도 줄줄이 '식대투쟁 승리했습니다!'라며 6,000원을 받아냈다는 승리 보고가 울려퍼집니다.
다른 당원들의 열렬한 응원도 줄을 잇습니다.
이 사람들, 이런 데에는 무척 신나 합니다ㅋㅋㅋ
시간은 어느새 17시 50분, 투표 종료까지 10분이 남았습니다..
기쁜 한편 마음이 착찹해집니다.
내가 처음 시작한 싸움인데 막상 내가 있는 투표소에서는 승리하지 못했구나...
여기는 6,000원 정도는 우습게 아는 곳이라 대중을 선동할 수가 없고, 대중이 주체가 되어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랴. 그냥 선본으로 넘어갈 준비나 하자...
그래도 꺼내놓은 말이 있으니 상황보고는 하는 것이 도리일지니.
다른 곳에서 이러이러하여 현금으로 받아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어라. 이 분들 눈빛이 달라집니다.
승리의 감동을 아는 자만이 승리를 위해서 싸울 수 있다고 합니다.
대중에게는 되는 싸움을 알아채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어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싸움에 뛰어든다고 합니다.
이기는 싸움에는 폭넓은 대중이 결합하게 됩니다.
승리가 확실한 싸움에는 이 부자동네에서도 투쟁이 시작됩니다.
아까 그 동사무소 막내직원이 두 번 호출되고, 동사무소 사무주임에게 세 번 전화가 오간 후, 일단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바로 확답은 못드리겠지만 빠르게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냅니다.
불과 10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문자가 날아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송금해주겠다는.
그리고 또 그 다음날 6,000원이 입금됐습니다.
이제야 기쁜 마음으로 속 시원하게 단체 창에 글을 올립니다.
당2 5투도 식대 투쟁 승리하였습니다!!!
당산2동의 다른 투표소는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투표소 중 얼마나 많은 곳에서 식권으로 처리가 되고,
얼마나 많은 금액이 눈먼 돈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번 총선에서의 작은 승리는 그 나름으로 갈무리하고,
당장 내년 대선부터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투표참관 하시는 분들은 이 이야기 잘 기억해두셨다가...
각종 부정선거의 정황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한 편,
식대도 잘 관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