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링크 글의 댓글에서 realgura님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개인적으로 보자면 '중국인 식인설'과 '인육 캡슐'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이는 인간을 '식료품'으로 보느냐 '약재'로 보느냐의 단순한 차이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있어 사회에서 의식적으로 가치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생각해야될 부분 자체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 의학과 사회등이 발달하면서 의식이 변하면서 그 차이는 극히 좁혀졌지만 여전히 태반 등은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인체가 약재로서 크게 각광을 받은것은 가장 크게 한의학이 발전했던 한국의 한의학이 중국이나 일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된 계기인 사상의학의 발견이 이루어진 조선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면 동의보감에 있어 태반의 여러 가지 약효가 나오는데. 우선 남성의 성 기능 장애, 여성의 불임 치료에 태반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현대 약학에서도 태반의 성분이 성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런 기록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동의보감은 더 나아가 결핵, 천식과 같은 질환이나 혹은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정한 심신을 다스리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외에도 각종 털이나 손 발톱등이 약재로서 각광을 받았으나 인육 만큼은 대개의 조선의 의학서적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조선에서 인육이 의약재로서 각광을 받은것은 국가와 민간 의학의 영향이 크다.
가령 명종 21년 2월 29일의 기사를 보면
사서(士庶)들이 주색을 즐기다 음창(陰瘡)에 걸린 이들이 많았다. 사람의 쓸개로 치료하면 그 병이 즉시 낫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통을 받던 이들이 많은 재물로 사람을 사서 죽이고 그 쓸개를 취했다. 종루, 보제원, 홍제원 등에는 걸인들이 많이 모였는데 4~5년 새 이들이 다 사라졌다. 나중에 이들은 평민에게까지 손을 뻗쳐 아이를 잃은 자가 많았다.
또 선조 09년 6월26일 기사에는
전교하였다. '배를 갈라 사람을 죽인 자를 체포하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공사로 만들게 하라.' 하였는데, 이는 경연관의 아룀에 의한 것이다.
이 때 경외의 사람들이 인육(人肉, 사람의 고기)과 사람의 간담(肝膽, 간과 쓸개)을.. 창질(瘡疾, 매독)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소아(小兒)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괴함은 물론이고.. 비록 장성한 남녀라도 혼자 길을 가는 경우에는 겁략하여 모두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내었는데, 이는 그 쓸개를 팔면 많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무에 묶여 배를 갈리운 자가 산골짝에 잇달아 있으므로.. 나무꾼들의 나무를 하러 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법을 만들어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게 한 것이다.
이 뿐인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열녀, 열부, 효녀, 효자들의 사례를 들어본다면 손가락을 잘라 먹이거나 말려 가루를 내어먹이고, 죽은 자의 인육을 먹이거나 자신의 인육을 직접 조리해 먹이거나 약재로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김택민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역대 역사서를 조사해 본 결과 당나라 이전에는 이렇듯 의료를 목적으로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 현종 때의 명의인 진장기(陳藏器)가 쓴 본초습유(本草拾遺)가 그 시작인데 이 서책에는 노쇠 및 허약 등의 증세에 인육이 약재로서 좋다고 했으며 신당서 효의전에는 진장기가 본초습유를 저술했는데 ‘인육은 허약 증세에 좋다’고 했다. 이때부터 민간에선 부모가 노쇠해서 병들면 넓적다리 살을 베어 드리는 사람이 많았다” 라고 적혀있다.
그와 동시에 효의전에는 처음으로 부모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기의 살을 베어낸 효자 세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후부터 부모나 시부모를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드리는 효자·효녀 이야기는 당·송 이후의 동북아시아의 정사와 야사,지방지에서 흔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정부에서도 부모를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은 최상의 효행으로 환영되고 장려됐다고 보는편이 옳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에서 이에 대하여 효자 효녀 열부 열녀임을 증명하는 정표를 세워준 경우 즉 국가에서 묵인하는 것을 넘어 상을 내린것도 부지기수다. 이에 따라 지나친 효행으로 인해 폐혜가 늘면서 이를 금지하는 조칙도 간혹 나오긴 했지만 사실상 무명무실했다.
이러한 일들에 있어 기아나 전쟁 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윤리적으로 지탄받을 일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거리가 되는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이러한 것의 연장선이라 볼수 있는 인육캡슐은 우리 사회에 더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동시에 수많은 카더라와 공자 식인설 같은 비약적인 이야기까지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약품으로 발전해온 약재로서의 '인육캡슐'은 그 제조자들이야 어떻든 '중국인 식인설'에서 언급되어지며 묘사되어지는 무분별한 식인 풍습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간단히 보면 Google을 두드려 중국인 식인설을 찾아보자, 수많은 블로그와 사이트 들이 같은 내용을 수없이 담고 있는것이 보일것이다.
그 글들의 내용은 대부분의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식료품'으로서의 '인육'으로 이 핵심적인 주제를 두고 수없는 사서와 미확인된 증언들로 역사성과 접근성등의 포장을 하고 있는게 중국인 식인설인것이다.
즉 실제의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몰가치적이며 비인륜적인 주제의 식도락을 위한 '식료품'으로서의 인육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고심하게되는 '의학'에 따른 인육과는 분명하게 다른것이며 실제 효능이나 제작자를 떠나 이러한 의학적인 갈래에서 타고나온 '인육캡슐'은 '중국인 식인설'에서 말하는 일상적인 식도락을 위한 식료품으로서의 '인육'과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볼수가 있겠다.
덧붙여 끝으로 정리해보자면 '중국인 식인설'은 이슈로서의 가치가 크다. 앞서 다른 글에서 설명했듯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거나 혹은 곡해한 부분이 대부분으로 '현실에 발을 걸쳐둔 별개의 가상의 이야기' 라고도 볼수가 있다.
그러나 '인육캡슐'은 본 글에서 언급해온 의약품으로서의 약재로서의 역사성에 비추어 볼수가 있으므로 이 쪽은 현실이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인육'이라는 큰 카테고리는 같지만 이슈로의 가치에 충실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허구적인 이야기 속의 식도락만을 위한 인육과 약재로서의 역사성을 가진 '인육캡슐' 이 둘을 함께 언급하거나 같은 선상에서 언급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무언가'는 없다고 할수 있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원재료'만 같을 뿐인 '식료품'과 '약재' 이 둘을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할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