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정성공에 대한 글이 올라와서 갑자기 생각나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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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대만 정씨 왕조의 정경에 대해 강희제가 항복을 권유하고,
정씨 정권 역시 항복에 대해 상당히 고려하게 됩니다.
문제는 항복 후 정씨 왕조가 받을 대우에 대해서인데,
1. 정씨 왕조는 대만 지역에 거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나라와 대만 모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만약 항복했다고 정씨들을 베이징으로 끌고 가면 절대로 항복을 안할테니...
2. 정씨 왕조가 대만에서 세습해서 작위를 이어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3. 변발하고 옷도 청나라 복식으로 입고 투항해라
문제는 이 부분입니다.
그냥 생각하면 머리 자르고 옷 입는 정도인데, 오히려 별거 아니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이야 말로, 항복한 후 대만이 "청나라의 일부" 인가,
아니면 그저 조공 책봉 관계에 들어와서 공납을 바치는 "자율적인 주변국" 인가 차이가 납니다.
청나라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보장을 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번봉을 받아들여 신하로 칭하면 자연히 그 제도와 복장을 다르게 할 수 없다." 는 겁니다.
반면에 정경은 전혀 이 부분을 따를 의지가 없었습니다.
1669년 천주 지역에서 청나라와 대만에서 보낸 인물들이 이 문제로 협상을 벌이지만,
대만 쪽에서 나온 말은
"조선의 사례에 비추어 변발을 하지 않고 대만을 세습하여 신하로 칭하고, 공납을 바치면 그만이다."
이에 대한 청나라의 반응은
"제도를 준수하여 변발을 하고 투항하면 작위와 봉록을 우대하고 아낌없이 상을 내릴 것이다. 대만 지역에 거주함도 허가한다. 그러나 조선과 비교하여 변발을 하지 않고, 다만 공납을 바치고 투항하겠다는 것은 절대로 윤허할 수 없다. 번봉하여 대만을 세습함은 허가하나, 번봉을 받아들여 신하로 칭하면 자연히 그 제도와 복장을 다르게 할 수 없다."
원문은 明清史料·丁編에 나오는 부분이고,
제가 옮겨 적은 번역은 강희제 평전, 민음사, pp 249 장자오청 항저우 대학 역사학과 교수의 책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고려의 경우가 언급이 됩니다.
"고려의 경우처럼, 만일 변발하고 투항해야 한다면 나는 죽어도 동의하지 않겠다."
고려가 변발하고 투항했던 시기라면, 몽골 원 강점기 시절입니다.
이후 삼번의 난이 실패로 끝난 시점에서도 대만과 청나라의 협상은 계속 이루어지지만,
결국 (표면적으로는)이 부분 때문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엇나가게 됩니다.
하여 이런 부분을 보면, 원간섭기의 고려와 이후 조선의 위상에 대해 지켜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당시 고려 왕들이 원나라 황제의 사위 되는 신분이니 위상 자체는 낮지 않겠지만,
이런 위상이 "몽골의 일부" 로서의 위상이라,
"개별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시 청나라 쪽에서, 대만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맞선 논리는
"애시당초 대만인들의 대다수가 복건 등에서 넘어온 중국인들 아니냐. 조선과는 전혀 다른 경우다."
라며 "대만인들이 본래 중국인" 임을 강조하는데, 즉 이런 상황에서 변발을 하고 청나라 옷을 입으면,
대만은 곧 중국의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대만이 변발을 하지 않고, 옷도 다르게 입고, 다만 그저 공납만 바칠 뿐이면,
독립적인 속국으로서 중국과는 확실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당시 대만인들이 보던 고려와 조선의 차이가 이런 면이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historygall/31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