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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은인이지만 묻힐 수 밖에 없는 운명.txt
게시물ID : history_72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algura
추천 : 17
조회수 : 1713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1/17 02:13:48


이거 없으면 고기랑은 바이바이죠.  쌀밥도 제대로 못먹을겁니다. 






Fritz Haber, (1868년 12월 9일 ~ 1934년 1월 29일)
깨알같은 안경코
독일의 천재 과학자.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지만 또 다시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업적(?)을 이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뭔 일을 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하버-보슈법의 그 하버라는 것도 모르는데다가 왜 이 사람의 발명이 중요한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의 발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업적을 알기 위에 그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 당시는 아직 맬서스의 인구론에 묶여 있던 시기로 인간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단순산술적으로 증가한다라는 암초에 걸려 인류가 아직 절대적 빈곤과 기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기.

이 당시 식량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난제는 바로 토지에 존재하는 질소의 양. 농작물 생육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반대로 가장 빠르게 고갈되며 이 질소를 공급하는 방법은 번개칠 때 공기중에 존재하는 질소가 번개칠 때 들어가는 것과 콩을 종종 심는 방법이 그것.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을 심거나 휴경지를 두는 방법밖에 없었지만[1]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고 이 방법으로는 한계가 생겼을 때 두 가지가 유럽을 살리게 된다.

첫번째 것은 바로 신대륙의 식물 감자. 이 식물은 18세기 유럽에 찾아온 소(小)빙하기와 함께 감자가 냉해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이 알려져 전 유럽에서 널리 기르게 되고[2]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먹여살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감자로도 급속도로 증가하는 인구를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때 신대륙에서 또 다시 낭보가 들어오니 바로 구아노 새가 싼 똥이나 알껍질들이 퇴적되어 생긴 물질이었는데 이게 질소 비료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원주민들에게서 뒤늦게 알게 되어 농업 생산량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어 맬서스의 이론은 깨진 듯 보였지만…….

구아노는 양이 한정되어 있어 공급량이 딸리기 시작하고 또 다시 사람들은 기아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 때 독일의 천재 과학자가 놀라운 사실을 발표한다.

바로 인공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해서 인공질소비료를 발명한 것! 덕분에 휴경지를 둘 필요도 없어졌으며 감자에만 의존할 필요도 없어졌고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맬서스의 이론은 용도 폐기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천재 과학자가 프리츠 하버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느껴보기 위해서는 문명5에 나온 비료 연구가 바로 이 사건이라는 것을 알면 된다. 하지만 이 문명5에서도 연구가 완료되었을 때 하버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나오는 한편. 이런 인류에 끼친 대단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과 얼굴을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으며 대학생에 와서야 하버-보슈법 하면 아는 사람들이 몇 생기는 정도이다. 그가 이렇게 안습한 인지도를 자랑하게 된 것은 이 다음에 그가 벌인 행보 때문인데…….

바로 그가 독일인이었고 하버는 심각한 애국자였다는 것.

전쟁에서 독일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는 또 다시 엄청난 발명을 하게 되니 그것은 바로 독가스.

발명하기만 하고 이런 것만 있다라고 하고 넘어갔으면 아인슈타인이 생각해낸 원자폭탄과 비슷한 거 아니냐 하겠지만 그는 그가 직접 앞장서 독가스를 개발하였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했기에 완전히 다른 케이스이다. 2번째 아내이자 같은 유대인인 샤롯테 나탄은 남편의 독가스 연구를 결사반대했으나 기어코 그의 고집을 꺽지 못했고 그녀는 절망에 빠져 자살해버렸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비인륜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질소비료에 대한 공로로 191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다.[3] 하지만 거기서도 그의 애국심은 끝나지 않고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의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바다에서 금을 찾는 방법을 찾아내지만 자신이 직접 조사한 결과 바다속에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측정한 데이타보다 더 적은 금이 들어있는 것으로 밝혀져 마진이 안 맞게 되자 포기.

하지만 나치당의 집권때 그에게 위험이 닥치게 되니……
1933년까지 카이저빌헬름 물리화학·전기화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독일 화학의 발달을 주도하였던 그는 나치(Nazi)가 유태인의 공직 추방 명령을 내리자 사임하고 케임브리지대학의 초청을 받아 영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독가스 개발을 주도한 전력이 문제가 되어 영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고, 때마침 화학자로서 이후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바이츠만(Chaim Azriel Weizmann, 1874∼1952)에게 새로 설립되는 다니엘시프연구소(Daniel Sieff Research Institute, 지금 이스라엘의 Weizmann Institute of Science)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연구소의 개소식에 참석하러 가던 도중에 스위스의 바젤(Basel)에서 사망했으며, 그 곳에 묻혔다. 

그나마 유일하게 막스 플랑크가 하버를 인정해주었지만 히틀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의 유대인의 학살에는 그가 만든 치클론 B가 쓰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친척들이 이 독가스로 학살당한다

즉, 저런 엄청난 공을 세워놓고도 전범이었기 때문에 위인전에 실릴 리도 없고 언론에서 칭찬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묻힌 케이스. 과학사를 배우면서 과학자의 도덕성에 대해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여담으로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1942년 세계여행) 

서프라이즈 2013년 1월 6일 방영분에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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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당시 거름의 성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먹는게 안 좋으니 나오는게 좋을리가 있나
[2] 아일랜드 대기근같은 사건도 있었지만.
[3] 질소 고정에 대한 성과로 보자면 당연히 받아야하겠지만 연합군 쪽도 독가스를 쓰기 시작해서 양쪽 군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다. 당시 발사한 포탄의 1/3이 가스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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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에 애국심없이 그냥 돈 신나게 벌어서 미국으로 이민가서 미국인이 되어서 돈많은 부자로  떵떵거리면서 살기만 했어도 인류의 은인으로 추앙받았겠죠. 
 감사해야 될 위인들이 정말 많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분이 참 고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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