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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bgm) 왼손에 깃든 그녀
게시물ID : humorbest_723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월색
추천 : 89
조회수 : 12111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8/03 00:57:52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8/02 20: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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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만남은 친구들과의 바보 같은 내기에서 시작되었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글자를 써서 가장 못쓴 사람이 아이스크림 쏘기.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쓰려고 노력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분명 펜과 종이의 감각은 왼손을 통해서 느껴졌지만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글자들은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나를 왼손잡이로 오해했다. 짝이 평소에 내가 오른손을 썼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거짓말쟁이가 될뻔 했다.

공짜로 먹는 아이스크림은 맛있었다. 하지만 찝찝했다.

전에도 분명 왼손으로 글자를 쓴 적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아름다운 글자는 아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이 났다.


몇년 전 나는 오컬트에 빠져있었다.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집이라면 멀리까지 찾아가기도 했고

귀신을 부르는 주문, 혼자하는 숨바꼭질, 분신사바 등등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모든 괴담들은 실험해봤다.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그 중 하나가 영혼이 깃들게 하는 문양이었다.

그 문양을 어떤 사물에 그리면, 가까이 있던 영혼이 깃들어서 소원을 이뤄주다가 마지막에 무언가를 뺏어간다는

그런 흔한 종류의 괴담이었다.

당시 나는 흥이 깨져가던터라 겁도 없이 그 문양을 내 왼손에 그렸다.

결과는 물론 실패였었다.

기억이 떠오르자 신이나기 시작했다. 정말 내 왼손에 영혼이 깃든 것이라면, 나는 그토록 원하던 귀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과 대화를 시도해봤다. 왼손에 펜을 쥐고, 입으로 그동안 궁금했던 여러 질문을 했다.

하지만 아무일도 없었다.


그녀와의 두번째 만남은 몇주후 시험시간에 이뤄졌다.

주관식 답이 아무리해도 기억나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왼손에 펜을 쥐어봤다.

나의 왼손은 예전에 보았던 그 아름다운 글씨로 답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그것과 대화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내 질문에 간단한 대답을 해주었는데, 그것이 여자였다는 것과 굉장히 공부를 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험결과는 97점. 객관식에서 하나를 틀리고 주관식은 만점을 받았다.

선생님에게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다행히 감점요인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왼손녀'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뒤로 나는 그녀와 많은 일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기 싫었던 것들은 대부분 그녀가 담당했다. 마지막에 무언가 뺏어간다는 괴담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그녀가 원해서 한 것이지 내 소원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린지 몇개월 후 나는 학생으로서 이룰수 있는 것을 거의 다 이뤘다.

한가지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녀를 가지고 싶어. 머릿 속으로 강하게 생각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왼손녀가 대답했다.

도와줄 수 있니?

'응'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넌 날 왜 도와주는 거야?

'together'

투게더. 문득 섬뜩해졌다. 어떤 의미일까? 나의 몸을 함께 공유하겠다는 것인가?

괴담에서 마지막에 가져간다는 무언가란 혹시 나의 몸이 아닐까?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건 내 소원은 아니야.

'알고 있어.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일 뿐이야. 이번 일만 도와주면 네 몸에서 나가줄게.'


왼손녀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 고백할까. 왼손만으로 그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귀신이라도 같은 여자이니 그녀를 믿기로 했다.

왼손녀가 말한대로 내가 좋아하던 그녀에게 8시에 학교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왼손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점점 어색해질때즈음 왼손에서 반응이 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왼손은 그녀의 목을 졸랐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힘이었다. 아무리 풀려고 해도 풀 수 없었다.

왼손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떨림이 점점 약해지고, 정말 그녀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 무렵

왼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쓰러졌고, 나는 황급히 도망쳤다.



그날 이후 약속대로 왼손녀는 나가주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던 그녀와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몇일뒤 그녀가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띄어쓰기만 제대로 했어도 만점일 것이라면서...


문득 고백하려고 했던 날 밤 생각이 다시났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쓰러진 그녀는 웃고 있었다.


혼나는 것을 몰래 보고있던 나를 발견하고 그녀가 다가온다.

'도와줘서 고마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to/get/her

이번 일만 도와주면 네 몸에서 나가줄게.




나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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