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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잊지 맙시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린 6월의 그날들
게시물ID : sisa_70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un2297
추천 : 10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9/06/10 00:17:27
무지 막지한 뒷북 자료 입니다. 아래 글 역시 작년 이맘때쯤 올린 글 그대로 입니다. 뒷북임에도 다시 올리는 것은, 이미 그날을 잊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20대와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을 위해 꼭 알아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귀찮아서 안보실분을 위해 6월항쟁을 좀 정리해 봅니다... 이것도 귀찮겠군요 좀 내용이 깁니다. 1. 계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모에 가담했던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군은 86년 1월 13일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 의해 불법납치됩니다. 납치이유는 집회 주도자 박종운의 거처를 캐겠다는 것... 박종철군은 수사관의 물고문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때 경찰의 어설픈 변명이 참 유명하죠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황적준은 물고문 도중 그 대학생이 질식사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황적준은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는 경찰의 협박을 뿌리치고 의사의 양심을 지킨것이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의 국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들고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2. 결정타를 날린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 박종철군 사건이후 전국민의 민주화 의지가 거센 가운데 4.13호헌 조치는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어버렸습니다. 호헌조치란 국민들이 원했던 직선제 즉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후임(노태후)에게 간선제로 정권을 넘기겠다는 의사표명이었습니다. 3. 6월항쟁의 시작과 경과 - 박종철군 고문치사와 직선제 개헌을 위해서 결국 국민들이 들고 일어섰고, 경찰과 백골단에 밀린 시위대(이때는 주로 대학생)는 명동성당에 갖혀버립니다. 이에 국민들은 또다시 분노했습니다. 명동성당 곳곳에 국민들의 응원글이 넘쳐났고 무료 도시락이 배달되었습니다. 결국 명동성당에서 버티는 시위대에 감동된 직장인들... 소위 말하는 침묵했던 넥타이부대가 나서면서 시위는 범 국민운동으로 번져 독재정권 으로써도 더이상 수습이 불가능해 집니다. *추가: 6월 항쟁을 가담했던 대학생 이한열군이 9일 시위도중 경찰에 최루탄에 맞고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사건이 또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4. 6월항쟁의 승리 6.29선언 -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더이상 버틸수 없음을 알고, 6.29 직선제 개헌을 선언합니다. 어짜피 그대로는 대통령이 될수 없었음을 알게 된것이죠. 그러나... 민정당의 대북 공포정치와 김영삼, 김대중의 야권 분열에 의해 어이없게도 정권은 다시 노태우에게 돌아가고 맙니다. 정말 씁쓸한 결과이고 김영삼, 김대중은 역사앞에 이일에 관해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 어렵게 얻은 직선제 개헌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한표 한표마다 그때 그분들의 고귀한 선혈이 맺혀있음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그날 민중을 억압했던 정당이 이름만 바꾼채 그대로 남아 떵떵거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길... 그날에 그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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