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상당히 오래간만에 글을 올립니다. ;;;;
이제야 글이 올라오는 이유는.....
사실 그전의 글들은 이런저런 책들을 직접 옆에서 참고하고 생각 정리해서 썼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 뭣보다 제 자신이 힘들어서 못하겠더군요.
그냥 지금부터는 제가 아는 것을 정리해서 쓴 후 부족한 부분은 다른 분들의 덧글을 통해 해결한 뒤 보충하는 식으로
하려 합니다. 그간 너무 게을러서 죄송합니다......
로마와 페르시아 간의 쟁패전은 늘상 있었던 일이고, (6)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데뷔를 소개하기 위한 일종의 외전격이었기 때문에...
번 글은 동명의 글 (6)이라기보다는 (5)에서 시작하는 글입니다.
일단 알려진 것과는 달리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떠억 하고 나타난 뒤 로마 제국이 하루 아침에 천지개벽하듯이 바뀌어서
"로마답지 않아진"것이 아닙니다. 그 제도 개혁이란 것이 거의 한 치세 전부를 소모한 20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전제. 비잔티움 제국 체제의 실질적인 창건자는 콘스탄티누스가 아니라 디오클레티아누스입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일단 안팎의 말썽꾸러기들을 손봐준 뒤, 제국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말 뛰어났던 점은, 자기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재정난 -> 중과세 -> 악화의 발행 -> 화폐의 평가절하 -> 살인적 인플레 -> 납세 능력의 저하 -> 내란 ->
진압 혹은 외세의 침공 -> 늘어가는 방위비 -> 재정난 ->.....
요걸 어떻게 해봐야겠는데...
그의 선배들인 아우렐리아누스, 프로부스가 그랬던 것 처럼 디오클레티아누스 역시 우선 순위를 정해놓고,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파해해나가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모두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동안에 다른 문제가 불거지겠지만 하나가 해결되기 전까지 다른 모든 것은 일단 제쳐놓는다는 것이 그것었습니다. (동서고금 모든 행정 부서에서 강조하는 사항: 하나씩, 하나씩 해결!) 다른 게 있었다면 아우렐리아누스와 프로부스의 전쟁터는 야전이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쟁터는 궁궐 안의 집무실이었다는 것이 있었다 볼 수 있겠죠.
우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가장 먼저 도전한 것. 내란! 이건 바로 그 유명한 4두 체제로 해결했고, 진압 혹 외세의 침공이란 것은
그의 선배들이 페르시아를 호되게 때려준 적도 있었고 그 역시도 다시 한번 페르시아를 손봐주면서 어느 정도 해결합니다.
그다음.... 은 무엇인가?
늘어가는 방위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생각했습니다. "내란->진압 혹 외세 침공은 어느 정도 해결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부담은 좀 줄었지만
여전히 방위비가 자꾸만 많이 나간다. 왜 이럴까? 급전 필요할 때 국고는 왜 늘 텅텅 비어있을까?"
당연히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고비용 저효율 체제다."
그럼 저비용 고효율이 가능할까? 답은, "아니오"였습니다. 이미 갈수록 늘어가는 국경 지대에서의 압력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처럼 후계자들이 카이사르보다 무능해서 이걸 해결 못했다고 생각하는 바보같은 생각은
그 당대에도 아무도 한 바 없었습니다.
저비용 고효율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할까? "고비용 고효율이 차선책이다."
그럼 고비용 고효율을 못하게 하는 주범이란? "군대가 제할일을 똑바로 못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뛰어난 선배 갈리에누스의 대대적인 군제 개혁을 했었고, 뛰어난 장군 황제들이 이미 여러 차례 임상 실험을 거친 끝에 로마군의 실전 전투력 그 자체는 사실 오히려 평화기였던 1~2세기보다도 더 뛰어난 경지에 올라와있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뛰어난 로마군을 가지고 왜 국가 방위에 계속 실패를 했는가? 국경 방어가 문제였다면 그건 이미 종심 방어 체제를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선배들이 잘 가동하고 있는 바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였던 "지들끼리 사고치는 것." 요건 앞에서 이미 해결했습니다만, 이것만 가지곤 뭐가 안된다는 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돈잡아먹는 귀신인 군대가 여전히 제할일을 똑바로 못하고 있었다는 그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결론을 내립니다.
"종심 방어 체제를 현 체제 현 상황으로는 제대로 굴릴 수 없다."
이 필요성에 의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민정과 군정을 완전히 분리합니다.
예전이야 국경 지대에나 군사 지휘관이 있으면 그만이지만, 이제는 영토 내에도 군 지휘관이 실전 병력을 가지고 대기를 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전의 엉성한 체제로는 이걸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가지 현대인들이 헤깔리는 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진지하게 제국을 완전히 바꿔버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 그 나름대론 당면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편의적인 조치가 하나하나 쌓여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관직명은 그대로 똑같았다는 겁니다. 하여 그전까진 트리부누스가 대대장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해당 지역의 민정을 돌보는
관리로 완전히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각 트리부누스들은 프라이펙투스 (일명 군단장) 들이 지휘했던 모양이지만, 이제는 이 프라이펙투스들 또한 민정 관리로 역할이 바뀌어 일종의 군수나 도지사 같은 자들로 바뀝니다.
그런데 그래서 발생하는 문제......
"얘들은 누가 지휘를 하지? "
명색히 상층이 없는 하층 구조가 말이 되는가?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것과 저것을 좀 짜맞춰서 일목요연한 체제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머리가 시원해지니까.
그렇게 하여.... 우선 정점에 황제와 부제가 섭니다.
그 밑으로 각 황제들의 관할구를 크게 나누어 "관구"를 두고, 관구의 장을 둡니다. (일명 대리인 = 비카리우스) 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 밑으로 드디어 각 속주의 장들이 등장합니다. 트리부누스는 일단 이들과의 위계 체제에서 동급 혹 밑에 서면서 이들과 같은 체계 안에 편입됩니다.
프라이펙투스 같은 경운 약간 경우가 다른게, 그래도 예전엔 "군단장"끗발이어서 그랬는지 이들만은 중요 대도시를 담당하면서
일부는 비카리우스와 맞먹거나 (혹은 더 서열이 높았던 것 같고) 아주 일부는 여전히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일명 로마 근위대 대장..... 프라이펙투스 프라토리오는 아직까진 군사 지휘권을 박탈당하지 않고 있었으며, 당연히 그 어떠한 비카리우스들이나 둑스들보다도 서열이 높았습니다. )
한편 원래는 군단장들을 지휘하는 군사령관이었던 둑스는 이제 예전에는 프라이펙투스나 트리부누스, 혹은
프로콘술이나 프로프라이토르들이 했던 역할을 대행하게 됩니다.
그리곤 이 둑스들 중에 "코메스"라는 존칭을 겸하는 자가 나타나는 데, 이 자들이 이제 필요에 따라서는 둑스들을 지휘합니다.
(즉 코메스 둑스는 둑스들 중 서열이나 짬이 어느 정도 되는 둑스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
나중에 좀 더 있으면 군사령관 위에 또 하나.... 총사령관, 유명한 마기스테르 밀리툼이 등장하는 게 이건 일단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황제들 자신이 마기스테르 밀리툼 노릇까지 다 하고 있었으니까. )
근데.......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런 일목 요연한 체제를 짠 데에는 종심 방어 체제의 관리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바로 재정난도 해결해보자는 사고였습니다.
여기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선배들이 부딪혔던 고민이 재반복 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선배들 "뭘 고민하냐. 만들면 되지......."
디오클레티아누스 "장난하냐? "
재정난은 감수하더라도 인플레까지 겹치면..... 말짱 황. -_-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최선의 답을 드디어 도출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몸으로 때우자. "
그 유명한 현물세, 그리고 인두세, 토지세의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