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앞서의 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제국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카라우시우스같은 자가 브리타니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르타고의 율리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아킬레우스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세 대립 황제중 카라우시우스만이 그나마 몇 년동안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마지못한 인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는 모두 참살당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냉철한 판단력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카라우시우스가 다스리는 브리타니아란 지역은 사실 몹시도 문제가 많은 지역으로써, 카라우시우스가 자기 지역만 잘 방어해주고 거기에만 만족한다면 제국으로써는 썩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브리타니아란 속주 자체가 수입이 좋은 속주도 아니었구요. 오히려 브리타니아는 카라우시우스 치하에서 꽤 번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콘스탄티우스가 제압했을 때도 별 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큰 피해를 치루는 일 없이 온전하게 통합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으로써는 카라우시우스를 내버려두는 것이 원인적으로도 결과적으로도 꽤나 남는 장사였던 것입니다.
(나와바리를 빼앗긴 막시미아누스가 몹시 기분이 나빴을 것은 별문제지만.)
그러나..... 카르타고의 율리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아킬레우스는?
두 속주는 브리타니아와 달랐습니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속주였고, 게다가 이런 속주들을 내버려둘 경우, 해당 속주의 지배자들이 제국 변경 방위에 보탬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우렐리아누스가 공식적으로는 명백한 반역자들의 제국이었던 갈리아 제국을 내버려둔 채, 엄연한 동맹자였던 제노비아 여왕의 팔미라 왕국을 먼저 친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게다가, 더 큰 이유. 율리아누스와 아킬레우스는, 나름 배포가 컸던 카라우시우스와는 달리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보기에) 찌질이들이었습니다.
막시미아누스는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인 공격으로 율리아누스를 몰아붙였고, 그 기세로 마침 침입해온 사막 민족도 격퇴하여 남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궁지에 몰린 율리아누스는 오백년전 카르타고인들이 그랬듯 타오르는 불속에 몸을 던져 자결합니다.
한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그는 막시미아누스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한 뒤 물을 끊고 장기간 포위에 들어갔습니다. 견디다못한 알렉산드리아시는 항복하였으나.......
“좋아. 항복했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지.”
“저.... 저희는 어떻게 될까요?”
“죽을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Exterminate 버튼을 주저하지 않고 눌렀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부속도시도 손에 넣었는데, 항복한 도시들이었지만 역시 그는 Exterminate, Exterminate만을 반복했습니다.
네, 상당한 규모의 학살과 처형, 공포 정치, 처절한 복수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대체 왜 그랬을까?
디오클레티아누스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그는 처음 황제가 되었을 때 상당한 관용으로 정평이 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홍위병을 방불케하는 막시미아누스의 맹목적인 명령 복종 (좀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막시미아누스의 이런 성향은 기독교 탄압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로써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시키니까 한 것인데....어떤 면에서는 그보다도 더욱 가혹한 바가 있었습니다.) 으로 일어난 학살을 제지한 것도 디오클레티아누스였고, 그가 죽인 카리누스 황제의 신하들을 다시 원래 자리에 기용하여 자기 부하를 만드는 높은 수준의 정치력을 보인 것도 디오클레티아누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용을 이집트에는 베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황제가 뉘집 개이름이야? 아무 놈이나 자칭하게? 한번 두번 봐주면 그때는 또 아무 놈이나 황제 하겠다고 개념없이 덤빈단 말이오.”
“카라우시우스는 봐줬잖아요?”
“그 놈은 지가 지 일 똑바로 잘 하고 분수를 아니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놈 내버려둘 생각 없어. 다만 처리 순번이 뒤로 밀렸을 뿐이야.”
그는 그가 건설하고자 하는, 제국의 남은 저력을 남김없이 짜낼 수 있는 강력한 체제를 움직이는 리모트 컨트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모든 체제 위에 군림하여 전능한 권한으로 지시를 하달하는, 전제자였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죽은 정적의 신하들은 용서할 수 있었어도, 대립 황제들과 그들에게 동조한 지방만큼은 절대로 봐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동료들은 한 지역에서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실레우스”
그리고 이 말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디오클레티아누스도 어느 지역 사람들이 자신을 “바실레우스”로 일컫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바실레우스”란 말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란 말과 완전히 같은 말이 되리라는 것은 이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아기의 머리는 이 당시부터 이미 로마라는 어머니의 몸을 열고 조금씩 그 머리를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기에 대한 얘기는 뒤로 미뤄두기로 합니다. 아직 그가 완전히 세상에 태어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글이 길어져서 다루지 못한 ‘양치기 갈레리우스’ 그리고 부활한 페르시아 제국,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혈투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파일이 허락한다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체제란 것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나도 앞서 다룬 '아우게아스의 외양간' 편에서 다룬 죽음의 사이클과 관련지어 다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