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엄청 쏟아지던 어느 가을날
나는 첫사랑을 만났다
우산이 없어서 속상해하던 나에게
"우산 안 가져왔어요?" 라고 말을 건네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같은 학원에 다녔고
강의를 들을 때
옆 분단에 앉던 사람이었다
그 날 나는
그 사람과 같이 하나의 우산을 썼다
그 사람은 내 오른쪽에 서서 걸어갔다
우산 손잡이를 쥐고 있던 왼손이 예뻤다
그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잡고 싶을 만큼
그 날 이후로
그 사람과 나는 학원에서 만나면
눈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저녁을 김밥으로 때우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건네주었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었다
그렇게 그 사람과 나는 가까워졌고
"손 잡아도 돼요?" 라는 그 사람의 물음으로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첫사랑이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없어서
연락 한 통이 더 애틋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다 쓸 수가 없으니
80자 이내로 어떻게든 맞추려고
글자를 지워도 보고, 줄여 보기도 했다
주고받았던 문자 하나가 소중해서
문자 보관함에 넣어두었고
100개가 넘어가면 어떤 걸 지워야 하나
하루종일 고민하기도 했다
정말 무신경하던 내가
그 사람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렇게 무뚝뚝하던 내가
그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교를 배웠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내 첫사랑에도 슬슬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였기에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고마운 마음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서운한 마음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화가 나는 마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 사람도, 나도
뭐든지 참는 성격이었기에
서로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나만 참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참고, 배려하다가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오해가 생겼다
분명히 화를 내야 될 상황인데
그냥 넘어가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한 것이었는데
상대방이 신경 쓰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오해가 계속 쌓였고
결국 나는 이별을 고했다
처음 해보는 이별이었다
분명히 내가 헤어지자고 얘기한 건데
그 사람이 싫어져서 내가 그만둔 건데
왜 슬픈지, 왜 눈물이 나는지 몰랐다
달리는 버스조차 갑갑하게 느껴져서
1시간 동안 걸어서 집에 갔다
집에 도착하니 슬픔이 허무함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사귀어 온 그 오랜 시간이
내 한마디면 바로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가 헤어지던 날은
그 사람이 내게
처음으로 우산을 씌워줬던 날처럼
그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리고 있는 비가
잊어야 하는 그 사람을 더 떠오르게 했다
그래서 비가 미웠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나의 서투름 때문에 미완성으로 끝났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문득 첫사랑이 생각 날 때가 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과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서툴렀던 그때의 내가
다른 사람의 첫사랑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첫사랑은 그랬다
정말 소중해서, 정말 잃기 싫어서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엄마가 사 준 장난감이 정말 소중해서
혹시나 만지면 부러질까 봐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그냥 눈으로 보기만 했던 것처럼
만약 그때 내가 참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참지 않았다면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안 끝났을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의미 없는 후회가
문득 들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