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브리스트
Dekabrist 1825년 12월 26일(구력 12. 14)에 무장봉기를 일으킨 러시아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 비록 혁명은 실패했지만 그들의 순교는 러시아의 현실에 불만을 품은 다음 세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데카브리스트는 주로 상류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 러시아가 프랑스를 점령할 때 참가했던 장교들로서, 러시아의 비밀애국단체(후에 혁명단체가 됨)인 구원동맹(1816)·평안동맹(1818)· 북부협회(1821)·남부협회(1821)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알렉산드르 1세 사후, 짧지만 혼란스러운 권력 공백기가 이어지자 북부협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부 군대가 니콜라이 1세에게 충성을 거부하고 그의 형인 콘스탄틴의 즉위를 요구하리라고 확신하고 혼란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준비와 조직이 충분하지 못해 반란은 쉽게 진압되었고 임시정부의 권력자가 될 예정이던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 공작은 달아났다. 남부협회의 체르니고프 연대가 일으킨 반란도 쉽게 무너졌다. 이어서 니콜라이 1세가 직접 참여하는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결과 121명의 데카브리스트가 재판을 받았고 그 가운데 5명(파벨 페스텔, 세르게이 무라비요프 아포스톨, 표트르 카호프스키, 미하일 베스투제프 류민, 콘드라티 릴레예프)이 처형당했으며, 31명이 감옥에 갇히고 나머지는 모두 시베리아로 유배당했다. 출처 :한국브리태니커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4d4078a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한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굉장히 분량이 많고 읽기 힘들지만 압도적인 서사적 스케일로 독자를 휘어잡는 아주 유명한 소설인데요. 이 작품은 급변하는 18C~19C 정세 속의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 속의 "안드레이 볼콘스키"는 실제 인물 "세르게이 볼콘스키"의 삶을 모티브로 따왔는데요. "세르게이 볼콘스키"는 러시아 인민들의 주 계급층인 농민들을 아주 좋아했기에 "농민공작"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세르게이 볼콘스키"는 당대 러시아 최고 가문의 귀족임에도 데카브리스트 혁명을 주도했습니다. 톨스토이와 볼콘스키는 관계 상 먼 친척이었습니다만, 농민을 사랑한 볼콘스키에 매료되어 그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습니다. "농민공작" 세르게이 볼콘스키 (1788 ~ 1865) (1861년, 알렉산더 2세가 농노제의 폐지를 명했을 때, 볼콘스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내가 선택한 길 탓에 법정에 서고,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30년 동안의 추방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신념을 바꾸지는 않겠다.” “러시아는 농민 병사들이 지켰다. 그들은 농노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조국을 위해 시민들처럼 싸웠다.” “그들을 자랑스레 여기셔도 됩니다. 농민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애국자입니다.” “폐하, 제가 귀족이란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귀족들은 말뿐입니다.” 예카테리나 트루베츠코이, 마리아 볼콘스키를 비롯한 11명의 여인들이 떠난 3만리 시베리아 대장정 볼콘스키는 니콜라이 1세와 어렸을 적 친한 친구였지만 정략가인 어머니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사형을 피했습니다. 볼콘스키를 포함한 약 100명의 데카브리스트들은 혹한의 불모지 "시베리아"로 유배됐습니다. 그들의 앞에는 극한의 시베리아 땅에서의 강제노역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혁명가들 중 기혼자는 단 18명 뿐이었습니다. 피할수 없이, 가여운 운명의 여인들에게 시련이 닥쳐옵니다. "반역자 남편과 이혼하고 재혼하여 귀족 신분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귀족 신분을 가차없이 버리고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느냐"의 양자택일의 깊은 고뇌 속에 11명의 여인들은 아무 교통 수단없이 눈썰매를 타고 무려 1년 동안 매섭고 시린 시베리아의 눈보라를 맞아가며 그들의 남편들에게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여정 도중에 동사하거나 사고로 죽은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여정을 떠난 여인 중엔 모스크바 대학교의 창시자인 로마노프스키의 손녀이자 볼콘스키의 연인, 마리아 볼콘스키도 있습니다. 대장정 끝에 어두컴컴하고 냉기서린 지하 감옥에 갇힌 볼콘스키를 처음 보자 마자 마리아는 엎드려 쇠사슬에 입을 맞췄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여인들이지 않습니까? 나타샤 역 "오드리 햅번"과 볼콘스키 역 "멜 파라" 주연의 영화 "전쟁과 평화" (오드리햅번과 멜 파라는 결혼했었죠,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지만...)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마리아 발콘스키는 결혼 이전에 러시아의 대시인, 푸슈킨과 사귀었습니다. 푸슈킨은 당대 러시아의 인텔리로서, 데카브리스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푸슈킨은 마리아 발콘스키를 비롯한 11명의 여인들에게 다음의 시를 바쳤습니다. 시베리아의 깊은 탄광 속에서 너는 자랑스럽게 명예를 지켜라 "데카브리스트"는 오늘 날 한국 현실에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애국의 가치"가 사라져버린, 매국이 오늘 내일의 일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답답합니다. 정말 애국하고 싶은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이렇게도 먼 것은 왜일까요??? 우리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진정한 애국 (Patriotism)의 가치가 승리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유시민의 "청춘이 독서" 중 데카브리스트에 관하여 평가한 소견으로 끝마치겠습니다.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은 세계 역사에서 달리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철없는 청년들의 고결한 반란’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문명의 진보에 대한 신념, 낙후하고 퇴락한 조국 러시아를 살리겠다는 애국심, 체제를 전복하는 사업에 얼마나 큰 위험이 따르는지 전혀 헤아리지 못한 순진무구함. 전제왕정과 계급제도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반기를 든 아름다운 자기부정. 데카브르스트의 비극적 최후는 이런 요소들이 버무려진 역설의 미학과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실제 상황으로 보여주었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中]
이 고통은 헛되지 않을 것이고
반항자의 가슴은 꽉 차 있느니
불행의 신실한 누이여
희망은 암흑의 지하 속에서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리니
그날은 오고야 말리라
사랑과 우정이 그대들에게 임하리
캄캄하고 닫힌 곳 빗장을 열고
지금 그대들의 감방 그 탄광 속으로
내 자유의 소리가 다다르듯이
쇠사슬은 끊어지리라
감옥도 신념 앞에 열리고자유가 네 앞에 비칠 것이니
형제들은 너에게 칼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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