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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6)
게시물ID : humorbest_7207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23
조회수 : 5330회
댓글수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7/28 22:10:11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7/28 12:52:34
계속해서 같은 서문을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영 지루하실 것이라고 생각되어, 이번 화부터는 기존에 올리던 서문들은 후에 리플에 달아드릴 전번 편의 링크로 대체하고, 화마다 새로운 말머리로 시작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5화까지 연재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제 군생활이 몇몇 분께는 심지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죠. 저와 비슷한 시기에 해병대, 특전사, 헌병대 등으로 입대했던 친구들이( 의 전경 쪽은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제 이야기에 격하게 동감하고, 평범한 야전부대를 나온 친구들도 종종 '너희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라고 말해와서, 저는 정말 선진병영문화가 빠르게 잘 소화된 후방부대들과 몇몇 전방부대를 제외한 최전방 전선에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내무부조리가 아직 심했었던 것인 줄 알았습니다. 부대명을 따로 말씀드리기에는 뭐하지만, 제가 ktx에서 만난 문산 부근 어떤 부대의 전우분께서는 'k3예비총열로 맞았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쪽 부대들은 다 그런 모양이더라'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분 말로는 그 분의 부대는 이등병 전입 시 하루 종일 관물대(사물함)만 쳐다고보 양반다리로 앉아있어야 하며, tv쪽으로 눈을 돌릴 때는 여지없이 가혹행위를 당했었고, 각종 내무부조리가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이제 없어졌다'라고 말할 때가 11년 중~말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 분이 10년 중반 군번이었으니까, 그 근처 부대들도 아마 11년 근처까지는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정확한 사실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일들이어서, (해병대, 특전사, 헌병대, 그리고 야전 친구가 모두 군뻥을 치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이 역시도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저희 부대 이야기가 전부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제 이야기를 그대로 믿거나 혹은 그렇지 않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판단에 맡겨드리도록 할게요. 하지만 믿기지 않아도, 이 일들이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부대를 나온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격하게 공감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1~5화의 링크를 댓글로 달아드리겠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서, 나오는 인물 혹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전번 편까지 보지 않고는 이해하실 수 없을수도 있으므로, 전 편을 보고 이번 6화를 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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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아마 내 군생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바꾸고 싶은 3가지를 꼽는다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어수룩한 나의 대응과 각종 상황들이 어우러지는 사건이었지. 전편에 말한 대로, 나는 내 선임으로서의 기득권도, 후임으로서의 (물론 '우리 부대의'후임으로서 하는 일들이지. 전부 말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 부조리는 대단한 것이었어. 별에별 쓸데없는 것들도 다 해야 했으니까) 의무도 다 포기하고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군생활을 하기 시작했지. 

내 일병 두번째 북쪽 캠프 생활의 이야기야. 그 시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비가 오기 시작했지. 다른 군대에서는 비가 오면 훈련을 하지 않아 비를 보고 하늘이 우리를 보고 불쌍해 흘리는 눈물 등으로 표현했다는 말을 사촌 형에게 들은 바 있었지만, 우리 부대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야. 총에 그 많은 비를 맞혀 가면서도, 몸이 쫄닥 젖은 병사들이 덜덜 떠는 것을 보면서도 훈련을 강행했지. 대대장은 그것을 보고 '다른 부대와 다르게, 역시 우리 부대는 군기가 훌륭하다. 이 상황에서도 큰 훈련을 무리없이 해내다니'라고 말했고. 중대장은 그런 대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우리를 더 험하게 굴렸어. 

군대에 들어갈 때, 군복을 보급받는데, 우리는 특이하게도 훈련소에서 '나머지는 자대에서 보급받을 것'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여름용 1벌과 겨울용 1벌만을 보급해줬었지.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원래는 각각 2벌씩 보급해야 한다고 하더라. 결국 2벌밖에 없는 옷을 가지고 그 쏟아지는 비 속에서 매일 훈련을 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바빠진 건 다름아닌 후임층이었지. 하루에도 빨래가 4~5통씩 쌓였고, 이것을 다 빨아서 다음날까지 말려놓으려면 드럼세탁기를 사용해야 했으며(정확한 기능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드럼세탁기에는 말려주는 기능도 있었어), 소대에 드럼세탁기는 하나밖에 없었지. 전 소대의 이등병들이 그것을 이용하려고 했으니, 시간싸움이 치열했던 건 당연지사. 그나마도 우리네같은 일병 이하의 계급은 다음 날도 젖은 군화를 신고, 젖은 전투장구류(방탄모, 특전조끼 등등 있잖아)를 착용하고 훈련을 하면 되었지만, 선임들은 그런 것을 인정하지 못했지. 우린 군화 두 짝 중 한 짝을 행사용으로 매우 깨끗하게 광을 낸 상태로 보관해야 했으나, 선임은 자신의 군화가 젖었다는 이유로 후임들의 행사용 군화를 빌려썼지. 물론 그것을 다시 정비하느라 후임층이 고생한 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소대의 드럼세탁기를 밤에 몰래 쓰던가, 혹은 새벽에 기상해서 우리 소대의 드럼세탁기를 쓰는 식으로 어찌어찌 연명했고, '눅눅해졌으니 내 침낭과 포단도 빨아와라(침낭, 포단은 이불같은 개념이야) 라는 황당한 A와 몇몇 선임의 주문까지도 해결할 수 있었어. ' 여기서 내가 크게 잘못하기는 했지. 난 이등병들이 그 고생을 하는 걸 전혀 돕지 않았어. 내 옷을 빨라고도 시키지 않았고, 내 군화가 아까워 남의 것을 빌려 쓰지도 않았지. 앞서 말한대로 난 군복조차 부족했지만, 그저 전역한 선임들이 버리고 간 옷 중 맞는 걸 대충 찾아서 입었을 뿐, 후임들에게 해도 끼치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는 생활을 계속했지. 물론 사실 이정도면 그냥 해를 끼친 선임이었지만.

후임들은 그러한 사실에 화가 나 있는 듯 했어. 난 뭔데 도와주지도 않고 혼자 짱박혀 있느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 언젠가 1개월차 후임 중 하나가 와서 나에게 말을 했어. '우리들이 앞으로 잘 해나가려면 우리 후임들의 신뢰를 사는 게 좋을 것이고 이렇게 모든 걸 놓아버리시면 안됩니다'라는 느낌으로 말하더라. 내가 느낀 뉘앙스니까 실제로 했던 말은 다를 수도 있으려나. 여튼, 좀 도와달라는 말이었는데, 저런 형식의 문장으로 내게 말했던거지.

난 측은하기보다는 화가 났어. 이젠 하다못해 후임들까지 와서 눈치를 보라고 하는구나. 그마저도 도와달라는 부탁이 아닌 도와주지 않으면 후에 힘들 것이다라는 어투로 나에게 말하는구나. 나는 얼마나 우습게 보였었단 말인가. 난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어. 내 밑의 후임 4명과 완전히 등지기로 마음먹은거야. 어차피 전역만 하면 되지 이 빌어먹을 군대에서 선후임간의 우애를 찾고, 전우애를 찾고, 사회 나가서도 있을 인맥을 찾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거지.

사실 이건 내가 완벽하게 잘못한 일이야. 화가 나고, 후임이 나에게 말도 안되는 형식으로 말하면 그자리에서 내가 후임에게 화를 냈으면 해결되었을 일인데, 난 소심한 나머지 직접적으로 후임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내 나름대로 개겨버린거지. 하지만 화를 냈어도 어떻게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 전편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A때문에 분대 내에서 완전히 지위를 잃어버린 상태였으니까.

여튼, 그 폭우 속의 훈련은 어떻게든 끝났고, 후임들은 날 더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난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는 생활을 계속했지. 초소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일병이기 때문에, 오로지 선임이기 때문에 나에게 허락된 몇몇 자유만을 누렸고, 그 외 실패한 인간관계와 선후임 관계는 그냥 포기해버렸어. 전역할때까지 버티려는 속셈이었지.

그렇게 남쪽 캠프의 생활이 끝나고 일명 '작전'이라 불리우는 북쪽 캠프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 북쪽 캠프는 여러 개가 있는데, 각 캠프마다 해야 할 일이 판이하게 달랐지. 따라서, 우리는 북쪽 캠프에서의 근무를 예정해야 했고, 이는 보통 분대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일명 '투고'가 담당했어. 사실 간부들이 근무예정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를 어딘가에서 들었지만, 뭐 명확한 사실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건 내가 '근무지원'을 가게 되었다는 거야. 이는 그나마 초소, 혹은 그 외 그 캠프에서 활용할 인원이 충분한 소대에서 다른 소대로 병사를 4~5일간 빌려주는 것을 말해. 난 우리 소대에서 빌려주는 병사였고, 다른 소대의 인원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나처럼 계급이 낮아 가혹행위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병사가 근무지원을 가는 것을 이른바 '꿀'로 통했지. 

이 '꿀' 마저도 나의 군생활을 망치는 데 한 몫 했지만, 그런 일이 있을 줄 몰랐던 작전 전까지는 나는 근무지원을 간다는 사실에 행복해했어. 그렇게 우리는 첫 번째 북쪽캠프로 향했고, 그 곳에서 지금껏 있었던 어떤 사건도 범접할 수 없는 초대형 사건이 터지지. 그것은 '사찰'이야. 

이전에 P의 사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지. 그리고 분명 P는 대대장보다도 높은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어. 대대장부터 소대장까지 어떤 간부, 혹은 P가 영외에서 구타당한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P의 분대장을 제외한 어떤 선임층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었지만, 우리 부대에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저 상부에 전해지게 되었던거지. 따라서 사찰병력이 내려와(소령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어) 병사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고, 이에 자신들의 부대에 폭력이 만연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중대장, 대대장, 그리고 소대장까지 모든 간부층에게 비상상황이 선포됨을 뜻했지.

하지만 선임들은 조금 달랐어. 이미 이전에 P의 사건이 말해주듯이, 어지간해서 자신들에게 피해올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 사찰의 위험성에 대해서 후임들을 따로 교육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전까지 이어져오던 구타폭행이 줄어들거나 약해지지는 않았어. 영창을 보내도, 언젠가 사회에서 만나면 맞아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심으면, 결코 설문지에 뭔가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지. 하지만 P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 말한 적이 있었을거야. 모두가 P를 쓰레기로 취급하고 P를 때리다가 영창에 간 그의 분대장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그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있었던, 나와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북쪽 첫번째 캠프의 어느 날, 소대장은 우리를 불러서 '이는 상부에 바로 올려지는 것이니 혹시 부당한 행위를 당했다면 곧바로 쓰도록 해라'라며 설문지를 나눠주었지. 그래. 사찰이 시작된 것이었어.

일이등병은 각기 불려나가 설문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은 '맞을 사람은 맞아야 한다'는 주입식 이념을 가지고 아무런 말도 써넣지 않았으나, 나와, 나와 생각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 솔직히 이것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적 고민을 엄청나게 했지만서도 - 결국 설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제출되었고, 우린 설문 작성 후 선임들에게 불려가서 무엇을 적었느냐, 적었으면 죽을 줄 알아라 등의 협박성 대사를 들어야 했지. 일렬로 일이병을 세워놓고 '적었느냐'라고 한 명씩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했을 때가 압권이었는데, 그 기세는 너무 대단해서 폭력에 익숙해졌던 나조차도 무서울 정도였어. 거기에서 적었다고 말하면 그날 잠들 때까지 보복성 짙은 구타를 당할 것이 틀림없었지. 결국 난 또다시 실수를 하게 되는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르렁거리는 A의 질문에 '적지 않았다'라고 대답해버린 거야.

마지막 한 줄기 남은 내 군생활의 빛마저도 덮어버린, 군생활 최악의 실수였지. 난 여기서 '적었다'라고 대답하고 그들에게 그날 밤까지 맞았어야 했어. 사실 애초에 설문지를 작성해서도 안 되었지. 그래, 명확히 말하자면 나는 설문지에 아무 내용도 작성하지 않고, 그들에게 적지 않았다고 참말을 했어야 했었지.

왜 그랬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거야.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것은 다음날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어.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다음날의 이야기도 같이 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또 글이 엄청나게 길어지는데다, 도서관으로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 해서 이만 적도록 할게. 추가사항으로 미필이 알면 좋을 개념 하나를 소개하고 넘어갈게. '짬독'이라는 개념이야.

말 그대로 독이지. 짬은 짬밥을 뜻하고, 군대에서 주는 밥을 의미해. 짬을 먹는다는 건 군대 밥을 많이 먹었다, 즉 군에서 오래 있었다는 것을 뜻하고. 그리고 군대 짬밥에는 독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짬독이 오른다고들 하지. 

실제로 밥에 뭐가 들어있는 건 아냐. 짬독은 군대에서 계급이 높아지면서 사람이 안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걸 말해. 어떤 식으로 군생활을 하던지 짬을 먹으면 권력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 권력으로 - 세월이 흐르면서 짬의 권위가 점점 낮아지고 있기는 해. 그게 맞는 길이고- 부당하던 정당하던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지. 내가 있었던 부대의 경우에는 어느 날 들어오는 신병의 목소리가 마음에 안든다면, 짬이 높은 사람이 그 목소리가 고쳐질 때까지 그를 구타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았지. 모두 묻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이런 잘못된 권력의 남용에도 불구하고, 이미 짬을 먹은 사람들은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아. 자신의 기득권이고, 자신이 이등병 때 당해왔던 것의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지. 이만큼 접대하며 살았는데, 아무 것도 받지 못한다면? 아직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 허탈함은 생각보다도 매우 커. 

그리고 짬독이 심하게 올랐던 사람들 중 거의 전부가 군생활을 매우 그리워한다는 건 또 재미있는 결과야. 그들은 '쫄병때 힘들어야 짬먹어서 편하다'라는 비논리적 논리를 펼쳐세우고, 자신의 군생활 기억이 정말 남자다웠다고 믿지. 어느 날 KTX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는데 우연찮게도 나와 비슷한 지역의 부대 출신이었어. 바로 옆 부대라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지. 그 아저씨는 나에게 요즘 군대는 어떻느냐라고 물어보며, 아침에 맞고 시작하고 저녁에 구타당하면서 끝나던 자신의 이등병 시절을 미화했지. 자신이 병장 때 얼마나 높고 멋진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토로했어. 요즘 군대는 그런 게 없어서, 병사들이 깡도 없고 야망도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리고 자신의 군생활을 매우 그리워했지. 

B도, A도, B를 왕고 직전까지 때리던 그의 맞선임도, 지금에 와서는 그 시절을 그리워해. 이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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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을 쓰는 데에 분량은 적어보이지만 한시간 반이 걸리네요 ㅠㅠ 그 시절을 기억해내고, 시간대에 맞는 일들을 순차적으로 꺼내 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 몰랐습니다. 그 와중에 이야기의 구성도 어느 정도는 생각해야겠고... 노력한 만큼 여러분이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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