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이 음슴으로 음슴체
올 4월에 전역을 했음. 행정병이라서 간부들과 일을 많이 함. 대대 물품을 지원하는 군수과에서 일을 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지 모르겠지만 군수 분야가 매우 많음. 그래서 행정병도 5명, 간부들도 3~4명 정도 모여서 옹기종기 일을 했음.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일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중대급에서 요청하는것도 많고, 해서 시간은 꽤 빠르게 지나 간 것 같음.
처부장(장교급)이 있고, 각 보급분야별로 간부(부사관급)들이 한분씩 있었는데, 대체로 먹을것과 유류 담당하는 간부, 피복류와 공구류를 담당하는 간부, 탄약을 담당하는 간부가 있었음. 나는 원래 윗사람한테 깍듯하게 대해야겠다는 마인드가 다분한 사람이라서 내 나름대로는 간부들에게 충성(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말 잘 들으려고 노력했음)했다고 생각함. 특히 내가 담당했던 먹을것을 관리하던 간부는 원사분이었는데 무심한듯시크하게 잘 대해줬음. 처부장도 되게 잘해줬는데, 계원들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봤다가 그날이 다가오면 막 차끌고 나가서 햄버거 사갖고 와서 애들 챙겨주고, 크리스마스때 스킨같은 저렴한 화장품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해주고 했었음. 탄약 담당하는 간부는 병사출신인데, 알고보니 병사시절 짬이 나보다 안되서(ㅋㅋㅋㅋㅋ) 계원들끼리 은근 맞먹으려는 분위기는 있었지만, 나는 나름 잘 따르려고 했음. ㅋㅋㅋ
문제는 피복류를 담당하던 간부였음.
전임자가 본부에서 다른 전투중대로 소속이 바뀌자, 이 후임자가 오게 됨. 후임자가 오면 인수인계를 받지 않음? 그래서 막 일과시간에 처부에 와서 전임자 간부에게 일을 인수인계 받았음. 간부들끼리 인수인계하는 모습은 처음 봐서, 후임자가 열심히 배우고 받아 적는 것을 보면서 '아... 좋은 분이 왔구나' 싶었음. 전임자가 일을 잘했지만 워낙 성격이 자기중심적이고 일 못하는 계원들 무시하는 성향이 있어서 뒤로 안좋은 소문이 조금 있었음. 그것때문인지 후임자가 첫 인상이 너무 좋은거임. 게다가 전임자가 주말에 일거리를 주고 가는 바람에 계원들끼리 십탱 십일탱 이러면서 주말에 작업하러 가는데, 그 후임자가 짠! 하고 나타나더니 같이 작업을 조금 도와줬음. 그때부터 이 후임자 간부에 대한 존경이 싹텄음.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음. 후임자가 원래 있던 전투중대 아저씨에게 물어보더니, 평판이 안좋다면서 욕을 하는거임. 첫인상에 감동받은 나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평가였음. 그래! 어차피 계원들이 하기 나름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을 함.
어쨌든 전임자는 완전히 다른 중대로 소속이 바뀌고, 후임자가 완전히 처부에 출근하게 되면서 같이 일을 함. 물론 내 담당인 먹을것 관련 업무를 보는 간부는 따로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업무 터치는 없었음. 그런데 컴퓨터를 잘 못하는지 문서작업 같은 것을 자꾸 하라고 했음. 그래서 도와주는데, 자꾸 도와주면 내 업무가 마비되지 않겠음? 그래서 처음에 생글생글 웃으면서 도와드린 다음에 그 간부에게 한글 문서 칠 때 유용한 팁을 알려줬음. 그것도 자주! 그런데 어째 내가 알려준 것을 사용해보려고 하기는 커녕, 나 대신 후임에게 다른 작업을 막 시키는거임. 그때부터 좀 저 간부에 대해서 미적지근함을 느꼈음.
그리고 2주 정도 흘렀나? 그 간부에 대해서 완전히 불신감을 갖게 된 사건이 터짐.
먹을 것을 관리하다보니, 여러분들이 잘 아는 맛스타라던지, 건빵이라던지, 보급 라면과 같은 물품을 내가 직접 관리함. 사단보급부대에서 예하 대대 및 연대별로 인원수에 맞게 비율을 만들어서 그 비율대로 물품을 보급함. 그래서 나는 그 물품을 받아서 대대 창고에 보관했다가, 한달에 정해진 날짜에 부식을 보급하는 일을 했었음. 물론 창고가 대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했음. 그리고 특히나 우리 부대는 한개 취사장에서 3개 대대(직할대였기 때문에 가능) 약 500명쯤이 밥을 같이 먹었기 때문에, 부식도 다같이 보관하고 있었음...어쨌든.
전임자가 있을 때 나에게 건빵 유통기한이 언제냐고 물어봄. 나는 기억나는대로 대답했는데, 그때 막 상병을 달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아직 대답할 때 얼버무렸던 때였음. 그러자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고 느꼈는지, 전임자가 나에게 창고에 가서 유통기한을 다시 보고 오라고 했음.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대면서 창고에 확인해보니 역시 내가 기억했던 것과 유통기한이 똑같았음. 그래서 간부에게 건빵 한봉지를 증거삼아 갖고 감. 창고에 건빵이 100개도 안되는 양이 있었기 때문에 300명이었던 우리 대대에는 불출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음. 그랬더니 간부는 알았다고 했음. 그리고 나는 다른 부식들의 양을 체크하기 위해서 다시 창고로 내려갔음. 그런데
건빵이 없어!!!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방금 창고에 건빵이 두박스하고 낱개 조금 더 있는 것을 확인 했는데 처부에 다녀온 10분만에 건빵이 모조리 사라지다니?!
내 담당 물품이었기 때문에 없어지면 간부에게 혼날 것이 틀림 없었음. 나는 전전긍긍하다가 마침 취사장 옆에서 흡연을 하고 있던 취사병 아저씨에게 건빵이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어봄. 알 턱이 없었는데 취사병 아저씨가 같이 창고를 쓰는 다른 대대 계원이 들고 갔다고 했음.
그 계원은 나랑 연관된 업무가 있기 때문에 안면도 있고, 나름 데면데면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말도 없이 창고에 보관해 둔 우리 대대 건빵을 가져간 것은 엄연한 도둑질이었기 때문에 씩씩대면서 그 대대 군수과로 쳐들어갔음. 쳐들어가서 그 계원에게 다짜고짜
"아저씨 우리꺼 건빵 왜 들고 갔어요?" 하니까 황당해 하면서 "아... 그... 간부님이 훈련때문에 갖고오라고 하셔서..." 라고 대답함. 어이가 없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달라고 해서 설명들음.
알고보니 잠깐 훈련나가있는 병력에 격려차 건빵을 보내주고 싶은데, 자기네들 건빵 재고가 0개인 거임. 그래서 창고에 갔더니 우리대대 건빵이 2박스 정도 있어서 그걸 가져가서 주려고 했나봄. 얘기야 나중에 하면 되겠지 ㅎㅎㅎ 하는 마인드로 그쪽 대대 간부가 시킨거임. 계원이 무슨 죄가 있겠음? 간부가 까라면 까는거지. 그래도 나는 안면 있는 사이인데 우리 간부님이나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갖고 가서 마음이 상했음. 그래서 당장 우리 대대 군수과에 전화해서 건빵을 이러이러해서 갖고갔다고 전화하라고 하고 나옴.
취사장에 들러서 민간조리원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처부로 돌아왔음. 처부장도, 전임자도 없고 후임자만 남아있었음. 그래서 그 간부에게 전화가 왔었는지 물어봄. 간부는 그런 전화 받은 적 없다고 했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위에 있던 일을 남김없이 싹 다 말해줬음. 그 간부는 일단 내 말을 듣는데 이해를 잘 못했음. 답답했지만 차근차근 설명함. 결국 그 간부가 건빵을 가져간 대대에 전화해서 계원과 통화를 했음. 그 계원은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겠음? 그래서 이런저런 변명을 했나봄. 뭐 전화하려고 했는데 통화중이었다는 둥, 우리쪽 간부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둥... 그랬을거임. 뻔한 변명이었지만, 우리 간부가 납득을 해버렸음;;;;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 간부가 전화하다가 존칭을 쓰기 시작함. 저쪽 대대 간부가 계원한테 전화를 뺏어서 우리 간부에게 뭐라고 했음. 뭐 같은 창고를 쓰는 대대끼리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둥 어쩌구저쩌구 말을 함. 우리 간부는 중사고 저쪽 간부는 상사였기 때문에 어떻게 쪽도 못쓰고 전화를 끊음. 그러더니 그 중사가 나에게 한 말이 멘붕이었음.
"야. 니는 내하고 저쪽 대대하고 싸움붙일라고 그러나?"
??????????????????????
물건 훔쳐갔는데 그거 항의하는게 싸움붙이는거임? 아니 그리고 막말로 우리 대대껄 남의 대대가 말도 없이 훔쳐갔는데 싸워서 돌려받거나 사과를 받아야지 왜 싸움붙이냐고 계원을 혼냄????? 존니스트 어이없어서 벙찐 표정으로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었음.
"일을 할 때 좀 제대로 알아보고 해라. 일 그따구로 하지 마라"
그따구 그 세 글자에 완전 빡돌았음. 우리 물건 없어져서 보고한 게 그따구라고? 표정관리 못하고 꼰티네면서 "늬예" 라고 대답하고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고 화장실에 감. 화장실에서 울분을 삭이면서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처부에 갔음. 내 자리에 앉아서 재고조사 한 결과를 가지고 재고대장에 기입하고 있었음. 그런데 내 자리 반대편에 그 피복담당간부가 앉아있었는데, 그 사람이 날 몇초간 보더니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음. 관등성명 대면서 대답했더니 이렇게 말함.
"야, 너 참 일 못한다. 니 그냥 다른 중대로 내려가라."
??????????????????????????????????????????????????????????????
와 진짜 빡돔이 머리끝까지 뻗쳤음
군수과에서 일 시작한지 이등병때부터 거진 반년인데 인수인계 받은지 몇주 된 사람이 나보고 처부 그만두고 다른중대로 내려가라고....
게다가 본인은처부장도 아닌데 그런말을 찍찍 뱉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다는 느낌이 실감남. 뎅~ 하면서 사고가 불가능했음. 벙찐 상태에서 예 하고 대답하고 일과 끝나자마나 생활관으로 돌아옴.
그 간부에 대한 원망보다 일단 '내가 그렇게 일을 잘못했나? 내가 그렇게 일을 못하나?' 라는 자괴감이 들고, 내가 했던 짓거리를 하나하나 되짚어봤음.
처부 선임이 와서 '너 왜이렇게 얼굴표정이 안좋냐, 표정관리 안하냐' 라는 식으로 갈굼을 시작하려고 했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선임도 이해해주면서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함. 그나마 그 선임이 위로해줘서 좀 마음이 괜찮아졌음.
다음날
간부가 날 부르더니 어제 했던 말은 자기가 좀 심한 거 같다고 말함. 앞으로 일 잘하라고 한 말이었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했음..
물건 훔친거 보고한게 일 못한거였나...
하여튼 이 간부 좀 멍청하고 일도 못하고 원성이 자자했음. 이 일 이후로 신뢰고 충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짜증났음. 사람이 싫어지니까 그 사람 약점이 보이기 시작함.
이 간부 썰은 더 많지만 스압이 될까봐 일단 보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