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안타깝네요...
다른 게임을 예로 들어서 조금 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매크로를 어떻게 구분할것인지...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몇년간 씨름했던 기억들입니다.
글이 매우 기니 간략히 요약해드리자면..
- 매크로는 단속 방법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여 항상 단속 방법을 뛰어 넘습니다.
- 단속 방법을 더 복잡하게 하거나 더 집요하게 만들 수록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선량한 유저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 단속 방법이나 판단 기준등이 유출되면 (혹은 공개되면) 당연히 그걸 피해갑니다.
- 점점 매크로 사용자들은 일반 사용자들과 비슷하게 코스프레를 하며 경계선을 애매하게 만들어 제재를 피해갑니다.
- 결국 단속하는 쪽에서는 큰 원칙을 세울 수 밖에 없어집니다.
- 결론적으로, 동전을 키보드에 박아넣는 행위도 매크로 행위이고 제재받을 사유입니다.
군주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있었습니다가 아닌 아직 서비스 중입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죠)
rpg에다가 사회, 정치, 경제, 역사라는 골치아픈 컨텐츠를 넣은 아주 재미난 게임이죠.
단순 사냥은 평범한 rpg와 비교 했을때 그 급이 떨어지지만 그 외에 있는 사회시스템, 경제시스템, 정치시스템은 다른 단점들을 커버하기에 충분한 게임이었습니다.
재미난 시스템 중 하나가 '정치'였는데요.
정기적으로 서버 유저들이 투표를 통해 서버 대표 유저인 '군주'를 선출하고 그 군주는 휘하 6조판서(장관)을 임명하여 서버 정책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6조판서 중 형조판서는 범죄를 담당했는데요, 형조판서 휘하에 '포교'(경찰)을 임명하여 그 권한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비슷한 시스템이 많지만 당시만해도 생각하기 어려운 시스템들이 있었습니다.
군주나 형조판서는 죄에 따라 형량을 정할 수 있었고 그 형량에 따라 몇시간씩 해당 사용자를 감옥에 투옥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가령, 사냥터에서 매크로로 사냥을 했다! 라고 적발이 되면 2시간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으며 추가적으로 운영팀에 신고를 하여 제재를 먹였습니다.
게임 내에서 사기를 치다가 걸리면 감옥에 수감되었고, 욕설을 하다가도 수감되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반대 세력을 아무 이유 없이 감옥에 가두기도 하였고 이러한 내용들을 취재하여 기사화 시키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
얼마나 매크로를 잘 잡아내어 사냥터를 깨끗하게 만들고, 얼마나 공정하게 판단을 내리느냐는 그 정부(군주)의 업무평가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이 신경쓰는 업무였고 또 더 열성적으로 매크로 유저들을 잡으러 다니는 열혈포교들도 많았습니다.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매크로 적발 -> 수감의 과정이었습니다.
1. 초창기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매크로의 패턴은 한결같았죠. 화면 중앙에 있는 자신의 케릭터로부터 마우스를 원 모양으로 회전시킵니다.
그 범위 안에 몬스터가 없으면 조금 더 큰 원을 그려서 회전시킵니다.
그러다보면 몬스터 위에 마우스 커서가 올라가게 되고 커서 모양이 바뀌게 됩니다.
그럼 클릭(일반공격)을 하던가, 스킬을 사용하여 사냥을 합니다.
특정시간이 흐른 후 다시 탐색을 합니다.
간단하죠?
단속도 간단했습니다.
포교나 형조판서가 가서 주변에 가서 가짜몬스터(때리면 감옥으로 이동)를 풀어놓고 기다립니다.
매크로는 옳타꾸나 미끼를 뭅니다. -_-;;;; 감옥으로 슝~
혹은 사냥패턴을 잘 지켜보면 자신의 케릭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몬스터만 공격합니다.
그렇게 적발된 사용자들은 군주, 형조판서의 관리아래 이른바 무한수감을 시킵니다. (수감시간이 끝나 풀리자마자 다시 수감)
문제점도 나타났는데요, 실수로 클릭했을 경우도 감옥으로 이동되었기에 실수이냐 매크로냐를 어떻게 구분할지가 꽤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2. 첫번째 진화
간단한 패턴을 사용하는 매크로는 간단하게 잡혀들어갔습니다.
여기엔 게임 운영팀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매크로 유저들을 죄다 잡아들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열심히 단속했던 유저들의 힘도 컸습니다.
이제 슬슬 매크로가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몬스터 이름을 파악합니다."
매크로 사용자가 미리 설정해둔 몬스터 외엔 절대 공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몬스터 탐지 패턴도 케릭터 중심 원이 아니라 화면상 좌표를 랜덤으로 마구잡이로 찍는 방식으로 변경됩니다.
가짜몬스터를 수백마리를 풀어도 소용이 없고, 사냥 패턴을 옆에서 지켜봐도 좌표가 랜덤이니 일정하지가 않게됩니다.
그래서... 이젠 말을 겁니다. -_-;
- 안녕하세요?
- ...
- xxx님 안녕하세요?
- ...
- xxx님 매크로 단속중입니다 대답 좀 해주세요
- ...
이러자 또 다른 문제점들이 생겨납니다.
-> 대답해야할 의무가 있느냐?
--- 무슨 권한으로 다른 사용자에게 채팅을 하게끔 강요를하며 이행하지 않으면 감옥으로 수감을 시키는가? 에 대한 논란이 생겨버렸습니다. 한참 시끄러웠고 결국 서버 군주가 일종의 법전을 공표하고 서버 유저들은 이것을 따라야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됩니다. = 의무가 됩니다.
-> 채팅 거부, 귓말 거부
--- 실제로 번거로운것을 싫어하거나 연령대가 높은 유저분들은 채팅을 보지도 않고 번거롭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모든 채팅을 차단하는 것이죠..이럴땐 어떻게 할것이냐? ...를 놓고도 한참 시끄러웠습니다.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채팅으로 된 채팅 방법으로 말을 걸거나 그냥 무작정 포교, 형조판서, 군주의 채팅을 무시하고 사냥만 하는 것으로도 매크로 의심이 되는 쪽으로 결론이 잡히게 됩니다만...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3. 또 진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번 내용은 간략히 적습니다만, 실제 이 내용들은 수개월~수년간 진행된 내용들입니다.
매크로 단속 방법과 판단 기준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 사냥 중이며 (패턴이 랜덤이니 그냥 사냥)
- 가짜 몬스터에 반응하지 않으며
- 채팅에 응하지 않고
- 거래창, 파티초대 등등 모든 창을 무시 (수락도 거부도 아님 그냥 무시)
...일 경우 매크로로 판단하고 수감을 시켰습니다.
자, 매크로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포교, 형조판서, 군주의 아이디를 파악하여 해당 사용자가 나타나면 "도망" 갑니다.
- 단속자가 6시 방향에서 올라오면 12시 방향으로 도망가는 패턴
- 단속자가 나타나는 순간 마을로 순간이동 후 잠수
- 단속자가 나타나는 순간 사냥 중지 (화면내에서 사라지면 사냥 재개
매크로 판단 조건 중 사냥중이라는 조건을 무시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심증만으로 수감했다간?
"누가 불러서 잠깐 자리를 비웠다"
등의 변명만 해도 할말이 없어집니다.
채팅에도 응답하기 시작합니다.
단속자 : 안녕하세요?
매크로 : 네 안녕하세요^^
이상하지 않죠? 두세마디 더 나눠보면...
단속자 : 안녕하세요?
매크로 : 네 안녕하세요^^
단속자 : xxx님 요즘 어떠세요?
매크로 : 수고 많으시네요 ^^
단속자 : xxx님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매크로 : 목요일이네요~
단속자 : 네 감사합니다
매크로 : 수고하세요~
뭔가 이상함을 느끼셨나요?
저 대답은 매크로가 자동으로 대답한겁니다. 질문자의 채팅 패턴을 파악해서요 ㅡ.,ㅡ
실제 비슷한 사례입니다. 중간에 요즘 어떠세요? 인데 수고많으시네요..라고하죠? 네 저건 패턴에 없으니 저렇게 나온겁니다.
실제 모 서버에서 오늘 요일이나 잘 익은 사과 색깔등을 묻는 질문등으로 매크로 단속을 하여 좋은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그러자마자 매크로에서 대응을 한겁니다.
이후 채팅을 통한 단속을 할때 더 복잡한 질문을 해야했는데, 결국 단속에 걸리는 시간만 더 많이 잡아먹게되어 업무만 더욱 과중되었습니다.
4. 최종진화
더욱 똑똑해지기 시작합니다. 슬슬 정치도 합니다. -_-; 매크로 따위가...
매크로 단속이 뜨면 어떻게 대응할지 고르는 '옵션'도 생기게 됩니다.
그냥 사냥을 중단할지, 채팅 대답을 자동으로 할지, 마을로 순간이동을하여 몇분간 잠수 후 다시 사냥터로 이동할지 등등
아주 영약한 옵션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단속은 점점 어려워지고 선량한 유저들이 피해를 보기 시작합니다. (단속방법이 복잡해지니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기껏 자기 시간을 투자하여 매크로 단속에 나서도 적발건수는 줄고, 유저들 항의는 많아지고(=정권 평가 하락), 자칫 잘못수감시키면 욕이나 먹고...
이젠 아예 유력인사들에게 매크로를 지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옵션으로 '모니터링'을 넣어주죠.
화면내에 단속자가 나타나거나 누군가가 채팅을 걸면 (단속자 아이디를 파악하니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부캐로 단속하기도 했음) 자동으로 대응하면서 스피커로 알람을 울려줍니다. 시간내에 사용자가 돌아와서 대응하지 않으면 잠수하거나 마을로 순간이동 해버립니다.
그리곤 나중에 돌아와서 "급한일이 생겨 마을로 순간이동한 후 잠수하게 되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참 쉽죠?
유력인사들도 하나 둘 매크로를 사용하다보니 멍청한 논리를 바탕으로한 다양한 논쟁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 내가 자동 사냥을 돌린건 맞는데, 모니터를 계속 보고 있었다. 키보드, 마우스에 손만 안댓다뿐이지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게 왜 매크로냐? 그냥 편리하게 한거다
- 솔직히 대부분이 매크로 사냥 하는데 그냥 어느정도 묵인하면 되지 않느냐?
-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것도 아닌데 왜 제재를 받아야하냐?
등등의 소리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서버내 이른바 유력인사들도 매크로 사용자로 지목받기 시작합니다.
매크로가 일종의 '정치적 세력화'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게임 컨텐츠에 정치라는 개념을 넣어 단속권한을 가진 군주를 선출 한다는 점에서 매크로의 정치세력화는 상당히 우려되는 현상이었습니다.
불행히도 몇몇 서버에서는 정체를 숨긴채(?) 정권을 잡은 매크로 사용 군주들이 자신의 케릭터들을 사냥터에서 매크로를 돌리다가 적발이 되기도 하고
군주 휘하에 있는 형조판서나 포교에게 수감당하는 (하극상?! 쿠데타!?) 일도 벌어지게 됩니다.
이후엔 저도 군대를 가고 뭐하고 뭐하고 하느라 군주와 멀어졌습니다만, 간간히 들리는 소식으로는 그 이후로도 매크로와의 싸움은 끝나질 않았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매크로 단속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단속 방법이나 제재가 되는 기준이 유출되면 매크로측은 당장에 조치를 취해버립니다.
(30분 이상 비슷한 패턴으로 사냥하면 제재? 20분만 사냥하고 5분쉬고 20분사냥하고...하는 식으로 패턴을 바꿔버립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 매크로로 판정되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거기에 대응하게 되면 다른 방법을 또 연구해야하니까요.
또 기준도 애매해집니다.
매크로를 켜놓고 자동 사냥을 시키되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 매크로 사용자가 아닐까요?
베오베에 간 글의 글쓴이분 역시 동전을 꼽아놓고 폰등으로 다른걸 하셨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런 행위가 pc 1대가 아니라 30대, 50대, 100대에서 했더라도 선량한 유저일까요?
해당 사용자가 이런 행위를 pc 1대에 하고 있는지 100대에 하고 있는지 게임사에서 기술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단순히 동전만 꼽아두었기에 매크로가 아니라 한다면, pc 100대에 동전만 꼽아두고 사냥시키면 매크로 사용자가 아닐까요?
형평성의 문제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같은 시간에 다른 "진짜 선량한 유저"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하나 몬스터를 잡고 있을때 옆에서 동전만 꼽아두고 만화보며 자동으로 사냥되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형평성에 맞다고 생각이 될까요?
사연은 안타깝지만 저는 제재받을만한 사유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