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고등학교 역사교사입니다.
이 글은 그제 제가 올라간 글의 후기입니다. 베오베까지 올라갈 줄 몰랐는데... 추천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후기를 올립니다.
참고로 어제 글은 아래 링크입니다.
http://todayhumor.paran.com/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8765&page=3&keyfield=&keyword=&sb= 1. 월요일 교무회의 시간이었습니다. 회의 중에 서거 소식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물론 꼭 해야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언반구 없는 것이 너무 섭섭했습니다. 전 자리로 돌아와서 내부 메신저로 저의 비통한 심정과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추모 동영상 세편을 전송했습니다. 대여섯 분이 추모와 위로의 글을 답장으로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 조례시간에 YTN의 추모 돌발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서 올라오셔서 창문으로 한참 지켜보고 가셨습니다. 나중에 부장 선생님께 들어보니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는 제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부장 선생님은 제 걱정을 하셨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노? 나도 슬프지만 자기 생각 먼저 해라." 고마운 말씀이셨지만 전 다시한번 절망했습니다. 그의 서거 앞에서도 저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구나. 착잡했습니다.
2.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을 거의 절반 이상 할애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와 죽음의 의미 그리고 추모 동영상 등을 나누었습니다. 입시에 진도에 바쁜 고3 수업이긴 했지만 이것이 진정한 한국근현대사 교육이라고 이야기하고 특별 수업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고,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반 아이들 중 세 명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내 2.28공원의 분향소까지 조문을 가겠다고 야간자율학습을 빼달라고 하더군요. 막을 명분이 없던 저는 두 말 없이 조퇴증을 끊어 주었습니다. 대구 보수의 도시, 아니 타 지역에서 수구꼴통의 도시라고 하는 이곳에서도 변화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변화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희망입니다. 그 희망은 올바른 역사교육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3. 2.28 기념 공원 분향소에 조문을 하러 갔습니다. 일과를 마치자마자 출발하여 6시 경에 조문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10여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 맞닥뜨린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과 수북한 담뱃갑들 눈물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한 없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8시에 조문했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시간을 기다려서 조문했다고 하더군요. 이 곳 대구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4. 저희 장모님은 대구 아줌마, 아니 이제는 할머니이십니다.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고, 이번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도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이야기 하시던 분입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텔레비전을 보시면서 그렇게 분노하며 안타까워 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더 큰 도둑놈들도 떵떵거리며 사는데……. 저 사람이 왜 세상을 등지나!" 지역감정 때문에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지지하기는 했지만(여기 사람들 대부분은 이명박이 좋아서 지지한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만이 그래도 몰락해가는 TK를 보듬어 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지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셨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슬퍼하던 중에 뉴스는 북핵문제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희 장모님이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그래 고마 핵 쏴뿌라. 다 터져 죽어삐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장모님이 안타까워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결이 우리 장모님에게 그렇게 큰 충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구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의 자결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