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고등학교 역사교사입니다. 올해는 고3들에게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기 시작한 첫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난 정말 한국근현대사라는 과목을 너희에게 가르치기 싫단다. 한국근현대사는 가르치고 배울수록 눈물과 비통이 더해지는 과목이기 때문이란다.” 불의와 부조리가 난무하고 자기 한 몸을 위하여 부정을 뻔뻔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은 버젓이 호위호식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3대가 고통 받는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사. 그것이 바로 제가 아는 한국근현대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로 세워야 할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나와 아이들이 함께 그것을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오늘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또 한번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힘든 사건을 만나고야 마는군요. 제가 초임 교직에 나와서 처음으로 내손으로 뽑은 대통령. 한 때 이 땅의 잘못된 역사를 종결하고 진정 국민의 입장에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 굳게 믿었던 개혁가. 그러나 지난 5년간 나에게 실망도 많이 안겨주고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 정치인. 최근에는 역시 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야유하며 폄하했던 전직 대통령. 그 분이 안타깝게 생을 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 스스로 바위에 올라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 과연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할까? 다른 사람도 아닌 노무현이? 정말 그 분이 그런 선택을 하셨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아니, 왜 그런 선택을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제가 학생들에게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칠 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살과 자결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자살은 ‘자살 [自殺] [명사]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음.’이라고 되어있고, 자결은 ‘자결 [自決] [명사] 1. 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라고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자살과 자결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잘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자살과 자결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자살은 사람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거나 우울증처럼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여 최후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모든 것의 끝입니다. 자살은 고통스러운 삶에서의 탈출이며,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길입니다. 어떠한 문제도 잘못도 죽음 이후에는 책임질 필요도 해결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이 길을 사람들은 자포자기 하는 마음에서, 또는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맺기 위해서 선택하곤 합니다. 저는 일본의 무사(사무라이)들이 씻을 수 없는 실책을 저지르거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이러한 자살의 예라고 생각합니다.(지금도 일본의 고위층 중에는 회사나 집단의 책임을 홀로 짊어지고 자살로서 모든 것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일본의 국화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단번에 지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인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결은 스스로의 결의와 지키고 지조를 세상에 보여주는 최후의 방법입니다. 불의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 그러나 결코 굴복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생명을 던짐으로써 세상에 결연한 뜻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인 것입니다.(물론 자결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로서 개인적으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약소국의 설움을 받았던 우리 민족은 이러한 자결로써 최후의 싸움을 펼쳤던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러한 자결은 낙심하고 절망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국민에게 신망을 받는 한 지도자의 자결로 민족이 하나로 단결하여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섰던 역사는 우리에게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살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한다면, 자결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모든 것이 잊히길 바란다면, 자결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사람들이 기억하여 그것을 딛고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길 원합니다.(우리의 국화는 무궁화지요. 무궁화는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함이 없는 꽃. 그것이 끈질긴 우리 민족성의 상징이라면 너무나 국화를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아~,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에서 잔멸하리라.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살 수 있는 법인데,
여러분은 왜 이것을 모르는가.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과하노라.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 여러분을 돕고자 하니
우리 2천만 동포 형제들은 천만배로 보답하여
마음을 굳게 먹고, 학문에 힘쓰며, 일심협력하여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몸도 저승에서 기뻐 웃으리라.
아~, 실망하지 말라.
우리 대한 제국 2천만 동포형제에게 이별을 고하노라"
이 글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 민영환이 자결하면서 남긴 유서입니다. 이 글로 인하여 을사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나 조선 민중이 죽지 않았음을 일제에게 보여주었지요.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보낸 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고 정미조약이 맺어지면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됩니다. 이 때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장으로 있던 박승환은 병을 핑계로 해산식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군대해산의 명을 듣고 분개하여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애석함이 없다"(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대한제국만세'를 외친 후 자결했습니다. 그의 죽음에 분개한 대한제국의 군인들은 의병 전쟁에 합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미의병입니다.
1970년 11월 13일 피켓 시위를 벌이기 직전에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을 당하게 되자 전태일은 분신을 감행, 화염에 휩싸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였습니다. 세상이 관심 가져 주지 않은 한 노동자의 죽음은 이후 노동자들의 각성을 촉구하여 한국 노동운동의 효시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사에도 큰 족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적에 기득권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유대인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모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었지만 완전한 참 인간으로서 자신의 죽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고,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변했다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최후가 어떨지 뻔히 알면서도 그 잔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그의 말에 스스로의 죽음을 결정한 굳은 의지가 담겨있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제자들에게 암시했던 대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야 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의인으로서 극악무도한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인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의 죽음은 바로 세계 제1의 종교 기독교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재도 비록 기독교도들이 많은 비방을 받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만은 더럽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벼랑 위에서 목숨을 던지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신문기사를 보니 한 의사분께서 자살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이기적 자살(사회집단에 강하게 융화되지 않는 사람들의 자살로서 사회적 유대가 끊겨져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지지를 잃음으로써 고립감, 소외감에 빠져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 이타적 자살(사회집단과 지나치게 융화되어 사회를 위해 의무감으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일본 '가미가제' 같은 것), 무통제적․무규범적(사회에 대한 적응 혹은 융화가 차단되거나 한꺼번에 와해됨으로써 행동의 일상적인 기준을 따를 수 없을 때) 자살로 규정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무통제적․무규범적 자살로 추정하였더군요. 이것은 그분의 해석입니다. 20세기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서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 역사가의 해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러나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자살을 하신 것이 아니라 자결을 하신 것이라고... 그리고 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자살이 아닌 자결로 완성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라고... 그분은 이제 자신이 하실 수 있는 마지막 싸움을 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대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보내드리고 시간 속에 묻어버린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는 자살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때, 더 이상 자살이 아닌 자결이 될 것입니다.(노무현 대통령이 완전무결한 인간이었다거나 그의 행적이 완벽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는 전설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위인들도 처음부터 전설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생물학적으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라는 옷을 입고 전설적인 영웅이 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는 전설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이미 전설입니다. 전설로서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부활할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많은 사람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비록 제국주의 일본의 무력 앞에 무기력하게 국권을 빼앗기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을사조약 거부와 헤이그 특사 파견을 통해 최선을 다하여 저항하였으며, 마지막까지도 망명을 통한 독립운동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고종의 국장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은 조선 민중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망국의 설움에 망국의 마지막 국부를 억울하게 잃은 민중의 설움은 가슴속에 타오르기 시작하였고, 탑골공원에서 외친 독립 만세의 외침은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3.1 운동이라는 전 민족적 항쟁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3.1 운동은 일제의 폭압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그로 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천명하였으며, 일제도 기만적이기는 하나 무단 통치를 버리고 문화 통치라는 유화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6년 후 우리 민족은 마침내 독립은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래의 왼쪽 사진은 대한문 앞에서 고종을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잘 아시다시피 같은 장소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을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모습입니다. 90년의 세월을 넘어 이 두 장의 사진이 오버랩 된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일까요?
내일도 저는 학교로 출근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현재의 우리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아직은 좌절과 절망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가 만들어갈 상식과 정의의 역사, 꿈과 희망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하여 열심히 역사를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자결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오늘을 절대로 잊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p.s 동네에서 노인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더 많이 해 처먹은 사람들도 있는데... 쯧쯧.” 게다가 한 전직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꿋꿋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보 노무현. 전부 다 그렇게, 그렇게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감고 사는데. 당신만은 그렇게 사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영국 더 타임지는, “미스터 클린 이미지로 당선된 노대통령이 솔직함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보도하면서 "정말 부패한 사람들은 부패와 함께 살아갈 수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사실과 타협할 수 없는 개혁운동가였다. 범죄자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달고 살지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기사를 타전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이 바로 그런 바보였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마음 아파하면서 애끓는 추도의 물결을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끝까지 믿어주지 못하고 당신이 가신 이후에야 이렇게 당신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군요. 이제 고통없는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