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때문에 경제가 이 모양이다'라는 푸념을 해대고 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국가 전체로 볼 때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 전 대구 카톨릭대 교수는 만나자 마자 '한국 사회가 대단히 큰 위기에 빠져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산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인식을 국가나 자본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지금 한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국가안보주의, 경제제일주의, 가족보장시스템 이 세가지에 토대하는 한 대한민국의 파산은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박정희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국가주의 + 경제제일주의의 결합을 해체하지 않는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없다는 것이다.
2001년에 나온 '알몸 박정희'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주목을 받으면서 박정희를 분석하고자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전 의장이 휴가때 들고간 책의 목록 중에 '알몸 박정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책을 왜 들고 갔느냐?'하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최상천 교수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만약 그러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15년 이상 후퇴하게 된다. 지난 미국 대선때 랄프네이더를 지지했다가 이번 대선에서는 부시 낙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마이클 무어와 같이 자신의 책이 박근혜 대통령을 저지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는데, 최상천 교수는 자신의 견해를 열정적으로 피력했다. 때로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의 충격적인(?) 얘기들도 있었는데, 나름의 근거를 가진, 그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해볼만한 견해들이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지 - 어떤 걸 근거로 위기가 온다고 보십니까? 최 - 문제는 이렇거든요. 지진이 올때 쥐가 움직이는 걸 보면 안다고 하잖아요. 그 사회가 어디로갈건지에 대한 어떤 징후들은 나타나거든요. 그 징후들이 지금 굉장히 위험한 징후들이라는 겁니다. 위험한 징후들이라는 건데, 예를 들면 임진왜란때 징후가 있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그 징후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수신사가 갔다 와서 정반대의 보고를 하고, 그 다음에 전혀 대비를 안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가 7년 전란으로 간거거든요. 진짜 나라 망할뻔 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개항때 또 새로운 위험신호가 왔잖아요.
그럴 때 어디로 가야 되느냐, 쇄국주의로 가서 될 일은 아니거든요. 여하튼 약간의 진통의 과정은 불가피했겠지만, 문명개화로 가야되는건 틀림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게 가지를 못했거든요. 설사 갈려고 했다고 해도 일본 앞잡이로 그리로 간거거든요. 갑신정변 같은게 그렇죠. 그 다음에 일제시대때 독립운동이 완전히 파벌 중심의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독립운동만큼은 파벌 중심으로 하면 곤란하잖아요. 임정이라든지 하나의 통합기관을 가지고, 임시정부 형태가 되는게 가장 바람직하죠. 지금 와서 '임시정부의 포용력이 부족했느냐' 이런걸 가지고 따지자는게 아닙니다. 같은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하더라도 통합노선을 취하기 보다는 완전히 따로따로 였거든요. 이런 어떤 파벌 중심의 각개전투식 독립운동이 결국 전후 문제에 있어서 분단으로 이어지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분단에 미국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다음에 그 분단에 이승만과 김일성이 편승했거든요. 편승해서 전쟁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근현대사를 볼 때 이 과정은 최악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악의 역사를 만든 원인이 지금까지는 대체로 외재적인데 있었다고 하면 (70% 이상 외재적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지금은 그 원인이 70% 이상이 내재적인데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더 위기를 느끼는 이유입니다. 왜 위기가 왔느냐 하는거거든요.
대한민국의 핵심을 세가지로 정리하라면 저는 첫째로 국가안보주의를 꼽습니다. 사실은 이것은 잘못된거거든요. 국가의 존재 이유는 그 구성원들의 안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 구성원들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국가안보주의라는 건 애초에 왕조적인, 파쇼적인 발상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 경제 제일주의 있잖아요. 무조건 벌고보자, 성공하고 보자는 건데, 근데 그게 가치관을 완전히 전도시켜버린거거든요. 국가안보주의도 가치관 전도지만, 이건 뭐냐하면 경제성장이나 발전이라는 것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과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수단이지, 그게 목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게 목표가 되어 버리고, 사람들이 동원 대상이 되어버린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 사회 사람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겠어요? 오직 가족만이 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은 이미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해요. 그러니까 이 체제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기보다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게 세 번째 핵심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독재정권이나 민주정권이나 차별이 없는거예요. 독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바뀌어서 말하자면 자유는 얻었어요. 말할 자유, 행동할 자유, 데모할 자유 이것은 얻었어요. 그렇지만 그뿐이예요. 사람들의 경제적인 삶, 그건 가장 기본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60%나 생기고, 그나마도 거기에서 탈락한 사람들,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갈 수 있는 것이 자영업뿐이잖습니까? 자영업이 경제활동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박터지는 무한 경쟁이 될 수 밖에 없거든요.
열집중에 몇집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어요. 요새 되는건 간판 장사 밖에 없다고 하잖아요.(웃음) 그러니까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긴다기 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거부반응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화해서 좋은게 뭐 있냐'는 탄식이 나오는 겁니다.
비정규직으로 되고, 그나마도 탈락하고, 자영업해서 쩔쩔매고, 사교육비 늘어나고, 400만 신용불량자 생기고, 농민도 죽을 지경이고, 결국 누구를 위한 민주화냐는 말입니다. 제가 볼때도 진짜 수혜층은 1%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1%는 거대재벌, 재벌도 보통재벌이 아니고, 5대재벌 정도 되야 하구요. 그 다음에 서울대학교, 연고대까지 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 두 그룹 이외에는 민주화를 통해서 이득을 본 계층이 없어요. 이건 굉장히 심각하거든요. 최소 70% 이상이 민주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거나, 또는 피해를 입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 정도가 아니고, 강렬한 거부 내지는 분노가 일어나는 겁니다.
지 - 저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병행하는데서 오는 괴리감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 - 시장경제는 필연이라고 봐요. (이건 대담에서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 근데 시장경제도 세가지 형태가 있거든요. 자유시장경제하고, 사회적 시장경제하고, 이건 유럽형입니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이 뭐냐하면 공동결정제도거든요. 물적 교환장소로서의 시장은 어디나 자유시장이예요.
그런데 시장에 가장 중요한게 기업 아닙니까? 기업의 구성과 운영과 권리형태가 어떤가에 따라 시장형태가 다르거든요. 자유시장경제하고, 사회적 시장경제하고, 중국식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대체로 이 세가지 형태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시장경제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인본적 시장경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그대신 이렇게 하면서도 개인한테는 홀로서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 속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볼때는 절대로 10%가 안 넘어요. 일류대학 나오고, 영어 술술 잘하고,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는 겁니다.
지 - 에리히 프롬이 얘기한 것처럼 자유는 있는데, 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없으면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되는 현상이 생길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파시즘에 기댄다든가 하는. 최 - 그게 박정희 향수 정도로 갔다가 박정희 이데올로기로 가는 겁니다. 박정희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뭡니까? 국가주의 + 경제제일주의의 결합 아닙니까? 그런 사고가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민주화한다는 언론들도 그렇게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꼬집은게 뭐냐하면 KBS 방송프로그램 보면 '출산력이 경쟁력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이 자식을 낳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것을 출산력으로 보고, 이제 누구의 관점입니까? 부모의 관점에서는 절대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
철저히 국가적 관점이거든요. 이런데서 탈피를 못하고 있어요. KBS조차 이지경인데, 이건 한겨레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인식을 사람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끊임없이 주장하는게 그건데, 제 얘기를 사람들이 제대로 안듣습니다. 제대로 듣는 사람이 제 생각에는 별로 없어요. 민주주의의 핵심철학이 뭡니까?
개개인이 인격적 독립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출발적 철학이거든요. 그러면 이런 국가적 관점이라는게 얼마나 잘못된 반민주적이고, 파시즘적인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 이해가 한국 사회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혀 없어요.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 -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황국신민의 준말인 국민이라는 말도 나라사람이라고 바꿔야한다고 주장하셨고, 출판사 이름도 사람나라로 정하셨는데요. 최 - 그냥 사람, 사람들이라고 하면 돼요.
지 -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 자체가 사람들을 자원으로 보는 태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최 - 문제는 한국 사람들이 개인적 홀로서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가족만이 버팀목, 보장시스템이 되는데, 그나마도 가족의 상당부분이 파산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이 자살하는 것도 있고, 범죄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소수고, 대체로 세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하나는 한국은 미래가 너무 불안한 사회라고 해서 떠나자는 겁니다. 떠나기 하나, 둘째로 '고생은 내 대에 끝내자. 미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낳기로 나타나는거죠. 출산율이 2002년에 1.17이라는데, 지금 떨어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거든요.
내년쯤되면 한명 이하로 떨어지리라고 봅니다. 올해 이미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통계청이 작년도 것을 발표하지 않았거든요. 통계에 나와 있는데, 발표를 안했거든요. 1.19명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는데, 제가 볼때는 아니예요. 2002년도에 출산이 47만명이예요.
그런데 1.17명이예요. 그런데 작년에는 삼십몇만명이예요. 그러면 1.1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얼버무리고 있거든요. 이런 정보가 좀 더 확산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면 지금부터 낳는 아이들은 피박세대라고 하는 그런 인식이 금방 확산될거 아닙니까?
그러면 출산율은 더 떨어지거든요. 형편이 안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외국나갈 형편 안되면 안낳기를 하는 겁니다. 이민을 떠나고 싶은 심리적인 이민현상이 제가 볼때는 70% 이상이거든요. 여건이 안되고, 기회가 안되서 그렇지, 기회만 오면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 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로또심리하고, 10억 만들기입니다.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이 돈 밖에 없다는 것을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잘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벌기에 환장하는 겁니다.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겁니다.
가장 신용이 있어야 될 곳 중의 하나가 금융기관인데, 지금 개판이거든요. 금융기관에 앉아서 돈빼먹고 도망가는 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총체적 부실로 가는거예요. 한국 사회가 국가안보주의, 경제제일주의, 가족보장시스템 이 세가지에 토대하는 한 대한민국의 파산은 막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2030년경에는 천만명 이상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유지될거라고 봅니다. 이미 유엔에서 그런 지적을 했어요. 뉴욕타임즈도 그런 얘기를 했구요.
지 - 선생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최 - 있죠. 있는데. 답답한게 그런 점이예요. 한국에서 문제의 주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방식이 너무나 논쟁적이고, 투쟁적이고, 현상매몰적이예요. 편나누기고. 그래가지고는 안되거든요. 그건 그냥 패싸움하는 거예요.
해방 이후 패싸움하는 것하고, 지금 패싸움하는 것이 뭐가 다르냐는 생각이 들어요. 한차원 높아야되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은 이래요. 핵심이 뭐냐하면 국가안보주의를 사람안보주의로 바꿔야 된다, 핵심은 그겁니다.
'사람안보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어떤 시스템을 갖춰야 되느냐' 하면 저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그 나라 사람들의 홀로서기를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국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개혁해야될 국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홀로서기에는 크게 세가지 영역이 있는데, 우선 생물학적인 홀로서기, 건강해야되니까 건강보장 시스템을 갖춰야 되고, 두 번째로 사회적 홀로서기인데요. 이건 사회에 나가서 자기의 지적 능력이나 기술을 가지고 홀로서기를 해야되거든요. 이건 교육을 통해서 해야되요. 그 다음에 경제적 홀로서기는 직업과 재산문제인데, 이것은 대체로 직업 네트워크, 직업도 네트워크화해서 국가가 네트워크를 관리하면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 일자리가 생기면 연결시켜주는 시스템을 갖춰야 돼요.
그 다음에 재산형성을 위한건데요. 저는 사유재산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남을 괴롭히게 되면 곤란하지만. 그 다음에는 연금제도 이 세가지를 통해서 경제적 홀로서기 시스템을 갖추고, 자기가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국가가 도와줄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홀로서고도 남는 부분을 국가가 좀 받아서 홀로서기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면 되요. 이 홀로서기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서, 시장경제는 오히려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돼요. 저는 그점에서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해서 동의해요. 우리나라가 이게 참 큰 일인데,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실랄하게 비판해야되지만, 미국이 가진 장점은 볼 줄 알아야 되거든요. 미국의 부자들은 자기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만 빼면 사회적 기부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빌게이츠의 경우 지금 재산이 700억달러쯤 되요. 그 중에 자기 외동딸한테 줄 천만달러 이외에는 전부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0.1%도 안돼요. 그러니 우리 사회도 이런 시장경제, 죽기 살기 시장경제보다는 개인시장경제로 바꿀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얘기냐 하면 사람들의 문화가 중요한데, 그 게임에서 이긴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쁘고, 그래서 거기서 얻은 것은 사회적으로 귀속시키는 것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그건 지금 얘기하지 맙시다. 되게 깊이들어가야 되는 얘기니까. 그런 정도로 바꾸게 되면 한 사회가 적어도 넘어져가지고, 생사가 위태로운 사회는 넘어서고, 일하다 넘어지면 무릎 좀 까지는 정도로 되서 금방 재기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으로 가도 자유시장경제는 자유시장경제로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런 기본구상을 가지고 있는데, 제 얘기는 국가안보주의로부터 사람안보주의로 전환해야 되고, 그 전환의 핵심 시스템을 세가지로 얘기했습니다. 홀로서기 지원시스템인데, 생물학적 지원시스템, 사회적 지원시스템, 경제적 지원시스템입니다. 이렇게 될 것 같으면 한국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사람들이 굉장히 신바람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면에서 굉장히 확신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진 성향이 있거든요.
지 - '국가안보주의'에서 '사람안보주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그런 부분들이 아직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데,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 파병 문제만 하더라도 국가안보에 대한 맹목 내지는 강박관념이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최 - 파병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제가 볼때는 파병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 안하고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부시 때문에 그런게 아니고, 북폭할까봐 그런 것도 아니고, 북폭 당분간은 못합니다. 정권안보 문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내에서도 저렇게 탄핵을 당할 정도인데, 미국까지 등지면 못견딥니다. 어떤 정권이든지 그런 상황에서 파병하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안돼' 하지만 속으로는 이해합니다. 노무현이 그 상황을 못견딥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 - 그건 많은 논의를 해야될 것 같은데, 어쨌든 개혁진보진영에서는 원칙적으로 파병 반대의 목소리를 계속 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 근데 그거는 공식적으로는 그렇구요. 비공식적으로 이해하는 면은 있을 수 있는거거든요.
지 - 예전에 '인물과 사상'과의 인터뷰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훨씬 시급한 것이 '박정희 청산'이라고 하셨는데, 박정희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최 - 문제는 그래요. 박정희 청산을 하는 것은 친일파 청산보다 훨씬 어려워요. 어렵기도 하고, 본질적이기도 하구요. 독재 체제를 청산한다고 박정희 청산이 되지를 않아요. 박정희가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이뤘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으니까, 그건 잘 안부숴진다는 말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니 뭐니 아무리 욕해도 그건 잘 안부숴집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박정희에 대한 향수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핵심을 우리가 집어내야해요. 한국 사람들이 홀로서기가 힘드니까 어디로 돌아가고 싶겠어요? 집단주의로 돌아가고 싶은거예요. 집단주의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리가 대구 같은데서 많이 보이는데, 전두환이 나랏돈을 도둑질한 것이 들통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두환이 굉장히 잘했다고 했어요.
이미 감옥에 가 있는데도 잘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깡패가 있었나. 물가가 올랐나. 서민살기에 참 좋았다'고 했거든요. 그 사람들한테는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생존의 가치거든요. 그걸 민주주의가 하나도 보장해주지 않는거예요. 먹고살만할때는 독재체제는 나한테 엄청난 고통이고, 그리로 돌아갈까봐 겁나요.
그런데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때는 집단주의가 보장만 해준다면 그게 좋은겁니다. 군대 예를 들어볼까요? 군대에는 집단주의적 규율이 있잖아요. 이 규율만 따라간다면 뭐든지 보장됩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그 다음에 집단주의가 가진 힘이 뭐냐하면 이런겁니다.
누구든지 고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병장이 될 수 있고, 내무반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잘난 놈이 독차지 다 해버리고, 힘없는 놈은 올라갈라고 해야 올라갈 수가 없어요. 과연 어느게 민중한테 더 열린시스템이냐 하고 생각하면 민중들의 생각은 좀 다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울대학교 나오고, 자기 딴에는 좀 잘나가는 사람들이 민주화운동 열심히 했지, 민중은 안한겁니다.
민주화가 그 사람들을 위한 자유화가 아니라 민중을 위한 평등화, 연대화까지 포괄하는 그런 쪽으로 전진해야 돼요. 그렇지 않은한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어요. 민중은 오히려 그 서열주의 속에서 더 편할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장유유서 같은 서열주의는 누구한테나 열려있는 제도잖아요.
지 - 직장에서도 오래되면 승진하는... 최 - 그런데 이 민주주의 시스템은 약자들의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면도 있어요. 이해 가시죠? 거기에 대한 박탈감도 큰거예요. 잘난 놈들 너희끼리 데모하고, 뭐하고 다해라, 꼴도 보기 싫다는 이런 느낌이 대중들에게 굉장히 많아요. 지금 심각합니다.
지 - 이런 부분들이 모순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은데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는 친일파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일지 몰라도 모든 생각과 의식이 철저히 일본화된, 그것도 천황주의자·군국주의자가 된 만큼 '소프트웨어'는 '일본인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일본인'이다"라는 말씀이신데, 사실 좀 충격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친일행적, 남로당 경력에 대해서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친일파와 빨갱이는 그렇게 싫어하면서 박정희는 그리워하는 이 모순은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요? 최 - 그게 핵심은 '돈이 최고다'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진짜 이데올로기가 실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움직이고,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있고, 그 중에서 딱 하나를 꼽으라면 '돈이 최고'라는 겁니다. 황금만능주의예요. 그 이데올로기 때문에 박정희가 친일을 했건, 성폭행을 했건 상관없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룬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게 모순이 아닌 거죠.
지 - 예전에 생각이 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던 그 시절에 박정희는 만주군 인맥 때문에 목숨을 구했지 않습니까? 이데올로기보다도 줄이나 빽이 더 좌우하는 세상이었는데, 그래서 돈과 빽에 대한 한국인들의 과도한 추구가 그래서 생긴 것 같은데요. 최 - 그것도 경제제일주의가 현재적인거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그때 당시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조선사람이 일본 사람 다 됐다'고 하거든요. 독립운동도 없고, 거의 일본사람이 다 된거예요.
지 - 그러고보니 삼일운동 이후에는 국내에서는 별다른 저항들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최 - 광주학생운동 같은 것도 소수의 학생들이 했던 거구요. 실제로는 독립운동이 거의 소멸된 상태였거든요.
지 - 그러다보니 김두한이 독립투사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웃음) 최 - 일제시대에 한국인 거의 전부가 침묵했잖아요. 독재체제때 소수의 사람들만 투쟁하고 침묵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정체성이 뒤집히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박정희한테서 뭔가 있다는 것을 찾으려는 거예요. 자기 문제예요. 박정희 문제의 핵심은 자기 문제이기도 하고, 홀로서기에 어려운 사람들이 집단주의 향수를 가질 때 박정희를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는거거든요.
집단주의로 되돌릴 수 있는. 박정희 향수라는 것이 사실은 민중의 S.O.S 신호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진짜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면 사람들도 안돌아가요. 뭘로 알 수 있냐고 하면 박정희기념관 짓는다고 신문에 큼지막하게 광고내고 했거든요. 그런데 돈내는 사람들이 없어요. 진짜로 박정희 숭배하는 사람은 없다니까요.(웃음)
지 - 인터넷에 서평을 보니까 "박정희 기념관을 내가 낸 세금으로 짓겠다는 자들에게, 박정희를 근대화의 아버지로, 배고픔을 면하게 해준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칠레에 삐노쉐 기념관이 있는지, 에스빠냐에 프랑코 기념관이 있는지, 러시아에 스탈린 기념관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도 그 나라에선 근대화의 아버지들이다"라는 글이 있는데요. 최 - 그건 제가 늘 얘기하는거죠.
지 - 예전에 신동아에 재밌는 글이 실렸습니다. 진중권과 조갑제와 박정희가 가상으로 한 대담인데, 진중권은 거기서 박정희에 대해 '제3세계의 그저 그런 독재자'라고 평가했고,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고 생각하는 조갑제조차 박정희의 '내가 다시 살아온다면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당신의 과거는 높이 평가하지만, 지금 돌아온다면 지지하게 않겠다'는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의 공과를 비교적 공평하게 평가하자고 하는 강준만은 '경제도 망친 독재자도 많다'는 식으로 박정희의 경제발전공로를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편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잊게 해준 영웅으로 그리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 - 그거는요. 이런 면이 있어요. 진짜 배고파본 사람들의 심정은 우리가 헤아리기 어려워요. 감옥에 간다든지 하는 사회적인 이유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가난해서 그런 사람들한테 밥 먹게 해준 사람은 그 놈이 어떤 놈이든지 고마운겁니다. 그건 너무 1차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은 나무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존경할 수 있다는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박정희를 무덤에서 끄집어내서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거거든요. 문제는 이래요. 진짜 좋은 나라가 되면 박정희 하면 몸서리칠거예요. 진짜 좋은 나라되면.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의 독재하에서 신음하던만큼 지금의 우리의 삶에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 -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부분도 있을 거구요. 최 -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대한 기대치는 선진국 수준의 어떤 것을 요구하는데, 3만불 정도의 삶의 질을 요구하는데, 실제로 한국은 5,000불 수준의 시스템이거든요. 이런데서 오는 격차가 엄청난 것 같아요. 사람들의 불만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키우는 것일 겁니다.
지 - 오늘이 마침 10.26인데, 그때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습니까? 최 - 너무 기뻤죠. 고대 앞에서 하숙하고 있을 때인데, 친구가 새벽에 '일어나봐라. 박정희 죽었단다' 그러는거예요.
지 - 많은 국민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까? 최 - 어떤 독재 체제하에서도 사람은 그래요.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자기의 환경에, 그게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자기 환경에 적응하는게 한 90% 정도 되구요. 거기에 반발하는 심리는 10%도 안되요.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때도 살아남고, 압제속에서도 견디고, 그냥 적응하고, 독재체제에도 적응을 하고 그런 겁니다.
저는 한 사회에서 대중의 힘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잘못된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사회를 선도한다고 할까, 먼저 나가는 역사적 엘리트라고 할까요. 그런 층이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중은 절대로 체제에 순응하지,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맑스 사관이 잘못된거죠.
지 - 이승만을 몰아냈던 대중이 막상 이승만이 하야할땐 눈물을 흘렸었는데요. 강준만 교수 같은 경우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이 있었지 않습니까? 최 - 그 양반 큰 역할을 했죠. 정보를 그만큼 열심히 제공한 것만해도 큰 역할이죠.
지 - 계몽이라고 얘기하면 대중들이 기분나빠할텐데, 나름대로 그 분이 한 역할이 굉장히 크구요. 대통령 두명을 만드는데, 이데올로그를 제공했던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굉장히 폄하되고, 심지어 '강준만은 끝났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물론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그런 목소리를 제대로 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지나친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한번 가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요. 최 - 그럼요. 그렇습니다.
지 - 반면 때로는 대중들이 자기들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최 - 대중은 대체로 열린공간에 있을 때 폭발을 해요. 대표적인게 월드컵때구요. 3.1 운동도 일정하게 공간을 열어준거거든요. 엘리트들이 대중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해야되요. 대중이 민중적 역량이 있고 어쩌고 하는 건 다 뻥입니다. 생존의 선상에 매여있는 사람들에게 그걸 기대하는 건 너무 지식인적인 발상입니다.
생존은 사람들한테 너무나 처절하고 절실한거예요. 그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기의 요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지식인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가 글쓰기를 하는 재미가 없어요. 요새는 글쓰기도 잘 안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써놓은 것은 많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사회와 너무 안맞으니까. 저는 한국 사회와 참 안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읽어보면 별 얘기 없거든요. '정말 사회를 깊이 들여다봤구나. 사회를 정신분석학적으로까지 들여다봤구나. 언어분석까지 했구나' 할 정도의 수준에는 전혀 못가거든요. 언어분석과 정신분석을 안하면 절대 깊이 못들어가요. 그런데 이런 얘기가 한국 사회에서는 주류들의 싸움하는 양식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써놓고도, 예를 들어 인물과 사상에도 보냈다가 파토가 된게 있거든요. '탄핵의 노무현의 작품이다' 그런건데, 쭉 지켜보다가 노무현이 탄핵당한 순간을 보니까 '아 이게 노무현의 작품이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걸 쭉 썼는데 게재가 안됐구요. EBS 수능 강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썼거든요. 원고가 한 120매 됩니다. 이런 것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그걸 잘한다고 얘기하니까 기가 차거든요.
그래서 실어볼까하고 오마이뉴스에 보냈거든요. 아무 대답도 없는거예요. 한국 언론들이 그렇게 무책임한지 몰랐어요. 못실겠다든지, 실겠다든지 얘기는 있어야할 것 아닙니까? 보름이 지나도 대답도 안하는 거예요.
지 - '모금운동은 고도의 감성사기극'이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요. 최 - KBS니 이런데서 하는거 모두 사깁니다. 사람들의 이성을 자극하지 않고, 이성을 일깨워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저렇게 감성적으로 해소해버린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게 자기의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거든요. 가난이 KBS의 프로젝트가 되어버려요. 가난한 사람들이 전혀 주체도 아니고, 그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갖고 노는 겁니다.
지 - 어려운 부분들이 뭐냐하면 그게 근본적인 변화를 막는 제스츄어임이 틀림이 없는데도 '안하는것보다는 낫잖아'라고 얘기할 때 대답이 궁색해 지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최 - 저는 처음에는 그거할 때 전화를 많이 했거든요. 요새는 일체 안합니다. 저런 식으로 하면 전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를 눈물로 해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이성으로 해결해야될 문제를 가로막고 있는거예요.
지 - '그러면 제도가 만들어질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거냐?'고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최 - 언론에서 계속 토론을 해야죠. '지금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사는 삶을 비춰줘야 되는 겁니다. 단칸방에 어떻게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의 삶이 한 사회적으로 조명이 되도록 해줘야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뭘 자극해야되는 겁니까? 이성을 자극해야되는 겁니다. 잘못 접근하는 겁니다. 그런 쇼를 하면 화가 나는거죠.
지 - 김재규를 '민주화운동 공로자'로 인정해야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 - 그 정도가 아니고, 저는 김재규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영웅이라고 봅니다.
지 - 자기의 어떤 의도와 관계없이... 최 - 왜그러냐 하면 남북의 박정희 체제, 김정일 체제의 핵심은 천황체제거든요. 이 체제는 그 당사자가 안죽으면 안끝나요. 북한이 보여줬잖아요. 자기 아들한테 넘겨줬잖아요. 그러니까 그 체제를 단절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죽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민중의 힘에 의해서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모멘트에서 나올 수 있는거지, 저는 일상적으로 민중이 하나의 법칙처럼 민중에 의해서 정권이 타도되고 그런 것은 예외적이라고 봐요.
지 - 그때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팔백만을 죽였는데, 우리도 삼백만을 죽이더라도 진압을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항간에 있었는데요. 만약 그렇게 진행됐다면 어땠을까요? 민중의 힘에 의해 독재정권을 타도할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최 - 그런 가정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고, 김재규가 죽이는 과정에서 얼마만큼 민주의식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연구해봐야될 과제라고 봅니다. 대체로 봤을 때 일정한 개인적인 연계는 있었던 것 같아요. 추기경이라든지 장준하 선생하고 연관되었다든지 이런 얘기는 많이 나오거든요. 연구되어야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죽인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겁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한가지 한국의 진보세력이 생각해봐야될 문제가 있습니다. 친북적인 것은 단호하게 단절해야 됩니다. 북한 체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아까 세미나에서 동국대에 있는 강정구 교수가 토론자로 나왔는데요.
강정구 교수가 '한국 전쟁도 달리봐야 된다. 미국이 남북을 분단시키지 않았으면 전쟁이 일어났겠느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당성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역사적 정당성이 있고, 정치이념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했는데요. '김일성은 역사적 정당성은 가지고 있으나 정치이념적인 정당성은 하나도 없다, 지금이 왕조시대냐'고 했습니다.
남쪽에서 박정희를 청산하는 것 못지 않게 북한에서는 김일성 청산이 제대로 된 사회로 가는 핵심적 과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정구식으로 얘기하면 정말 심각해요.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미국이 해방안시켜줬으면 아직 일본 밑에 있지 않냐'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의 한국의 좌파중 상당 부분이 민족주의라는 것에 매달리고 있는데요.
실제로 그 내용을 들여다볼 것 같으면, 제가 볼 때 솔직히 친북적인 부분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민족주의 이외에는 아무 대안도 없어요. 핵심은 민족이 아니고, 이 땅에 살고 있는 그 사람, 사람, 사람들이거든요. 민족으로 얼버무리고, 커버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박정희적 시각, 집단주의의 여러 가지 형태가 국가주의도 나오고, 민족주의도 나오는 겁니다. 민족주의가 유효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때는 반제운동들 뿐입니다. 그 이외에는 저는 민족주의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 - 아까 김일성을 청산해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사회에서 박정희를 청산하는 것보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청산하는 것이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요. 유니버시아드 대회때 북한의 소위 미녀 응원단들이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비맞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보고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 정서적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최 - 그 사람들을 유아로 만들었거든요. 유아로 만들어서 말하자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았어요. 주입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자기의 독자적인 견해도 없도록 만들었거든요.
저는 조선일보처럼 저렇게 나오는 것도 곤란하지만, 소위 민족주의쪽에서 나오는 그런 식도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보고, 진짜 개개인을 기초로 한 인본주의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에서 못벗어나니까. 북한사회는 개방을 하면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왜그러냐하면 저 사람들이 아무리 까막눈이고, 뭘 모른다고 하더라도 세계 돌아가는 걸 조금만 알면 정말 웃긴다는 걸 금방 느낄거거든요. 얼마나 웃긴 체제예요? 지금 북한하고, 미국이 우리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도 들어요. 북핵 문제 가지고 북미공조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거죠.
이걸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해도 한국에서는 제가 쓸만한 매체가 없어요. 왜냐하면 자유롭지 않으니까. 언론마다 자기 이데올로기가 있어요. 자기 이데올로기에 어긋나는 글이 나오면 다 싫어해요. 한겨레도 마찬가지예요. 미국과 북한이 북미공조를 어떻게 하냐 하면요.
재작년 10월에 캐리가 북한에 갔는데, 그때부터 북핵문제가 불거져 나왔거든요. 그걸 한겨레 신문 시론에 '한중일 평화 공조' 그래가지고 썼었어요. 동아시아가 평화공조로 가고 있었어요. 그걸 미국이 막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그러면 대결구조로 끌고가야 돼요.
그래야 미국이 개입할 수가 있어요. 그런 대결구조로 끌고가기 위해서는 북한이 나쁜 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평화공조 체제로 가면 북한은 얻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북한은 에디오피아 수준의 국가예요. 평화체제로 가면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핵이라도 가지고 있다고 해야 관심을 끄는 나라거든요.
그러니까 북한도 국제적 관심을 끌고, 국제적 자본을 유치하고, 확보하기 위해서는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게 훨씬 유리해요. 이래가지고 미국놈하고, 북한놈하고 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은 눈치챈거야, 그러니까 6자회담을 주선해서 자기 나름대로 주도권을 발휘하는거예요. 한국은 바보짓하고 있는 겁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한꺼풀, 두꺼풀 좀 벗기고, 이해하는게 우리는 굉장히 필요합니다.
민족주의자들은 북한에 대해서 욕만 하면 부르르 합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은 과하기는 했지만, 전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거든요. 노골적으로 지원해서 방송시간 늘이고 하는 건 문제지만, 북한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개입시킬 필요가 있어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서 북한을 견인할 필요가 있어요.
지 - 예전에 '이라크 평화법'인지가 나온 다음 이라크를 침략한 경우가 있으니까 북한 폭격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최 - 중동하고 북한하고는 다릅니다. 북한은 미국이 침략해서 먹을 게 없습니다. 나올게 없어요. 돈만 들어갑니다. 그리고 중국하고 3차 대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요.
지 - 하긴 미국이 이라크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게 석유때문일텐데요. 그게 아니고 순수하게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 많은 돈과 희생을 할리는 없을테니까요. 최 - 중국 입장에서는 한반도가 미국의 수중에 들어가는건 재앙입니다. 중국으로서는 엄청난 장애이기 때문에. 장애정도가 아니죠. 중국의 미래가 없으니까 절대로 용납안합니다. 리영희 선생 같은 분도 경향이 좀 그러니까. '중국 놈들은 대만하고 북한을 맞교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대만을 중국영토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미국의 북한공격을 용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런 식의 얘기를 하면 안됩니다.
저는 명확해요. 가장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입장, 사실은 민주주의적 입장입니다. 그 입장 위에서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민족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민족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