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무조건 내용에 대한 언급 많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꽉 채울겁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은 뒤로 돌아나가주세요.
보실 분은 스크롤해주시구요.
이쯤 내려 적어봅니다.
"빌뇌브는 필립의 꿈을 꾸는가"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영화로써는 리들리 스콧을 계승하고, 세계관과 주제의식은 원작을 계승한다 라고 총평합니다.
다들 이미 아시겠지만, 블레이드러너 2019의 원작은 필립.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였지요.
영화 초개봉이 1982년 인 것도 놀랍지만 원작이 1968년이라는 점이 사실은 더 놀랍습니다.
소설원작에서 데커드의 고민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거의 그 고민은 안한다에 가까워요.
그 고민을 해보라고 뒤흔들어도, 그 고민으로 연결되지 않죠.
데커드의 고민은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나누는 차이는 분명하지만 정말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안드로이드일 뿐인것인가에 맞춰져 있습니다.
다른 동료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퀀스가 제법 묵직하게 그려지긴 했지만요.
소설에서도 블레이드러너는 일종의 백정처럼 꺼려지는 직업으로 은연중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저놈이 안드로이드 퇴역시킨다고 사람 때려잡는 놈인지 알게 뭐야...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잖아... 정도의 인식이랄까.
게다가 원작에서는 명쾌하리만치 데커드의 정체를 완벽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반면 스콧의 2019는 볼수록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흐름으로 영상화되었죠.
바로 이 차이점이 영화와 소설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스콧 옹에 의해서 토탈리콜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과 같은 필립의 원작을 베이스로 하는 서구형 장자몽 영화가 이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이번 영화에서 빌뇌브는 2019 세계관을 충실히 계승해서 시각화시키고 있는 동시에, 원작의 세계관을 더욱 충실하게 재현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핵병기에 의해 대부분의 지역이 거주할 수 없게 된 세계관과 진짜 자연물이 엄청나게 희소한 가치를 갖는 시대관을 말이죠.
더구나 원작에서 수없이 언급되는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설정도 영화 초기 도입부를 통해 나타내고 있죠.
cccp가 살아있는 미래배경을 그대로 사용해서 더 반가웠어요.
그냥 초기 소비에트 이미지를 그냥 스쳐흘려버린 분이시라면 나중에 다시 한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더해 스콧의 2019 세계관이 보여주는 일본의 침공, 아시아 포비아(제팬 인베이젼, 아시아 인베이젼)을 그대로 계승한 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건 아마도 스콧의 2019에 대한 헌정에 가깝지 않나 싶구요.
차이점이라면 아시안 인베이전의 이미지가 거의 일본, 중국 일변도였다면, 이번 작품에선 한국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아졌다는 정도겠네요.
오히려 중국이 많이 지워진게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소설 원작과의 차이점을 하나 더 지적한다면 오프월드는 영화에서 이상향 비스무리한 느낌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원작에서 탈출한 안드로이드의 증언을 빌리면 그곳도 외롭고 황량한 살기 척박하긴 별다를 것 없는 세상으로 확실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도 있네요.
아, 여담이지만 필립의 원작을 보면 지구로 숨어든 넥서스6의 멤버 중 매우 높은 확율로 "한국식 명명"으로 추정되는 이름도 끼어있었습니다.
소설 원작에도 필리핀의 개고기 식문화 - 한국이 아닙니다. 필리핀입니다. - 라던가 68년에 이미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죠.
원작에 있는 넥서스6 중 한명의 이름은 "기철" 입니다.
하여튼, 비쥬얼로 구현된 세계관은 스콧을 계승하지만 테마는 오히려 원작자 필립의 계승자에 더 가깝습니다.
2049에서는 주인공이 레플리컨트로 자각하고 본인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죠.
여정을 통해서도 자신이 바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태어나 자란' 레플리컨트인가에 대한 혼란은 오지만, 자신이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은 단 한순간도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부 인물을 통해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를 더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빌뇌브의 작품은 스콧의 영상적 세계관 위에 구축한 필립의 철학을 더 직접적으로 계승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거에요.
소설에서 부터 이어지는 "도구"의 필요성과 위험성에 대한 언급은 타이렐사의 모토 "인간보다 더욱 인간답게"라는 슬로건으로 영화까지 연장됩니다.
소설과 2019의 세계관에서 동일한 대사는 레이첼과 데커드의 첫 만남 때 나오는 도구에 대한 대화인데요, 2019의 각본을 쓴 양반이 대단한게 그걸 타이렐사의 모토로 슬로건화 시켜 소설과 영화의 세계를 연결시켜 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테마는 이번 2049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원작과 영화는 다르지만 결국은 한 뿌리의 작품으로 연결되는 마법을 부렸다고나 할까요.
이에 더해 인간보다 인간성은 오히려 안드로이드 - 레플리컨트를 통해 그려진다는 점도.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 글로 적는 건 몇 번에 나눠 적어야겠습니다.
오늘은 2049를 보고 온 감상과 설레임, 감동을 담아 2049 얘기 몇 가지만 더 적어보려구요.
아마도.. 2019와 2049를 연결하는 넥서스8의 세력도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설정인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짐작하시는 것처럼, 인간 그 이상의 지위와 종으로써의 우월을 갖고싶어하는 혁명가가 월레스 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태어난 레플리컨트 2세를 새로운 정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으로써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하는 한 그룹이 더 있는 것 같구요.
블랙아웃 이후 지워진 DB탓에 오프라인의 자료에 의존해 세력을 규합하던 두 축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월레스가 경찰국장에 신분이 지워진 넥서스8을 투입해서 공권력까지 조정해가며 2세를 확보하려 하는거라면 이 그림도 맞습니다.
완벽한 인간의 감정과 수명을 갖는 넥서스8은 월레스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전세대의 거추장스러운 세력이기도 하고.
월레스사의 신모델이라면 경찰 국장까지 오를 순 없겠지만 신분이 지워진 넥서스8 이라면 안될 것 없지요.
월레스가 확보해 이용하고 있는 인간의 조직에 신분이 지워진 넥서스8이 있고, 그 중 하나가 LAPD 국장이라는 제 해석입니다.
결국 완벽한 컨트롤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제거한거고, 향후 월레스와 넥서스8의 대립도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국장이 K를 도망치게 방조한 것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감정선을 살피면 충분히 납득가는 전개가 됩니다.
아마 다음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자신 이외의 넥서스8을 제거하려는 월레스와 잔존 넥서스8 간의 투쟁 이야기도 틀림없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거기에 양념으로 월레스 사의 레플리컨트가 K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아를 찾고 인간성을 갈구하게 되면 그것도 괜찮은 스토리라인이 될겁니다.
진짜 하고싶은 얘기가 너무 넘쳐서 밤새 두드려대도 다 못할 정도네요.
오늘은 간략하게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인가에 대한 생각만 조금 풀어보고 마무리 하려합니다.
제 결론은 - 원작의 결론을 해치지 않으며, 스콧의 2019를 계승하는 작품답게, 아직은 알 수 없다.. 라는 정도에요.
2019에서 데커드를 레플리컨트로 보는 시각은 주로 레이첼과의 상호반응, 브라이언트 경감이 데커드를 보는 천시 또는 이질적인 시선, 레이첼의 이식된 기억을 단초로 하는 자신의 본질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에서 이끌어지는 결론입니다.
온전한 수명을 갖는 이식된 기억의 레플리컨트를 암시하기 위해 유니콘 꿈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얘기지만, 스콧옹은 당시 데커드를 레플리컨트로 생각하고 촬영했다하며 반면 해리슨포드는 인간이라 생각했다죠.
근데, 각본을 쓴 연출가의 의견은 좀 모호합니다.
원작은 확실한 인간이었구요.
반면 2019를 잘 보면, 레플리컨트는 모두 빛에 노출되었을 때 동공이 확실히 인간과 다르게 묘사됩니다.
보이트 캄프 검사를 받지 않으면 잘 모르는 설정이니, 아마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로써의 영화적 장치였겠죠.
그런데 빛을 정면으로 맞는 장면에서도 데커드의 눈은 한번도 동공이 다르게 묘사된 적이 없어요.
영화 초반 올빼미의 상징성도 원작과 이어지는 상당한 떡밥거리지만, 그것까지 쓰면 너무 길어질겁니다.
영화에서의 올빼미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의 "안구" 특징을 보여주는 중의적 장치였다고 전 판단합니다.
거기에 더해 레플리컨트로 보기엔 데커드의 피지컬은 너무 형편 없거든요.
보이트 캄프 검사의 모든 설문을 이해하고 인간과 레플리컨트로 구분하기 위한 수많은 지식경험을 직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레플리컨트라는 설정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지컬이 형편없는 - 무리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유니콘이 갖는 의미도 실낙원 하게 된 인간이 꾸는 유토피아의 꿈으로 읽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리 없는 낙원에 대한 꿈과 인간과 인조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을 직시하는 인간이 꾸는 이상의 표상으로써의 유니콘.
2049는 극단적으로 2019와 원작을 동시에 계승하고 싶어하는 빌뇌브 감독의 역작이었다 평가합니다.
딱 하나 아쉬운 건, 너무나 노골적으로 차기작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겠습니다만... 뭐, 2049도 우려를 날렸으니 또 다른 이어지는 얘기를 기대해보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일입니다.
2019에서 딱 하나 진짜 아쉬운 부분이 "새"에 대한 원작무시적 설정인데요... 이건 너무 길어져서 다음을 기약하려 합니다.
이 얘길 하는 이유는, 2049에서는 - 딱 한번 봤으니 확신은 못하지만 - "새"가 나오지 않습니다.
2019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마치 오우삼을 연상하게 될 정도로 새가 날아다니거든요.
원작자의 세계관에서는 새가 가장 먼저 멸종한 생물종입니다.
이게 바로 빌뇌브가 2019의 스콧과 필립을 동시에 계승하려 욕심을 부렸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에요.
요건 다음번에 두드려보고 기회가 되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필립.
당신은 탁월한 해석자입니다, 스콧.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야심가네요, 빌뇌브.
2049, 진심으로 대단했습니다.
10점 만점에 9.8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