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에 대한 뉴스부터 여론조사 등 각종 선거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후보vs후보 메뉴가 재미있습니다.
각 후보들의 살아온 행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의 인생타임라인이 좀 휑합니다.
특히 인생의 가장 활발할 시기인 30-40대 활동이 텅 비어있습니다.
그에 비해 안철수 후보의 30-40대는 빼곡한 활동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청춘은 정말 텅 빈 것일까요?
문재인 후보의 청춘....그 서슬퍼렇던 시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이듬해 김정숙씨와 결혼을 합니다. 이후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시작합니다.
변호사를하면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직선제 개헌쟁취 변호사 서명운동, 민변 부산지역 모임 결성,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민주화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그 근거지가 부산이었을뿐입니다.
1980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1981 김정숙 씨와 결혼 (슬하에 1남 1녀)
1982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 시작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1987 부산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1987 직선제 개헌쟁취 변호사 서명운동 주도
1988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지역 변호사모임 결성
1988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1989-2002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前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부이사장
1992-2003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모임 대표
1993 부산시 선거관리위원
1994-2002 (사)노동자를위한연대 대표
1995 법무법인 부산 설립
1996 부산 YMCA 이사
부산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중앙(서울)이 아니었기때문에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Daum이 안철수후보가 좋고, 문재인 후보가 미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문재인 후보의 청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저토록 휑한 인생 타임라인을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문재인후보는 본인의 저서 '운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6월항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나는 그 운동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제일 먼저 국본을 결성했고, 기난 내내 시위를 가장 치열하게 전개해 타 지역 시위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 보다 결정적으로는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돼 서울 등 타지역의 시위가 급격히 위축됐을 때 부산에서 카톨릭센터 농성과 함께 더 많은 시민들이 더욱 치열하게 시위를 전개함으로써 항쟁의 불꽃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항쟁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6월항쟁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있어 부산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서울지역 중심으로 서술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서울 중심 사고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후보의 휑한 타임라인을 보고, 후보의 지난 청춘을 더듬어보다가 문득 깨닫게되었습니다.
기록조차 승자중심, 중앙중심, 서울중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제대로 기록되고 있지 못해 알려지지 못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좀 더 나은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이 있을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