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래된 일이 되버렸네요
2001년, 당시 제법 이름있는 유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해서 작가들이 써놓은 글들이 각종 라디오 사연, 티비 오락프로, 시트콤 등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그 결과 오히려 원작자가 표절자로 몰리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었습니다
당시 생각으론 유머글이 지적재산권으로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유머글 자체로는 돈이 될 순 없어도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영상 등등으로 발전시켜서
유머작가들이 디지털 크리에이터란 새로운 직업군으로 발전 시킬 수 있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당시 사이트의 트래픽은 상위권이였지만 문제는 '돈'이였습니다.
서버관리도 해야하고, 개발자도 있어야 하고.. 운영자도 있어야 하고... 작가 관리도 해야하고... 사무실도 있어야 하고..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돈 나올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이트에 들어오던 각종 사업제안도 보면...
달라는건 확실한데... (유머사이트 트래픽과 유머글을 내놔라!)
주겠다는건 다 불확실 했습니다 (돈은... 벌면 줄게 -_-)
지금은 트래픽만 많으면 돈 벌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엔 거의 없다보니..
그러던 중
사이트 회원 중에 우리 사이트를 도와주려는 사업가가 있단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미 일부 작가들을 본인의 회사에 취업을 시키기도 했더군요..
회원가입 정보를 보니 40대 중후반이였는데...
게다가 그당시에도 이미 그 바닥에선 상당히 알려진 실력가이자 사업자였습니다
그런 분이 이런 유머글을 이용한 사업에 관심을 보이시다니?
보통 유머 라고 하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던데...;;
뭔가 말이 통하는 분인 것 같아. 메일을 보냈습니다.
블라블라 말은 많이 했지만 간단하게.. 줄이면
'도와주세요' 였습니다.;;;
답장이 왔습니다.
'도와줄게요 차근차근 생각 해봅시다'
다시 메일을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전기 끊깁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처구니 없는 메일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세배 갚을 수 있는.. 근자감 때문에...;;
그렇게 한번 뵌 적도 없는 분이 메일 한통으로...
며칠 후, 고맙단 인사도 드릴 겸 직접 뵙기로 했습니다.
만나러 가니 또 놀랬습니다.
그 자리엔 당시 최고 인기 개그맨이 함께 있었습니다.
유머작가들과 개그맨이 함께 하면 시너지가 있지 않겠냐며 소개 시켜주신 겁니다
그 후 그 분은 바쁘신 와중에도 사무실 자주 찾아와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그때 일년간 자주 뵈었던 그분에 대한 제 인상은
나이를 무시한 정열,
사업규모를 무시한 순수함.
사회적 (꼰대?) 지위를 무시한 유연한 사고..
물론 무서운 부분도 있습니다.
너무너무 지기 싫어한다는 것...
(심지어 클라이언트인 재벌 회장과 골프를 쳐도 꼭 이기시더군요..;;
전 그때 '갑'같은 '을'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
뭐.. 그렇기 때문에 흙수저 집안임에도 금수저가 되었겠지만...
그 후...
이런저런 일들로 그 분과의 인연은 끊어졌습니다.
신세도 갚지 못한 채..
마음 한쪽 구석에 부채만 안고...
그렇게 십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랬는데...
그 분이 제가 사는 곳의 지역구 후보로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예정되어 있던 비례 1번을 버리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지역구로 나섰단 이야길 들었습니다.
역시 '그 분답다' 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입니다.
십 몇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전 저번달에 주소지를 옮길 예정이였습니다.
하지만 안옮기고 버티고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의 지역구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동네에서 아는 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집토끼는 도망 안가게, 산토끼는 집토끼가 되게, 남에 집 토끼는 당일날 그냥 잠이나 처 자게 -_-;;''
십 몇년 전의 신세를 갚기 위해 이런 기회가 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