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상업 만화' 라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만화로 분류 가능한 작품들 특유의 템포와 가벼움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만화들은 제가 구매해서 읽어 본 국내에 정식발매/출간 된 만화들 중
비교적 접근이 쉽다고 생각되는 작품들만 추천드립니다.
(DC나 마벨의 슈퍼히어로 시리즈들은 일부러 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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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앨런 무어로.
왓치맨
앨런무어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기존 히어로물의 설정들을 뒤틀고, 지금은 익숙한 고뇌하는 히어로라는 설정을 뇌리에 박히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앨런무어의 작품답게 영화적 컷 연출이 굉장히 뛰어나며, 앨런무어의 작품 중 그나마 그림체의 접근성이 높습니다.
영화가 이미 유명하기는 하나, 앨런 무어의 작품들의 영화화는 앨런 무어 스스로가 영화 스탭롤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할 정도로
원작과의 괴리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왓치맨 역시 영화가 영상미가 뛰어난 작품이나 지나친 축약과 스토리라인의 변경등으로 오히려 메세지의 감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원작 꼭 읽어보시길 권장드립니다.
브이 포 벤데타
이것도 국내에선 원작보단 영화가 유명한 작품입니다.
왓치맨과는 달리 영화는 원작과 상당히 노선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전달하는 메세지조차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뉘앙스와 암시, 은유가 들어간 작품이며
정치적 선입견을 넣고싶지는 않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에 아주 권장드리고 싶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괜히 연애노선처럼 만들어버리고...
역시 앨런무어의 작품답게 굉장히 컷 연출이 잘되어 있으며, 역시 앨런무어의 작품답게(...) 대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굉장한 몰입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니 꼭 읽어보시길 권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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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닐 게이먼.
샌드맨 라이브러리
샌드맨 시리즈의 작가인 닐 게이먼은 만화만이 아닌 다른 여러가지 작품들로 익숙하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CG영화인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의 각본을 쓰기도 하였으며, 샌드맨 표지 디자이너인 데이브 맥킨과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이라는 동화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굉장히 재밌는 동화입니다. 닐 게이먼 아니랄까봐 어른이 읽어도 재밌어요.)
샌드맨 시리즈는 '신화'에 가깝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들이 등장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며,
세익스피어나 천사와 악마 루시퍼등을 다루는 등 꽤나 다양한 고전문화 요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이렇게 들으니 무슨 고전문학을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속된말로 표현하자면 '간지폭풍'인 작품입니다. 10권이 넘는 시리즈동안 수많은 떡밥이 던져지기도 하며
주간연재의 모 일본만화와는 다르게 떡밥이 모두 회수 될뿐만이 아니라 인물들 나름대로의 맺음을 맺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꿈'의 여행은 현대와 과거, 신화와 히어로물(!)을 넘나들며 굉장히 무게감 있으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행적을 보여줍니다.
닐 게이먼이 괜히 젊은나이에 전설적인 작가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아, 단 매 화마다 그림작가가 바뀝니다. 매 화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이 작품의 맛이죠.
(간혹 익숙한 작가도 보입니다.)
이 리스트중에서 금적 여유만 있으시다면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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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포리
아...
음...
이 작품은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 가장 많이 썼다 지웠다 한 작품입니다.
만화의 장르는 네 컷 만화입니다. 다만...
엄...
미칠듯한 덕력을 갖고계신 분이 아니라면 호불호가 확 갈릴 작품입니다.
근데 또 이 '미칠듯한 덕력'이 만화에 대한 덕력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회화에 대한 패러디, 성경에 대한 패러디, 일본 70년대 인디만화에 대한 패러디 등등.
패러디가 아닌 작품도 많습니다만 상당히 괴작입니다.
패러디이더라도 정말 미칠듯이 기묘한 개그입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본다면, 머리 위에 물음표 말풍선이 뜨겠지만,
미술사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무릎 탁 치실만한 미칠듯한 패러디가 되버립니다.
진짜 이 한권에 들은 모든 작품들을 다 알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논문이라도 쓰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 그리고 이 작가, 정상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네컷 만화를 점묘화로 그렸습니다.
(네, 미술시간에 배워보셨을 그 점묘화 맞습니다.)
추신. 이 작가의 국내 정발된 다른 네컷만화들은 그냥 변태만화(...)입니다. 권장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지진에서 살아남는 만화도 있습니다만, 이 작가의 성향과는 정말 안맞는 만화라서인지 재밌다고 하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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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 만화계의 예술가, 마츠모토 타이요.
핑퐁
일본적인 감수성과 컷 편집의 은유를 굉장히 잘 살리는 작가입니다.
푸도프킨의 몽타주이론이 생각납니다. 예로 컷 연결에 뜬금없는 사물등이 배치되곤 하지만 그러한 사물에서 감정선이
절절하게 읽힌다던지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만화로는 그리 국내에서 많이 알려지진 않은 편이지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철콘 근크리트'의 원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만화들은 상업만화와는 그림체도, 내용도, 연출도 노선을 달리합니다.
그림체가 약간 어색하실 수 있겠지만, 드로잉력이나 화면 연출력은 굉장히, 굉장히 뛰어난 작가입니다.
(그림체가 크로키 그리듯 슥슥 그리는 그림인데, 슥슥 그리는데도 광각 카메라의 원근감 강조등을 하나도 안어색하게 씁니다.)
핑퐁은 마츠모토 타이요가 많이 다루는 '청춘'이라는 대주제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상업만화나 소년만화로 보기는 좀 뭐하지만, 소년만화로서의 요소는 다 있습니다. 성장, 라이벌, 천재 등등.
마츠모토 타이요 특유의 시선으로 이러한 소재들을 다루는데 굉장히 재밌고 비교적 접근성이 높은 작품입니다.
넘버 파이브 (吾)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 중 가장 마츠모토 타이요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한국 작가로 치면 박민규 작가같습니다.
개성이 넘치면서도 흡입력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선 마츠모토 타이요 짝퉁(?) 들이 많이 생겼다고 할 정도지요.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연출을 하였기에 아련히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세계관으로 치면 판타지만화가 되겠지만 그런것에 여력을 쏟은 만화는 아닙니다.
돋보이는 부분은 캐릭터입니다.
어떻게 캐릭터 한명의 감정을 더 보여주고 인물간의 관계를 보여줄까 생각을 했을 것만 같습니다.
조연들조차 굉장히 매력적이며 그렇다고 스토리라인이 힘이 없다거나 난해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천재라 불리는 작가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일본적 감성' 이 무어라 설명하라면 말씀드리긴 힘듭니다만,
아, 일본 작가구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기존의 일본만화의 라인에선 한참 벗어나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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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늙는다는 것' 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치매' 라는 소재겠지요)
민감한 소재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겹쳐 굉장히 진실성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게 되고 사람구실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다루는 시각이 신파적이지 않고 따듯하게 마지막을 지켜봐주는 시각이라 해야할지요.
안타까운 감정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눈물이 나는 만화입니다.
뒤에 실린 단편 만화인 등대또한 수작이나 본작인 주름에 비할바는 아니라 생각하여 길게 적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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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헤이번
솔직히, 노골적으로 추천드리기는 힘든 작품입니다.
오, 재밌어보이겠다,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말씀드리건데 재미없습니다.
이 작가의 만화들은 대부분 '실험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거든요.
(고스트 월드는 좀 다르긴 하지만요.)
이 작가의 만화들은 다 불친절합니다. 개연성이 없어보이고 읽으면 어떠한 감상보다 찝찝함이 먼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윌슨이 그랬고 고스트월드도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전 이 아이스 헤이번만은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하는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고, 어떠한 이유를 갖고 좋아하기도 힘든 작품입니다.
만화는 옴니버스식으로 각각 인물들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결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인물들은 정상적이라기보단 히스테리컬하고 찌질하며 개연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행동들도 합니다.
거기서 어떠한 연민이나 감정을 느낀다면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고
이해되지 않기에 비웃음을 지을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로 난해한 작품이지만 그 속의 인간군상속에서 굴러다니다보면 좋아하던 여자아이 의자뒤에 코딱지 바르던 친구놈도 생각나고 그럽디다...
참고로 분량면에선 상당히 돈아까운 작품입니다. 동화책 두께인데도 만원이 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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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 인디출판만화를 자주 사서 보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불쏘시개 또는 종이 분리수거할때 버리게 될 정도로 집 안의 공간을 내주기가 꺼려지는 작품들이
오히려 많은 편이긴 합니다만,
이 작품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만화를 구매할때 랩핑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고나서 겉과 안이 달라 실망과 후회를 하는 편이 많습니다만,
이건 같이 끼워 산 다음 같이 샀던 책이 뭔지도 기억 안나는 인상을 준 작품입니다.
한국 만화라기보단 한국 문학작품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단편 모음집이라 어떠한 감상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거나 절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아니고,
흔히 다루지 않는 불안, 죄의식 같은 소재들을 참 맛깔나게 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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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만화 추천글이 되겠군요.
현재 자취중에 있기에 대부분의 책들이 본가에 있습니다. 고로 책장에 있는 책들과 기억나는 책들만으로 작성을 하였는데
몇권 되지 않네요.
그래도 감명깊은 책들만을 모았기에 저 말고 다른사람이 즐기게 될 계기가 되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PS.
오유 서버가 불안정해서.. 세번 날렸습니다. 아홉시부터 쓴 글인데 세시간이나 걸렸네요.
디도스 공격하는놈들 ㅗㅗ 머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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