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신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
[메아리/1월 4일] <변호인>을 본 당신에게
한국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4-01-03 21:11
영화 <변호인>이 상영 14일만에 600만 관객을 기록했다.
1,000만 명도 넘어설 추세라고 한다. 관객 수만 대단한 게 아니라 그들이 보인 반응도 놀랍다. 영화관에서 훌쩍거리고 눈물 닦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가슴을 진정시키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자주 찾던 국밥 집 주인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밤새 읽고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찾아 검사, 증인과 주고받는 공방은 주인공이 얼마나 열정적인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을 거만하게 들먹이며 구금과 고문을 정당화하려는 증인에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일러주면서 국가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주인공의 열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억압적인 시대 상황을 핑계로 적당하게 재판하려는 판사와 거래하지 않고 옆 좌석의 변호사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영화의 이 열정적인 주인공이 노무현 전 대통령일 것이라는 말은 개봉 전부터 많았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든, 비판하든 노 전 대통령이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노무현은 바람과 같았다. 그는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당돌할 정도의 거침 없는 언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어렵게 자기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도 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다가 결국 네티즌의 지지를 업고서야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를 한국의 보수 세력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섣부르고 직설적인 언어를 공격하고 태도가 세련되지 못하다며 비웃었다. 어느 순간 비판적 성향의 일부 지식인이 호남 민중을 외면한 영남주의자라고 그를 비판했고, 또 어느 순간부터는 매우 많은 국민이 대한민국의 모든 잘못이 다 노무현 탓이라며 그 대열에 합류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잘못은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이라크전쟁에 병력을 파견했으며 노조에게 고충을 안겼다. 주로 진보진영에서 나온 이 같은 비판이, 이단아 취급하며 처음부터 그를 인정하지 않은 강고한 보수세력의 조롱과 힘을 합쳐 노 전 대통령을 협공했다.
하지만 그는 권위주의를 배척했고 권력을 분산하려 했으며 권력기관을 통치에 이용하지도 않았다. 지역주의에 도전했고 남북한 대결주의를 완화하려 했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다. 이 같은 노력은 노 전 대통령 이전 정부에서도, 이후 정부에서도 많지 않았다.
이런 점을 보지 않거나 외면한 채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를 막무가내로 공격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보다 더 한 사람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비판 받아야 하지만 당시 그에게 쏟아진 질타와 공격은 근거가 약하거나 사실과 다르거나 악의적인 것이 많았다.
바람처럼 사라진 그의 공과를 이제와 따지는 것이 부질 없기는 하다. 하지만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면서 한 인간 혹은 한 시대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좀 더 냉철하고 과학적이며 이성적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것은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21세기 국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시대착오적 행태가 한국 사회에 너무 많은데도 이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노조 본산이 침탈당하며 공권력의 무소불위가 하늘을 찌르는 게 지금의 한국 사회다.
남북 관계가 파탄 났고 수구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으며 역사 왜곡 교과서가 출판됐고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이 의심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 인식이 또다시 맹목적이고 전근대적이라면 터무니 없는 역사가 얼마든 되풀이 될 수 있다.
<변호인>을 보고 마음 아프고 눈물을 흘렸다면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합당한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