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회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군요.
배구 월드리그는 매년 6월~7월에 열립니다. 올해 규정은 6개팀 3개조로 나누어서 조별 풀리그를 치룬 뒤, A,B조의 상위 2개 팀과 C조 1위팀, 개최국(아르헨티나)이 결승 라운드에 진출합니다. A,B조와 C조의 진출팀 숫자가 다른 이유는 세계 랭킹에 맞춰서 조를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상위권 국가는 A,B조에, 그나마 하위권 국가는 C조에 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C조입니다;;;;; 조별리그는 각 팀당 2번씩 맞붙습니다. 축구처럼 홈앤 어웨이로 하면 비행기 값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두 경기를 다 치릅니다.
우리 나라는 캐나다, 네덜란드, 핀란드, 포르투갈 그리고 일본과 같은 조입니다. 지난 경기들을 돌아보면 일본에게 3-1로 두 경기를 이기고 난 후, 핀란드, 캐나다, 네덜란드에게 모두 패해 6연패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벽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3-1로 잡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경기는 모두 끝나고 대한민국-포르투갈 경기만 남은 상태에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순위 | 국가 | 승점 | |
1 | 네덜란드 | 23 | 결승 라운드 진출 |
2 | 캐나다 | 22 | 내년 월드리그 잔류 |
3 | 핀란드 | 12 | 내년 월드리그 잔류 |
4 | 포르투갈 | 11 | 내년 월드리그 잔류 |
5 | 대한민국 | 10 | 강등 |
6 | 일본 | 9 | 강등 |
"여기서 이기면 끝나잖아?"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문제는 꽤나 복잡합니다. 배구에서 승점 매기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한데, 세트 스코어 3-0, 3-1로 이기는 팀은 승점 3점을 가지고 0-3, 1-3으로 지는 팀은 승점 0점을 가집니다. 문제는 세트 스코어 3-2로 이기는 팀은 승점 2점, 2-3으로 지는 팀은 승점 1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3-2로 이기면 승점이 동점이 되는데, 앞에서 언급한 6연패 때문에 포르투갈에게 세트 득실에서 밀리게 됩니다. 결국 우리나라가 3-0이나 3-1로 이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전력을 끌어낸 상태가 아닌 상태입니다.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던 문성민은 한일전에서 부상을 입어 이후 월드리그 모든 경기를 빠지게 됩니다. 또다른 공격수 박철우는 대회 내내 부진하였고, 결국 포르투갈전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김요한이나 김학민도 마찬가지였구요. 이 4명이 우리나라 배구 리그에서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는 공격수인데, 전부 나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떠오르는 신예 서재덕, 전광인 등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였습니다.
포르투갈의 홈에서 열리는 월드리그 10차전입니다. 1세트는 이 경기의 기선을 잡겠다는 각오로 양팀 모두 치열하게 나왔습니다. 결국 듀스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34-32로 승리합니다. 2세트에서도 이 기세를 이어나가 25-13으로 승리하게 되죠. 한 세트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에 자만한 결과일까요? 3세트에서는 25-21로 세트를 내주고 맙니다. 그러나 24-17이었던 점수차를 막판에 따라붙었기 때문에 4세트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4세트, 이 세트의 승자가 2014년 월드리그에 잔류하게 됩니다. 초,중반에는 시소게임을 펼치면서 앞서거니 뒤쳐지거니 합니다. 기세를 뺏어오기 위한 신경전이 치열했죠. 선수들이 심판에게 항의하기도 하고, 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야유도 하고 분위기는 치열하게 달아오릅니다. 한국이 22-20으로 앞서나가면서 경기가 한국쪽에 유리하게 진행되나 싶었더니, 상대 선수들의 맹공과 우리 선수들의 실책으로 24-22로 세트 포인트에 몰립니다. 한점만 더 내주면 내년 월드리그 잔류는 물거품이 되는 순간...
야구에서 요기 베라가 이런 말을 했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스포츠에서 투지와 패기가 왜 중요한지는 이 경기 전에 있었던 U-20 월드컵 8강 경기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죠. 비록 승부차기에서 아깝게 승리를 놓쳤지만, 마지막 1분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결국 승부차기로 이끌어 내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죠. 저도 이 경기를 봤지만 선수들의 끈기있는 모습에 저 또한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서재덕이 상대 블로킹을 맞고 나가는 공격으로 24-23. 포르투갈 선수의 블로킹 위로 날아가는 공격으로 24-24 듀스를 만들어 냅니다. 3번의 듀스가 진행된 26-26, 서재덕의 서브가 포르투갈 코트에 꽂히면서 서브 에이스를 만들어냅니다. 27-26 한국의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 서재덕이 다시 서브를 합니다. 서재덕의 서브에 흔들린 포르투갈은 거센 공격을 하지 못하고 공을 한국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박상하의 속공이 포르투갈에 꽂히면서 경기 종료. 세트 스코어 3-1로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납니다. 축구에서 강등 전쟁 보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요? (물론 저는 K리그에서 지금도 충분히 받고 있습니다ㅋㅋㅋ) 한국 배구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자랑스러운 국가대표팀이 해냅니다. 이걸 라이브로 본 저는 정말 기분 좋고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