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 영화를 못본 분들을 위해 제목에 스포주의를 적었습니다.
'미요하니'님의 추천 감사합니다.
어릴 적 우연히 티비를 틀었을 때, 기나긴 강을 찍는 샷이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흘러나오던 잔잔한 나레이션.
나중에야 그 씬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이병헌님의 다른 작품인 '그 해 여름'이라는 영화를 좋게 봤던 터라
이 영화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초반부는 여느 멜로물처럼 흘러가서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빗 속의 우연같은 첫 만남, 20대 초반의 서툰 연애, 그리고 행복한 커플(ㅂㄷㅂㄷ...).
하지만 중반부부터 등장한 한 사람에 의해서 이야기에 긴장감이 생기더군요.
우연인 듯 운명인 듯 인우에게 다가오는 여러 힌트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새끼손가락을 드는 버릇, 비슷한 생각과 태희가 그려진 라이터...
확인할 수록 확신이 서는 사랑이라니.
그리고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용산역에서 인우가 기다리는 씬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제 만감 또한 교차하는 순간이었죠.
마치 타키쿤과 미츠하쨩이 노을녘에 만나는 순간처럼요.
처음 용산역이 나오는 장면을 볼 땐, 그냥 군대가는 대한남아의 비애를 그린 영화로군 싶었는데...
시간이 흘러 마침내 만나는 두 사람이라니.
두 사람의 만남을 기차창문에 비춰주는 장면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껍데기가 아닌 영혼으로 만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막바지의 10여 분..
이 부분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초반부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다는 태희의 말에
넌저리치며 뛰어내리면 죽는다고 하던 인우.
그 인우가 마지막에 가선 태희의 말을 이해했는 듯 자신 또한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다고 현빈에게 말하죠.
그리고 현빈과 함께 외국으로 가고...
전 처음에 두 사람이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외국으로 간 줄 알았습니다.
둘이서 먹고 이야기나누고 웃으며 뉴질랜드에 있길래 나름
행복한 허니문을 즐기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두사람이 함께 번지점프를 하더군요.(동공지진)
가슴이 철렁하고 두근두근거렸습니다.
그들이 나눴던 대화가 그 번지점프 하나에 정리되고
죽기 직전의 주마등처럼 눈 앞으로 스쳐갔습니다.
드디어 제가 알던 마지막 장면인 기나긴 강을 보며 영화가 끝났습니다.
자연다큐인 줄 알았던 그 장면을 오늘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 긴 강을 보고 있으니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더라구요.
세상에 흔한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풀다니...
물론 중간중간에 조금 여의치않은 점들도 있었습니다.
인우의 와이프와 딸...현빈이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찝찝한 의문을 빼면 정말 가슴 저미는 영화였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났지만, 사랑하기엔 그 벽이 너무 높았죠.
환생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한 멜로 영화라 살짝 판타지스럽긴 했습니다.
환생했는데 마치 기억상실환자라도 된 것처럼 차차 전생의 기억을 찾아간다니...
하지만 '영화'라는 것은 어느 정도 msg가 첨가되기 마련이니까요.
이 msg를 써서 두 사람의 사랑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 고향엔 남겨진 가족들이 있다네.'와 같은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것 처럼
영화 속의 약속 플래그는 특히 멜로영화에선 반드시 지켜내고 마는 규칙인 것 같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금기를 깨고 이뤄내는 사랑의 약속이라는 게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델의 'Skyfall'이 떠올랐습니다.
007스카이폴의 ost인데, 번지점프를 하는 두 사람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 '번지점프'가 어떤 의미였을까 자꾸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번지점프가 아니고 자살이었죠.
팩트로 따지자면 '동반자살을 하다'지만, 참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었던 건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였지 번지점프는 아니었으니까요.
줄 없는 번지점프는 주인공들에게 '자살'이 아닌 약속이자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 아델의 노래에서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Skyfall is where we start'
두 사람이 번지점프를 하자 기나긴 강을 보여준 것도
수많은 물줄기가 만나 하나의 강이 되어 세상을 계속 돌고 도는 것처럼
둘의 마지막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용산역 기차 창문을 통해 비춰진 두 사람의 만남처럼
그것이 껍데기가 아닌 영혼과 영혼의 만남임을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사랑, 운명, 약속, 동성애...
비극이 아닌 듯 비극인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절절했습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후..)
다시 한번 챙겨보고 싶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