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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습니다.
게시물ID : animal_747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가O너가X
추천 : 7
조회수 : 93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02 07:33:50


반려동물을 보낸다는 게 이런 것이었네요.
살아 숨쉬던 따스한 동반자를 먼저 보낸다는 것이요.
생이라는 것은 알 수 없으니 반려동물이 먼저 갈지 제가 먼저 갈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보내는 것은 견디기 힘겨울테니 아예 정을 주지 말자 생각하며 처음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어요.
제 삶에 허덕이다 우울증이 왔을 때, 자꾸 시선이 가던 작은 생물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여생을 보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실로 이동할때 함께 갔고,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 몰랐던 면들을 자꾸만 발견해 어느덧 눈에서 떼지 못할 사이가 돼 버렸습니다.
정이 너무 들었다 싶어 아차 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원래가 하나에 빠지면 늪처럼 잠기는 체질임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위태위태하다고, 나이가 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담담하게 1년을 보냈지만 실제로 이별이 찾아오니 그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네요.
햄스터 나이 3세가 넘었어요. 그러면 인간으로 치면 100살은 먹은 셈 치라던데.

석달 전쯤부터 귓속에, 발에 종양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발의 종양이 말라비틀어져 떨어져 나갔어요. 스스로 물어 뜯어버린 것 같아 신기하고 기특했죠.
헌데 이번엔 배 안쪽부터 단단하게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병원에서도 희망적인 말은 없었어요. 너무 늦었고, 나이가 많아 수술 후에도 출혈이 멎지 않을 수 있으니 수술할 수 없다고.
종양은 계속 커졌어요.
그러다 한달쯤 전일까 보름쯤 전일까. 혹은 열흘 정도 전일까......
아무튼 12월 말에 종양이 부쩍 작아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얘가 평소보다 훨씬 열심히 먹고, 활동하고, 반짝반짝하고, 제 손을 계속 찾게 된 게.
어릴 때 다쳐서 특별한 생김새가 돼 버린 앞발 때문인지 목 아래, 앞발 근처에 뭐든 오면 반사적으로 물기도 하던 녀석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식구 중 누구도, 애교로라도 물지 않고 마냥 착했습니다.

그냥, 마냥 예뻤어요. 불안할 정도로.

하지만 일주일 정도 전부터 배는 다시 부풀고, 이제는 그 옆으로까지 종양이 퍼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서서히......
그렇게 깔끔하던 녀석이, 기특하게도 소변 가리는 것은 당연하고 대변마저 완전히 가려 저 쉽게 치우는 장소에 오밀조밀 모아놓기 좋아하던 녀석이.
이제 힘이 부족한지 변을 제대로 떼지 못해 항문 주위가 조금씩 지저분하고 변 자체도 전처럼 건강하지 않았어요.
예감하고 있었지만 매일 밤, 너를 정말 예뻐한다고, 좋아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함께하자고......큰 욕심이라면 봄까지만, 꽃 피는 봄까지만 함께 있자고. 겨울 땅은 차가우니 제발 따듯할 때까지만이라도.......그것도 안되면 올해까지만이라도......
부탁하면서도 애처롭고 애처롭지만 차마 보낼 수는 없고...........

그렇게 2014년이 됐습니다.

사실 31일 낮에 발가락 쪽 새로 생긴 종양을 엄마가 건드렸어요. 피가 났는데 그것 때문일지 무엇 때문인지 다음날 31일엔 몸이 차가웠습니다. 
꼭 한해 전쯤, 이미 그렇게 몸이 차갑고 늘어지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울면서 부탁했었는데. 일년만 더 같이 살자고. 제발 같이 살자고. 내가 앞으로 더 착하게 살 테니 제발 일년만 함께하자고.
그래도 정 가야 한다면, 제발 내가 볼때, 내 손에서 가자고. 내가 자고 있을 때 가버리면 안된다고. 나 없을 때 가버리면 안된다고......
그래서 약속을 지켰나봐요.

31일 내내 몸이 조금씩 차가웠지만 작년처럼 가슴 철렁하게 몸이 늘어지거나 무게가 줄거나 한 것은 아니라 그래도 희망을 품었어요.
무엇보다, 기이할 정도로 생기발랄하고 많이 먹던 며칠의 모습 때문에 희망이 더 커졌는지도 모릅니다. 불안한 희망이었지만 혹시나 싶었어요.
31일을 막 넘기고, 식구들과 함께 새해 카운트다운에 맞춰 서로 기뻐하며, 뀨가 이렇게 한 해를 더 버텼다고. 온 가족이 기뻐했는데......

이상하게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겠더라구요.
계속 잠을 자다가도 설핏 눈을 뜨고 저를 가만히 봤어요.
어여뻐서 몇 번이나 쪽쪽 입 맞춰주며 예쁘다, 좋아한다. 계속 말해줬는데.
한해 더 버텨 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45분 정도. 이상하게 할일이 많음에도 차마 방에 들어가기 싫어서. 손에서 놓기 싫어서 그대로 손에서 재우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작하듯 움직이더니 허우적거려서.....
그리고 저를 보면서 서서히 멈췄어요.....
마치 이제까지의 모든 기운이 다한 것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응급처치를 하고, 안된다고 아무리 울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정말 원망스러울 정도로 약속을 다 지키고 가 버렸네요.
잠든 듯 예뻤는데.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쁜 그대로 잠들어 있었는데. 
더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점점 차가워지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계속 그렇게 따듯할 것 같았는데.
완전히 잠들었을 때는 잔변조차 없었어요.  
그 작은 몸에, 혹에 눌려 힘들어하던 장기가 마지막 한계까지 버티고 있었나봐요.
잠깐 자는 것처럼 편한 표정으로 조용히 잠들었어요. 영영......
취선도 얼마 전에 깨끗하게 닦아줘서 보송보송 뽀얗고, 하루 전에는 발톱도 예쁘게 깎아줬는데.

묻어주고도 믿기지 않아서 계속 울고.
그리고 애써 일을 하고.
딴짓도 해보고.
TV도 보고.
멍청하게 계속 하루를 보내다가......
떠나보냈을 시간쯤이 다시 돌아오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계속 울고.....울고........믿을 수가 없고........
어제는 오히려 이렇게 울지 않았는데.

매일 이렇게 보내다 보면 익숙해질까요.
담담하게, 잘 참고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착하고, 똑똑하고, 어여쁜 녀석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텐데.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텐데.
생에 영영 우리가 다시 조우할 날은 없을 텐데.

그런 모든 게 너무 괴로워요.
보고싶어요.
하루밖에 안 됐는데 너무 보고싶어요.
좋은 곳으로 가야 할 텐데......
더 좋은 곳으로, 더 행복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살아가야 할 텐데.
내 생에 다시 스칠 날이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줄은 몰랐어요.
너무 보고싶어요.

전에는, 뀨가 그래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동안까지도, 저는 동게의 많은 글들을 쉽게 열어볼 수 있었어요.
아픈 아가에 대한 글은 함께 울기도 했고, 뀨를 손에 눕히고 입 맞추며 다시금 좋아한다고, 오래 살자고. 불쑥 떠나지 말라고......
그런데 이제 아무 글도 클릭할 수가 없습니다.

뀨가 떠난 날 베오베에 햄스터 글이 올라온 것을 봤어요.
그 전까지는 동게에 햄스터, 햄찌 모두 검색해서 읽고 추천하고 좋아했어요.
곁에 있는 뀨를 한번씩 더 보며 그 글 속의 동물과, 작성자와 한 식구처럼 기뻤어요.
햄스터가 베오베 가는 날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제 차마 뭐든 열어볼 수가 없습니다.

뀨는 동생들이 데려왔어요. 이름도 동생이 붙였어요. 뀨뀨꺄꺄의 약자래요.
저는 정 줬다 뗄 게 무서워서 한동안은 일부러 뀨를 보지 않았어요. 그렇게 바쁘게만 살았어요.

1년 반 정도. 뀨가 저와 함께 한 시간이에요.
뀨는, 박스에 넣어져 추운 베란다 창고에 들어가 살았어요. 
쥐를 보고 놀라 유산한 후로 모든 설치류를 무서워하는 엄마 때문에, 어렸을 때 엄마를 한번 물었던 후로 늘 혼나고 구박받고,
용변을 가리느라 박스 한구석에 계속 용변을 본다는 것으로도, 생태를 전혀 모른 엄마께 혼이 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며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겠구나 싶어져, 여생이라도 편히 보내라며 데려갔던 것이었는데......
너무 늦게 정을 준 것일까.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새벽 작업이 끊이지 않는 나와 같이 야행성이라 늘 새벽에 조우해서 정이 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내가 데려와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모든 생활이 맞물렸던, 이제 불을 꺼놓으면 오히려 불안해하던.
마지막엔 내 손이 아니면 잠을 잘 자지 않던. 눈빛만 봐도 용변이 급한지 뭔지 다 알 수 있었던 사이였는데......
화장실에 넣어주면 볼일 보고 나와서 또 다시 내 손에 오고 싶다고 매달렸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렇게 편하게 이 손에 잠들던 모습이 선명한데......
그 체온, 감촉, 눈빛, 오물거리던 모습. 하얀 수염이 뻗어있던 모양까지 모든 것들이 생생한데.......
이제 없네요. 어디에도.
이제 엄마도 뀨가 깔끔하고, 냄새도 안 나고, 착하고, 똑똑하고. 그런 거 다 아시고 매일 아침마다 무사하냐고 인사하러 오시고, 드디어 무서워하지 않고 만지며 예뻐했었는데. 모두가 너무나 사랑했는데.

제게 그 작은 생명은 봄이었는데. 봄보다 더 찬란했는데. 언제나 따듯하고 다정했는데.
저는 어땠을까요. 잠시나마 봄이 되어 줬을까요. 마음이 전해졌을까요.
속에 구멍이 뚫려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끝없이 황량합니다. 허전하고 괴롭고, 그리고 믿을 수가 없어요.

언제쯤 괜찮아질까요. 언제쯤......

무엇이든 좋으니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다시는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서로 모르더라도. 서로의 생에 다시 한 번만 스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앞으로 좀 수월히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위안삼으려 애쓰는 중에도 너무 보고싶습니다. 만지고 싶습니다. 여느 때처럼 편히 재워주고 싶습니다.
숱하게 찍은 사진들, 차마 다시 볼 수도 없어요. 

뀨.
너무 예뻤던 제 햄스터 이름은 뀨였습니다. 
털빛이 예쁜 드워프에 말캉말캉한 푸딩이었어요.
보고 싶어도, 닿고 싶어도.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갔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부디 행복했기를......
앞으로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예쁨받고, 사랑받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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