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및 그 후 역사를 알고 있으면 더 편하겠지만, 모르고 계셔도 충분히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노력은 했습니다 ㅋㅋ
이 정도 길이로 3~4편 쯤 될 것 같아요.
진지 60%, 개그 40% 쯤의 배합이 아닐까 싶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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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기운은 진작부터 돌고 있었다. 저 멀리 대서양 건너에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하여, 고대 로마 공화국 이래 최초로 왕이 없는 나라, 공화국이 되었다. 미국독립전쟁을 지원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프랑스 왕국은 더더욱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영국의 홉스와 로크, 프랑스의 몽테스키외와 볼테르와 루소 등이 뿌려놓은 자유니 평등이니 계몽이니 하는 위험하지만 그 위험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고 있던 사상들이 들끓던 프랑스에, 미국독립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프랑스 군인들은 공화주의까지 묻히고 돌아왔다.
게다가 프랑스의 농민과 노동자 하층민들은, 분명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더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노동자들은 뛰는 물가만큼 오르지 않는 임금에 심심찮게 불만을 터뜨렸다. 농민은 더욱 비참했다. 봉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으나, 몰락해 가던 지방 소귀족들은 남은 봉건적 특권을 악착같이 붙잡고 농민을 점점 더 가혹하게 착취했다. 위로부터 기대가 부풀고 아래로부터 폭발력이 쌓이고 있었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舊체제)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이 성난 빈민 군중에게 정복당하는 초유의 방식으로 혁명은 터졌다. 낡은 모든 것이 일거에 사라지고 모든 가능성이 열리는 것 같았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서구가 기대감에 달아올랐다. "그 새벽에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었나니, 거기다 젊기까지 했으니 정말이지 천상의 행복이었다!" 당시 19살이었던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자전적 단편시 <서곡(The Prelude, 1850년)>에 이렇게 썼다.
혁명의 열기는 원래 이탈리아의 식민지였으나 혁명 전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보잘것 없는 섬 코르시카(Corsica)에도 번졌다.
프랑스 전역에 지부를 둔 최대 규모의 정치토론 단체인 자코뱅 클럽(Club des Jacobins)이 코르시카 섬에도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연설이나 토론을 하며 혁명의 사상과 열정을 입에 담았다. 회원가입은 일정 이상 재산이 있는 남성만 가능했지만, 무산자와 여성들도 많이들 방청하곤 했다. 그런 정치클럽들을 거점으로 혁명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자코뱅 클럽 코르시카 지부, 젊은 남자 두 명이 탁자에 앉아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둘보다 더 젊은, 프랑스 군복 입은 남자 한 명이 클럽으로 들어오자, 둘 중 더 젊은 쪽이 벌떡 일어나 손짓하며 외쳤다.
"여기야, 여기!"
젊은 군인이 밝게 웃으며 그들의 테이블로 오자, 그는 다른 쪽에게 그 군인을 소개했다.
"내가 얘기 많이 했지? 이 친구가 내가 말한 나브리오네 부오나파르테(Nabulione Buonaparte)..."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라고 했잖아! 이제 좀 외우지?"
보나파르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젊은 군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쏘아붙였다.
"아아, 미안 ㅋ 외우고는 있는데, 아직 안 익숙해서... 어릴 때부터 그 이름으로 불렀잖아."
"그래...짜증내서 미안."
그 후 보나파르트는 앉아 있던 다른 청년을 보며 얼굴을 조금 붉히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처음 뵙는데 실례를 했습니다."
셋 중 가장 나이든 청년이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잘 부탁드립니다, 보나파르트 시민*, 저는 필리포 부오나로티(Filippo Buonarroti, 1761~ 1837)라고 합니다."
보나파르트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부오나로티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같은 성이시네요."
"네, 전 그분의 후손이죠. 정확히 말하면 그분 동생의 후손이지만요."
"정말요? 엄청난 대귀족이시군요! 프랑스에서야 미라보나 라파예트처럼 혁명파 귀족도 꽤 있지만, 이탈리아에선 아직 귀족들 사이에 혁명에 대한 반감이 클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죠. 그래서 의절했습니다, 하하."
부오나로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보나파르트의 얼굴은 굳어졌다.
(* 시민Citoyen : 프랑스 혁명기에 영어 Mister에 해당하는 무슈monsieur 대신 남성을 부르던 호칭. 여성은 결혼한 마담madame과 결혼 안 한 마드모아젤mademoiselle을 막론하고 Citoyenne라는 호칭을 썼다. 프랑스 혁명의 평등égalité과 형제애fraternité 정신을 표현하는 호칭이다. 공산주의의 동무, 동지 표현과 비슷한 용법이라 볼 수 있다.)
"아...어떻게...저기...죄송합니다."
"아니요, 아주 기쁘게 던지고 나왔어요!"
남은 청년이 역시 경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걱정할 것 없어, 보나파르트. 얘 편지까지 쫙쫙 찢어 흩뿌리고 호쾌하게 나왔다니까!"
"크하하! 이 혁명가의 혁명 경력 시작이라면 그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지!"
"그래도 너한테 편지 준 친구, 친척들은 무슨 죄냐~"
"음...그건 그래. 대귀족이라고 알랑거리는 편지들만 골라 찢었어야 했는데, 부모님이랑 싸우고 너무 흥분했어 ㅋㅋㅋ"
보나파르트는 여전히 얼굴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 그럴 결심을...괜찮으셨습니까?"
"하하하, 위대한 미켈란젤로는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였어요! 당시는 예술가가 권력자 아래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고 미켈란젤로도 교황 아래에서 일했지만, 그는 결코 권력에 자신의 예술혼을 예속시키지 않았죠! 종교화를 그리면서도 엄숙한 종교적 계율을 거부하고 인간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표현해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것 아시죠?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다비드를 통해 압제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쟁취한 도시공화국 피렌체를 나타내는 '다비드 상'을 만들었고, 피렌체를 지키기 위해 성벽 건축을 맡기도 했어요. 사사건건 자신의 작업에 간섭하는, 역사상 가장 권력이 강했던 교황 율리오 2세에게 당당히 맞섰어요! 교황 바오로 3세가 <최후의 심판>를 보고 미켈란젤로의 제자에게 천과 옷을 덧그리게 하자, '교황 성하, 이 그림 고치는 일 따위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건 제가 할 수도 있으니, 성하께서는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나 해주시옵소서.'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대요. 저는 그분의 자유로운 정신을 충실히 계승한 거죠! 그분의 명성에 기대어 빈자들을 착취하며 물질적 쾌락을 누리는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가문의 수치예요!"
"아이구, 또 그 소리. 못말려~"
다른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부오나로티는 능청맞게 웃으며 맞받아쳤다.
"위대한 미켈란젤로와 자유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안 질리는걸!"
"듣는 사람이 질린다고, 얌마."
"에이, 그래도 레퍼토리가 다양하잖아~"
"에휴, 부모도 못 말린 널 누가 말리냐 ㅋㅋ"
"후후후."
보나파르트의 표정은 이제 감탄과 존경으로 변해있었다.
"놀랍네요. 가진 대귀족 자리를 박차고 나오다니..."
"뭘요...그나저나 보나파르트 씨는 이탈리아 이름을 프랑스 이름으로 바꾸신 것 같은데."
"네, 원래 우리 가문은 이 코르시카 섬의 소지주인데, 프랑스 귀족 자격을 얻으면서 프랑스 식으로 바꾸었어요."
"그랬군요. 프랑스 군복을 입으신 걸 보니 프랑스 군인이신가봐요?"
"네. 휴가 받아서 이제 막 도착했죠."
"보직은 어떻게 되세요?"
"포병 하사관이에요. 고위 장교는 4대 이상 내려오는 귀족만 될 수 있으니까..."
"에이, 혁명이 일어났잖아요! 곧 군대에서도 그런 귀족제는 사라질 겁니다."
"...그렇겠죠?"
"그건 그렇고, 포병 장교라면 전문 지식이 많이 필요할 텐데 공부하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보나파르트는 좀 씁쓸한 표정이 되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네...사관학교에서 참 힘들었죠. 신분도 보잘 것 없고, 식민지인이고, 보시다시피 키는 보통*이어도 덩치는 말랐고, 프랑스어는 서투니까...다른 학생들에게 조롱받고 성적도 잘 안 나오고..."
"저런......"
(* 나폴레옹의 키 : 나폴레옹의 키는 5'피에' 2인치, 미터법으로는 167.6 cm였다. 프랑스 성인 남자 평균이 164.1 cm였으므로 평균보다 오히려 조금 컸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란 귀족 및 부르주아 사이에서는 작다는 감도 있었고, 말라서 덩치가 작아보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5'피트' 2인치, 즉 157.5 cm로 실수로, 또는 비하 목적으로 소문을 냈다. 황제가 되어서는 180 cm가 넘는 황실 근위병들을 거느리고 다닌 것도 키가 작다는 소문에 한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난 얘기를 늘어 놓던 보나파르트는 갑자기 당황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핫! 제가 지금 무슨 말을! 실례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에 별 말을 다..."
"아니, 아니에요. 이해해요. 많이 힘드셨겠군요."
"감사...합니다..."
"뭐, 이렇게 서로 많이 알게 된 김에 말 트고 친구 하자!"
"네? 으, 으응..."
"푸흐흐, 모두가 형제가 되는 이 혁명의 시대에 뭐 그리 어려워 해~"
"그...래, 하하."
"힘내, 곧 군대에서도 귀족제가 사라지고, 모든 시민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국가와 국민에게 공헌하는 만큼 영광을 얻는 시대가 올 거야!"
"응, 고마워."
부오나로티가 눈을 더욱 반짝이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군대 안의 귀족제를 없애자는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 의원 알아?"
"음.... 들어본 것도 같고..."
"제헌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 constituante, 당시 프랑스 국회) 안에서 가장 극좌파 민주주의자이셔! 지금은 큰 힘 없이 그 원칙성 때문에 왕당파나 온건파의 어그로만 끌고 있지만, 곧 이 혁명을 궁극적 귀결, 최대의 민주주의로 이끌게 되실 거야! 바스티유 정복 후에 민중봉기를 진압하기 위한 무장 병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을 때 곧바로 반대하셨지. 그 후 대공포* 때문에 또 그런 주장이 나왔을 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는 자유도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파괴할 목적을 지닌 무서운 음모에 대항해 일어서는 것보다 더 정당한 것이 있습니까?' 하면서 반대하셨고, 또 의회에서 정한 법령에 대한 국왕의 거부권에도 절대적으로 반대하셨고, 선거권의 재산 자격을 둔 제한선거에 반대해 남성 보통선거를 주장하셨고......"
부오나로티의 말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다른 한 청년이 자기 머리를 감싸고 한탄했다.
"으아~ 이 오덕후 녀석 또 불붙었어 ㅜㅜ"
(* 대공포 La Grande Peur : 바스티유 습격 사건 후 그 해 8월 4일 봉건제 폐지 선언이 전해지기 전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난 지방 농촌의 농민봉기들. 바스티유 습격의 소식을 더 이상 옛 지배자들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농민들이 봉기해, 봉건영주들에다가 매점매석 상인, 세금징수인, 악질 판사,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등 무위도식자들까지, 자신들을 착취한다 여긴 사람들을 공격했다. 도둑떼가 농작물을 태우고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류의 유언비어까지 퍼지며 더욱 격화되었다. 이를 달래기 위해 봉건제 폐지 선언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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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어느 밤, 군인들이 거칠게 이집 저집을 뒤지는 가운데, 두 청년이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고 한 집에서 빠르고 조용하게 빠져나왔다. 부오나로티와 보나파르트였다.
부오나로티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오, 망할 파올리(파스콸레 파올리, Pascal Paoli, 1725~1807). 또 도망가야 하네."
"그래도 안 들키고 빠져나와서 다행이야."
"안 돼, 이렇게 아무 것도 못 들고 나오면...! 한동안 더 도망다녀야 하는데..."
"어쩌겠어..."
"...다시 들어가야지."
"안 돼! 들킨다고!"
"일단 여기서 기다려. 낌새가 이상하거나 5분 지나도 안 오면 혼자 도망쳐."
"진짜 위험하다니까!"
"걱정 마. 그럼...!"
"지금 물건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목숨이...부오나로티! 야! 얌마! 좀 들으라고!"
보나파르트는 그들을 찾는 군인들에게 들킬까 소리 높이지도 못하고 애타게 부오나로티를 불렀다. 부오나로티는 아랑곳 않고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보나파르트는 숨어서 입술을 이로 잘근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 그러나 보나파르트에게는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 부오나로티가 가방 하나를 품에 꼭 안고 그늘 속에 숨으며 잽싸게 돌아왔다.
"해냈어, 헉헉..."
"아오, 이... 빨리 가자!"
충분히 멀리 떨어진 후, 둘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오나로티가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 스릴 쩔더라! 내 솜씨를 너도 봤어야 했는데...!"
"아~~주 잘했어요~ 목숨이 한 열 개쯤 돼? 물건 챙기는 게 문제냐고..."
"걱정 많이 했구나. 그렇게 형이 좋아여~?"
"닥쳐! 에휴...그래도 고생했어. 진짜 맨몸으로 나왔으면 앞으로 도망길이 더 고생이었을 텐데."
"그러니까. 난 이거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뭐 들고 나왔어?"
부오나로티가 가방에 든 것을 꺼내 손에 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로베스피에르 님의 신문 <헌법의 수호자(Le Defenseur de la Constitution)> 이제까지 스크랩한 거!"
보나파르트는 잠시 굳어졌다가 남은 가방을 뒤졌다.
"...그것밖에 없네....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게 그거야?"
"내가 이거 스크랩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 신문이 뉴스보다는 논평 위주라, 관련된 뉴스 다른 신문에서 오려서 같이 붙이고 내 의견도 적으면서,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이 혁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게 편집해놨거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레어템이라고!!"
보나파르트는 빈 가방을 멍하게 보기만 하며 듣다가...
"이 덕후 놈아!! 돈이라든가 옷가지라든가 그런 걸 챙겨야 할 거 아니야!!!!"
"꺄아앙~!"
폭발한 보나파르트는 빈 가방으로 한동안 부오나로티를 신나게 후드려 팼다.
허름한 여관 앞에서 보나파르트와 부오나로티는 주인과 이야기했다.
"제일 싼 방은 얼마예요?"
"낡았고 침대도 작은 것 하나 뿐인데요."
"괜찮아요..."
작고 더러운 침대 하나에 부오나로티와 보나파르트는 나란히 누웠다.
부오나로티가 능청맞게 웃으며 말했다.
"헤헷~ 이렇게 한 침대에서 자니까 꼭 형제 같다. 그치?"
"위기의 순간에 덕질 용품부터 챙기는 철없는 형 따위 사양이야."
"에이~ 그러지 말고~"
"아, 손으로 찌르지 좀 마!"
"이거 손 아닌데?"
"응?"
"발인데 ㅋ"
"아오!!"
"ㅋㅋㅋ 이번만 봐줘~"
"으휴...."
얼렁뚱땅 용서받은 부오나로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형제 같고 좋다~ 가족이 있는 듯한 기분 좋은 걸?"
"......의절한 것 후회해?"
"...아니. 가족과의 개인적 정이 끊어진 건 아쉽지만...더 큰 인류, 인민과 형제가 되기 위한 것이었어. 혁명이 완수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모든 인간이 형제애 속에서 사는 세상이 되면, 가족들도 이해해줄 거야."
"...필리포 넌 정말...물렁하고 대책 없는 것 같으면서도...뭐랄까, 단단하네."
"후후, 그게 이상과 혁명의 힘이지!"
"나도 혁명과 그 이상을 믿지만, 글쎄, 너처럼 단단해지진 못한 것 같아. 난 그냥 군대의 귀족제가 사라지고 식민지 차별의식도 사라져서 나에게도 출세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기대에서 혁명을 지지하기 시작했거든."
"괜찮아! 공공의 일에 기여함으로써 영광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공동체에 아주 좋은 거야! 로베스피에르 님과 내가 좋아하는 루소가 좋아하는 마키아벨리가 그랬어."
"하하..."
이번에는 부오나로티가 물었다.
"그러는 너는 후회 안 해?"
"응?"
"파올리에게 맞서기로 한 것 말이야. 그 전에 너는 파올리를 도와 코르시카의 독립을 꿈꾸었잖아."
"그거야...그 때는 혁명 전이었고, 옛 프랑스는 자기 나라 신민에게 그러듯 코르시카에도 압제자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프랑스가 혁명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가 되었으니, 프랑스의 당당한 시민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게 될 거라 생각해."
"맞아, 90년 11월에 교황령 아비뇽의 애국파가 프랑스에 자발적으로 합병을 요구한 것처럼 말이야. 그거 알아? 그 때 의회에선 교황과의 불화가 두려워서 막으려고 했는데, 로베스피에르 의원이 '국민들이 한 인간의 소유라니요. 상호 동의에 의해 두 국민이 통합되어 하나가 되거나 국민의 일부가 국민 전체에 다시 합류하는 것이 정복과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까?' 하면서..."
"오늘 네가 한 일을 생각하면 그 입 다물라."
"힝, 알았어...게다가 파올리는 독립하겠답시고, 프랑스의 민주적이고 급진적인 혁명을 경계하고 있는 영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프랑스를 공격하고 있잖아."
"그래. 거기다 프랑스가 이길 것 같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고...ㅋㅋㅋㅋ"
"뭐야? ㅋㅋㅋㅋ"
둘은 잠시 유쾌하게 웃었지만, 보나파르트는 곧 심각해졌다.
"아...그런데 진짜 우리 어쩌냐? 땡전 한 푼 없이 어떻게 계속 도망다녀?"
부오나로티는 여전히 능청스럽게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혁명가라면 이 정도 고생은 해야지! 혁명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ㅋㅋ"
"아, 그래~ 근데 누구 덕에 더 힘들어져서 말이지."
"너무 걱정 마. 이 젊은 나이에 어떻게든 입에 풀칠 못하겠어? 나 피아노 잘 치잖아. 여차하면 피아노 교습으로 그 때 그 때 벌 수도 있어.* 형 믿어! 오늘 실수 좀 했지만 동생 굶기는 무책임한 형은 아니다~"
"동생? ㅋㅋㅋ 그래, 형만 믿는다!"
(* 프랑스 혁명 후 부오나로티가 유럽 곳곳을 떠돌며 비밀결사를 통한 혁명 활동을 할 때 생계 수단이 피아노 교습이었다.)
부오나로티가 신까지 난 목소리로 말했다.
"히히~ 틈이 좀 생기면 파리로 갈 거야. 혁명의 진원지!"
"응, 나도 때를 봐서 가족들이랑 같이 프랑스로 피신해야겠어."
"파리로 가면 로베스피에르 씨도 볼 수 있겠지? 우히히!"
"하지만 그분은 너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시지."
"흐아앙~ 스타 덕질하는 팬들이 그걸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아?"
"알면서 왜 우는 소리야."
"그래도 이렇게 직면시키다니...잔인한 녀석..."
"내일도 고생길 훤해. 빨리 자자."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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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5월 중순, 파리의 공원에는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했다.
벤치에 앉아 있던 보나파르트는 저쪽에서 부오나로티가 달려 오는 것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벌떡 일어났다.
"나폴레옹!"
"필리포!"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둘은 반갑게 포옹했다.
부오나로티가 먼저 말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군 생활은 할 만해?"
"한직인데 뭐 ㅋㅋ"
"너 정도 실력이면 금방 출세해서 바빠질 거야 ㅋㅋㅋ"
"고맙다 ㅋㅋ"
"가족들은 마르세유에 있댔지? 다들 잘 있대?"
"응, 고마워. 우리 형 조제프(Joseph-Napoléon Bonaparte, 1768~1844)가 마르세유의 부유한 비단상인 클라리 가의 마리 줄리(Marie Julie Clary, 1771~1845) 양이랑 결혼했거든. 형편이 많이 풀렸어, 히히."
"잘 됐네! 넌 뭐 봄 소식 없냐~? 우히히."
"있지...나 작년에 줄리 양 여동생 데지레 클라리(Désirée Clary) 양과 약혼했어."
"오오오! 좋겠다~~"
"히히, 얼마나 천사 같은지~ 도망자 신세인 나를 정말 따뜻하게 감싸 주었어. 얼굴도 예쁘고 ㅋㅋㅋ"
"얼굴이야 내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정말 착한 아가씨네. 축하한다~"
"헤헤헤..."
달아오른 채 싱글벙글한 얼굴 그대로, 이번에는 보나파르트가 물었다.
"넌 어때? 좋은 소식 있어?"
"그런 봄 소식은 아니지만 말이야, 나 곧 프랑스 시민권 얻어! 프랑스 이름도 지어놨어. 필리포니까 필리프(Philippe)! ㅋㅋ"
"와, 축하해!"
"게다가 말이야...으흐흐...꺄하핫~!!"
"진정하고 말해;;"
"있지, 있지...나 시민권 얻는 거 말이야, 로베스피에르 씨가 도와주셨어!"
"응? 친분 생긴 거야?"
"내가 파리 자코뱅 클럽에서 파올리와 연방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한 걸 인상 깊게 보셨나봐. 집으로 초대까지 해주셨어. 우히히~"
(* 연방주의 : 지방분권 주장. 당시 프랑스 국회인 국민공회Convention nationale는 좌파의 자코뱅파=산악파Montagnards와 우파의 지롱드파Girondins로 나뉘어 있었다. 급진적 중소 부르주아지와 도시의 하층 노동자, 특히 파리의 과격 상퀼로트**를 지지 기반 삼고 있던 자코뱅파는 사회민주주의적인 통제경제 정책을 내세우며, 가장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파리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해 혁명을 더욱 급진화시키고자 했다. 반면 부유한 상공업 부르주아지를 지지 기반 삼고 있던 지롱드파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파리의 과격 상퀼로트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지방분권을 주장했다.)
(**상퀼로트 Sans-culotte : 귀족이 입는 우아한 반바지인 퀼로트를 입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 주로 수공업자, 장인, 소상인, 근로자 등 도시 하층민들. 소규모 공방을 소유한 중산층에 가까운 사람들부터 그런 공방에서 하루하루 노동해서 먹고 사는 빈곤층까지, 현대에 생각하는 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보다 넓은 개념이었다. 이들이 무장 투쟁을 벌이며 혁명 정부를 압박하고 이들과 결속한 혁명가 세력인 자코뱅파가 점차 주도권을 잡게 되며 프랑스 대혁명이 과격화, 급진화되었다.)
"올~ 어땠어?"
"부패할 수 없는 자(L'Incorruptible)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더라고! 그 위치에 계시면서도 상퀼로트인 뒤플레(Duplay) 가家에서 하숙하고 계신 건 알지? 목공소 주인 목수로서 상점도 잘 되고 집도 여러 채 가진, 상퀼로트 치고 부유한 집안이긴 한데, 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 로베스피에르 씨의 방은 더 소박해! 2층의 작고 천장 낮고 창문도 하나 뿐인 방이야. 가구도 다 소박해. 책꽂이는 목공소에서 얻은 선반이고, 침대 커튼은 뒤플레 부인의 안 입는 옷으로 만든 거라더라. 게다가 창문 너머 뜰에 창고가 있고 고용된 목수들이 일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크핫! 얼마나 공화국 생각만 하고 계시는지 전혀 신경 안 쓰고 일하시더라구!"
"진정해;;"
"그리고, 그리고 말이야, 거기 갔다가 그분의 동지 필리프 르바(Philippe Le Bas, 1762~1794) 의원을 만났거든. 내가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탈리아 음악 좋아한다고 하셨어. 내가 피아노 치는 걸 즐긴다고 하니 한 번 연주해달라 하시더라. 로베스피에르 씨와 르바 씨와 뒤플레 가족들 다들 내 연주 좋게 들어줬어~ 르바 씨가 종종 놀러 와서 또 연주 들려달래! 꺄하핫!!"
"와... 덕후가 덕질 대상에게 인정받았으니 큰일 났구만~"
"나란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실 거라고 했지? 봤냐, 임마! 내가 이 정도야!"
"그걸 아직 쌓아두고 있었냐;;"
"큭큭큭..."
"아무튼 프랑스 혁명에 본격 발을 들였네! 축하해!"
"고마워~ 너도 곧 공화국을 구하는 위대한 장교가 될 거야! 내가 기회 봐서 팍팍 밀어줄게~"
"헐, 지금 청탁해주겠다는 거야?"
"뭐 임마? 지금 이 혁명가를 뭘로 보고! 네가 정말 훌륭한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공화국에 도움이 될 인재를 추천하는 거거든!"
"그래, 고맙다 ㅋㅋㅋ 두 말 하기 없기다~"
"그럼! 너도 지금까지처럼 공화국의 애국적 군인으로 계속 충실하게 근무하도록!"
"예썰! 푸히히..."
보나파르트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너 부오나로티라는 성은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유지하려고.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성이잖아!"
"이탈리아식 성이랑 프랑스식 이름이 같이 있으니까 이상한데. 이탈리아랑 프랑스 사이에 양다리 걸친 것 같아 ㅋㅋ"
"응? 난 프랑스 시민이자 이탈리아 시민인데?"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게 왜 이상해? 보나파르트 시민! 민족(nation)은 혈통이 아니야! 동료 시민들을 형제애로써 사랑하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일구어가는 국가를 사랑한다면 그 민족이 되는 거라고. 난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사랑해.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혈통인 내가 프랑스의 애국적인 시민이기도 한 거지. 반대로 인민에게 반역한 루이 카페(루이 16세)는 전혀 프랑스인이 아닌 거고."
"그렇구나아..."
"히히, 나중에 이탈리아 동포들과 혁명 단체를 만들게 되면 '참된 이탈리아인 협회'*라고 이름지어 볼까?"
(* 참된 이탈리아인 협회 : 프랑스 혁명 후 부오나로티가 유럽 곳곳을 떠돌며 비밀결사를 통한 혁명 활동을 할 때 참가한 비밀결사들 중 하나. 1830년대에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 외에 그가 참가한 비밀결사들로 '완전지고한 지도자들', '세계', '이탈리아 해방자 평의회', '개혁 카르보네리아' 등이 있다.)
그렇게 둘은 웃고 재잘거리며 공원을 거닐었다.
부오나로티가 말했다.
"로베스피에르 씨 얼굴 본 적 있어?"
"아니."
"오늘 저녁에 자코뱅 클럽 같이 가자! 오실 지도 몰라. 있지...ㅋㅋㅋㅋㅋㅋㅋ"
"왜?;;;"
"그분 얼굴이 말이야 ㅋㅋㅋㅋ 고양이 닮으셨엌ㅋㅋㅋㅋㅋ"
"응?;;;"
"진짜야! 얼굴 위아래로 납작하고, 눈 땡그라니 비스듬하고-위가 아니라 아래로지만, 그리고 코 납작하고 입 크고, 머리 작고, 키 작고 말라서 덩치 작고 ㅋㅋㅋ 깔끔 떠시는 것까지 닮았다니까! ㅋㅋㅋㅋㅋ"
"...너 그분 존경하는 거 아니었냐;;;"
"존경하는데? 왜?"
"근데 말투가 버릇 없잖아;; 게다가 재수없는 고양이에 비유하다니..."
"고양이 같이 생기셨다는 말 많이들 하던데. 그리고 고양이가 왜 재수없어? 중세 가톨릭의 마녀사냥* 때처럼 고양이가 마녀의 패밀리어**라도 된다고 생각해?"
(* 마녀사냥 : 마녀재판은 페스트가 만연하던 1590년대에 성행했으나, 기록으로 전해오는 광기 어린 행태는 절대주의가 한창이던 17세기, 근대 초였다. 이전에는 당연하던 마녀재판이 17세기에 오면서 '사건'으로 발전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중세 봉건제 질서가 붕괴되고 국가의 전체적 동질성이 강해지던 과도기에 따른 혼란과 불안심리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갈등 요소들을 그의 탓으로 돌리고 공동체의 동질성과 지도자의 권위를 확보하려는 심리가 작동한 탓이 크다. 이 혐오스럽지만 쓸모 있는 장치는 농촌에까지 국민교육이 자리를 잡는 19세기에 들어서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이상 만화
뉴히스토리아, '마녀재판에 어서오세요.' 편에서 인용.- 따라서 직접적으로 가톨릭교의 탓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마녀사냥이 중세에만, 주로 가톨릭교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현대 우리들도 흔히 가지고 있는 오개념이고, 혁명기는 중세를 미신이 만연한 어둠의 시대로 치부하고 이성과 광명의 근대를 연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이므로 이해해줍시다 ㅋ)
(** 패밀리어, 퍼밀리어 familiar : 마술사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는 정령이나 동물의 총칭. 고양이, 그 중에서도 특히 검은 고양이가 마녀의 패밀리어로 흔히 여겨지곤 했다.)
보나파르트가 좀 뾰로퉁하게 받아쳤다.
"사람을 뭘로 보고! 나 그런 미신 안 믿거든! 게다가 어릴 때 가톨릭 교육기관에서 고대 로마의 위인들이 가톨릭교를 안 믿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영... 뭐 교회는 나름 고상하고 아름다운 멋이 있긴 해서 아주 싫은 것까진 아닌데 그렇게 충실하지도... 아무튼 내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그냥 주인에게 충성스럽지 않고 건방져서야."
"보나파르트 시민! 그거야말로 고양이의 훌륭한 점이라고! 고양이는 주인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훌륭한 시민이란 거지!"
"뭐야, 그게;;"
"개처럼 무조건 충성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처럼 압제받을 때면 언제든 저항하는 게 시민의 덕목이라고! 로베스피에르 씨는 개 키우지만 ㅋㅋ 아놔, 로베스피에르 씨 키는 160 cm인데 그 개 몸길이는 162 cm얔ㅋㅋㅋㅋㅋ 산책하고 있으면 누가 누굴 끌고 가는 건지ㅋㅋㅋㅋ"
"......"
보나파르트가 어이없어 하든 말든, 부오나로티는 신나게 계속 떠들었다.
"로베스피에르 씨가 직접 쓴 새 헌법의 인권선언 초안을 4월 21일 자코뱅 클럽에서 낭독하셨는데, 압제에 대한 저항을 규정한 조항들이 특히 멋져! 제26조, 압제에 대한 저항은 인간과 시민의 다른 권리들의 결과이다. 제 27조, 사회 구성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압제당한다면 사회체가 압제당하는 것이다. 제28조, 정부가 민중을 억압할 때, 민중 전체과 민중의 각 부분의 반란은 가장 신성한 의무이다. 제일 멋있는 제30조! 압제에 대한 저항을 법적 형식에 맞추는 것은 폭정에 최후의 미화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걸 다 외우냐...대다나다~"
"헤헤헤..."
그런데 싱글벙글 하던 부오나로티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런데 말이야..."
"어? 왜 그래..?"
"...로베스피에르 님의 초안에는 소유권(재산권)을 공격하는 구절이 있었어. '이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셨지만 곧이어 '비열한 인간들, 가치를 재는 척도라곤 황금밖엔 없는 자들아, 그 재산들의 원천이 아무리 더럽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들의 재산에 손대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라고 하시고, 노예 상인, 봉건 귀족, 카페 왕조를 예로 들며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재산에 어떠한 도덕적 원칙이 있어본 적이 없다.'라고 꾸짖으셨지. 그리고 소유권을 불가침의 자연권에서 끌어내리고 제한해야 한다고 하셨어. 제10조, 소유권은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 제11조, 소유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이나 자유나 생존이나 재산을 해칠 수 없다. 제12조, 이 원칙을 침해하는 모든 재산 소유, 모든 상업적 거래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이다."
보나파르트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부오나로티는 계속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옳은 말이야. 루소는 사유재산제도는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간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부자들이 빈자들을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걸 밝혔지. 그에 따라 소유권은 불가침의 자연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제한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작은 농지나 작업장이나 상점 같은 생산수단을 갖고 독립적으로 사는 평등한 사회, 지금 우리 자코뱅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를 제시했어. 부자들의 탐욕을 제한하고 진정 하층 인민들을 높여줄 생각을 못한 다른 계몽주의자와 비교되는, 루소만의 뛰어남이지. 역시 로베스피에르 씨, 혁명 시작부터 항상 원칙에 가장 투철한 분다워."
보나파르트는 부오나로티가 또 로베스피에르 찬양을 하면서도 표정이 평소 그럴 때와는 다르게 어두워서 의아했다.
"하지만 아마 같은 산악파들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산악파 혁명가들도 기본적으로 부르주아니까. 그래도 마라(장 폴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 씨, 당통(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1794) 씨와 함께 산악파 세 거두인 로베스피에르 씨가 말했으니 '가진 자'들이 상당한 위협을 느낄지도 몰라."
"그래...?"
"페티옹(페티옹 드 빌뇌브Jérôme Pétion de Villeneuve, 1756~1794) 의원 말이야, 제헌의회에서 로베스피에르 씨와 함께 극좌 민주파의 절친한 동지였고, 뷔조(François Nicolas Léonard Buzot, 1760~1794) 씨에게 부자와 빈자 간의 동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던, 그러나 이제 지롱드파로 가 정적이 되어 있는..... 로베스피에르 씨가 초안을 읽던 그 무렵에, 페티옹은 <파리 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해 '여러분의 재산이 위협받고 있는데 여러분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라고 공공연하게 내전을 호소했어!"
"아...!"
"마르세유, 보르도, 리옹에서 반(反) 산악파 움직임이 일고 있어.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다가와! 자코뱅파와 지롱드파 사이에, 상퀼로트와 부르주아 사이에, 그리고 파리와 나머지 프랑스 사이에...! 물론 정의와 원칙을 위한 전쟁을 두려워해서도 피해서도 안 돼. 우리 자코뱅은 반드시 루소의 이상을 관철시키고 말 거야!
하지만...피가 흐를 거야!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에서도 가난한 농부와 노동자 편을 가장 적극적으로 들고 이 민중적인 프랑스 혁명에도 가장 우호적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 '예나 지금이나 자유의 나무는 독재자와 애국자의 피로서 다시 살아난다.'라고 했지. 애국자와 그 반대자의 피가 엄청나게 흐를 거야. 아마 제퍼슨의 상상 이상으로...!"
"필리프......"
부오나로티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보나파르트는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는 것밖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미 외국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방데 반란을 비롯한 내전도 있는데, 경제도 어려운데... 반역자 국왕을 처단하는 인민의 권리를 행사(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 처형)했다는 이유로, 이미 시민혁명을 벌인 영국까지 합세해 전 유럽이 대불동맹(제1차)을 결성했어! 군대 내의 귀족제를 없애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치였지만, 귀족 장교들이 망명하거나 해고된 빈 자리를 채우기 전에, 92년 4월에 라파예트파와 지롱드파가 성급하게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해 혁명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연전연패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지...
빌어먹을 지롱드파! 자기들이 먼저 전쟁을 시작해놓고선 전쟁을 책임지기 위한 조치는 않고 있어! 민중봉기가 겁나서 민중을 무장시키고 결집시키는 데도 소극적이고, 자기들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에 눈이 멀어서 경제에 필요한 통제를 가하지 않고 무책임한 자유방임경제만 내세우고, 온 인민을 결집시켜 최대한의 힘으로 위협에 맞서야 하는데 파리 상퀼로트를 견제하겠답시고 연방주의를 주워섬기고! 젠장, 지롱드파를 몰아내지 않으면 혁명만이 아니라 프랑스 자체가 무너지고 말 거야!"
"큰일이구나......"
"공화국이 위기에 처했어! 외부의 전쟁, 내부의 반란, 정파의 분열, 경제 위기...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닥치는 이 엄청난 위기에 맞서려면...더 이상 '자유'의 원칙을 있는 그대로 따를 수 없어. 자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억압할 수밖에 없어. 아...혁명의 이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데...혁명은 아름다울 수 없어..."
부오나로티는 금새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땅 위 인간들의 혼란 따위 모른다는듯 푸르고 아름답기만 한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 그렇게 간신히 눈물을 말리고 말을 계속했다.
"이럴까봐 로베스피에르 씨는 91년 말과 이듬해 초에 혁명전쟁을 반대했는데! 무장한 포교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우리 내부의 혁명을 다진 후에야 외부에 혁명 정신을 전파할 수 있다면서, '이 혁명이 서서히 도래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경우처럼 그렇게 쉽게 우리의 족쇄를 깨뜨릴 수 있었을까요?' 하면서. 결국 그분의 현명한 충고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금의 위기에 이르렀지.
그분이 혁명을 이끌게 될 거라고 내가 널 처음 만난 날에도 말했지. 공공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 산악파밖에 없으니 틀림없이 승리할 거야. 하지만 가장 끔찍한 시기에 프랑스를 떠맡게 되는 거지. 혁명 처음부터 주장하시던 '최대한으로 평등한 최대한의 자유'라는 이상을 그대로 관철할 수 없을 거야. 후에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일단 상황의 압력에 굴복해 이상을 버려야겠지..."
"...끔찍하구나."
"맞아. 92년에 로베스피에르 씨가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될지 예언하셨지. 처절한 패배를 연달아 겪을 것이고, 그대로 완전히 패배한다면, 혁명이 쌓아온 모든 건 무너지고 그에 동조했던 사람들도 모두 살해되는 피바람이 일고, 반역이 일어나 왕관을 부르봉 왕조에게 바치거나 직접 쓰고 전제정을 되살릴 거라고. 그리고 만약 초기의 패배를 버틴 후 승리한다면 프랑스는 장군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고, 군대의 힘이 강해질 것이고...'군사독재'가 도래할 거라고!"
"군사독재..."
"마라 씨가 필요성을 주장하고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가 저주하듯 예언한 대로, '혁명독재'가 들어서야겠지. 군사독재가 오기 전에 '인민의 독재'를 하고 인민의 힘으로 군대를 통솔해, 군대가 인민을 누를 만큼 커지기 전에 빠르게 승리를 거두고 자유로 되돌아가야 해."
"인민의 독재?"
"형용모순으로 들리지? 인민이 직접 통치한다는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 건 아니고. 직접민주주의는 루소가 이상으로 여긴 민주주의지만 빠른 결정이 필요한 위기시에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 말은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긴 해도, 그 소수는 인민을 위하고 인민의 지지에 기반해 힘을 발휘해야 한단 말이야."
"아..."
"어려운 일이겠지. '인민의 적'을 빠르게 처단해야 할 테고, 인민의 혁명적 열정을 고무해야 해. 그러면서도 그 열정이 너무 지나쳐 혁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게 해야 하고, 평시에나 가능할 자유 원칙을 내세우는 온건파에게도 맞서야 하고... 너무 어려운 일인데! 실패하면 혁명을 내세워 놓고 피바람만 일으켰다며 비웃음만 받고 엄청난 반동이 몰려올 거야! 혼란 속에서 군대만 강해져서, 혁명이 부순 반혁명과, 반동이 부순 혁명의 폐허 위에, 결국 군사독재가 서겠지..."
"......"
갑자기 부오나로티는 보나파르트의 손을 뜨겁게 붙잡고, 이제까지의 슬프고 걱정스러운 어조와 달리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폴레옹! 너와 같은 애국적인 군인들이 절실하게 필요해! 공화국을 승리로 이끌면서도 장군이 새로운 압제자가 되는 건 막을, 92년 혁명전쟁 초에 라파예트(Gilbert du Motier La Fayette, 1757~1834)의 쿠데타 시도에 따르지 않아 그가 오스트리아로 피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병들처럼!"
"응...내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 닿는 한 그럴게."
"넌 능력 있어! 그냥 의지만 다져줘!"
"물론!"
두 자코뱅은 그렇게 서로 손을 맞잡고 환히 웃었다.
부오나로티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사실 위기 시에는 통제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폭력이 필요한 법이기에, 이미 위기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그리 신기한 선견지명까지는 아니었다. 혁명전쟁의 낌새도 안 보일 때 그런 예언을 한 버크는 대단하지만.
부오나로티와 보나파르트가 그런 얘기를 나눈지 얼마 안 지나, 5월 25일, 지롱드파의 주요 지도자 이스나르(Maximin Isnard, 1755~1825)는 국민공회에서 선언했다. "국민공회의 권위가 실추된다면, 프랑스 전체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선언하건데, 파리는 전멸할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센 강변에서 파리가 존재했는지를 찾으려 애쓸 것입니다."
자코뱅파를 지지하던 파리의 과격 상퀼로트들은 불안과 분노로 들끓었다. 바로 다음날 5월 26일, 로베스피에르는 자코뱅 클럽에서 "민중이 억압당할 때, 민중에게 자기 자신 밖에 남아 있지 않을 때, 민중에게 일어나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겁쟁이입니다."라며 무장봉기를 호소했다. 그러나 의회주의자였던 그는 민중봉기가 정신적 봉기에 그쳐야 한다며, 민중봉기가 압력을 넣는 가운데 의회 스스로 지롱드파를 추방하기를 바랐다.
그에 응해 5월 31일, 파리 상퀼로트들은 앙리오(François Hanriot, 1761~1794)의 지휘 아래 국민공회에 침입했다. 그러나 파리 민중의 개입에 혐오를 느낀 중도파는 지롱드파 내각인 12인위원회를 해산하는 데는 동의했으나, 그들이 고발한 지롱드파 주요 의원들의 추방에는 반대했다. 어떤 면에서 그 봉기는 실패했다.
6월 2일, 파리코뮌*과 마라가 로베스피에르 없이 준비한 결정적 봉기가 일어났다. 8만 명의 군중이 의회를 둘러싸고 배신자를 처단하라고 소리쳤다. 앙리오가 이끄는 국민방위대**는 대포 163문을, 의회를 겨냥하고 배치했다. 겁에 질린 의원들이 도망치려 했으나 앙리오와 병사들이 무장하고 의회로 침입해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지롱드파와 중도파인 평원파La Plaine는 물론 산악파까지 혼비백산해, 토론 없이 지롱드파 핵심 의원들의 가택구금을 결정했다. 외전과 내란으로 위기에 처한 프랑스를 이제 산악파 혼자 다스리게 되었다.
(* 파리코뮌 Commune de Paris : 삼부회***의 파리 제3신분 대표 선출을 위해 생긴 선거위원회가 상설화되며 파리 시정을 책임지게 된 시민 자치체.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습격을 위해 조직된 봉기코뮌이 기존의 합법적 코뮌을 대체하면서 무산자층이 주도적이게 되고 더욱 과격하고 급진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프랑스 혁명에 과격화·급진화 압력을 가하는 중심이 되었다.)
(** 국민방위대 La Garde nationale : 프랑스 시민들의 민병대. 혁명 초기에는 입대 자격의 재산 제한 때문에 중산층이 모인 만큼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중도층 성향이었다. 그러나 1792년 8월 10일 봉기 후 봉기세력에게 해체되고, 재산 제한이 사라져 무산층이 입대할 수 있게 되면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 삼부회 États généraux : 프랑스 세 신분 - 제1신분 가톨릭 성직자, 제2신분 귀족, 제3신분 평민 - 의 대표자가 모여 중요 의제에 관하여 토론하는 장으로서 중세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신분제 의회다. 국가 재정이 파산 상태에 이르자 루이 16세는 면세 특권을 누리던 귀족과 성직자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귀족과 성직자는 이러한 과세안에 반발하였고 루이 16세는 새로운 세금을 위해 삼부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삼부회는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는 제3신분과 귀족, 성직자의 대립에 의해 붕괴되었고, 이로부터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가택구금의 감시는 철저하지 못해 대부분의 지롱드파 의원들이 달아났다. 일부는 다시 붙잡혀 단두대로 가고, 일부는 다른 피신한 지롱드파 인물들과 함께 지방에 숨어들어, 때로는 왕당파와 연합하기도 하며 반 산악파 봉기를 일으켜 표면적으로 60개 도를 장악했다. 이 '연방주의' 반란은 산악파 혁명정부의 통제와 폭력을 정당화할 또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
7월 13일, 산악파의 가장 과격한 지도자 마라가, 지롱드파를 지지하는 시골 처녀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de Corday, 1768~1793)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대세 앞에서 덧없는 단말마일 뿐이었다. 오히려 과격 상퀼로트들과 자코뱅 혁명가들의 불안과 투지만 더 키웠다.
7월 27일,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공회에 세워진 임시위원회였던 공안위원회(Comité de salut public)에, 그 전까지 계속 정부 관직을 거부하던 로베스피에르가 새로운 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전까지 공안위원회를 주도했으나 미온적이었고 결국 손을 놓은 당통을 대신해, '혁명독재'를 준비했다. 공안위원회 위원들을 '충실한 산악파'로 개편하고, 공안위원회가 사실상의 행정부가 되게 했다.
9월 5일, 급진적인 혁명적 성직자 자크 루(Jacques Roux, ?~1794)가 주도하는 과격 상퀼로트 세력인 앙라제(Enragés, 격앙파)가, 전반적 최고가격제 제정과 매점자의 처형을 요구하며 봉기를 일으켰다. 혁명정부는 봉기를 진압하고 자크 루를 비롯한 앙라제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다만 그들의 요구는 수용해 전반적 최고가격제와 무상의무교육 법령 등을 제정했다. 반혁명 혐의자를 규정하는 법 - 포괄적으로 규정한 만큼 법의 집행자들의 권한을 늘려 무서운 독재 수단이 될 수 있는 - 을 제정했다. 그리고 그 전까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던, 반혁명 정치범들을 전문으로 재판하는 혁명재판소(Tribunal révolutionnaire)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유와 인민의 이름으로 하는 독재, 악명 높은 '공포정치(La Terreur)'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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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이나 극은 뒷이야기 알고 보면 재미없다고들 하는데, 전 결말이 정해진 역사 기반 소설들이 좋더라고요! 특히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한 거요. 뒤에 파국이 다가올 걸 독자도 작가도 다 아는데, 등장인물들만 모르고 곧 사라질 행복을 즐기는 모습이...ㅋㅋㅋㅋ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느낌을 살리려다 보니 부오나로티와 보나파르트가 지나치게 깨발랄;;해진 것 같기도...ㅋㅋㅋ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실제로 부하들과 농담도 잘하고 쾌활하고 정 많은(공사 구분을 잘 못하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을 정도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필리프 부오나로티는, 그에게서 사회주의 사상과 로베스피에르 빠심;;을 배운 제자인, 프랑스 제2공화국에 참여한 프랑스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Louis Blanc, 1811~1882)의 증언에 따르면 근엄한 성격이었다는데요... 젊을 땐 달랐다거나 제자 앞에서만 점잖은 척 했다는 설정으로 해보죠 ㅋㅋㅋㅋ 미안합니다, 부오나로티 ㅋㅋㅋ
전반적인 사건 흐름은 실제 역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보나파르트와 부오나로티가 코르시카 자코뱅 클럽에서 만나 친해진 것, 코르시카 독립운동 지도자 파스콸레 파올리에게 맞서며 함께 피신 다닌 것 (수정)함께 맞선 것, 부오나로티가 재미없게 설명하는 프랑스 혁명사도요 ㅋㅋ
부오나로티의 덕질용 스크랩북;;이나 부오나로티가 로베스피에르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는 제 창작이고(필리프 르바가 이탈리아 음악 애호가인 건 사실이지만), 부오나로티가 93년 5월 27일 법령으로 프랑스 시민권을 얻은 건 맞는데 5월 중순에 파리에 있었는지와 보나파르트가 그 때 파리에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정) 부오나로티와 보나파르트가 함께 파올리에게 맞선 건 맞는데(부오나로티 프랑스어 위키피디아 항목 중 'il se lie avec les Bonaparte et s'oppose à Pascal Paoli') 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단 둘이 피신다닌 기록은 없더라고요. 보나파르트 집안은 파올리의 감시를 받고 있긴 했는데 도망다니는 처지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국민공회(1792년 9월 20일에 구성된 프랑스 국회) 의원 선거 나갔다가 떨어졌다고 하네요. 고증 제대로 안 해서 죄송합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정보야 책에도 인터넷에도 넘쳐나니, 필리프 부오나로티에 대한 정보만 소개해드리자면요...
물론 이상의 것들 안 읽어도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 없어요! ㅎㅎ 혹시 더 공부하고 싶으시면 참고해 보시라고 소개드리는 겁니다.
부오나로티를 오덕후로 왜곡해서 미안합니다 ㅋㅋㅋㅋ
그런 형태는 아닌데, 위에 링크한 제 블로그 포스트의 Mathiez(알베르 마티에)의 글 중 부오나로티의 글 인용한 걸 보면 로베스피에르 찬양이 장난 아닙니다 ㅋㅋㅋ 그 정도면 거의 준 덕후 아닌가....ㅋㅋㅋ 부유한 대귀족 집안 자제였는데 덕질하다가 혁명가 되어서 평생 가난하게 유럽 곳곳을 떠돌다 살았으니, 여러분, 덕질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ㅋㅋㅋ
이런 부오나로티와 그에게 아직 동조적인 보나파르트만 말을 하고 있어서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파에게 찬성하는 시각만 드러나고 편향적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 다른 인물들도 조금씩 나오고 하면서 다른 시각도 나올 겁니다.
참, '지롱드파'라는 용어는 1847년부터 사용되었어요. 지롱드 지방 출신의 부르주아 계급이 다수를 차지했던 보르도, 자코뱅 클럽 소속 의원(베르니오 등)을 핵심으로 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역사 용어로 정착한 것은 1847년, 라마르틴의 <지롱드파의 역사>가 출판된 이후로, 후세에 이름이 붙은 거죠. 이상은
한국어 위키백과 지롱드 당 항목에서 인용했습니다. 혁명 중에는 대표적 인사인 브리소의 이름을 따 '브리소파'라고 불렸고, 93년에 데물랭은 <브리소파의 역사>를 썼어요. 그런데 사실 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습격 후로는 브리소의 영향력도 줄어들어 지롱드파의 주인은 롤랑, 특히 롤랑 부인으로 보였대요.
음...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지롱드파라고 계속 쓰고 있더라고요 ㅋㅋㅋ;; 죄송합니다. 그냥 흔히 쓰는 용어가 보기에도 편하니까 대충 넘어가죠 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