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마침 남편과 시간이 맞아 영화 <변호인>을 같이 봤다. <변호인>은 고 노무현대통령의 삶에 허구적 요소를 보탠 영화다. 지난 대선에서 일 년이 지난 시점과 빈번해지는 촛불집회, 문재인 의원의 대선재출마 시사 등 여러 정치적 이슈가 첨예한 시기이다보니 영화를 둘러싼 말과 의미부여가 넘친다. 영화<레미제라블>이 인기몰이했던 때보다 어쩌면 더 직접적으로.
그러나 내게 <변호인>은 고 노무현대통령을 향한 향수나 문재인 의원을 둘러싼 세력 재결집이라는 ‘진영논리’를 떠나 그저 자유와 인권, 인간다움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를 말하는 영화로도 충분했다.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 국민이 공권력에게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강자의 횡포에 대한 저항, 무고한 시민을 변호해야 할 의무 같은 것 말이다.
극중의 변호인, 송강호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불의가 버젓이 바로 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외친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어지는 재판에서 그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뜨겁게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많은 관객들이 울컥할 것 같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함의 중 하나는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지도자를 제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일 것이다. 누구든 한 사람 당 한 표, 우리 모두는 평등하고 공정하게 내 목소리를 내고 나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기에 비로소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나라의 최고권력자에게 정통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정원과 국방부 등 국가기관의 명백한 대선개입으로 국민의 주권이 무참히 침해되었다. 대선개입이 결과에 영향을 주었냐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개입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다. 이 사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과연 다음 대선 때 무얼 어떻게 믿고 투표할 수 있을까 싶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너무나 힘주어 강조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