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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야권연대, 단일화에 대한 생각
게시물ID : sisa_7035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주는25도
추천 : 1
조회수 : 31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4/01 17:28:04
1.
제가 보기에 야권연대 단일화가 야권을 약화시켜온 주 원인입니다.
단일화는 바둑으로 치면 일종의 묘수 같은 거라고 봅니다.
한 수로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하고 양수겸장으로 불리한 판세를 뒤집는 말 그대로 절묘한 수입니다.
 
그런데 바둑 격언에 이런 게 있어요. ‘묘수 세 번 나오면 그 바둑은 진다.’
묘수는 ‘불리한 판세’를 뒤집는 수잖아요.
처음에 불리한 상황이다가 묘수로 뒤집어도 다시 불리한 상황이 됐다가, 묘수로 또 뒤집어도 다시 불리, 또 뒤집어도 불리 .... 이런 바둑은 진다는 겁니다. 묘수를 아무리 남발해도 평범한 정수 싸움에서 밀려버리면 지는 겁니다.
따라서 단일화는 정상적인 승리의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단일화를 믿고 정수 연습을 게을리 하면 영구히 지는 길로 가는 거죠.

2. 
단일화와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문제로, 거대야당의 시민사회 인물 영입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성공 사례로 박원순, 이재명 시장 같은 경우가 있겠고, 실패사례는 안철수죠.
더 올라가면 과거부터 있어왔던 민주화 운동권의 야당 영입이나 .. 인권변호사 등등이 있겠네요.
중요한 건 뭐냐면 ‘당에서 발굴하여 키운 인재’가 아니라 
‘이미 자기 스토리와 입지를 가진 외부 인사’를 간판으로 영입한다는 겁니다. 
당 입장에서는 그 외부인사의 스토리와 입지를 당 지지로 편입시킬 수 있어서 좋은 일이겠지만,
그 사람이 원래 있던 자리, 그러니까 시민단체나 문화예술계, 기업계(안철수의 경우)의 주요 우호인사들을 정당인으로 끌어들여 소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새누리당이 이주일, 이만기, 조훈현을 쓰고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3.
문제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이주일, 이만기, 조훈현이 흔하고 뻔한 정치인으로 전락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야당 영입 인사가 정쟁에 동원되는 정치인1이 되어버리면 시민사회, 문화예술계, 기업계의 우호적 중진들을 날려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그 결과 점점 더 야당을 지지해줄 외곽은 사라지고 점점 더 정당의 실력은 떨어지며 점점 더 외부 영입에 기대게 되는 거죠.
물론 386 이하 운동권을 대거 영입하고, 세칭 친노 그룹을 영입하게 되면서 당권 자체가 이른바 개혁적 방향으로 좀 이동하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당권을 장악했나요? 실패했습니다. 적어도 완전하게 장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더민주 중의 일부는 개혁적일지도 모르지만, 더민주라는 당의 결정 자체는 그에 훨씬 못미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4. 
‘야당 세력’은 균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시민운동에 매진하는 사람, 환경 운동에 매진하는 사람, 노동 운동에 모두 각자의 지향점이 있으며, 기존의 보수 야당으로 자신의 지향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녹색당, 민노당 같은 것을 세운 겁니다. 즉, 애초부터 ‘보수 야당이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을 주장하고 나온 정당입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상황입니다.
<------- [중도야당의 지향점] ------->
|........A............| <----- [야당 내 개혁세력 지향점] -----> 
.........................|...........B.....................|<------[진보정당의 지향점]---->
............................................................|............C.........|.|........D............|
확실히 보수중도야당 내의 개혁적인 일부 부위의 지향점은 진보정당과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도야당 내 일부는 빨갱이를 새누리당만큼이나 싫어하고, 그와 평균을 낸 중도야당의 당론 자체는 진보정당과 거리가 꽤 됩니다.
진보정당 내 일부는 야당 내 개혁세력과 상당히 겹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작금의 현실이 보수야당과 보수여당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5. 
보수 야당에 뚜렷한 비전과 플랜이 있느냐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 개혁적 인사들 말고 국민에게 보이는 정당으로서의 모습 말입니다.) 그러니 보수 야당이 독자적으로 지지풀을 넓히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소수 정당들이 생겨나고 이 소수정당들이 지지를 조금이나마 확대해나가는 건, 보수야당이 설득력있는 독자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방증입니다. 이 사람들을 단순히 범야권으로 명명하고 ‘새누리 저지를 위해 보수야당을 찍어야만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 기술적으로 보면 단일화, 여권 연대는 위 표에서 B가 A를, C가 D를 설득하는 과정이어야 할 겁니다. 몹시 어렵긴 하겠지만 그래야 최대한의 범야권 결집이 나오겠지요. 하지만 제 경험상 B는 A에 대한 설득보다는 C, D에 대해 당연한 듯이 의무처럼 단일화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D는 진절머리를 내면서 B와 C를 욕하고, C는 불만을 꾹꾹 누르며 단일화에 끌려가는데, B는 또 왜 D를 안데리고 왔냐며 C를 욕 합니다.  

6. 
단일화라는 묘수는 ‘야당은 능력이 없다’를 자인하고 벌이는 이벤트입니다.
그 와중에 거대 여당은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야권 세력을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정책도 역할도 고민도 하지 않아도, 단지 야당 중에 가장 크다는 이유만으로 선거에서 모든 반여권표를 쓸어갈 수 있어요.
그 당의 당선자가 어이쿠 내가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할까요?
‘니들 새누리 싫으면 나말고 누굴 찍겠니 ㅋㅋㅋ’라면서 배짱 튕기는 놈들이 나옵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죠. 하지만 있습니다.
그러면 표를 주는 사람은 욕하면서 표를 주죠. 욕하면서 주는 표가 선거 후에 그 당의 힘으로 쌓일까요?
 
이 배짱은 소수 정당에게는 참으로 눈물 나는데, 그냥 선거에 나오지 말랍니다.
만약 나온다면 승패에 영향이 없는 구석에 가서 이름만 올리고 말랍니다. ....
성장하지 못해서 소수정당인데, 소수정당이라서 성장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범야권의 발전이, 온전히 반새누리당만을 화두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위에 썼듯이 거대야당의 한계를 비판하며 생겨난 ‘범야권 지지자’가 존재하는데 
단일화라는 명목으로 소수정당의 출마가 가로막히면 ‘범야권 지지자’의 형성은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권 전체가 쪼그라드는 것이죠.

단일화는 거대야당에게도 소수야당에게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7.
혹시 대국적 정치공학 때문에, 혹은 연대 때문에 주기 싫은 비례표를 남의 당에 억지로 주는 분 있나요?
만약 계시다면 그러지 마세요.
선거의 본령은 민의를 정치권에 반영시키는 겁니다.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민의 반영이 왜곡되면 선거제도는 망가집니다. 
본인 마음도 민의이고, 마음 가는대로 본인이 원하는 세력을 찍으시면 됩니다.
노동당 정의당이 졸라 싫은데 연대 차원에서 억지로 찍어주고 그러지 마세요.
 
8.
이번 선거 지면 죽을 것 같지요? 큰일 날 것 같지요?
2012년에도 2008년에도 2004년에도 2000년에도 항상 그랬습니다.
선거가 닥쳐오면 이번만은 꼭 이겨야 할 것 같고,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에 피가 몰립니다.
사실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선거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선거는 지금 앞둔 선거입니다.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느냐, 이순신을 파직하느냐보다 지금 치르는 선거가 더 중요합니다. 

그만큼 절박하다보니 본인은 ‘사소한 감정을 잊고’ 그동안 잘못했던 사람들까지 다 포용하고 가자는 참으로 숭고하고 대국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기에 ‘반새누리’라는 것이 이전의 모든 행적 모든 단점을 상쇄할만한 가치가 있어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새누리니까’ 찍어주자, 안찍으면 역적이라 몰아붙입니다.

그런데 이거 주변에 강요하지 마세요.
“... 야 그 사람은 니가 평소에 쓰레기라며 ..” / “그래도 새누리보단 낫잖아.. 찍어. 안찍으면 개객기”
이걸 누가 쉽게 납득을 할까요. 이러니 지지하는 당의 기초 체력이 약화되는 겁니다. 
본인 말에 주변 사람들이 설득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상당 부분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9.
그러니까 애초에 정치공학 따지지 말고 찍고 싶은 사람 찍고, 찍고 싶은 당 찍으면 됩니다.
다만, 본인 찍고 싶은 곳에 찍으시고,
[민주당이 먼저 배가 불러야 진보정당한테 비례 찌끄러기라도 던져주지 쯧. 민주당 먼저 좀 먹자]
[내 말 안들으니 그동안 불쌍해서 던져줬던 비례표도 안줄꺼야. 죽어볼래?]
라는 얘기도 다시는 안했으면 합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내가 키우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 정당에 표를 줬다.] 라고요.
그 사람, 그 정당이 이번에 안 되면 또 어떻습니까? 계속 키우면 됩니다.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화라는 묘수는 당면한 중차대한 선거 - 그러니까 모든 선거 - 에서 물리치기 힘든 명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매번 묘수를 부리는데 왜 자꾸 상황은 점점 더 안좋아집니까? 이번에 야권 연대하고 나면 상황이 좋아질까요? 
거대여당은 이쪽 저쪽 왼쪽과 손잡았네 하는 소문에 중도표 몰이에 전전긍긍할 것이고, 어느쪽 표도 잃고 싶지 않아 갈지자 행보를 할 겁니다. 결론은 우유부단 무능당으로 낙인 찍힐 거고요.
소수당은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접촉면을 늘리려던 성장 계획이 파토나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에도 다시 소수당이 되어 단일화를 요구받을 겁니다. 
큰당이든 작은당이든 나아질 이유가 전혀 없죠.
* 가능할 리 없지만 일부 의견처럼 통합을 하면 더더욱 안좋은 상황이 벌어질 거고요.

지니까 단일화가 필요하겠지만, 단일화를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지게 됩니다. 
물론 이 글 자체는 ‘이번 선거’를 주의깊게 분석한 글은 아닙니다. 
이번 선거의 단일화 상황은 좀 다를 수도 있고 ... 뭐 단일화에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조금 더 낫고 덜한 차이가 있겠죠. 
어쨋든 단일화란 기본적으로 비상수단이자 장기적인 스스로를 해치는 악수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범야권 지지자 분들, 이 점을 깊이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ps' 쓸데없는 긴 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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