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게시판에 올렸었는데. 댓글에서 시사갤도 올려보라해서 한 번 더 올립니다. 문제 될 수 삭제할께요!)
저 벌금 나왔어요. 하하.
2014년 8월 9일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이랑 세월호특별법 제정한다고 이원구랑 합의했을 때
그 때 유가족들에게 한 약속 지키라고, 네가 한 말 네가 지키라고 국회 의원실 찾아갔다가 연행됐었거든요.
사진이랑 당시 기사랑 다시 보니, 다시 봐도 너무 화가 나네요.
저렇게 살랑거리면서 유가족들이랑 함께 하겠다고 하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누리당이 원하는대로 합의한답니까.
유가족들이 뻔히 국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단식을 목숨 내걸고 하는데.
내 가족 어떻게 죽었는지, 마지막이 어땠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법 만들자는거를, 진실이 밝혀지는 방향으로 만들기는 커녕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방향인 걸 합의해주냐고요.
유가족들 가슴이 대못을 또 박은거죠, 박영선이.
국회에 가면 박영선의원실이 있으니까, 가서 무효하라고, 어떻게 그러냐고.
같이 세월호 끝까지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약속을 했으니까. 정치인이니까. 약속 지키라고하려 갔습니다.
국회 의원실로 갔어요. 사실 만날 수 있으리라 100% 장담하고 간건 아니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 진짜 당신이 잘못하고 있는거다. 유가족들도, 다른 사람들도 바라지 않는거다. 라는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보기 좋게 쫓겨났죠.
밖에 내동댕이 쳐질 수 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의원회관 로비에 들어갔었는데,
거기에 있었더니 방공원(경비?)들이 내동댕이 치더군요.
사진들 찾아보니 그 때가 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때 내동댕이 쳐지면서 엄청 울고, 들리지 않을거 아는데 합의 무효하라고,
유가족들 얘기 들으라고 계속 외쳤던 것 같습니다.
아파서 울었던 것도, 뭐 무서워서 울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세월호 유가족 분들, 어머니들 아버지들 생각나서 울었어요.
자신들은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국가가 버린 것 같다고 말하는...
유가족 분들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느껴져서. 이렇게 내동댕이 쳐지는구나.
내 새끼가 그렇게 죽어가도 이렇게 내동댕이 쳐지는구나. 그런게 너무 쓰리더라구요. 허허.
그 다음은 사지 들려서 연행되고, 조사받고.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고.
검사는 10개월 징역형이라고 했지만 항소까지 해서 저는 200만원, 다른 친구 하나는 300만원 받게 됐습니다.
동종전과 있다고, 그렇게 벌금형 내린다고 하더군요. (주변에 물어보니 쎈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종전과가 안 생길 수가 없었어요.
등록금 비싸서, 그거 번다고 알바비 많이 주는 그런 알바 하다가 냉동창고에서 얼어죽은 대학생,
딸이 대학 들어갔는데 등록금 마련 못해서 미안하다고 목숨을 끊는 어머니,
이런 얘기 들으니 너무 하잖아요. 사람나고 돈난다는데, 우리 할머니가 착하게만 살면된다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는 뭘 얼마나 죄짓고 살아서 이렇게 괴롭게 살아야해요.
그러다보니 집회 나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 새 전과자가 되버렸네요. (ㅎ...맙소사)
그런데 이렇게 벌금 내리면, '너네 엉? 벌금 이거 이만큼 내면 아까운거 알고 다음부턴 안하겠지? 조심해라' <-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또 세월호 유가족 분들 결에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 위에 사진, 저도 저 날. 저기 있었거든요.
자세히 보면 영정사진 저 뒤에 학생들 이름이랑 반이 적혀있어요.
그 때 세월호사건이 저한테 너무 생생하게(?) 다가온거예요.
사실 그 전에는 안타깝고, 마음 아프긴 한데. 그냥 모니터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거였거든요.
또 2주기는 다가오고, 세월호 탔던 단원고 아이들이랑 동갑인 친구들은 대학교 새내기가 되었고.
스무살 친구들 보면서 또 가슴 칠 유가족 분들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뭐 당장 4월 11일까지 벌금 납부 안하면 노역 산다고 하던데.
이래저래 알바한거랑 해서 모아도 택도 없긴 하네요.
그래서 좀 민망하지만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그나저나 쓸떼없이 글이 길었네요. 약간 속풀이 한거 같아서;;; 민망민망;;;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