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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8일, 나석주 의사를 잊지말아주세요!
게시물ID : history_70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난그저웃을뿐
추천 : 68
조회수 : 141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2/28 22:41:13


출처: http://mpva.tistory.com/2038


가서 추천한번씩 해주시길!



12월 28일은 어떤 날일까요? 이 날은 독립운동 중 중요한 의거가 있었던 날이에요. 바로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회사에 투탄 의거를 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나석주 의사가 순국한 날이기도 합니다.

 

나석주 의사는 1892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엔 당시 애국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新民會)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 설립한 양산(楊山)학교가 있었는데요, 나석주는 이곳에서 공부하며 독립운동가로 성장하였습니다.

 

 

 


<나석주 의사>

 

나석주 의사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독립운동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황해도 일대 부호들의 집을 털어 돈을 받습니다. 사실, 나석주 의사는 의사의 아버지와도 친분이 있는 사리원의 부호 최병항(崔秉恒) 등을 찾아다니면서 강도를 하지 않아도 독립운동 자금으로 돈을 받을 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일본 경찰에 알려지면 돈을 준 부호도 피해를 입기에 직접 돈을 준 게 아니라 강도를 당해 빼앗긴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상대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위장강도를 벌였던 것입니다.


나석주 의사는 마련한 군자금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면장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피신했습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하북성 한단에 있는 중국 한단 군관학교 육군 제1군사강습소의 군관단을 졸업해 한동안 중국군 장교로 중국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으로 있던 김구를 만나 그의 경호관을 지냅니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이 창설한 항일무장저항단체 의열단에 가입합니다.

 

1926년, 나석주 의사는 독립운동가인 김창숙(金昌淑)과 만남을 가지고 독립운동의 방향을 모색한 끝에 조선을 경제적으로 침략을 하고 있는 식산은행(殖産銀行)과 동양척식회사를 폭파하기로 하고, 나석주 의사는 기꺼이 그 임무를 맡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방한 식민지 수탈기관으로, 1908년 제정한 동양척식회사법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주요 목적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토지와 금융을 장악하고 일본인들의 식민지 개척과 활동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토지매입과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국유지 불하로 땅을 확보하여 거대 지지주가 되었고, 소작인들에게 5할이나 되는 고액의 소작료를 요구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또한 춘궁기에 양곡을 빌려주었다가 2할 이상의 이자를 받는 등의 고리대로 농민들의 원성을 샀으며. 이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기반을 잃고 일본이나 만주, 연해주로 이동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정치적인 침략을 수행했다면, 동양척신회사는 경제적 침략으로 식민지배를 공고히 한 것입니다.

 

나석주 의사는 1926년 12월 26일, 인천항을 통하여 귀국합니다. 고향에 있는 아내와 자녀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일경의 경계가 삼엄하다는 소식에 눈물을 머금고 바로 서울로 향합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

 

12월 28일. 오후 2시 5분에 나석주 의사는 먼저 식산은행을 찾아 폭탄을 던집니다. 그러나 하필 폭탄이 불발탄이라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폭탄을 던진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하여 나석주는 식산은행은 뒤로 하고, 다음 목표인 동양척식주식회사로 향합니다. 

 

이 곳에서 나석주는 1층에서 일본인 1명을 권총으로 사살한 후, 2층으로 뛰어올라가 또 다른 일본인에게 사격한 뒤 놀라 도망가는 토지개량부 간부들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 기술과장실에 나머지 폭탄 1개를 힘껏 던졌으나 안타깝게도 이 역시 불발합니다.

 

 


<나석주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이후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황금정(黃金町)(지금의 을지로1가) 쪽에서 달려가며 총격전을 벌이던 끝에 일경들의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졌습니다. 나석주 의사는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말라!"는 말을 군중을 향해 외치고 자신이 지녔던 총으로 자결을 하였습니다.

 

나석주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명동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현 외환은행 본점)에 동상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비록 폭탄은 불발하였지만,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의열단의 의열투쟁 중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는데요, 앞으로도 그 이름은 잊혀지지 않고 전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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