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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미지와의 조우 - 이게 대체 뭔 소리여
게시물ID : history_7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ngsik
추천 : 17
조회수 : 7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28 00:14:27



조선이 서양을 아예 모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죠. 그냥 그런 게 있구나 정도였으니까요. 

이수광은 이미 1614년에 지봉유설을 지어 나름 서양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소개했죠. 이후에도 소현세자 등 청에 갔던 이들은 서양의 문물을 어느 정도 접하기도 했구요. 효종 때는 하멜도 왔었죠. 하멜에게 크리스챤인 걸 물어볼 정도의 지식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현실과는 너무나도 먼 것이 서양이었죠.

조선이 배로 접근하기에 어려운 면도 있긴 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참 구석에 있었으니까요. 일본으로 가다 표류해서 오는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딱히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죠. 하멜표류기가 베스트셀러가 된 후에 네덜란드가 아예 배 이름도 코리아 호로 지으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일본이 조선과 교역하면 관계 끊어버리겠다 협박해서 그만둡니다. 일본으로서는 네덜란드와 교역한 걸 조선에 팔면서 이득을 얻었으니까요.

19세기가 되면서 제국주의를 향해 경쟁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조선에도 발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물론 영국이 빨라서 더 많았고, 프랑스의 경우 선교사 박해에 편승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만난 건 영국이 많은데 싸우기는 프랑스와 많이 싸운 느낌이 납니다. 이 와중에 제너럴 셔먼호는 왠 꼽사리 끼어가지고 -_-a 아무튼 이들은 조선의 연안을 열심히 탐사하며 지도를 만들어 갑니다. 식민지 지배 욕구든 선교사 보호 및 군사적인 압력이든간에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일단 조선의 문을 여는 것이었고, 그걸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죠.

이들이 남긴 기록들이 곳곳에 있고, 지금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침략자니 뭐니 해도 어쨌든 새로운 존재와의 만남이라는 의의는 있으니까요.

1787년, 프랑스의 라페루즈(Laperouse)는 함선 2척을 이끌고 제주와 동해안을 탐사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딱히 접촉을 하지 않습니다. 

1797년(정조 21년)에는 영국의 배가 부산에 왔죠. 조선에서는 이를 표류한 이양선으로 봤습니다. 그들도 표류해 왔다고 하기도 했구요. 바디랭귀지 끝에 낭가사기라는 네 글자를 들었고 (나가사키죠) 손으로 대마도를 가리키며 입으로 바람을 부는 것을 보고 "순풍이 오면 대마도로 가겠다"고 받아들여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표류해 온 사람을 보았더니 코는 높고 눈은 푸른 것이 서양 사람인 듯하였다. 또 그 배에 실은 물건을 보니 곧 유리병·천리경·무공은전(구멍 없는 은전-_-a)으로 모두 서양 물산이었다. 언어와 말소리는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고~"

그 배는 영국의 프로비던스 호였습니다. 함장 윌리엄 브로톤은 청진부터 부산까지 동해안을 탐사하며 경위도를 재고 환경을 스케치했습니다. 일단 폭풍우에 휘말려 동래 용당포에 온 것이지만 그냥 표류한 것은 아니었죠. 이 때가 양력 10월 13일, 그는 21일까지 부산에 머물면서 여러가지 조사를 합니다. 하지만 중국어나 만주어, 일본어도 몰랐다고 하니 -_-a 작정하고 얘기하려고 온 건 아니었나 봅니다.

의외로 일반인들과는 잘 어울린 편이었다고 합니다. 관리들(동래부사 정상우)이야 제발 빨리 가라고 했지만 온 김에 조사할 건 하고 간 것이죠. 조선에서는 늘 그렇듯 먹는 것에 대해서는 지원을 잘 해 줬고, 아무런 불편도 겪지 않았다고 하죠. 여기서 신자였던 현계흠은 배로 가서 십자가를 그려서 같은 크리스챤으로서의 교감도 얻었다고 합니다만 자세한 건 없는 모양입니다.

브로톤은 이 때 기본적인 조선어 낱말 표본을 얻어냅니다. 

Hannah - One 
Toool - Two
Shuame - The breard 수염
Noon - The eye 
Tangtangee - Leg 장딴지
Chap - A House
Sanna - A man
Kageep - A woman 계집

이런 식이었죠. 다른 건 비슷합니다만 별에 대해서 물어볼 때 하필 구름이 낀 모양인지 Cureme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조선 관리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망원경과 피스톨만 주고 갔다고 합니다.

1816년(순조 16년)에는 충청도 마량진 갈곶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옵니다. 먀랑진첨사 조대복과 현감 이승렬이 문정했죠. 당연히 말이 안 통합니다.

"먼저 한문으로 써서 물었더니 모른다고 머리를 젖기에, 다시 언문으로 써서 물었으나 또 모른다고 손을 저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참 동안 힐난하였으나 마침내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였고, 필경에는 그들이 스스로 붓을 들고 썼지만 전자(篆字)와 같으면서 전자가 아니고 언문과 같으면서 언문이 아니었으므로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자(한문의 서체 중 하나) 같으면서 전자가 아니고 언문(한글) 같으면서 언문이 아닌 것, 이 글자가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글자가 됐죠.

이 배는 영국의 라이라(Lyra)호, 함장은 바실 홀이었습니다. 이들은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광저우로 여행하다가 5개월간의 여유가 생겨 조선으로 가 보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류큐 역시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후 그 역시 항해기를 남깁니다. 이들이 남긴 걸 볼작시면...

"그들의 피부색은 짙은 구릿빛이었고 무서움을 주는 얼굴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약간 야만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중략) 처음에는 우리 옷을 당겨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며 놀라움을 표시했으나 곧 우리들 몸에 붙어있는 물건에는 무엇인든지간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가능한 한 빨리 우리들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마을에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계속 바깥쪽으로 밀쳐냈는데) 그들의 환심을 사고 싶은 염원이 매우 컸으므로 모든 것을 선의로 해석하였다."

이 때 그들은 조선인과의 대화를 위해 중국인을 데려왔지만, 아무런 도움이 못 됐습니다. 그 중국인이 한자를 몰랐거든요. -_-; 그래서 다음에는 한자를 아는 이들을 데려와야 된다는 교훈을 얻어냅니다. 이 때 그들은 종이에 자기들의 말을 적어 줬습니다. 조선에 종이로 최초로 전해진 영어는 이랬습니다.

"I do not understand one word that you say" (...);;

조선에서도 한문을 정중하게 써서 적었고 광둥에서 확인해보니 니 누구고 어디서 왔냐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후로 조선에 오는 이들은 한자 정도는 아는 이들을 데리고 옵니다. 혹은 조선어를 배운 이들을 데리고 오죠.

한편 조선에서는 책 세 권을 선물로 받았지만 역시 해석 같은 건 불가능했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하나 얻어내는데 중국 천진에서 광주로 가니 잘 대우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영길리(英吉利), 그들이 영국인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죠. 그리고 이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않았다 해서 관리들은 파직되거나 했구요. -_-; 이들이 간다 해 놓고 다른데도 둘러보고 갔거든요. 너무 빨라서 조선의 배로는 쫓아가지 못 합니다.

이들 역시 조선어를 수집하는데 요런 것들이 있죠.

Poodong - No 부동
Hota - Good 좋다 - 양말을 참 좋아해서 처음엔 양말을 말하는 건 줄 알았다고 합니다.
Pootsa - Fan 부채
Tac - A cock 닭

이들은 조선어를 발음하기 힘들었다고 한 반면 조선인들은 자기네 발음을 잘 흉내냈고 목소리 톤도 높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조선어가 딱히 귀에 거슬리지 않고 중국말과 같은 된소리도 없었다고 기록했죠. 그리고 자기들이 영어를 가르쳐주는 걸 참 재밌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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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순조 32년)에는 또 새로운 이들이 조선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한문을 통한 대화가 이뤄지죠. 자 그들의 얘기를 한 번 들어봅시다.

"국명은 영길리국 또는 대영국이라고 부르고, 난돈(런던)과 흔도사단(힌두스탄, 인도)이란 곳에 사는데 영길리국·애란국(아일랜드)·사객란국(스코틀랜드)이 합쳐져 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대영국이라 칭하고, 국왕의 성은 위씨(윈저)이며, 지방은 중국과 같이 넓은데 난돈의 지방은 75리이고 국중에는 산이 많고 물은 적으나 오곡이 모두 있다고 하였고, 변계는 곤련에 가까운데 곧 운남성에서 발원하는 한줄기 하류가 영국의 한 지방을 거쳐 대해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뭔 소리여 싶었겠죠. -_-; 그 다음입니다.

"북경까지의 거리는 수로로 7만 리이고 육로로는 4만 리이며, 조선까지는 수로로 7만 리인데 법란치·아사라·여송(필리핀)을 지나고 지리아 등의 나라를 넘어서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용모는 더러는 분을 발라 놓는 것처럼 희기도 하고 더러는 먹물을 들인 것처럼 검기도 하였으며, 혹자는 머리를 박박 깎기도 하였고 혹자는 정수리 이전까지는 깎고 정상에서 조그만 머리카락 한 가닥을 따서 드리운 자도 있었으며,"

백인, 흑인의 묘사가 나오죠. 참고로 조선은 흑인을 오귀자라 불렀습니다. 사람으로 안 쳤나봐요 -_-; 

"나라의 풍속은 대대로 야소교(크리스트교)를 신봉해 왔으며, 중국과의 교역은 유래가 2백 년이나 되었는데 청국과 크기가 같고(!) 권세가 비등하였으므로(!!) 조공도 바치지 않았고(!!!) 그 나라에서 북경에 가도 계하에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하였으며, 대청 황제는 먼 나라 사람을 너그럽게 대해 주려 하였으나 요사이는 관리들이 황제의 뜻을 잘 받들지 않으므로 황은이 외국인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외국 상인은 관리의 횡포로 인하여 많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헐 청과 동등한 나라라니요...

"교역하고 있는 나라는 우라파국(어디?--)·법란서국(프랑스)· (중략-_-) 아비리가국(아프리카?)(중략-_-!)·대청국(大淸國)이며, 교린하는 나라는 아라사국(러시아)·법란치국(엥?-_-;)·하란국(네덜란드?)·파려사국(어디냐고 ㅠㅠ)이라 하고, 영국의 지방은 구라파에 있는데 사람을 귀히 여기고 있으며, 지방이 또 아미리가(아메리카)에 있는데 그 역시 크고 좋은 땅이고,"

... 자랑질은 거기까지 -_-; 이 외에 여러 식민지랑 중국에게서 얻어낸 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배는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호,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조선과의 교역을 시도하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독일인 선교사 구츨라프(Gutzlaff)가 타고 있었고 의사 겸 통역으로 와서 필담이 가능했죠. 그들은 나름대로 대화를 계속 시도하며 교역을 요구합니다만, 조선인들의 요구는 언제나 빠리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Pulga라고 말해서 (불이 Fire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 공격하는 건가 했는데 불가, 안 된다는 말이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죠. 

"그들은 ‘금년 2월 20일 서남풍을 만나 이곳에 와서 국왕의 명으로 문서와 예물을 귀국의 천세 계하에 올리고 비답이 내리기를 기다리기로 하였으며 공무역을 체결하여 양포·대니·우모초·유리·시진표 등의 물건으로 귀국의 금·은·동과 대황 등의 약재를 사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른바 바칠 예물은 대니 홍색 1필, 청색 1필, 흑색 1필, 포도색 1필과 우모 홍색 1필, 청색 1필, 포도색 1필, 종려색 1필, 황색 1필, 양포 14필, 천리경 2개, 유리기 6건, 화금뉴 6배와 본국의 도리서 26종이라 하였습니다." 공충(충청)감사 홍희근

여기서도 조선은 먹을 건 줄테니까 얼렁 가라고 요구합니다. 이들은 예물은 물가에 놔두고 갔는데, 돌려주려고 쫓아갔지만 역시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황해도에서 이미 문정을 한 바 있지만 황해도의 관리들은 이를 보고하지 않았고, 충청도에서 이들을 빨리 쫓아내지 못 한 관리들 역시 벌 받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건만 별 반응을 얻지 못 했기에 구츨라프는 조선사람들을 "가장 사람을 싫어하는 종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조선에서는 이들이 청에 조공을 바치이 낳더라도 일단 청에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알렸고, 이렇게 마무리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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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록들에서 각 관리들은 (그냥 도망간 경우도 있었지만 -_-;) 이 이양인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그들의 배에 들어가서 어떤 게 있는지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거기다 필담이 가능하니 열심히 물어본 모양입니다. 어찌됐든 청과 대등한 나라라니 놀래긴 한 모양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응방법은 역시 무시하는 것이었죠. 조선은 기존의 세계관 내에 살겠다는 거요. 이제까지는 그게 통했습니다. 전쟁 상황도 아닌데 저기 먼 돌궐이니 토번이니 하는 나라들이랑 굳이 더 친해질 필요는 없죠. 하지만 앞으로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랐으니...

이후에도 이양선은 계속 출몰합니다. 본격적으로 조선과 교역하기 위해서였죠. 특히 프랑스는 선교사 박해와 맞물려 나름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옵니다. 영국과의 경쟁에서 좀 이겨야 되기도 했구요. 서양인으로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라 이름 붙인 것 역시 프랑스였죠. 한편으로 러시아도 국경을 직접 맞댄 만큼 육지로 계속 출몰했습니다만... 역시 러시아라 그런지 딱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네요 (...); 중요할 텐데요.

뭐 어찌됐든...

이들을 만나며 조선인들이 대체 뭔 소리야 했던 언어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외국어고, 이들의 문자가 어릴 때부터 참 열심히 배우는 문자죠.

('-' ) 기분이 뭔가 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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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indbard.egloos.com/


제가 좋아하는 눈시BB님의 글입니다.
비슷한 내용을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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