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주 주)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동시에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3.1 민중혁명으로, 서울에서는 탑공공원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탑골공원 정문에 지금은 다른 현판이 걸려있지만, 2001년까지는 친일파 박정희가 쓴 현판이 34년간 걸려있었다. 93주년 삼일절을 기념하는 의미로 그 현판이 철거된 비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이다.
박정희가 쓴 ‘삼일문’ 현판 철거는 두 차례에 걸쳐 시도됐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부하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사망한 지 22주년이 되는 2001년 10월 26일 1차로 시도됐다. 이날 곽 선생 일행은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삼일문’ 현판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전격적으로 현판을 떼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가 새어나가 경찰들이 ‘삼일문’을 겹겹으로 둘러싸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행사 주최측에서 언론사 몇 군데 취재부탁을 하는 과정에서 소문이 흘러나간 모양이었다.
2차 시도는 11월 23일 새벽에 있었다. 당일 아침 8시경 나는 출근길에 곽 선생과 친한 모 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전 8시 향린교회에서 곽 선생 일행이 삼일문 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니 취재해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나에게도 연락을 안한 것으로 봐 철거작업이 극비리에 진행됐고, 그래서 성공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출근 후 서둘러 명동성당 앞 향린교회로 갔더니 기자회견 준비가 한창이었고, 강당 구석에 부숴진 ‘삼일문’ 현판이 감춰져 있었다. 2층 홍근수 목사 방으로 올라갔더니 곽 선생, 우경태 선생, 이관복 선생 등 3인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곽 선생에게 철거 경위를 물었더니 “보안유지를 위해 이번에는 정 기자에게도 연락을 안했네.” 하시며 거사 성공에 아주 만족해 하셨다.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861
위 쪽이 박 전 대통령의 글씨, 아래쪽은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집자한 새 현판
곽태영 선생은 2008년 12월 1일 지병으로 자택에서 별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