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항 설명도 없이 과잉 대응 "경찰이 자의적 불법행정" 지적 쌍용차지부장 석방 촉구하며 최헌국 목사 5일째 노숙단식 경찰, 그마저 오늘부터 불허 경비과장 "작전 방해땐 검거"
자살한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가 두번째 철거된 대한문 앞은 인권도 해고된 상태였다.
17일 밤 10시께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담장 앞에는 시민 20여명이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이슬비를 맞고 있었다. 닷새째 노숙 단식 중인 최헌국(50) 예수살기교회 목사를 걱정하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10일 구속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최 목사의 곁을, 연두색 우비를 입은 수십명의 경찰이 지켰다.
비에 젖은 땅에 앉으려면 깔판이 필요했다. 한 남성이 깔판을 구해오자, 우두커니 서 있던 경찰관들이 갑자기 에워쌌다. 경찰은 "깔판은 안 된다"고 했다. "도로에 적치물은 안 된다"며 "즉시강제 행정으로 압수한다"고 했다. '즉시강제 행정'은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 1항에 따른 것인데, 경찰은 법 조항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범죄행위로 인하여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는 법 조항에 비춰보면, 깔판 압수는 과잉 대응이었다. 압수를 '집행'한 경찰관의 이름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깔판을 잃은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한문 대통령 납셨다!" 밤 11시께 누군가 외쳤고, 최성영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쌍용차 자살 해고자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의 경비 책임자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시민이 따졌다. "대체 이게 왜 집회란 거요?" 최 과장은 "특정한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이면 집회"라고 답했다. 최 과장의 지시로, 경찰관들은 최 목사 옆에 있던 시민들을 들어내 대한문 처마 밑으로 옮겼다. "관등 성명을 대라"는 시민들의 아우성과 "작전을 방해하면 모두 검거하라"는 최 과장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대법원 판례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경찰이)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최성영 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불법집회를 방치하면 공공의 안녕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불법시위가 벌어지기 전에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깔판을 적치물이라며 압수하고 경찰이 관등 성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서선영 변호사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폭좁게 해석하면 모든 집회는 경찰의 제한이 가능해진다. 즉시강제 행정 역시 매우 엄격한 요건이 갖춰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집회자들이 평화로운 상태인데 경찰이 사람들을 들어 옮기는 것은 자의적인 불법 행정이다"라고 말했다.
남대문경찰서는 지난달 30일부터 쌍용차 해고자들의 대한문 앞 집회신고를 받지 않고 있다. 29일 대한문 앞에 펼침막을 걸려는 시민과 경찰 사이에 말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최루액을 쐈고, 일부 시민은 물총을 발사했다. 경찰이 이를 두고 "쌍용차 집회가 폭력집회로 변질됐다"고 판단하면서 대한문 앞은 '불법집회' 장소가 됐다. 경찰은 최 목사의 노숙 단식은 종교행사로 보고 허용하고 있지만, 도로교통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20일 이후로는 불허할 방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경찰의 대한문 앞 집회금지 통고 처분에 대해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18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쌍용차 범대위 쪽이 옥외집회 금지 통고 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는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의 처분이 위법한지 여부는 설명하지 않았다.
새벽 2시께, 최 목사가 덮은 비닐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거세졌다.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 목사의 저체온 증세를 걱정하다 발길을 돌렸다. "파라솔만이라도 놓게 해달라"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38)씨의 부탁에 최 과장은 "정말 건강이 걱정되면 단식을 중단하도록 설득하라"고 말했다. "공기 없이 사는 느낌이에요. 쌍용차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대한문 앞을 지키지만 숨이 막혀요." 1년여 대한문 앞에서 살아온 고씨는 힘없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