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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奇談 - 네번째 기이한 이야기 (2)
게시물ID : panic_619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곰
추천 : 24
조회수 : 161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12/20 09:45:00
 
  의뢰인은 건물주였다. 평생 일해 모은 돈으로 조그만 빌라를 사서 근처 대학교 학생들에게 세를 놓는 것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는 칠십대 노인이었다. 그다지 많은 돈은 되지 않을지라도 늙은 노부부가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살면서 가끔씩 손녀 용돈을 집어줄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정을 대신 이야기해 준 이는 동네 부동산 사장이었는데 바로 해원에게 전화를 했던 사람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상당히 중언부언하는 편이라 해원은 몇 번이나 궁금한 것을 되물어봐야 했다.

  “하 이거, 참 민망한 일이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있다고, 아니 있으시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허 참 그런데 소문이 나면 참 그러니까, 그러니 이 영감님도 동네에서 명망이 있는 분이신데, 우리 부동산도 그렇고, 어디 가서도 나쁜 소문 한 번 안 났는데, 그러니까 말이죠.”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다른 분들이 모르게 해결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해원은 벌써 몇 번이나 했던 약속을 되풀이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의뢰인들은 으레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 줄 것부터 먼저 당부하곤 했다.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그런 경우도 있었고,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의뢰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은 양손을 맞잡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해원은 질문했다.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까?”

  노인의 얼굴이 눈에 띄게 흐려지더니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빛으로 부동산 사장을 쳐다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해원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해원은 내처 말했다.

  “역시 처음이 아니었군요. 언제부터 이런 일이 있었나요?”

  다시 부동산 사장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흠, 그러니까 제가 드릴 이야기가 꼭 사실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 아시다시피 워낙 소문이라는 게 무섭다 보니 말인데, 무슨 일이 하나 생기면 그 이야기가 막 부풀려지는 경우도 많고, 사람들이 또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수군거리는 것도 있고 해서 꼭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말인데......”

  해원은 꾹 참으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중언부언하는 사장의 말에 따르면 그 집이 소위 ‘귀신 들린’ 집으로 소문난 지는 대략 삼 년쯤 된 모양이었다. 3층 빌라에 층마다 두 집씩 총 여섯 집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102호, 즉 사건이 벌어진 집이 문제였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마다 집이 이상하다, 마치 귀신이라도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육 개월이 되지 않아 도망치듯 이사를 나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입주하는 사람들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니 건물주도, 또 부동산 사장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사고가 생기거나 한 적은 없었기에 그저 외풍이 심하다는 핑계를 대어 다른 집보다 조금 싸게 세를 놓았고, 학교 근처인지라 그때마다 다른 학생들이 바로 입주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장이 문득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들어오기만 하면 반년을 못 버티고 나가는 게 다반사였는데, 이번 입주인들은 일 년이 넘도록 아무런 말도 없이 잘 지내더란 말이지요.”

  “이번 입주인이라면, 자살한 여학생을 처음 발견했다는 그 친구 말씀이십니까?”

  “그 학생하고, 룸메이트하고 그렇게 둘입니다. 학교 친구일 겁니다. 여학생들은 보통 그렇게 같이 살죠. 예.”

  "룸메이트가 있었습니까?“

  “예. 그런데 지금은 배낭여행을 갔대요. 인도라던가, 스리랑카라던데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여하튼 떠난 지 일주일은 됐을 겁니다.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거예요.”

  새로운 정보였다. 해원은 수첩에다 꼼꼼히 메모하며 사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 년 전쯤 둘이서 집을 구하러 왔는데, 가능하면 싼 집을 구한다기에 사장은 마침 비어 있던 102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여학생들이어서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집을 둘러본 학생들이 너무나도 만족해해서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살던 사람들이 으레 입주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집이 이상하다며 득달같이 전화를 해 온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냥 쓸데없는 소문만 돌았던가 보다 싶었는데......”

  사장은 말끝을 흐렸다. 그때껏 눈치만 보고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이 생기니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할까 생각도 했다우.”

  “하지만 동네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그리고 또 전에 저쪽에서 부동산 하는 친구에게 해원 선생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믿을 만하다는 추천도 있었고, 아무래도 무당하고는 좀 다르시다고도 들었고, 사실 생각보다 나이가 젊어서 놀랐지만, 암튼 뭐 그렇게 된 겁니다.”

  사장이 보충 설명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몸으로 뛰어야 할 차례였다. 해원은 이것저것 가벼운 질문을 몇 개 더 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장이 허둥대며 따라 일어났다.

  “잘 부탁합니다, 해원 선생. 그리고 아, 저, 보수는......”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선금 백. 그리고 해결하면 이백을 더 받습니다. 그렇게 큰 건은 아닐 것 같으니까요. 자잘한 비용은 제가 처리하지만 큰 비용이 들 일이 발생하면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인은 얇은 봉투를 품속에서 천천히 꺼내 내밀었다. 해원은 봉투를 살짝 열어 수표 금액을 확인한 후 안주머니에 넣었다. 노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큰 비용이 들 일이라는 게...... 자주 생기우?”

  “그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상황을 보고 나서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원은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명함을 꺼내 노인과 사장에게 내밀었다. 하얀 바탕에 이름과 연락처만이 적혀 있는 단순한 명함이었다.

  “제 연락처입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노인은 명함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조심스레 품속에 간직했다. 해원은 마지막으로 102호의 열쇠와 두 여학생의 연락처를 받았다. 이번에 험한 일을 겪은 학생은 이현경이었고 배낭여행을 떠났다는 룸메이트의 이름은 한수희였다. 그리고 자살한 학생의 이름은 강은정이었다. 해원은 다시 한 번 인사를 남기고 부동산을 나왔다. 오후 해가 벌써 비스듬히 기울고 있었다.

  현장 주변의 구멍가게나 세탁소 등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부동산 사장의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사실임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사건이 일어난 집은 주변에 귀신 들린 집으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태였다. 두 여학생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배낭여행 중인 수희의 휴대전화는 아예 꺼져 있는 상태였고, 현경의 휴대전화로는 신호는 갔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부동산에 남아 있던 현경의 고향집 번호로도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여학생의 어머니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딸은 누구와도 통화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해원은 한숨을 내쉰 후 현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 놀랐단 말이죠. 친구가 자고 있는 옆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하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행히 101호, 그러니까 사건 현장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두 여학생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남자는 해원이 용건을 밝히자, 뭐하는 사람이냐고도 묻지 않고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마도 해원을 기자쯤으로 착각한 모양이었지만 해원은 굳이 그런 착각을 바로잡아 주진 않았다. 남학생은 그곳에서 일 년 반 동안 살고 있었는데, 그 동안 주민들이 102호가 귀신 들린 집이라고 쑥덕이는 소리를 한두 번 가량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니에요. 귀신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앞이면 어디나 있는 그런 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 버렸죠.”

  “옆집 학생들은 평소 어떻게 지냈습니까?”

  “글쎄요? 그냥 아침이면 학교 가고, 저녁에 돌아오고, 가끔씩 웃는 소리도 나고 TV소리도 나고 그랬었죠. 친해서 그런지 어지간하면 둘이 어울려 다니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가볍게 대답했다. 해원은 몇 가지 더 물어보았지만 별 신통한 대답은 없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빌라를 나왔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입구로 들어가 이번에는 102호 앞에 섰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해져 붉은 노을이 현관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현관을 닫았다. 집안은 고요했고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 특유의 냄새가 약간 났다. 해원은 몸을 살짝 움츠렸다.

  “확실히 뭔가 있군.”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왼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네요. 슬픔, 원망, 우울....... 마구 뒤섞여 있어요.”

  “해가 지기 전부터 이 정도면 밤이 되면 틀림없이 나오겠는걸. 까다로울지도 모르겠어.”

  “아마도요.”

  목소리는 대답했다. 해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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