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420062610&Section=01
가뭄에 단비. 그렇다. 지난 여름 촛불이 꺼진 뒤 계속된 악몽 속에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의 김상곤 한신대 교수의 승리는 너무도 오랜만의 쾌거였다. 그리고 승리의 원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라며 이같은 심판은 4.29 재보궐 선거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반가워하고 있다. 물론 김상곤 교수가 중산층이 주를 이루는 수도권의 신도시에서 승리한 것을 보면 사교육비 등에 고통받던 유권자들이 MB의 '미친 교육'을 심판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당이 배제된 교육감 선거의 특성, 낮은 투표율, 진보(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중단체 등)와 개혁(민주당, 시민운동 등) 진영의 좌우를 아우를 수 있었던 김 교수의 인품과 지도력 등 다른 요인들도 많은 작용을 했다. 특히 한나라당이 주장하듯이 진보개혁 후보는 단일화된 반면 보수후보들은 분열하여 난립한 것도 중요한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진보, 개혁 진영 내에 반MB 연대론이 힘을 받게 됐다. 사실 올 1월 1일 신년 칼럼("'2009 명박대첩', 의지의 낙관과 '신발'로 무장하자")에서 지적했듯이 개인적으로 반MB 연대에 무조건 반대하지도 않지만 이를 무조건 지지하지도 않는 입장이다. 즉 우리 시회의 주전선은 더 이상 민주당 등이 주장하듯이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전선이지만 이에 매몰되어 "민주당과의 일체의 연대도 부정하는 좌익소아병, 그리고 정반대로 MB악법 저지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포기하는 대동단결론, 이 둘을 모두 경계"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아가 반MB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그간의 신자유주의 정책(특히 이에 따른 민생파탄)에 대해 사과하고 신자유주의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이 이번 재보궐 선거 중 유일한 수도권의 국회의원 선거로서 '진검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인천 부평을에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대책본부장을 역임한 홍영표 씨를 낙점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현재의 민주당도 FTA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주당이 FTA 핵심관계자를 공천한 것이 언뜻 보기에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MB 연대를 강하게 주장해온 점을 감안하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과 민중단체,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반대할 FTA 핵심관계자를 핵심승부처에 공천한 것은 충격적이고 의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진보세력에 대해 앞에서는 반MB 연대를 하자고 악수를 청하면서, 뒤로는 뒤통수를 친 것이다.
처음 이 뉴스를 접할 때 느꼈던 충격을 벗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민주당이 왜 이같이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자 크게 보아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첫째, 민주당이 워낙 멍청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중단체 등이 평소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것을 모르고 홍 씨를 공천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제1야당인 민주당이 그 정도로 무식하겠는가? 사실 홍 씨가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범위한 연대체인 한미 FTA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는 홍 후보를 공천심사대상에서 제외시키라고 요구하면서 민주당이 그를 공천할 경우 공개적인 규탄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그를 공천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리가 없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그리고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등이 홍 후보를 반대하는 것을 알지만 "지들이 반MB 연대 후보로 민주당 후보인 홍 후보를 밀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오만함 때문에 홍 씨를 공천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오판을 한 것이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측은 선거법의 위반여부와 상관없이 홍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도 결코 홍 후보를 반MB 연대 후보로 지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홍 후보를 공천할 때 민주당 지도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남는 마지막 가능성으로 앞의 두 경우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말로는 반MB 연대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경우 얼마든지 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같은 진심이 이번 공천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즉 자신들이 주장해온 반MB 연대를 포기하더라도 홍 후보의 장점(경쟁력?)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인물 중에 FTA 국내대책 본부장을 공천할 수는 없다.
부평을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당이 반MB연대를 포기했다는 증표 내지 민주당의 그간의 반MB 연대론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증표는 또 있다. 그것은 울산북구이다. 울산은 어차피 민주당 간판으로 게임이 안 되는 곳이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거구이다. 그러나 이 선거구에 민주당은 진보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자신들의 후보를 냈다(물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는 또 다른 문제인데 이는 다음 기회에 논의하고자 한다). 이 역시 민주당이 반MB연대에 관심이 없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사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전주의 덕진도 마찬가지다. 이미 "'68 시카고'를 보면 '4.29 재보선'이 보인다"(2009년 3월 18일자)라는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아무리 자신의 옛 지역구에 기회가 생겼다고 하지만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수도권의 지역구를 버리고 자신의 텃밭에 내려가 출마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일단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결심한 이상 민주적 경선을 통해 주민들이 후보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정도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을 배제하기 위한 하향식 공천을 통해 선거판을 정동영 대 민주당의 구도로 만든 바, 그 같은 분열적 리더십이 과연 반MB 연대인지, 그리고 MB정권심판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민주당은 4.29선거를 이명박 정권 심판의 장이라고 주장하며 반MB 전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이 진심이라면 최소한 부평을 공천에 대해 사과하고 후보를 교체하는 한편 울산북구의 후보를 사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바엔 반MB 전선과 반MB 연대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럴 때 쓰는 좋은 표현이 있다. "죽었다. 영원하라"이다. "반MB 연대는 죽었다! 반MB 연대여, 영원하라!"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