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한국어로 번역하면 전체주의 정도로 되겠지만 파시즘 혹은 나치즘이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게 옳으니까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많이 들어본 말이죠?
특히 충들이 오유의 블라인드 제도와 클린유저 제도, ip신고제도를 보면서 파시즘적이라고 많이 하죠.
오늘 베스트를 보니 시사게의 무명논객이라는 분께서 전체주의에 대해서 글을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역사 전공을 살려서 파시즘의 역사와 정의에 대해서 글을 싸보려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실은 이번학기 서양현대사 시간에 발표한거 다시 정리하는 거에요. 심지어 그거 정리해서 나눠줬던 프린트물 원본도 여기에 올렸었음.
다만, 지금 와서 거기에 빠진거, 부족한거 좀더 살을 붙여서 써보려고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잘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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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은 파시즘의 역사에 대해서 쓰려고 합니다.
파시즘과 대중정치
<연표>
1914-18 제 1차 세계대전
1917.10 러시아 10월 혁명
1919.3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전우단 창설
1922.10.28 검은셔츠단의 로마진군
1923.11.8~9 히틀러의 맥주홀 반란
1924.6 이탈리아 자코모 마테오티 암살
1929.10.24 뉴욕주식시장 파동, 세계공황
1932.11 독일총선에서 나치당과 공산당 다수당 확보
1933.1.30 독일연립내각, 총리에 히틀러 임명
1933.2.27 독일 제국의회 의사당 방화사건
1934.6.30 독일, 장검의 밤 사건
1935.9.15 뉘른베르크법 제정
1935.10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침공
1936-1939. 에스파냐 내전, 국제여단의 반파시즘 투쟁
1938.3.12 히틀러, 오스트리아 병합
1938.7 이탈리아, ‘파시즘 인종주의 선언’ 공포
1938.11 독일, 수정의밤 사건 발생
1939.8.23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1939.9.3 연합국의 선전포고, 2차대전 발발
1940.6.10 이탈리아 참전
1942.1.20 반제회의
1943.7.25 무솔리니 실각
1945.5.7~9 독일 항봅
1945.8.15 2차대전 종결
파시즘은 1차대전 이후에 등장한 일종의 정치 이념입니다. 파시즘이라는 말은 이탈리아말인 파스케츠라는 말에서 나왔는데요.
파스케츠란 나뭇가지를 묶은 집단에 도끼를 달아둔 것으로 로마집정관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식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집단, 결속, 결합이라는 의미의 파쇼가 나오고 그게 파시즘이라는 용어로 정착된것입니다.
파시즘은 좁은 의미와 큰의미를 가지는데요. 좁은 의미의 파시즘은 Fascism을 의미하는데요. 이는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이끈 파시스트 정당의 정치활동을 의미합니다.
넓게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일어난 권위주의적 독재정치, 즉 nazism가지 포괄하는 일종의 정치행동, 정치운동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fascism= Fascism + nazism 입니다.
파시즘이 처음으로 시작된 날은 1919년 3월에 무솔리니가 전우단 혹은 전투단(fasci di combattimento)이라는 단체를 창설하면서 시작됬는데요.
이 전우단은 1차대전의 퇴역군인을 비롯해 전쟁을 찬양하던 생디칼리스트들, 미래파 지식인들, 일반인들이 모여서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 이외에도 유럽 각지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프랑스의 불의 십자단, 녹색셔츠단
영국의 파시스트연합
벨기에의 렉스
루마니아의 천사장미카엘군단 등이 있습니다.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파시즘운동을 성공시킨 곳은 독일과 이탈리아 두군데 뿐입니다.
이탈리아는 1922년에 무솔리니와 전우단에서 창설된 파시스트 정당, 검은셔츠단이 로마로 진군을 하게됩니다.
당시 이들의 숫자는 9천여명정도였지만, 로마까지 검문을 피해서 도보로 걸어왔고, 무기는 거녕 먹을 것에 옷조차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었으며 하늘에서는 비까지 내렸습니다.
즉,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진군이었던거죠.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인데요. 그는 총리가 제출한 계엄령에 서명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풋내기인 무솔리니에게 총리직과 정부수립권을 넘겨줘버립니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무솔리니는 국왕등의 보수주의자와 함께
정권을 만들고 권력을 획득했습니다.
이때까지 이탈리아는 다수의 정당과 사상이 함께하는 상황이었고, 1924년에 사회당의 개혁주의분파를 대표하는 자코모 마테오티가 암살되면서 일당독제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이 와중에도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열성단원, 보수기득권층 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해서, 자코모의 암살을 기점으로 사회주의 세력이 의정활동을 중단하고 보수파는 망설이며, 파시즈트 지도자들은 무솔리니에게 행동을 강요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결국 무솔리니는 최후통첩을 받아들여, 2년여동안 국가방위법, 검열, 정당해산등을 실시, 일당독재를 확립하게 됩니다.
독일의 경우 히틀러가 일으킨 무장반란인 맥주홀반란이 실패하고 히틀러는 5년형을 선고받는 등 재기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대공황이 일어났고, 여기에 1차대전의 배상금문제와 실업률 증가, 농산물가격 폭락등의 악재가 곂치면서 1930년에 5개정당의 연합정권이던 뮐러정부가 무너지면서 정치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나치당은 9월 선거에서 제 2정당이 되고 1932년 7월 선거에서 원내 제1당이 됩니다. 처음에는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와 촐이였던 파펜, 슐라이허 세사람은 오스트리아 부사관 출신의 풋내기 히틀러를 배제하려고 했지만, 나치당이 제 1당이 되면서 어쩔수 없이 그를 판에 끼워넣게 됩니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부총리직을 제안하지만 히틀러는 이를 거절합니다. 결국 정부 수립이 어긋난 상황에서 1932년 11월에 파펜이 임시선거를 실시하는데, 여기서 파펜이 슐라이허에게 패해서 권력을 잃게 되자, 그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는 딜을 하게됩니다, 당시 히틀러 역시, 나치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히틀러의 모 아니면 도 식의 정당운영 때문에 정당의 재정도 바닥이 상황에 직면해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 힌덴부르크 역시, 슐라이허가 쿠데타를 모의한다는 측근의 부추김에 히틀러를 총리에 파펜을 부총리에 임명하게 됩니다. 이를 "골방의 음모" 라고 합니다.
히틀러가 총리직에 임명된 뒤에 반나치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마리우스라는 사람이 독일 제국의회 의사당에 불을 지릅니다. 이를 빌미로 히틀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력을 타도해서 견제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는데, 이 사건이 괴링의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의사당 방화사건 이후에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의회로부터 국가의 모든 권리를 결단할 수 있는 수권법을 제정받아 권력을 손에 쥡니다. 다음으로는 나치스 돌격대장이자 나치스의 2인자인 에른스트 룀을 나치스 친위대를 시켜 암살함으로써 당내에서 위협이 될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확실하게 다지게 됩니다.
히틀러는 1935년에 뉘른베르크 법을 통해서 아리안인종주의를 실시하게됩니다. 이를 이어서 1938년 이탈리아도 파시스트 인종주의 선언을 통해서 인종주의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1938년 11월에 수정의 밤사건이 독일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수정의 밤은 크리스탈나흐트라고 불리는데, 나치당원들이 유대인 상점되 사원을 방화,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이때 개진 유리창이 밤거리에 마치 수정과 같이 빛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게되었습니다. 이를 시발점으로 나치의 유대인 인종청소가 시작되게됩니다.
이 뒤로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2차대전이 일어나고
독일과 이탈리아가 패전하게 되면서
고전적인 파시즘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다음은
파시즘의 정의에 대해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스케츠입니다
하켄크라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