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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139
게시물ID : soda_69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마핱
추천 : 114
조회수 : 7325회
댓글수 : 67개
등록시간 : 2024/06/05 14: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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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댓글에서 여러 독자님들이 말씀 하셨듯. 내일은 휴일입니다.

그래서 한 편을 더 올리고자 합니다.

 

하아...정말 아쉽네요.. ㅠㅠ 

몇편을 더 늘여보고 싶지만...없는 경험을 만들어 창작하는 재주는 제가 없나봅니다..ㅠ ㅋㅋ

 

완결편에는 따로 인사말을 남겼기에 이 글에 마지막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지금까지 계속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며 댓글로 응원주신 오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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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건 몰라도 내 퇴사 소식을 남에 입을 통해 전해듣게 되는건 창희에게 몹쓸짓 이었음. 


나: 창희씨. 나랑 커피한잔 할래요?


창희: 응? 알았어요^^



***



나: 어떻게 얘길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ㅋ 에이 내가 뭐 그딴거 생각하면서 고민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하하.


창희: ?


나: 창희씨. 나 회사 그만둘 생각이에요.


창희: …!?


나: ^^….


창희: 왜 이렇게 갑자기..?


나: 사실 이번 마킹기 프로젝트 진행하기 전에 결정했어요.


창희: ………


나: 이 회사 다니면서 제일 잘한게 있다면 창희씨 같은 좋은 동료들을 몇명 만났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해본게 나한테는 너무 감사한 일이였어요. 

솔직히 창희씨 없었으면 나는 좀 더 오래전에 회사를 관뒀을거야.


창희: 그건..나도 마찬가지에요. OO씨 없었으면 나도 오래 다니지 못했을거에요…


나: 고마워요^^


창희: 그럼 이제 우리 소프트는…


나: 내 생각엔 창희씨가 팀장이 될거 같아요.


창희: 그런..!!


나: 내가 추천하고 그런건 절대 아냐 ㅋ. 내 예상에는 아마 창희씨가 될거 같다는 거에요. 

창희씨는 나랑은 별개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인물이니까. 

아마 내가 추천해서 팀장이 된다면 창희씨 성격에 절대 안받을껄 알거든^^


창희: ……..;;


나: 호카게님 나가실때 어땠을까 한번씩 상상해 봤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거 같아. 

그 양반은 나보다는 더 나았을거 같아요. 이 여우같은 양반^^. 

나는 창희씨 한명으로도 이렇게 안심이 되는데. 그 양반은 두명이나 있었어 ㅋㅋ


창희: 그랬을까요…? 나는 아직 생각을 안해봐서 잘 모르겠어요..근데 OO씨. 왜 회사 관두는거에요?


나: 창희씨한텐 솔직히 말할께요. ‘돈’ 이야. 별거없어ㅋㅋㅋ


창희: 지금 받는게 적어요?


나: 나 혼자 살때는 몰랐는데. 이제 우리 둘다 유부남이잖아요? 창희씨 같은 경우는 와이프분이 맞벌이라..

뭐 물론 힘들기야 똑같이 힘들겠지..근데 나는 맞벌이를 못하잖아요..? 그리고 이제 우리집은 세명이야.


창희: 응? 그럼..


나: 네. 애기가 태어날꺼에요 조만간. 아들내미야^^


창희: 아….!! 축하해요 OO씨!!


나: 고마워요 ㅎㅎ 그래서 그래요. 아직 애기를 안키워봐서 그런지, 앞으로 돈쓸일이 많을거 같다는 막연한 걱정이에요. 

이대로는 안될것 같아.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외식같은거 해도 부담없을 정도는 벌고 싶어요.


창희: 그랬구나…OO씨는 팀장이니까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받는다 생각했는데..아니었나봐요?


나: 이건 창희씨랑 비교해서 나온 판단이 아니에요^^. 그런생각하면 못써 ㅋ


창희: 흐음…;;


당시 창희는 5400을 받았고, 본인은 5450정도 받았음. 창희는 창희 나름대로 실력을 보였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이고 나는 나였음. 그리고 더 중요한건 우린 아직 제 몫의 임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팀장과 팀원의 연봉이 50만원 밖에 

차이가 안나는 부분을 고깝게 생각할 수 도 있으나, 내가 인정하는 창희였음.


창희와 내 연봉을 비교한다는 상상을 하고, 

거기에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을 느끼는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음. 


이건 팀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수고비’ 도 챙겨주지 않는 윗 대가리들의 문제이지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 개미들의 높 낮이가 아니니까.


그러나 지나고 얘기해보니 이 당시 창희는 납득을 못했던것 같음. 

창희 입장에서도 누구보다 본인의 실력을 인정해 줬었고, 

아무리 그래도 팀장인데 6천 이상은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함. 


그래서인지 창희는 조금은 애매한 태도를 보였음.


창희: 들어보니까..요즘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게 많데요. 

애기 낳으면 지원금도 있고, 최소한 기저귀값 분유값은 나온데요.  

나는 OO씨가 얼마를 받길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나: ……….


창희: 알다시피 지금 회사 사정이 안좋잖아요..올해 대부분 사람들 연봉이 동결이래요. 

근데 나랑 OO씨는 연봉이 올랐어요. 

아마..사정이 좀 더 좋아진다면..지금 부족한 것까지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OO씨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거 같은데..


나: ………


창희: 결론적으로는….가지마요. 같이해요 나랑. 나 OO씨 없으면 이제 누구를 의지해요..


나: 업무적인 의지는 아니잖아 당신이. 뭐 알려주려고 하면 학을 떼고 도망가면서 무슨 ㅡㅡㅋㅋ


창희: 그 외적으로요. 그래도 나랑 이 회사에서 제일 오래일한 쏘울메이트인데..!!


창희에게는 내가 첫 쏘울메이트 였을진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수차례 쏘울메이트 들을 떠나보내야 했음. 

티리엘..무쌍이…통풍이... 물론 티리엘 과장에겐 업무적인 의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컷음. 


아마 가장 아픈 이별이 있었다면 무쌍이의 퇴사 였을거임. 

무쌍이는 마음도 잘 통하는 친구였지만 업무적으로도 내게는 성장의 동력과, 

지원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던 이정표 같은 친구였으니까. 

무쌍이를 따라다니며 계속 함께 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음.


그러나, 한편으로 무쌍이와 함께하면 이후로 ‘홀로서기’가 어려울거 같았음. 

무쌍이의 지원을 받으면 결코 무쌍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오기’가 있었음. 

진실로 무쌍이에게 동료로써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나만의 길을 가야 했음.


나: 창희씨. 내가 무쌍씨 얘기 많이 했었죠?


창희: 아..혹시 무쌍님네 회사로….


나: 아뇨. ㅋㅋ 거긴 내가 있을곳이 없어. 그런게 아니라. 

창희씨 아쉬운 마음이 아마 무쌍대리 퇴사할때 내 마음이랑 비슷할거 같아서요^^.


창희: ……….


나: 나한테 무쌍이는 넘어야할 벽이며..의지할 수 있는 지지대 였고. 

무쌍이와 얘기하면서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학습의 방향을 잡았었거든요.


창희: 비슷하네…..


나: 결론적으로 그래서는 절대로 무쌍이를 못 넘어설거 같았어요. 

그래서 겁이 나지만..놔줘야 했죠. 뭐 내가 잡는다고 남아 있을 성격도 아니겠지만 ㅋㅋㅋ


창희: ………..


나: 무쌍이나 통풍이, 아몬드는 이제 한솥밥을 먹지 않지만. 그래도 봐봐요^^. 

여전히 좋은 친구로 연락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죠. 

나한테는 이제 창희씨도 그런 친구에요. 나는 내 친구가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종국에는…..언젠가 다 함께 만나는 날이 올거라고…


창희: 슬….텍…?ㅋㅋ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 그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창희: ㅋㅋㅋㅋㅋ 누구 맘대로요!? ㅋㅋ 무쌍씨나 통풍씨가 받아나 준데요!?


나: 내가 추천하면 일단 프리패스죠!!


창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그러니까…ㅋ 우리는 혼자가 되더라도 계속 우리 분야에 매진해야 되요. 

언젠가 다시 만날때 서로 짐이 되지 않도록..!!


창희: 알았어요…그럼 나도…이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을께요..혹시 언제….


나: 이사님이 2주만 더 생각해 보라고 하는데..아마 2주뒤에 결재가 나겠죠? 

그동안 인수인계 자료나 만들면서 좀 쉬려구요. ㅋ


창희: OO씨는 항상 일하고나면 자료만드는데 시간을 많이 썼죠. 

솔직히 지금 관둬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데? ㅋㅋ 설마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던건가? ㅋㅋ


나: 아니에요 ㅋㅋ 그냥 습관이죠 습관!!


사람은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나에겐 하루 하루가 마무리였음. 

과거 가족 회사의 이사님 마냥 언제 어느때 사라지더라도 자연스럽도록 ㅋㅋㅋㅋ 


[답설무흔(踏雪無痕)]


사기꾼 영감탱이한테 이상한 물이 들었음. ㅋㅋ




***



그렇게 조용히 일주일이 흘러갔음. 이제 내 퇴사 소식이 회사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음. 

비전K팀 사람들은 2호기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아무말도 하지 않았음. 


그들의 입장에서 1호기 겨우 겨우 끝내고 정리해서 2호기는 더 야심차게 준비하는 타이밍에 

돌연 본인이 중도 하차를 하는 격이었으므로 불안, 원망을 담은 시선을 내게 보냈음.


그외 본인과 첫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도게자 팀(전 G팀) 사람들이 본사 사무실로 올라와 나와 회포를 풀었음. 

중학교 선배도 난리를 쳤음.


선배: 임마! 희야 놔두고 어델가노!!!


나: 아주 좋은데로요 ㅋㅋ


선배: 치사하게 니 혼자 가나!!


나: 오실래요? 거기가 어떤 정글인지 알고? ㅋㅋㅋ 아마 거기 업무보단 여기 업무가 쉬울 수 도 있을텐데요?ㅋㅋㅋ


선배: 어디 갈라꼬?


나: 거기까지는 말씀을 못드리지만..전 회사 멤버들이랑 일하러 갑니다.


선배: 뭐? ㅋㅋ 니 거기 완전 헬이라고 안했나? 인간들 다 쓰레기라고 ㅋㅋ


나: 그랬죠..그랬는데..ㅎㅎ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그 분들도 많이 변했더라구요. 

제가 만나보니 이제는 우리회사 사람들 이상으로 사람들이 좋아졌더군용.


선배: ………


나: 우리 회사는 뭐랄까? 원래 좀 둥글었죠 사람들이 ㅋㅋ 근데 거긴 아니에요. 

다 뾰족뾰족 모난 사람들이 얼마나 세파속에 굴렀으면 지금은 번쩍번쩍 광나는 둥근돌이 되있더란 말이죠. 

타고난 둥금보다 저는 잘 깎여진 둥근돌을 더 높이 삽니다. ㅋㅋㅋ


선배: 지역만 말해라. 어데고.


나: 천O 이요.


선배: 희야 집 근처네!


나: 만나러 갈께요^^


선배: 그래….


나: 행님. 저는 어떻습니까? 6년이나 같이 있었잖아요? 어째 좀 둥글어진거 같습니까?


선배: 니? ㅋㅋㅋㅋ 진짜 듣고싶나? ㅋㅋ


나: 아..안듣겠습니다 ㅋ


선배: 어째 안변하겠노..ㅋ 아무래도 직장 생활이라는게 그런거 같다. 결국은 다들 밑에 있을때는 가진 기술도, 능력도 없고. 

그라다 보니 마음에 여유도 없는거제. 서로 밟을라 카고 ㅋ 근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그런게 채워지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거 같다. 

희야가 볼때는 니는 여유가 있어보인다.


나: ㅎㅎ 다행이네요. 확실히 여유는 생긴거 같아요. 제 스스로도 제가 어디가서 꿀릴거 같지않고. 

그러다보니 누까 암만 깎아내린들 신경도 안쓰이고.ㅋㅋ 아둥바둥 하는것도 없어진거 같고 그렇습니다.


선배: 알제?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데이.


나: 감사합니다 형님.




***




그렇게 2주가 되기 얼마 전. 비전총괄 전무로부터 메신저가 왔음.


전무: 잠깐 내 방으로 올 수 있나?


………….

………..

……..


나: 찾으셨습니까?


전무: 어어~ OO야. 오랫만이다 그치?


나: 그러게요. 사원때는 가끔 워크샵에서나 회식자리에서 자주 봤던거 같은데, 

연구소장님 나가시고, 부사장님 나가신 뒤로는 거의 교류가 없다시피 했네요^^


전무: 그래..그랬지.


나: 왠일로 보자고 하셨어요? 햄릿 이사님이 얘기하시던가요?


전무: 그래. 퇴사한다고 했다며? 


나: 네.


전무: 저번에 대회의실에서 참관하면서 봤다. 비전팀이랑 잘 안맞나?


나: 뭐 안맞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 역할만 잘 해주면 되는건데. 

이번 프로젝트는 뭐랄까…지금 우리 회사의 변해버린 모습을 잘 보여준 프로젝트죠..


전무: 여테까지 니가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나한테 진행상황 계속 공유해오는거 봤다. 

나는 처음에는 얘가 왜 나한테 메일을 보내지? 싶었는데..OO이(K이사) 때문이냐?


나: 숨은 참조로 전무님께 진행내용 보여드린겁니다. 그 덕분에 K이사가 어떻게 업무하는지 잘 아셨겠죠? 

그 양반. 정신 교육좀 해야되요.


전무: ………그래...나도 이번에 K이사가 어떻게 프로젝트 진행하는지....잘....지켜봤다....


나: 전무님. 나가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때 부터 늘 윗분들 한테 주워듣던 얘긴데. 

전무님은 뭐 때문에 ‘파벌’ 싸움 하신거에요? 정치라고 해야하나?


전무: 파벌싸움..?


나: 사원때 부터 회식하면 전무님은 소프트웨어팀을 해체하고 비전팀 소속으로 둔다는 둥, 

비전팀으로 따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둥. 온갖 얘기가 다 나왔죠. 사장님 손발 다 자르려 한다는 둥..

제가 6년간 회사 생활하면서 그 얘기들이 전혀 근거 없다는 생각은 안들더라구요.


전무: 밑에서 별 얘길 다하네. 허허...그러면 OO야. 지금 O 사장이 회사에 관심이 1이라도 있는거 같냐?


나: 아뇨.


전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연구소장님 나가시기 전 부터. 어쩌겠냐? 

사장은 사장이고, 우리 밑에 식구들은 살아야 되지 않겠냐? 니들이 바라보듯이 단순히 편협하게

우리만 잘 살자고 머리쓰던건 아니란거야. 


나: 뭐...다 좋은데 어째 그 식구들에 소프트웨어는 포함이 안된거 같습니다만? 

프로그램팀에 그냥 전무님 사람들 꽂아 넣으면 여느 비전팀처럼 알아서 잘 돌아갈거 같았어요?

큰 틀에서 우리가 장비회사는 맞지만. 까놓고 말해서 프로그램 기반으로 장비파는 회사 아닙니까?


전무: .................


나: 전무님 부터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나 없으신데 어떻게 프로그램팀 관리를 합니까?

이 회사에서 사장님, 연구소장님 외에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만한 사람들 다 내보냈지 않아요? 도대체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전무: 너 이 회사 처음 시작했을때 부터 얘기한번 들어볼래?


………………

………….

………


아주 장황한 얘기였음. 전무가 ‘대리’로 처음 회사에 입사 했을 때. 예전의 부사장님이 사장이던 시절. 

지금의 사장님이 이사, 연구소장님이 부장이던 시절의 이야기. 


사장님 아래 이사와 부장이 열심히 코딩을 하면, 그외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전무가 열심히 업체들을 쫓아다니며 자료를 얻고 세팅을 하고..

일손이 모자라 전무도 당시 코딩일을 했다고..ㅋ


그렇게 작게 시작한 회사는 조금씩 커 나갔고, 전무의 밑으로 6명의 젊은 사원, 주임급들이 생겼으니 

그들이 과거에 퇴사했던, 지금 남아있는 비전팀 팀장들. K이사, 햄릿이사 였음.


당시만해도 하드웨어적인 세팅 및 현장 대응이 프로그래머들에겐 제일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비전팀은 정말 소프트웨어팀 대신 현장 몸빵을 감당하고, 개발자들이 신경쓰기엔 성가신 모든 부분을 처리해야 했음.


그래도 이 당시는 다들 눈에 불을켜고 신나게 일했다고 함. 

비전팀이 공장의 야간대응을 하는 동안 지금의 사장님은 사무실 쇼파에 누워서 쪽잠을 자고. 

연구소장님은 L사에서 밤샘대응 중이고. 개발자와 비전팀끼리 번갈아가며 쪽잠자며 일했다고 함. 


그리고 일한 만큼 벌어들이는 회사 수익. 

빵빵하게 나오는 인센티브.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회사를 보며 모두가 즐거웠다고 함.


우리 회사만의 프로그램 틀도 생기고. 고정적인 고객사들이 생기고 D사, S사, L사의 1차 밴더가 되고. 

신규 개발자들도 새로 들어오고..그렇게 회사가 상장을 하고..


기존의 비전팀 인원들은 원년 멤버 대우로 모두 팀장으로 진급. 

그렇게 6개의 비전팀이 구성되었음. 인원이 많아지니 경영지원팀이 생기고..


전무의 얘기에서 느껴지는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뿌리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음. 



근데 원래 혀가 길면 그 '본의'를 의심하게 되기 마련.

전무는 말이 너무 많았음. 그의 말을 들으면 뭐랄까. 회사에 대한 자긍심.

뭔가 희망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가능성. 그런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음.

작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래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얘길 들으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만 더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질법도 함. 


'전무'라는 임원과 그들의 젊은시절 '전설'을 1:1로 듣고있으니까.

마치 우리 사이가 가까워진것 같고, 이후로 타 직원들보다 전무와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정치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런 언변이었음. 


근데 내 눈앞의 전무는 그 ‘전설’의 주인공일까? 

아니...당신은 과거 이야기의 주역일 뿐. 


그렇게 모두가 일구워놓은 회사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지 않았나..

핵심은 당신의 '인사' 판단이 회사를 내리막길로 이끌어낸건 확실하잖아.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건, 결국 초록동색인 거임.

그 사람이 깊이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고민하고 성찰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있음.


적어도 내가 선택하고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노력했고

무언가를 이바지 해보고자 부던히 공부하고 자신을 갈고 닦았음.


[전무님 당신은 아냐. 그저 좋은 날씨에 대단한 선원들에게 업혀간 운좋은 인물일 뿐.]


나: 대단한 얘기를 들은거 같네요.


전무: 그치? 이게 우리 회사의 역사고 저력이야. 그거 아나? 세상은 말이야 항상 파도 처럼 흘러. 

오르는 날이 있으면 내려가기도 하지.  지금은 우리회사가 내려가는 시기야. 

그럼 이제 뭐가 남았어? 오르는 일. 너는 어떻게 보면 그 오르는 시기 직전에 퇴사를 하겠다 마음 먹었을지도 몰라.


나: 흠…과연 그럴까요? 전무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무님 보다는 많이 어린 나이지만요. 지난 35년간 저한테도 ‘역사’가 있습니다. 

건방지게 들리시겠지만 제 판단은요. 아직까지는 틀린적이 없었어요.


전무: ……..


나: 이 회사는 다시 못 일어섭니다. 나무가 있다면 지금 이 회사는 뿌리가 다 썩어버렸어요. 


전무: 이 회사가 20년된 회사인건 알지? 내가 그 시간동안 

자그마치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 회사를 들어오고 나가는걸 봐 왔다. 

너 처럼 생각하고 나가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았지. 그런데도 봐라. 우리는 아직까지 건재하다. 

장담하건데 이 회사는 안망해. 니가 속단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러신 분이 연구소장님 나가시고, 사장님 정신줄 놓은지 3년만에 조직을 이꼬라지로 만들었나?

적어도 20년중 17년은 당신이 한게 없다는 거겠지.]


나: 전무님. 저는 전무님 보다는 적은 인원을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성향, 가치관, 생활습관 다 파악하고 있어요. 

사람에 대한 ‘깊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전무님 보다 더 깊을지도 모릅니다.


전무: ……….


나: 전무님이 지금까지 밀어주신 두 분의 이사들이 있죠.  

궁금합니다. S/W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햄릿 이사가 어떻게 프로그램 업무를 정리하고, 

인원들을 관리하며 이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신거죠? 


전무: 사람은 여리고 착해.....


나: 전무님. 착한사람 같은건 없어요. 제가 지금껏 만나본 사람들 중에 '순한' 사람은 많이 봤죠.

근데요. 순한 사람들은 이유가 있더라고요. 어딜가서 큰 소리 칠만한 '실적' 이 없어.

뭐하나 주도해서 하는게 없어. 근데 이 조직에서 살아는 남아야 겠어. 

이런 사람들이 전무님이 착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입니다. 


전무: ………허;;


나: 그리고 그 착한 사람들은 눈에 튀는 사람을 싫어해요. 자기랑 비교 되거든요.

지들끼리 뭉쳐서 튀는사람 누르는 카르텔 만들어요. 조직에 발전을 죽이는 것들이죠.


전무: .................


나: K이사는 어땠나요? 이번에도 역시 프로젝트 결과에 책임몰이 마녀사냥 시작했습니다 그쵸? 

‘이사’나 달고 아직도 작은 결과에 겁이나서 부들부들 떨고. 왜? 실력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자기네 팀 책임 전가해 볼라고 투투 과장 부추겨서 난장판 만들어놨죠? ㅋ


전무: 그건 향후 프로젝트를 위한 대책회의…


나: 그럼 실무자들만 회의하면 되지. 전무님은 왜 오시라고 했는데요? 심판 봐달라고?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전무님 부른거 아닙니까. 왜 모른척 해요?? 

그리고 분위기가 안좋으면 빨리 끊어내던가 해야지. 

끝낼듯 안끝낼듯 투투 과장이 결국 할말 다 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겐세이 쳐주던건 뭐였죠? 

그러다가 막판에 완전 불리해지니까 바로 회의 끝- 이사라는 것들이...


전무: 음……;;


나: 전무님. K이사는요. 뻐꾸기 새낍니다. 저 뻐꾸기가 밀어서 떨어뜨린 새알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G팀장, J팀장, 호카게 팀장. 그 여파에 흔들려서 그만둔 직원들도 엄청 많구요. 

이사나 달았으면 전체 조직을 챙겨야 되는건데. 

저 양반은 직급만 이사지 사실은 제 살기도 바쁜 신입사원이나 마찬가지에요.


전무: 솔직히…이제와서 말하자면....OO이(K이사)를 이사로 만든건…내 인생에 최대 실수야..


나: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일찍이 소싯적부터 그 싹수가 보였을 텐데. 

전무님은 왜 모르셨을까요.ㅋ 장비업계 비전팀 팀장이..PC에 고스트도 하나 뜰줄 모른다니..

혹시 이런 생각은 안해보셨어요? 나도 같은 부류가 아닐까?


전무: ............허참...할말이 없다.....


나: 어쨌든 제가 파악한 지금 회사 임원들은 그래요. 여기에 무슨 개선이 있고 발전이 있겠어요?


전무: OO야. 지금 받는 연봉이 얼마야? 너 햄릿 이사한테 6000받고 싶다고 했지?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6400줄께. 오늘바로 근로계약서 다시 쓰자.


나: 에이. 전무님. 물론 연봉 작은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단순히 연봉 하나만은 아니에요.


전무: 혹시 퇴사 이유가 OO이(K이사) 때문이냐? 그럼 OO이 짤라주면 회사 계속 다닐래?


나: 전무님.. 제가 앱니까? ㅋㅋㅋ 제가 살자고 남에 그 밥그릇을 뺐다뇨 ㅡㅡ;;


전무: 그럼 힘들어서 그래?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그럼 2개월만 휴직계 내고 쉬어. 

대신 월급은 100%받을 수 있게 내가 처리해 줄께. 연봉도 같이.


나: 전무님. 그런 이유로 제가 남게되면..결국 발없는 말은 천리를 갑니다. 

제가 남으면 종국에는 너도 나도 나가겠다고 쇼부 보려고 할꺼에요. 제가 '저'로 있을 수 있었던건

그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도 있었어요. 한입으로 두말 않고, 내 이득에 남들 기만하지 않는거.

이거 없으면 제 브랜드가 의미가 없어요 ㅎ


전무: ………


나: 전무님. 전무님은 이 회사에서 어떤 브랜드 가치를 쌓아 오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 눈에는 사장님이나 전무님이나 '사람' 보는 눈 참 없는 분들로 기억될거 같은데 ㅋ


전무: 허허.....우리 둘다 찍혔네 너한테..


나: 혹시 과거에 티리엘 과장이라는 사람이 있던건 기억하세요?


전무: S사 프로젝트 진행했던 친구 말하는건가..?


나: 네. 그분은 제가 볼때, 이 장비업계에 있으면 안될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일단 기본적인 코드 설계부터가 이쪽 이랑은 달랐죠. 

그 사람만 회사에 계속 있었더라면..아마 많은게 변했을 겁니다. 제 코드도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분이 하시던 방식을 계속 추구해온 결과가 지금의 저 입니다.


전무: 나도 프로그램을 조금 해봐서 알지만..당시에 그 친구 정도 되는 인물은 회사에 많았어. 

당장에 호카게 팀장만 해도..


나: 전무님.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솔직히 전무님이 저나 티리엘과장 앞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해봤다는 말 자체가 웃기네요. 무슨 투투 과장인줄...ㅋ

지금부터 10년을 프로그램만 공부하셔도 전무님은 우리 발 밑입니다. 


전무: ……;;


나: 호카게 팀장도 일은 잘했죠. 근데 ‘근본’이 달라요. 그러니 고작 저같은  3~4년따리 대리한테 따라 잡히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 눈에는 안보여요. 티리엘 과장같은 사람들의 가치가. 이 장비업계는 ‘개발’ 이라는게 체계가 없어요. 

커스터마이징이 생명인 곳인데 어째 제대로 된 구조 자체를 못잡죠. 

티리엘 과장이 계속 있었으면 아마 우리 회사 코드들이 대부분 체계가 잡혔을텐데..


전무: 그래..니 말이 맞다고 치자..그런데 어쩌겠냐. 당시에 그걸 알아보는 눈이 없었고..

그 친구는 너무 섯불리 회사랑 흥정하려고 했어. 

일은 잘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봐라. 그 친구가 회사를 위해 희생한게 뭐고, 기여한게 뭔지. 

물론 프로젝트 성공해서 큰 성과를 가져온건 맞아. 근데 한번이야. 

그정도 기여는 사장님이나 나나, 연구소장도 다 있어.


나: 비교 대상이 사장님, 연구소장님 전무님이시네요. 그럼 왜 티리엘 과장한테는 그 한자리 안내주신건데요?

회사를 더 키워 나가면 서로가 다 좋은 일인데. 왜 밥그릇 지키기나 하고 계셨던건지?

그리고 티리엘 과장의 그 ‘흥정’이 고작 프로젝트 잘 되면 연봉 7천 달라고 한거잖아요? 그 사람이 1억을 달라고 했습니까? 

회사를 경영하시는 임원분들한테 7천이 그렇게나 큰 돈이던가요? 그리고 그 얘기가 왜 비전팀에서 부터 소문이 난건지도 이해가 안가네요. 

전무님. 우리회사에 굴러들어온 최고의 인재를 그렇게 대접해서 내보내신거에요.


전무: ………..


나: 이해가 안되요. 티리엘 과장 인정해주고 자기 사람으로 데려갈 수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카르텔이라고 하는겁니다. 그리고 호카게 팀장은요!? 그 사람 회사에 기여한걸로 따지면

소프트 팀에서 첫손가락 안에 들텐데. 왜 안감싸 주셨는데요!? 전무님이 의도한게 아니면 

고작 비전팀한테 밀려서 나가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래서 이놈에 착한척 하는 카르텔 새끼들은 실력있는 것들 죽어도 인정을 안해.


전무: ..............;;;  


나: 저는 사람을 지켜볼때 항상 2번정도 지켜보고 판단합니다. 전무님은 이미 ‘아웃’ 이에요. 

무능한 인간들한테 권력 몰아준거 한번. 우리회사 최고 인재를 내보낸거 두번. 거기에 호카게 퇴사 세번.

그런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전무’로 있는데 이 회사가 안망할까요?


전무: 그래…니말이 맞다고 하자. 내가 여테껏 진짜 병X같은 판단을 했다..

그럼 이번에 너 퇴사하는거 못잡으면 그 판단은 어떻게 될거같나?


[오..이렇게 털리면서도 회유라니...솔직히 감사.]


나: 그 부분은 전무님의 ‘판단’의 영역은 벗어났습니다. 제 ‘판단’의 영역이죠.


전무: ……얘기를 해보니 정말 너는 마음이 떠났구나.


나: 솔직히 얘기를 드리자면. 마음이 떠난건 아닙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중국어 하나만 가졌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회사가 저한테 해준게 얼마나 많은데요. 좋은 선임자들, 좋은 동료들도 결국 회사 덕분에 만났고. 

지금까지 제가 공부하고 그걸 펼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깔아준게 회사니까요. 근데 타이밍이 안맞았어요.ㅋ


전무: ?


나: 4월달에 연봉 안오른거 확인하고, 조금은 충동적으로 다른곳에 가는 선택을 했습니다. 

전무님이랑 좀 더 일찍 얘기할 기회가 있었더라면...남아있었을 확률이 높죠. 결국 인생은 타이밍이가봐요.

어쨌든 저는 그쪽에 말을 해버린 상태고. 저는 뱉은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어요.


전무: …..그래…


나: 회사가 안망한다고 하셨죠? 저야말로 퇴사후에 나중에라도 지금의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들리면 

마음이 많이 아플거 같습니다. 절대 망하게 두지 마시고…아직 유능한 인원들이 있으니..

이제라도 사람 단도리 잘 하셔서..이사님들 혼도 좀 내시고...광학 기술팀 애들 MATOOO 가르쳤었는데..

걔네들 교육같은거 좀 보내주시고...투투랑 정차장 이번에 마음고생 많았으니, 따로 조금 보너스라도....

우리 소프트애들은.... 하아...나가는 마당에 말이 참 많네요 제가 ㅋㅋ


전무: 좋다…회사가 다시 일어서게 되면. 그때 내가 따로 연락을 주마. 

그때는 나도 당당하게 너한테 큰 소리 칠 수 있을거 같다. 그때 다시 만나자.


나: 네. 그럼 제 사직서 결재 부탁드립니다.


전무: 그래…OO야..그동안..고생 많이했다..


나: 감사합니다 전무님.




***




전무님의 결재 후, 하루만에 사장님의 결재도 승인되었음. 

그리고 2주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음. 예상대로 3파트의 팀장은 창희로 인사발표가 난 상황.


이제 나는 날개옷을 입은 선녀마냥 훌훌털고 날아가 버리면 되는 입장이 되었지만 

한가지 골치 아픈게 있다면 누가 봐도 실패할게 뻔한 

마킹기 프로젝트 2호기 업무를 누구에게 맡기는가 하는 거였음.


창희: OO씨 말대로 제가 팀장이 됐네요..ㅋ


나: 말했죠? 당신밖에 없다니까 이제? 이제 당신이 5대 호카게여. ㅋ


묘하게 들떠있는 창희..


창희: 처음에 OO씨 퇴사 얘기 들었을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그동안 생각을 많이 했어요. 비록 OO씨는 떠나지만 나한테 ‘보물’ 같은 코드를 남겨 줬잖아. 

사실 그동안 OO씨 코드를 엄청나게 연구했어요.


나: ㅎㅎㅎㅎ 그정도 까진…


창희: OO씨가 추구하는게 뭔지 대충 알것도 같아요. 그러다보니 뭐랄까..자신감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OO씨가 추구하던걸 해보고자 하는 열정이 막 샘솟는거 있죠.


나: 그래 준다면 나야 감사하지...


창희: 그래서 말인데. 나는 OO씨의 코드를 추구하겠지만..OO씨와는 다른 길을 가볼까 해요.^^


나: ?


창희: 생각해보면 OO씨는 너무 전투력이 높아서. 왠만하면 협상을 잘 안했던거 같아요. 

그냥 두들겨 패서 뚫어버리면 되는거니까 OO씨한테는 그게 편했겠지.. 

근데 나는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나는 OO씨 처럼 싸우기 보다는 두루두루 협조하고 잘 지내는 방향으로 가볼까 해요.


나: …으음..그렇구나..근데 창희씨.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누차 말하건데..

나는 가만히 있고자해도 싸움을 걸어와 사람들이. 근데 그걸 회피하잖아? 계속 밀고들어와.

이건 장담컨데, 싸우지 않으면 지킬수 없어요.


창희: ?


나: 나는 지키고자 해서 싸운거지, 좋아서 한게 아니란 말이에요.  

협상을 해서 풀리는 일이라면 협상을 하겠죠 저도…ㅋ


창희: 투투 과장 같은 경우, OO씨가 그쪽팀을 너무 강하게 몰아붙인 느낌이 있어요. 

물론 그 양반도 실수를 했지만.ㅋ  근데 나는 그래요. 

이정도 프로그램적인 자신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창희야....몰아 붙이지 않았으면...과연 제시간에 장비가 만들어 졌을까....

우리가 정상적인 테스트가 가능 했을까....;;;]


나: 아..뭐.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래도 내 마지막 프로젝트이고..

내 코드를 남기기 위해서 반드시 잘 되게 하고싶었던거 같아요. 결국은 실패한 프로젝트가 됐지만…


창희: 뭐 OO씨 입장에선 그럴수 있죠. 어쨌든 나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비전팀을 대하고 협력해볼 생각이에요. 

OO씨는 팀장 된 이후로 왠지 비전팀들 한테 좀 단호하고 냉정해졌던거 같아요.


나: ……..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도 생각마저 같을 수는 없는것 같음.

창희는 그간의 내 행보를 지켜보며, 나라면 이랬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었던걸 느낄 수 있었음.


내 투쟁의 역사를 근거로 얘기를 한다면...

창희는 너무 아름다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

페어플레이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창희에게 '내가 맞으니, 내 식대로 해' 라고 할 순 없었음.

새로 등극하게 될 '팀장' 이라는 직책의 설레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고

내게 나만의 투쟁의 역사가 있었듯, 창희도 창희만의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거니까.


내가 싸울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그들이 일반적인 대화로는 답이 없기 때문이었음. 

내가 밀리면, 내 밑으로 다 밀려버리는 최후의 방어막.


여전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창희..

그러나 오랜시간 내 옆에서 지켜보던 창희가 나름 해석하고 판단하며 내린 결정임.

지금에 와서 '가르침'을 내리기엔, 창희의 생각이 너무 확고했음.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공통의 목적을 위해 

타 팀간의 순수한 협력관계를 다지기엔, 지금의 핵심 관리자들은 

'떠날 준비', '독립할 준비', '정치 알 박기' 등, 개인 별 '이익'에 혈안이 된 상황임. 


결국은 업무 과정에서 각자의 '이득'에 따른 알력 싸움이 일어나고, 

공통의 목적보다는 자신들의 성과를 더 높게 보이기 위한 정치적인 행위가 벌어짐.

일은 뒷전에 던져두고...


파트장으로 남은 적임자가 창희밖에 없다는건 나도 인정하는 바이나..

느낌상 창희는 파트장의 직책을 맡기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내공'이 부족한 기분이 들었음.


아마 오래가지 못할거란 생각이 들었음.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음. 창희는 결국 배우게 될 테니까..

자신만에 투쟁의 역사를...


이런 판단이 서자 창희에게 실패할 공산이 다분한 마킹기 2호기 프로젝트를 남기는건 

불난집에 기름을 부어대는 상황 같았음…


[이제 막 파트장 일을 시작하는 창희에게 이걸 맡길 순 없다..!!]




***




하루는 밑에 친구들이 뭐하고 있나 둘러보고 다녔는데 동석이가 뭔가에 열심히 몰입한 채로 있었음.


나: 동석아 뭐함?


동석: (화들짝!) 아!! 팀장님…;;


나: 팀장 아니고 이제는 형이다. ㅋㅋ 뭔데? 야동이라도 봤냐? 뭘 그리 황급히 숨겨? ㅋㅋ


동석: 아…..


나: 뭔데? 까봐 ㅋㅋ


동석: 죄..죄송합니다…


동석이가 숨긴건 코드였음. 

바로 내 마지막 프로젝트이자 실패한 프로젝트 코드.


나: 엥? 이거 우리 팀에만 공유한 코드인데..? 이걸 가져가서 보고있냐?


동석: 죄송…


나: 아니ㅋㅋ 동석아. 전혀 죄송할 일이 아닌데 왜 그래. 이게 내 꺼냐? ‘회사 자산’ 아니냐. 

그리고 나가기 전에 너한테도 줄 생각이었어.ㅋ 근데 뭐 볼꺼라도 있냐? 실패작일 뿐인 코드를…ㅋㅋ


동석: 아..아니에요..코알라 주임이 형이 개쩌는 코드를 보내주셨다고 하길래..사정 사정해서 얻었어요. 

저도 본지 몇일 안됐지만..대단한거 같아요…


나: 아냐..나로서는 부끄러울 뿐이다…ㅎㅎ 그래서. 조금 너한테 도움이 되는거 같아? ㅋ


동석: 형 코드를 보니…뭔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프로그래밍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제 수준으로는 다 알아보진 못하지만..전에 형이 그러셨잖아요. 

모르는건 따라 만들어 보는것도 좋은 연습이 된다고…


나: 아..그래서 따라 만들어 보고있었던거야? ㅋㅋ


동석: 네….;;


[그렇게 공부하라고 해도 안하더니....]


본인의 퇴사소식은 기존 직원들에게 엄청난 불안감을 주었음. 

그러나 위기 상황에 대한 직원들 반응은 제 각각이었음.


창희: 해보는데 까지 해보고! 뭐....안되면 나도 이직 해야죠!!


코알라: 뭐...저는 그냥 제 길을 마이웨이로 가면되죠..ㅎ 일단 일하면서 공부하고, 때가 되면 이직? ㅋ


램쥐: 일단은 경력을 만들어야 하니...조용히 공부하면서....

상황을 봐야죠..이제와서 오래 다닐 생각은 없어요 ㅋ


그랬는데...동석이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음. 


'절박함'


동석이는 조선족. 즉 중국인임. 아직도 이 사회에는 그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그것을 단순히 '편견'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원인 역시 존재 했음. 

하지만 확실한건 지금 내 눈앞의 동석이는 편견 없이 봐도 좋은 아이였음.


하지만 그건 내가 그를 알기에 가능한것. 아마도 동석이는 국내 다른 업체에 가더라도

주로 중국출장 전담으로 팔려 다니거나, 해외 뺑뺑이를 돌게 될거임.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이 회사의 특수성이 아니라면...사실 동석이는 취직이 어려웠을 거임.


지금 동석이는 '배수의 진' 상황임. 쉽게 '이직' 카드를 꺼낼 환경이 안되는거.

그렇기에 절박한 상황속에서 동석이는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열심히 그간의 내 코드를 뜯어보고 있는거였음. 


내 인생에서 절박함이란 감정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했던가.


[그렇구나. 나 죽으면 내 무덤에 풀 뜯어 줄 놈을 찾고 있었는데. 그게 너구나.] 


나: 동석아. 기왕에 따라 만드는 김에 2호기 프로젝트를 맡아 보는건 어떠냐?


동석: 네!?!?


나: 2호기는 PC 제어파트가 빠질거야. 코드가 많이 가벼워 지는거지. 

너가 지금 따라 만들고 있는 행위는 니 업무랑은 1도 상관없는 순수한 니 개인 공부잖아? 

너를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아직은 코드를 직접 장비에 돌려보는게 더 도움이 될거 같은 느낌이 든다.


동석: ……...


나: 그냥 2호기 프로젝트를 니가 가져버리면 일과 니 공부가 동시에 되지 않겠냐?


동석: 형네 팀 프로젝트인데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주임따리 인데..;;


나: 형이 밀어 붙여보면 되지. 어때? 생각있어?


동석: 네!!


나: 진짜..? 음…그럼 회의실로 잠깐 와봐.





***





나: 너를 왜 불렀냐면..혹시나 나중에 형이 원망 들을까봐 ㅋㅋ


동석: ?


나: 솔직하게 말할께. 2호기는 실패할 확률이 90%야. 왜냐고? 

결국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 대만의 OO기야. 

걔네 기기가 안되면 결국 다른게 아무리 잘 되더라도 소용없는거지.


동석: 걔네 기기가 잘 안되요?


나: 어. 속도 면에서 D사의 양산속도를 못따라가. 

결국 엄청나게 고생해서 만들어봤자 얻는게 전혀 없는 ‘똥’ 인거지. 

나는 그 ‘똥’을 너한테 굳이 하라고 권하는 입장인거야.


동석: 그럼 형은…왜 저한테 ‘똥’을 주시는 건가요?


나: 너라면 그 똥 속에서 금덩어리를 찾아 먹을 수 있을거 같거든^^ 잔머리 하나는 우수한 너 아니냐 ㅋ

잔머리라고 놀리듯이 말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기지가 넘친다고 볼 수 도 있지.


동석: ………


나: 창희가 파트장이 될텐데. 시작부터 실패할 프로젝트로 힘빼게 할 생각 없어. 

그리고 너도 소문들어 알겠지만 저 비전K팀은 실패하면 꼭 마녀 사냥을 한다 이말이야. 

사람 고쳐쓰지 못해. 그리고 창희는 그거 못 버텨내. 


동석: 저는...버틸 수 있다고요...?!


나: 너는 나한테도 개기던 놈이니 걔네들은 상대하기 쉬울거야 ㅋㅋㅋ

게다가 너는 ‘주임’ 이야. 세상에 어떤 회사도 사원이나 주임한테 책임지라는 말은 못해. 

그리고 니 팀장은 이과장이기도 하고 ㅋㅋㅋ 이과장이 털리는건 나한테 크게 양심에 가책이 없어 ㅋㅋ


동석: ㅋㅋㅋ 역시 형은…대단하시네요. 뭘 하셔도 공격, 방어, 노림수까지 다....


나: 제일 큰 이유는…니가 절박해 보여서야. 그리고 묘하게 독한 구석도 있었어. 나한테 개기던 시절에 말이야.

그정도면 왠만한건 다 갖춘거 같아. ㅋㅋ 절박함, 투지, 기지. 이정도면 비전팀이랑 붙어도  안밀려 ㅋ


동석: 알겠어요. 형 마지막 지시인데 해야죠. 형이 시키는거 해서 지금까지 손해본적 없었던거 같아요.


나: 고맙다 동석아.^^



[내 바통은 창희가 아닌 절박한 너한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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