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월 4일, 소년 A는 마작 내기에 크게 실패해 10만엔을 잃은 후 소년 D의 집에 가서 일행과 합류한다. 피해자의 상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이미 피해자를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 정도로만 여기게 되어 C의 집에 가지 않고 방치해 둔 소년들이었지만, A는 마작에서 진 분이 풀리지 않고 10시에 개장하는 사우나에 가기 전, '오랜만에 그 녀석을 괴롭히러 가자' 고 제안해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소녀를 폭행한다.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꾀병이다' 라고 말하며 폭행을 계속하고, 사우나에 간 후 다음 날 한 소년에게 '피해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는 연락을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C의 자택에 가서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안 뒤 모두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니다' 라고 하지만...
소년 A는 소녀를 이불로 싼 뒤 여행용 가방에 넣어 껌 테이프로 말아 근처의 공장에서 훔친 드럼통에 넣고 차에 실은 뒤 일하던 타일 공장에서 조달해 온 콘크리트를 흘려넣고 벽돌 등으로 고정했다. 굳이 콘크리트를 넣은 까닭은 공구리 괴담을 사실로 믿어서인듯.
드럼통을 처리하기 위해 검은 쓰레기 봉투에 넣어 다시 껌 테이프로 밀봉한 후, 소년 A가 빌려온 왜건을 운전해 바다에 버리려 했지만 무서워져 도쿄의 매립지에서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바다에 버렸다면 영영 미제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년 A는 이때 드라마 '톤보'의 마지막 회 비디오를 찾고 있었다. 피해자가 납치된 날,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에서 빨리 귀가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몇 번인가 피해자가 말한 적이 있어서, 같이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꽃다발과 함께 비디오를 넣으려고 했지만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는 소년 B의 만류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소년 A는 '피해자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저주받기 싫어서…'라고 말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범인들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 사진.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밝혀진 것은 사건 발생 4개월 뒤인 1989년 3월 29일이다.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있었던 강간, 절도등의 혐의로 잡힌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 형사가 무심코 한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는 질문에 공범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 내용을 자백하였다.
담당형사는 자백의 내용을 반신반의한 채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 공원 정비 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시체를 묻었던 드럼통 한 개만 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즉시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 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며,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 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 정도로 극도의 영양 실조 상태에다 원래 51kg이었던 체중은 36kg으로. 또한 피해자의 위에서는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소변 등이 발견되었다.
손발은 묶인 채였고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성기는 안면보다 더한 상태였다고 한다. 얼굴의 일부 뼈는 으스러져 있었고 가슴에 수많은 바늘이 박혀 있었으며 영양 드링크 2개가 성기에 삽입되어 있는 상태였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벗겨져 있었고, 왼쪽 유두는 펜치 같은 것으로 집혀 손상되었으며, 제대로 붙어 있는 치아는 하나도 없었고, 뇌 또한 축소되고 약간 녹아 있는 상태였다. 고막 역시 심하게 손상되어 최후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다. 소녀는 사망하던 당일, 2시간에 걸친 폭력이 끝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괴로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한다.
시신의 상태는 이미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 있었고 부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으로 확인은 절대 불가능했던 상태. 그러나 남아 있는 지문이나 치열을 조합해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 현 미사토 시 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 고교 3학년 후루타 준코(古田 順子, 17)인 것이 확인됐다.
소녀가 야시오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뒤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사건 후 관련인들의 진술에서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 것은 알았지만, 소년 C가 두려워 이를 묵살하였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자랑이다
소년 A의 부모는 이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 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으나 피해자의 부모는 거부. 피해자의 모친은 사건 내용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장시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충격적인 것은 소년 B의 생모가 아들의 인생의 망가진 것이 피해자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의 묘를 때려 부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는 것. 대를 이은 천하의 개쌍놈들이 아닐 수 없다.
초반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일부 찌라시들은 소녀의 얼굴이나 수영복 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며 행실이 불량한 아이였고 소년 그룹의 동료 중 하나였다는 등 헛소리를 그대로 기사로 내놓는 천하의 개쌍놈급 짓을 하기도 했다.
케이크 만들기가 취미였던 피해자는, 어머니와 얼마 후인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만드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였으며 졸업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범행을 당하기 전 미성년자 성폭행범에게 집요하게 교제를 전제로 한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남자가 소년들 일행에게 정보를 주고 그녀를 협박했고, 소년들은 계획적 범행인 게 탄로날 게 두려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피해자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성적은 톱클래스였고, 더군다나 피해자가 살해된 1월 5일의 얼마 뒤인 1월 18일은 피해자의 생일이었기에 18살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에 일어난 이치카와 4인가족 살해사건의 범인은 이 사건의 범인들이 징역형을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의 범행은 별거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사실 우연한 계기로 범인들이 자백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들의 주변인은 모두 피해자를 목격하거나 정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했고, 심지어 폭행과 강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단 한 명이라도 경찰에 신고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또한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흉악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 증거도 없이 묻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이라도 용기 있게 대처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