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에도 1년 동안, 서울 지명은 일본인들이 붙여놓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명치정, 장곡천정, 죽첨정, 고시정, 대도정 등 일본 침략자들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을 간판에 써 붙여 놓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1946년 8월 가로명제정위원회가 만들어져 일본식 이름을 바꿉니다. 정치의 중심지이던 총독부 앞은 역대 최고의 군주인 세종의 묘호를 따서 세종로, 일본인들의 근거지이던 본정은 충무공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라 했습니다.
화교가 많이 살던 황금정은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라 했죠. 독립운동가도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어, ‘순국선열 중에 가장 먼저 자결한’ 민영환의 시호를 딴 ‘충정로’가 생겼습니다.
‘독립운동가도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가 당시 ‘지식인’들의 본심이었습니다. 그들이 양심 있는 지식인이었다면, 서울 곳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딴 거리들을 여럿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고 미안해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독립운동가들을 일제에 협조하거나 침묵하며 살아왔던 자기 삶을 부끄럽게 만든 ‘불편한 존재’로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안 한 게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순국선열에게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사람입니다. 미안한 짓을 정당화하면, 떳떳한 일이 ‘부당’해집니다. 그런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파렴치가 ‘정의’가 됩니다.
- 역사학자 전우용님 트윗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