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기원
쉽게 사랑할 수 없었다면
잊는 것만이라도 쉬웁기를
너를 만나고...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있은 적 없었으니
늘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너를 바라보아야 했으니
어쩌다 함께 있어도
시간은 또 왜 그처럼 빨리 흘러가는지
서로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면
그저 지나쳤으면 그뿐이었을 것을
놓는다고 했지만 결코 놓을 수 없는
우리 인연의 끝자락이여
쉽게 사랑할 수 없었다면
잊는 것만이라도 쉬웁기를
서로 비켜가야 하는 길이라면
돌아서는 일만이라도 쉬웁기를
김소연, 반대말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박성철,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이별보다 더 큰 슬픔은
이별을 예감하는 순간이며
당신의 부재보다 더 큰 슬픔은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당신의 마음은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같이 있으면서도 늘 내 것이지 못한 사람아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신경숙, 사랑이 와서
좀 더 자라나 나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나를 늘 지켜줄 사람을 갖는다는 것은
약한 나의 존재를 얼마나 안정시켜줄 것인가
새벽에 혼자 깨어날 때
길을 혼자 걸을 때
문득 코가 찡해질 떄
바람처럼 밀려와 나를 지켜주는 얼굴
만날 수 없어서 비록 그를 향해 혼잣말을 해야 한다 해도
초생달 같이 그려진 얼굴
그러나 일방적인 이 마음은 상처였다
내가 지켜주고 싶은 그는
정작 나를 지켜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김용택, 사랑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은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