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어난 초소에 인원 투입을 빼거나 아니면 인원을 두세 배로 늘려 투입하게 하면 좋겠다는 해원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는지, 그날 밤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를 끝내고 나서 내무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행보관이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왔다. 놀랍게도 대대장이 함께였다. 기겁한 분대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신병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붙였다. 침상에 널브러져 절대 꼼짝하지 않던 말년들이 잽싸게 벌떡벌떡 일어나는 기적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대대장이 경례를 받고 나자 행보관이 잽싸게 해원에게 손짓했다. 내무반의 시선이 일순간 해원에게 쏠렸다.
“이병 이 해 원!”
“이해원 이병인가? 최 상사님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예 그렇습니다!”
“자, 너무 어깨에 힘주지 말고. 나랑 같이 잠시 이야기 좀 하지.”
대대장이 행보관과 해원을 이끌고 내무반을 나서는 동안 침묵이 흐르다, 대대장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사방에서 동시에 말이 터져 나왔다.
“야 저거 사고 친 거 아냐?”
“대대장 기분이 괜찮아 보이던데?”
“대대장하고 아는 사이라던가 그런 거 아냐?”
“행보관한테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러던데? 행보관하고 친한가?”
그중 하필이면 잔소리 많은 김 병장이 내게 물었다.
“야 주원순, 너 쟤랑 친하잖아. 뭔 일인지 모르냐?”
어울리지 않게 눈치가 빠른 김 병장을 속으로 욕하며 나는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놀랐지 말입니다.”
그렇게 헛된 추측으로 가득 찬 대화가 난무하는 가운데 십여 분이 흐르더니, 다시 예고도 없이 행보관이 혼자 들어왔다. 행보관은 헛기침을 하더니 병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꺼냈다.
“자, 오후에 작업 있다. 소대에서 다섯 명씩이다. 그리고 원순이.”
“상병 주원순.”
“넌 여기서 뭐하냐? 빨리 해원이한테 가서 일 도와라.”
마치 해원이 고참이고 내가 신병인 것 같은 말투였다. 그러나 나는 군말 없이 얼른 내무반을 나섰다. 해원이 대대장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해원은 대대장이 타고 온 차 옆에서 대대장과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고 있었다. 대대장의 얼굴에는 의혹과 놀람이 뒤섞여 있었고 해원은 언제나처럼 차분해 보였다. 나는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가 두 사람의 대화가 간신히 들려오는 곳에서 귀를 기울였다.
“사실 아침에 최 상사님이 하도 간곡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그러겠다고 했지만 딱히 그런 걸 믿은 건 아니야. 2중대장하고 그쪽 행보관님의 반발도 심했고 말이지. 하지만 자네를 만나보니 안 믿을 수도 없겠구먼. 허 참. 세상에.”
대대장은 몇 번이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모두 추측일 뿐이지만, 제가 말씀드린 데로 조사를 해 보면 모두 사실로 드러날 겁니다.”
“알았네. 내 자네 말대로 하지. 2중대에도 지시해 두겠네.”
대대장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차에 탔다. 곧 차가 출발하자 나는 차 뒤꽁무니에 경례를 붙이는 것도 잊고 급히 해원에게 갔다.
“어제 행보관한테 부탁한 거 다 오케이된 거냐?”
“응. 일단은.”
짧게 대답한 해원이 다시 덧붙였다.
“일단 오늘 거기서 내가 찾는 게 나온다면 다른 것도 다 들어주기로 했어.”
해원이 어제 행보관에게 부탁한 것 중 첫 번째가 바로 무언가를 찾아야 하니 인원을 동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장소는 다름 아닌 사건이 일어난 초소 부근이었다. 문제는 무얼 찾아야 하는지는 해원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저 ‘계기가 된 물건’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아까 행보관이 지시한 작업이 십중팔구 이것이리라.
점심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초소로 향했다. 우리 중대에서 차출된 인원뿐만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2중대에서 차출된 인원도 그만큼 있어서 그야말로 대규모 수색작업이었다. 하지만 중대를 인솔하고 오는 2중대 행보관은 뭐라도 씹은 것 같은 표정으로 연신 불퉁거렸다. 듣자니 아무래도 겨우 잠잠해져 가는 일을, 더군다나 당사자도 아닌 우리 중대에서 들쑤시니 어지간히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 행보관은 난처해하면서도 여차저차 2중대 행보관을 달래는 중이었다. 그렇잖아도 행보관과 저쪽 행보관이 누가 먼저 원사 다느냐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터였다. 나는 해원에게 붙어서 속삭였다.
“야. 이거 혹시라도 아무것도 안 나오면 곤란해지겠는데?”
하지만 해원은 돌아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히 있어.”
그렇게 이십 분쯤 능선을 타고 올라가자 예의 현장이 나왔다. 다른 초소와 다를 바 없는 모양새에, 특별해 보이는 건 전혀 없었다. 초소 안에 튄 피를 씻어내느라 2중대에서 그야말로 뺑이를 쳤다는 후문이었다. 초소는 능선 위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뒤쪽으로는 가파른 경사가 있었고 아래쪽에 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아마도 병호가 내려가 보았다는 곳이 그곳일 것이다. 해원이 행보관에게 다가가 몇 마디 속삭였다. 옆에 있던 일병이 그 모습을 보더니 옆의 동기에게 투덜거렸다.
“이해원이 저거 뭐야? 행보관이랑 되게 친한 척하네.”
아무래도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벌써 밉보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해원의 군 생활이 꽤 고달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원의 말을 들은 행보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2중대 행보관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지시를 내렸다.
“여기서 수색을 시작한다. 1중대는 여기 경사면부터 시작해서 저쪽 아래 나무 있는 데까지 내려가면서 찾고, 2중대는 여기 초소 부근하고 앞쪽을 찾아본다.”
행보관은 한 박자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딘가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땅을 파 가면서 꼼꼼하게 찾아보고, 뭔가 이상하거나 꺼림칙한 물건이 나오면 무조건 나한테 가져와서 보고한다. 알겠지? 그럼 실시!”
병사들은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투덜대면서 어기적어기적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넓지 않은 초소 부근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다행히도 나는 그 작업에 참여하는 대신 행보관 지시로 해원의 옆에 붙어 있었다. 해원은 예의 그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체 얼마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무슨 말을 그렇게 중얼거리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해원의 심각한 표정을 보니 물어보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무료하게 흘렀다. 2중대 행보관은 아예 초소 그늘에 기대 나몰라라 드러누워 있었고 우리 행보관만 주변을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애당초 초소 주변은 제초작업이 되어 있는지라 온통 흙바닥이어서 뭔가가 떨어져 있다면 안 보일 리 없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한 후에는 무작정 땅을 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시골 밭뙈기라도 가는 것처럼 사방에 삽으로 판 자국과 흙무더기가 죽죽 쌓여 갔다. 간간히 병사들이 뭔가 찾았다고 외치면 행보관과 해원이 급히 그쪽으로 가서 확인했지만 동전과 나뭇조각, 누가 버렸는지도 모를 오래된 수통과 고무링 따위였다. 그 때마다 해원은 실망한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은 2중대 행보관이 와 보더니 가래침을 카악 뱉고는 쓰레기 수거하느냐는 빈정거림 한 마디만을 남기고 다시 초소 그늘로 돌아갔다. 슬슬 작업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어 두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 이게 뭐야?”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곳은 아래쪽 나무들 부근이었다. 미처 부르기도 전에 해원과 행보관이 급히 경사로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뒤를 따랐다. 가까이 가자 해원이 나를 돌아보더니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힘있게 끄덕였다.
해원이 땅을 파던 일병에게서 건네받은 것은 반지였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은색 반지였는데 아마도 다이아몬드 같은 투명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의아한 것은, 분명 땅 속에서 파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것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행보관이 성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찾은 거냐? 이거냐?”
“예. 맞습니다.”
해원은 대답 후 손바닥 위에 반지를 놓고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가벼운 탄성을 내뱉고는 반지를 행보관 앞에 내밀었다.
“여기 이쪽을 잘 보시지 말입니다. 아, 만지면 위험합니다.”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던 행보관이 움찔하더니 손을 아예 등 뒤로 돌리고 머리만 쑤욱 내밀었다. 나도 행보관 옆에서 같은 자세로 반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곧 해원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보석과 반지 사이의 틈에 뭔가 검붉은 것이 끼어 있었다. 그 정체는 곧 깨달을 수 있었지만 나보다 앞질러 행보관이 외쳤다
“이거 피 아이가! 우짜된 기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사투리가 우스꽝스러웠지만, 피가 묻은 반지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에 마음 한켠이 섬뜩했다. 해원은 손바닥을 오므리더니 반지를 조심스럽게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고 단추를 잠갔다. 2중대 행보관도 흥미를 느꼈는지 경사로 위에 서서 연신 ‘뭔데? 뭔데?’ 하고 외치고 있었다. 행보관은 그런 2중대 행보관을 흘깃 보더니 일부러 강조한 것이 틀림없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작업 종료! 다들 고생했으니 내려가서 쉬자!”
초소에서 내려오자마자 우리는 대대장에게 향했다. 중대장 두 명도 대대장이 불렀는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행보관이 약간 거드름 비슷한 걸 섞어가며 장황하게 보고를 마치자 해원이 반지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말씀드린 물건입니다.”
물론 이번에도 위험하니 손대면 안 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대대장은 잠시 반지를 들여다보더니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음. 확실히 피 같은 게 묻어 있군.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반지가 아닌가? 누가 흘렸을 수도 있고.”
해원은 말없이 반지를 가만히 대대장의 책상 위에 놓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가운데, 해원은 바지 주머니에서 염주 같은 물건을 꺼내 천천히 반지에 가져대 댔다. 염주가 반지에 닿으려는 찰나, 놀랍게도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염주 끈이 끊어졌다! 염주알들이 책상 위로 두두두둑 떨어지는 가운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뭐, 뭐야?”
해원은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흩어진 염주 알들을 하나하나 집어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조심스레 반지를 가슴 주머니에 돌려놓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나마 해원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대대장이었다. 대대장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2중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2중대장. 어쨌거나 1중대에서 약속대로 묘한 물건을 찾은 것 같은데. 그러니 요청해온 내역을 1중대에 주는 게 어떤가?”
해원이 요청한 두 번째 내역은 최근 석 달 사이에 휴가나 외박을 다녀온 2중대 부대원의 명단이었다. 아울러 그들과 면담할 시간을 준다는 조건까지 붙여서였다. 대대장의 점잖은 말투에 2중대장은 다소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응낙할 수밖에 없었다.
“대대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행정반에 이야기해서 명단 주고, 명단에 있는 애들은 이따 모아서 보내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해원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대대장실을 나서자 내내 불만어린 표정이던 2중대 행보관이 2중대장과 귓속말을 하더니 내뱉듯 말했다.
“최 상사, 이따 다섯 시까지 우리 애들 보낼게. 대신 나도 같이 가도 되지?”
“뭐, 그러든지. 대신 방해하면 안 돼.”
행보관이 껄끄러운 듯 대답했다. 하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어디로 갈까?”
“어, 식당이 좋겠는데.”
2중대 행보관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2중대 대대장과 함께 휑하니 떠났다. 행보관은 씩 웃더니 해원을 돌아보았다.
“잘했어, 이해원이. 그나저나 그 반지 진짜 괴상하구만. 어제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누가 사기라도 치는 줄 알았을 거야.”
“허 참. 세상에 그런 일이 있나.”
독실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천주교 신자라는 중대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가슴 앞에 성호를 그었다. 해원은 말없이 꾸벅 고개만 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