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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할아버지가 박통 시절에 하신 일(스압)
게시물ID : sisa_4596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벙갈룽
추천 : 1
조회수 : 5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2/10 04:13:56
베오베에 있는 '우리 할아버지가 박통 시절에 하신 일'을 보고 새벽에 생각나 오래간만에 글을 씁니다.

제 외할아버지께서는 공무원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때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부서에서 일했는지는 모르나, 이는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가 외국에서 살다와서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 있으면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박통 집권 초부터 유신독재때까지 쭉 비서실에서 박통를 보필하셨는데,

초기에 고속도로 짓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고속경제성장을 이룩할 때 박통을 정말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에 한국이 전후 폐허 속에서 이렇게나 성장할 수 있었다고.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열심히 하셔서 인정을 받고 대통령 표창장까지 받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독재를 시작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시작했을때 외할아버지께서 큰 딜레마에 빠지셨다고 하십니다.

분명 박정희 전 대통령이 능력도 되고 많은 결과물도 만들었지만, 유신 독재까지 수용할 수 는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외할아버지께서는 고민을 거듭하시다가 결국 박통에게 진언을 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직접 다가가 '유신독재를 하시면 안됩니다'라는 골자로 말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도 아시듯이 유신 독재는 결국 이루어졌고, 이 말을 한 대가로 외할아버지는 옷을 벗게 되셨습니다.

옷을 벗었을 뿐만 아니라 자택구금까지 당하게 되었고 집 밖에는 감시원들이 집 벽을 따라 둘러섰다고 합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어머니께서는 '집에 경호원에 생긴 줄 알고 기뻐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하셨다'고 회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에서 나온 감시원들에게 어머니께서 계속 간식거리를 갖다주셔서 감시원이 굉장히 곤란해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드라마면 러브라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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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 외가의 역사를 잠시 소개해드리자면,

저의 증조외할아버지께서는 독립군 집안이셨고, 증조외할머니께서는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재단의 대학교를 나오셨다고 합니다.

정확한 지명은 기억이 나질 않으나 두 분께서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십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매우 공부를 잘하셔서 소수의 한국인만 뽑았던 일본인 학교에서 일본인들의 조롱을 받으며 수학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때 증조부,모 께서는 큰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함께 월남을 하고,

남한에서 대학을 나오신 것으로 아는데, 여기서 큰외할아버지께서는 당시 주사파 운동을 하셔서 결국 월북을 하시고 그 이후로는 거의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남한에서 공직을 시작하셨고, 박통 때 청와대에서 일하게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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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당시 외할아버지께서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형제, 자매도 보릿고개라는 말을 모를 정도로 유복하게 자랐고, 거의 유일하게 집에 TV를 소유하고 운전기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진언으로 평생 직장에서 나가게 되셨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워낙에 청렴하게 사셨던 터라 박통이 아무리 조사를 해도 트집잡을 만한 거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외할머니 말씀으로는)

그러던 중 외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신 목사(아마 맞을겁니다)님이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오셔서 밖에서 술을 한 잔 하게 되셨답니다.

서로 세태에 대해 말을 하던 중, 친구이신 분이 먼저 '요즘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라고 운을 띄워서 외할아버지께서는 

격려하려고 '조금만 참으면 좋은 세상이 올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함정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말에 꼬리를 잡혀 취조를 당하게 되셨고, 고문이 가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박통이 옛 정을 생각해서 그러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이 말 때문에 국가전복, 소위 종북 세력으로 몰렸고 국외추방을 당해 온가족이 멕시코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 때부터 가세는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고, 박통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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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에서 또 흥미로운 사건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며칠 전에, 외할아버지께 전화가 왔는데, 그게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단 김재규라고 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외할아버지께서 중앙정보부의 끔찍한 고문은 피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추측을 했습니다.

김재규 부장이 이르기를

'박정희를 몰아내는데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암살'은 언급을 하지 않았고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외할아버지께서는

'나는 유신독재를 싫어하는 것이지 인간 박정희를 싫어하지는 않는다'라고 답하셨고 김재규 부장은 '알았다'고만 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며칠 뒤 박통이 암살되었고 이에 외할아버지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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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외가에 가면 외할아버지께서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걸려있습니다. 지금은 외증조부, 모 두 분다 소천하셨지만,

저희 가족이 이렇게 한국의 근,현대사의 흐름에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과 과가 워낙 분명한 사람이고, 어느 한 쪽도 잊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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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쓰다가 길어졌는데 이 야심한 새벽에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면 감사합니다.

반응이 좋다면 근,현대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증조부,모 혹은 고조부, 모에 대해서도 저희 가족사를 너무 많이 누설하지 않은 한에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 말고도 월북하신 큰외할아버지와, 친가에 대해서도 한 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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