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서른여섯입니다. 집에서는 막내고요.
큰누나는 58살... 큰 매형은 그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 아래로 쭉 누나들이 있는데 정치성향이 저랑 같아요.
물론 제가 물들여 놓은 영향이 크지만요 ㅎㅎ
근데 항상 큰누나, 큰매형에게는 살면서 단 한차례도 정치적인 대화를 해본적이 없었어요.
둘다 70년대 학번인데다가 큰매형이 꽤 큰 중소기업 운영하다가 몇년전에 남해안쪽으로 전원생활 한답시고
예식장 차려서 내려간... 쉽게 말해 좀 있는집 출신에 지금도 그렇습니다.
큰매형이 서울에 살때도 놀러갈때면 거실 테이블에 항상 중앙일보가 있었네요.
바닷가에서 예식장 운영하는 지금도 그 지역에서 교회 열심히 다니고 근처 지방법원 판검사들하고 골프치러 다니고
지역도 역시 경상도다 보니 "저양반도 자유총연맹 같은데 가입되어 있겠지..." 라는 편견 갖고 있었네요.
근데 어제 오랜만에 내려가서 같이 식사하고 YTN 보는중에 군장병 우유 관련 뉴스 나오길래 제가 순간적으로
"풉... 어이없는 새끼들" 하고 내뱉었네요. 실수였어요... 큰매형은 저한테 굉장히 어려운 분이거든요.
그러자 이양반이 예상도 못한..."저거 무슨 내용이야?" 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잽싸게 "예산 줄일려고 군장병들 급식에 손댔다가 거국적으로 욕먹으니까 철회했나보네요"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앵커가 제가 한 말이랑 비슷한 멘트를 내뱉었고요.
그때부터 뉴스 한꼭지마다 큰매형이 제게 "저건 또 어떤 소식이야?" 하면서 뉴스를 해석해 보라는 식으로 묻더라고요.
뉴스 끝날때까지 계속 대화를 많이 했어요.
평소에는 어려운 상대다보니 제가 항상 조언을 구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입장이 바뀌어있더라고요.
이때다 싶어 뉴스 끝나기 전에 제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매형... 오늘 경찰이 시위대한테 오랜만에 물대포 쏜 모양이네요. 이 엄동설한에요." 라고요.
그러니 "오늘 낮에 폰으로 뉴스 봤는데 그런거 없었는데?" 라고 되물으시길래 "네이버 뉴스 보시죠?" 라고 물으니
역시나 대답은 "응" 이었습니다.
폰으로 다음뉴스 보여드렸습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열렸고 경찰은 시위대에 물대포 쐈고...
천주교 주교단 회의에서 박근혜한테 대들기 시작한 뉴스도 알려드렸죠.
그 뒤 반응이 좀 의외였습니다.
저는 큰매형이 살면서 육두문자 쓰는거 한번도 못봤거든요?
YTN 오늘의 주요뉴스 한문장씩 나오는거 유심히 보시다가 물대포 쏜거에 대해 전혀 안나오니까 그때부터 욕을 하시더라고요.
전두환때 같다면서요... YTN은 그나마 괜찮은 것 같아서 봤는데 저새끼들도 엠비씨나 케비에스랑 똑같다고요.
그래서 JTBC 9시뉴스 추천해드렸고요.
마지막으로 웃으면서 "매형 골프상대들 앞에서는 그런 얘기 하시면 안되잖아요" 라고 했더니...
"일 잘하는 검찰총장 쫓아낸 사건 이후로 조선일보 안보는 사람 많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 경상도잖아요?" 했더니 "니가 말하는건 대구경북이지 여기는 박정희 신으로 모시는 사람 없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네요.
기분이 좋아서 쓰다보니 굉장히 길어졌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네요.
나이 때문에 항상 거리감 느껴지던 분이셨는데 시야가 넓으신 분이시라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요새 시게에 부모님하고 의견충돌 있어서 정신적으로 힘드신 분들이 많던데 다행히 저희 친지중에는 수꼴한테 끌려다니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서... 이기적이지만 저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글고 마지막으로...
서른여섯 먹은 아저씨의 입장에서 이십대 초중반의 동생님들에게 조언을 하나 드리자면...
부모님이 박정희를 신으로 모시고 계신다면 정치적인 대화 하지 마세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그럴때 쓰이는 말이 아니랍니다.
정치, 종교 등의 문제는 가족간에도 불화가 굉장히 커질 수 있으니 그냥 한귀로 듣고 흘리시는게 좋아요.
답이 없는 문제는 답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힘내시고요.
아 이 두서없는 글의 끝을 뭐라고 맺지...
여러분 치킨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