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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권과 철학
게시물ID : phil_76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니미니미
추천 : 1
조회수 : 84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2/06 22:19:23

근대 인권과 철학


시민 혁명과 근대 인권 형성

 

근대시민혁명의 태동과 이론적 배경

근대 시민혁명은 이른바 18세기 영국의 명예혁명(1688), 미국의 독립혁명(1776),프랑스 혁명(1789)등을 일컬어 말한다개인주의그리고 자유주의적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1세대 인권이라고 불리우는 이 시기의 인권 사상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즉 자유권으로 대표되는 신체의 자유사상의 자유참정권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영국의 명예혁명은 찰스 2(Chalres II, 1630~1685)와 제임스2세의 전제정치로 인하여 발생하여 의회중심의 입헌정치를 수립했고미국의 독립혁명은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독립 선언문을 발표민주공화국을 수립하게 되었으며프랑스 혁명은 봉건주의의 각종 모순과 갈등그리고 이를 이용한 부르주아 계급그리고 고통 받던 농민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뒤엉켜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내걸고 시민 계급이 주도하는 사회를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혁명이 단일하게 해석되는 원인과 결과즉 인권의 부재에서 존재로의 함의만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인권에 대한 시각과 틀은 그 시대적 배경정치적 배경사회적 배경문화적 배경들의 관계 속에서 탄생된 것이다따라서 그 시대의 논의되어졌던 인권주로 로크의 자연법사상으로 대표되어지는 1세대 인권의 이론적 배경도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당시 유럽은 보편적인 인권의 개념이 필요했고종교 개혁과 더불어 종교의 자유가 부각됨에 따라 종교가 정치적·도덕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회 보편적 규범의 위상이 무너지면서 종교가 개인 내면의 문제로 개별화되었고이 빈자리를 근대의 이성이 메꾸게 된다이른바 보편적 당위를 갖는 규범을 더 이상 종교적 신념이나 규범에 의지하지 않고이성으로 보편적 입법의 원리를 구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을 통해 보편적 자연법을 구성하겠다는 점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도덕 사상에 맞닿는 부분이 있다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의 이성적 구체화이 작업은 이른바 로크에 의해 이론화되고 구체화되게 된다자연권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가지는 권리로 표상된다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 있으며이성적 자립적 주체이고, “자연법의 범위 내에서 자신이 적당하다고 믿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그 재산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고타인의 허가나 타인의 의지에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이는 누구도 타인에 대해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특권을 갖지 않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다그러나 국가는 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연법을 집행할 권리를 가지며이 권리는 사회계약을 통해 개인으로부터 양도된다다만 생명이나 자유재산의 권리가 양도되는 것은 아니며국가가 개인의 자연권을 침해할 경우 개인은 언제든지 이에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로크의 자연법 사상 비판

그런데 이러한 생명과 자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로크는 소유의 개념 안으로 포섭한다로크의 이러한 시도는역사적으로 봤을 때 소유의 개념으로 포섭하는 인간의 자연권이 당시 시대의 주도권권력을 쥐고 있던 부르주아들의 체제 구성과 유지즉 헤게모니의 유지에 부합하여 이론으로써 살아남기 적합했고그렇기 때문에 로크의 인권론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자연법이 자연법으로써 인정된 것 자체가 그 시대의 정치적·경제적 구조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결탁 가능했기 때문이다실제로 소유권의 논리는 유산자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합리화 하는 데에 이용되었다.

많은 문제점들 가운데 또 하나는 자연법이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정확하게 동의할 수 있는 자유의 지점을 가질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에 있으며또한 로크는 자연법의 전제에서부터 오류를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 있는데문제는 인간이 단 한 번도 자연 상태에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로크의 말에 의하면 자연 상태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데그에 비해 인간은 사회--존재로써 타자와의 필연적 관계 형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그러므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즉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 파악할 때에만 자유나 평등의 개념이 생성 될 수 있으며(필연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다시 말하자면 이 때 자유나 평등은 생성되는 것이다물론 이러한 주장이 로크의 자연법 사상에 대한 몰이해-즉 규제적 이념이 아닌 구성적 이념으로써의 이해-로 인하여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요점은 규제적 이념으로써의 자연법이 그 가정부터가 불완전한잘못된 관점에서 출발되었다는 것이다.

 

로크는 자연권을 첫째자신의 생명의 보존에 유익한 것 또는 그것의 수단을 사용할 권리둘째타인의 자의적인 의지에서 자유로울 권리셋째자신의 노 동에 기초하여 토지나 그 생산물을 개인 적으로 소유할 권리의 3가지 권리로서 특정화함과 동시에 자연 상태에서 개개인은 타인의 동일한 자연권을 존중하는 것을 자연법에 의해 의무화함으로써 자연권을 실제적으로 평등하게 개개인에게 보장된 권리로서 확립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로크가 설정하고 있는 자연법과 자연권자유로운 인간의 관계는 자연적 상태가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자연적이지 않은구석이 있으며더군다나 로크의 자연법 이론을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규율하는 도덕적 원리예를 들면 칸트의 신에 대한 도덕적 요청과도 같은 것으로써 이해한다고 치더라도로크의 자연법에 대한 가정과 이론의 출발은 부르주아적 소유권의 옹호와 인간의 보편적 항구적 자유의 옹호의 절충점 사이의 타협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러한 부분은 로크가 노동소유권론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난다자립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가 소유권인데이 때 인간은 생명자유 그리고 재산을 문자 그대로 소유한다그러나 소유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소유는 인간의 개념적 틀 안에서만 존재 할 뿐이다더불어 소유는 타인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이 때 이 동의는 사유재산에 대한 동의이다소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동시에 타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타인이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나의 사유재산이 아니고타인이 없으면 소유를 주장할 수도 없다로크의 소유는 사실상 구성적 이념즉 실존하기에 시민들이 그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처럼 제시되어있다마치그 소유권이라는 것이 진실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술 되어있고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소유권은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소유권은 필요에 의해 구성된(있다고 상정된것이며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이 해석은 당대의 패권을 쥔 부르주아들에 의해 전유되었고이 지점에서 1세대 인권은 소극적 권리자유권에 침전되고 만다.

 

 

 

 

 

 

계급지배의 논리와 인간 해방

 

근대적 인권론과 계급지배의 논리

앞서 다뤘듯이 근대적 인권론은 유산자의 권리를 긍정하고 보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국가에 대한 정치적 참여 또한 소유하는 자를 중심으로 하는 제한선거제로 귀결되게 되었으며소유권의 무제한적 축적으로 이미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든 그것이 썩기 전에 삶에 이득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주셨다곧 그가 자신의 노동에 의해 자신의 소유로 확정할 수 있는 만 큼만 주셨던 것이다그것보다 많은 것은 그의 몫을 넘어서며다른 사람의 몫 에 속한다……하지만 화폐는 인간이 상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서인 간은 상호 간 합의를 통해서 참으로 유용하지만 썩기는 쉬운 생활용품과 교환 하여 이 화폐를 받게 되었다.

 

로크는 인간은 부패하는 것 이상으로 소유할 수 없지만화폐를 통해 부패하지 않는 것으로 바꿈으로서 소유에 대한 무제한적 축척이 가능하다고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타자의 그 자신 스스로의 노동을 통한 소유 가능성은 자원의 유한함으로 인해 필수불가결하게 침해되고 개인의 소유권과 충돌하게 되는데로크는 이 지점을 사회계약을 통한국가의 자연법 집행즉 사유재산의 보호로 봉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미 결합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럴 생각이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생명과 자유자산-내가 재산이라는 일반적 명칭으로 부르는 것의 상호 보존을 위해서 사회를 결성할 것을 추구하거나 기꺼이 사회에 가입하 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그러므로 인간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 스로를 정부의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들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일정 이산의 재산을 보유하여 국가에 일정한 양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소유한 시민만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정치적 권리를 통해 선거권이 있는 시민 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추구함으로써 정치적 불평등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어 갔으며 아동노동,저임금그리고 열악한 노동조건 등이 심각한 문제로 사회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이에 대해 루소는 사유재산제를 인류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주장하고 이를 불평등의 기초로 보았다로크도 땅에 노동을 투입하여 얻은 결과물이 사람에게 속할 수는 있으나 땅 자체는 어느 누구도 독립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공유재산으로 보았지만루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예컨대 이 울타리를 세운 것은 나다나는 내 노동으로 이 땅을 손에 넣었다” 라고 우겨도 아무 소용이 없다누가 당신에게 경계선을 정해 주었느냐고 누군 가가 그에게 대꾸할 수 있다.<중략>약탈이란 공통된 목적으로 뭉쳐진 적에 대 항하여 자기의 동지들을 규합할 수도 없어 혼자서 여럿을 상대해야 하는 이 부 자는 드디어 절실한 필요에 따라 일찍이 인간이 궁리해내지 못했던 가장 심오 한 계획을 구상하게 되었다.그것은 바로 자기를 공격하는 자들의 힘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고자기의 적을 자기의 방어자로 만드는 일이다.<중략>사회와 법 률의 기원은 결국 이와 같은 것이었거나 당연히 이러했을 것이다이 사회와 법 률은 약자에게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유한 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줌으로써 자연의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 버리는가 하면사유재산과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 히 고정시키고 교묘한 약탈을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 몇몇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 온 인류를 영원한 노동과 예속 그리고 빈곤에 복종시켰던 것이다.

결국 루소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권리로써의 사유재산제는 유산자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장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이러한 모순과 불평들을 내재한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줄기찬 저항을 받게 된다.

 

차티스트 운동과 인권의 확장

유산자와 무산자의 대립 구도에서 유산자만이 시민적 정치 권리를 독점하던 상황에서선거권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1836년 즈음부터 보통선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갔다. 18세기 말의 영국의 인구 중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즉 시민은 약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세금을 납부할 정도로 충분히 부유하지 못하여 시민계급이 되지 못한 일반 계층은 선거권이 제한되었다. 1832년의 선거법을 보면성년남자 중 일정 재산을 소유한 자에게만 선거권이 한정 되었고이는 민주주의에서의 유산-정치지배계급이라는 아이러니를 불러일으켰다심지어 노동자 계급을 폭도로 규정했고 프랑스에서는 국가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인식하여 주주들즉 세금을 납부한 사람들만이 그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결국 시민혁명에 참가했던 수많은 시민무산자 계층은 사실상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고이는 봉건주의 왕정에서 부르주아 계급으로 사실상 지배 구조는 바뀌지 않은 채 지배 계층만 바뀐 것을 의미했다이에 대한 저항으로 보통선거권을 얻기 위해 일어난 것이 이른바 차티스트 운동이다빈민에게 선거권을 박탈한 구빈법과 1832년의 유산자에게만 한정된 선거권에 대해 저항한 세계 최초의 노동자 운동으로이후 선거법의 개정을 통해 보통선거권이 확립되는 데에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보통선거권 운동은 정치적 평등을 갈구했다는 점에서 인권의 확장 가능성을 열었다그리고 1830년대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계급적대는 이후 사회주의의 등장을 예고하게 된다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제3계급이라 불리었던 부르주아 계급의 과도한 노동자 착취로 인하여 이른바 진정한 의미의 인간 해방에 대한 관념이 눈뜨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과 인간 해방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시작되는 문구로 유명한 공산당 선언(1848)은 이후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공산주의의 특징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를 폐지하는 데 있다오늘날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생산물의 생산 및 점유 형태 중에서 마지막의 가장 완전한 형태이지만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계급 대립 에 기초하고 있다이런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이론을 사적 소유의 철 폐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맑스는 산업자본주의가 더 발전하면 재산(사회적 생산수단)은 극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집중되고 인구의 대부분이 열악한 임금 노동자즉 무산자(사회적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자/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중략>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결국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 임을 천명한다.”

 

맑스는 사유재산이 계급대립으로즉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을 타파하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관리에 두고결과적으로 계급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자 한다그러한 과정에서 생산력이 그 극한까지 증대되면 부르주아적인 소유관계가 철폐되고 프롤레타리아 사회가 출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이것을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역사의 과정으로써 이해한다.(물론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정확한 해석은 아니며논란의 여지가 있다.)

, ‘유대인문제에 대하여’(1844)에서는 근대 인권이 인간을 공동체와 분리된 부분적 존재로 이해하며인간을 노동적 존재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며 비판하고 있는데루카치(Lukacs Gyorgy, 1885~1971)는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의 성격을 지닌다.”고 말한 바 있다본래 상품은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데이처럼 인간의 관계인 것이 상품이란 사물들 간의 관계인 것처럼 보이면서인간들 간의 관계가 은폐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 간의 관계인간적인 관계가 상품간의 관계로 대체됨에 따라 관계의 사물화가 일어나고노동이 상품을 만들어 냄에도 불구하고 상품 그 자체의 자연적 속성에 의해 상품의 가치가 창출된다고 믿게 된다이것이 바로 상품 물신성인데, “상품형식의 신비는상품형식이 인간들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서이 사물들의 사회적 자연속성으로서 뒤집어 반영한다는 데에 숨겨져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의 근본적 논리가 이 지점에서 논의된다. “사물화로 인하여 인간 특유의 활동인간 특유의 노동이 객체적인 어떤 것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오히려 인간에 낯선 자기법칙성을 통해서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것으로서 인간에 대립되어 다가온다.” 즉 오늘날 흔히 얘기되어지는 황금(물질)만능주의에 의한 개인의 소외인간이 노동을 통해 생산한 객체인 화폐(물질)에 의해 인간이 오히려 지배당하는 상황을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즉 사회주의 혁명과 그 근본으로서의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지배적 속성을 폭로하고 이를 통해 사실상 인권이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원인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인식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아무리 정치적 참여가 보장되고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신장되어도오늘날 인간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현대사회의 상품의 물신성문제는 심각하다쓸모있는 것은 인간을 억압한다는 말 그대로,교환가치의 신화 그 자체인 화폐는 그 쓸모있음으로 인간을 되려 억압한다.

인권이라 함은 이른바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인권에 대한 정의(definition)와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무엇을 마땅히 누리고 행사할 수 있는지그 진리의 영원불변성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이다. 20세기 당시 소련의 붕괴 및 탈냉전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간 사회주의 혁명은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 있는 사상적 샘이 되고 있으며이는 결국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야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의 가능성도 끊임없는 고민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중요하다.

 

 

2차 세계 대전과 파시즘

 

나치즘과 대의민주주의의 맹점

제 2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사상자와 피해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제 2차 세계 대전에도 크고 작은 전쟁들은 역사 속에서 늘 있어 왔지만제 2차 세계 대전 만큼이나 인간의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특히 나치는 그 중심에서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태인 학살과 그 전체주의적 광풍으로 비동일자를 문자 그대로 삭제하려 했다전체주의의 아이러니는 개인이 주체로써 선거를 통해 그 의지를 표현하여 공정하고 선한 정치인을 선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대의민주주의의 원리가 산산이 깨져 버린 데 있다히틀러는 대의민주주의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불안한 독일의 국내 상황 속에서심지어 당시 독일인들은 지도자와의 강렬한 동일시...모든 민족사회주의자들은 그 종속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작은 히틀러라고 느꼈다.” 이러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히틀러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셈이다즉 개인들이 자신의 의사결정을 자기 외적인 것이 아닌 자기 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자발적 복종이 나치즘의 원동력이 되었다대표자에게 권리를 내맡긴 이상독일인들은 그 대표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대의민주주의가 역사 최악의 대표자를 선출했던 것이다그렇다면 이토록 모순적인 대의민주주의의 모습과 나치즘의 내적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치즘과 도구적 이성그리고 개인의 내면

대량학살이란 절대적 통합이다이런 통합은 사람들이 획일화되는 곳이면 어디서나사람들이 완전한 무가치성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날 경우 문자 그대로 말살될 때까지-군대에서 말하듯이-마모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등장하게 된다아우슈비츠는 순수 동일성은 죽음이라는 철학 명제가 진실임을 확증했다.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는 당대의 계몽적 이성이 폐쇄적 필연성에 갇혔다고 진단한다이는 당시 실증주의과학주의 사조가 만연한 가운데 모든 것을 수량화하는 형식논리로의 환원에 기인한다. ‘등가원칙’ 속에서 모든 질적 차이나 목적그리고 인식자의 관심은 무시된다개념으로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과정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 의외의 특징들은 사상(捨象)된다이처럼 도구적 이성의 논리는 개별자를 보편자에 포섭하는즉 개념의 동일성을 이른바 편집증적으로 지향하는 데에 있다이러한 동일성에 대한 욕망에서 아도르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나름대로 해석해냈다반면 아렌트(Hanna Arendt, 1906~1975)는 나치즘을 인간의 무사유로 해명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중략>그는 어리석지 않았다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철저한 무사유였다.<중략>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은, 1961년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을 이야기한다아이히만은 유태인 학살 과정의 총책임자였는데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처럼 출세를 지향하고근면과 성실을 생활 준칙으로 삼은 인물이었다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에게는 상부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죄 밖에 없다며 강변했다여기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철저한 무사유의 책임을 제기한다이는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부재를 의미한다만약 그와 나치 전범자들에게 타인의 입장즉 수용소에 끌려가는 유태인의 입장에서 그의 공포와 불안감을 공감하고 사유할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마 아우슈비츠와 같은 끔찍한 인권 유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도시의 개인 내면에의 구조화와 축제

그러나 개인의 내면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차원의 책임 외에 구조의 문제도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짐멜(Georg Simmel)은 산업자본주의가 대도시를 탄생시켰고이 때문에 인간 내면의 세계가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정신적이고 세련된 의미에서 대도시인은 사소한 일들과 편견들에 얽매이 는 소도시인들에 비해 자유롭다’. 대도시와 같이 큰 집단이 가진 지적인 삶의 조건들이나 상호 무관심(indifference)이나 속내 감추기(reserve)라는 태도를 가 장 강하게 느끼는 것은개인의 자립성이 훼손되곤 하는 작은 집단에 속한 개인 들이라기보다는 대도시처럼 인구가 극도로 밀집한 곳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일 것이다이는 신체적 거리의 가까움과 공간의 협소함이야말로 정신적 거리를 가 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대도시의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장 잘 느끼게 마련이다물론 이것은 위에서 말한 자유의 이면일 따름이다왜냐하면 대도시만큼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고남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타인에게 별다른 정서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이들은 익명의 도시인이며고독한 개인이다이처럼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군중들을 자신의 편으로 규합하는 일은 정치가들에게 굉장히 중요한사활을 건 문제였다군중은 언제든 어떠한 우발적인 계기로 정치가들에게 저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정치가들은 자발적으로 군중들이 상호 연대하기 전에 그들을 다른 논리에 근거해 응집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때군중의 응집의 구심점을 바로 축제(festival)가 담당한다대도시의 군중을 하나의 정치적 축제로 묶는 작업은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뉘른베르크에서 개최된 나치의 전당대회나 1937년의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역사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이러한 축제의 광기를 나치는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군중을 조직하는 데에 이용했던 것이다군중으로써 조직될 것인가아니면 저항적 축제의 주체로써 연대적 삶을 표현할 것인가이 질문은 전체주의가 몰락한 지금에도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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