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의식세계'는 내가 태어났을 때는 분명히 비어있었고
'내가 지금 생각하는 바'들도 내가 태어났을 때는 없던 것들이다.
각자 살아가면서 생각을 형성했고 의식세계를 채웠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사람이 합리적 동물이라면 기존에 고집하던 생각과 모순이 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만나면
자기 생각을 수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존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다소 비유가 거칠긴 하지만, 우리 삶을 자동차와 견준다면
우리 삶은 자동차와 달리 후진 기능도 없고 정지 기능도 없다.
그저 앞으로만 내달리는 것이 우리 삶이다.
나에게 허용된 것은 핸들뿐이라는 얘기인데,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한다는 것은 핸들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핸들마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고정된 것이라면?
매트릭스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홍세화 저
'생각의 좌표' 중에서